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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수집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4.21. 12:20 (2026.04.21. 12:19)

완판본(完板本)과 경판본(京板本)

 
완판본은 전주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을 말하고, 경판본은 서울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을 말한다. 물론 경기도 안성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은 안성판이라 하는데 대체로 경판본에 넣어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원래 완판본이란 명칭은 한글고전소설을 경판본과 비교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국립전주박물관 제14회 박물관대학
역사의 라이벌 Ⅱ 발표 원고 요지
 
완판본(完板本)과 경판본(京板本)
- 이태영(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서론 - 완판본의 개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완판본(完板本)은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고대 소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조선시대 전주 지방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으로 풀이되어 있다.
 
완판본은 전주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을 말하고, 경판본은 서울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을 말한다. 물론 경기도 안성에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은 안성판이라 하는데 대체로 경판본에 넣어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원래 완판본이란 명칭은 한글고전소설을 경판본과 비교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현존하는 완판본 한글 고소설의 종류는 23 가지이다. 이 가운데 판소리계 소설이 춘향전, 심청가, 심청전, 화룡도, 토별가 5종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영웅소설이다. 판본이 다른 종류를 합치면 약 50여 종류가 된다.
 
 
열여춘향수절가(춘향전), 별춘향전, 심청전, 심청가, 홍길동전, 삼국지, 언삼국지, 소대성전, 용문전, 유충열전, 이대봉전, 장경전, 장풍운전, 적성의전, 조웅전, 초한전, 퇴별가, 화룡도, 임진록, 별월봉긔, 정수경전, 현수문젼, 구운몽
 
 
경판본은 경기도 안성판이 1780년에 <임경업전>을 출판하였고, 서울에서는 1792년 <장경전>을 찍었다. 이로부터 약 70여 종류의 소설이 서울과 경기에서 출판되었다. 완판본과 비교하면 경판본의 발간 시기가 약 40년 정도 앞선다.
 
 
강태공전, 구운몽, 금방울전, 금향정기, 남훈태평가, 당태종전, 도원결의록, 백학선전, 별삼국지, 사씨남정기, 삼국지, 삼설기, 서유기, 숙영낭자전, 숙향전, 신미록, 심청전, 쌍주기연, 옥주호연, 용문전, 울지경덕전, 월봉기, 월왕전, 임장군전, 임진록, 장경전, 장자방전, 장풍운전, 장한절효기, 장화홍련전, 전운치전, 정수정전, 제마무전, 조웅전, 진대방전, 토생전, 한양가, 현수문전, 홍길동전, 흥부전, 삼국지, 소대성전, 수호지, 심청전, 양풍(운)전, 임경업전, 적성의전, 제마무전, 조웅전, 진대방전, 춘향전, 홍길동전
 
 
1. 1. 완판본과 경판본 고전소설의 차이
 
1) 쪽수와 내용의 차이
 
경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쪽수가 16장에서 38장본까지 있다. 대체로 20장본과 30장본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비해 완판본은 73장본, 84장본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같은 <춘향전>일 경우, 경판본은 20장본인데 비하여 완판본은 84장본이다.
 
쪽수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책을 발행한 목적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즉, 경판본은 대중들에게 흥미를 위해 판매를 목적으로 발행한 책이었고, 완판본은 당시 전주 지역에서 유행한 판소리의 사설이 당시 민중들에게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그 내용을 재미있게 엮어서 소설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판매한 책이었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이후 신소설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근대소설과 현대소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자연히 학계에서 이루어진 한글고전소설의 연구는 주로 완판본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2) 한글 글꼴의 차이
 
완판본과 경판본은 둘 다 목판본이지만 글꼴이 상당히 달랐다. 경판본은 ‘궁체’의 하나인 흘림체(초서체)를 쓴 반면, 완판본은 민체로서 정자체(해서체)로쓰였다. 글꼴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경판본은 식자층들이 주로 읽을 수 있도록 초서체를 썼고, 완판본은 일반 서민들이 읽고 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정자체를 썼던 것이다.
 
전주의 완판본은 <구운몽>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서체로 되어 있는데 이는 완벽하게 반듯이 쓴 정자체를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글자체를 ‘민체’라고도 부르고 있다. 왜 이렇게 각수들이 반듯한 글자를 새겼을까?
 
정자로 글자를 새긴 이유는 소설 한 권을 다 읽으면서 우리 한글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어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한문소설과는 아주 다르게 그 발간의 목적이 단순한 소설을 발간한 것이 아니라 한글교육을 위한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 <언삼국지>의 첫페이지에 ‘가갸거겨’로 시작하는 자모음표인 반절표가 붙어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소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한글 교육을 거의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한글 고전소설을 읽으면서 한글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3) 문체의 차이
 
경판본은 이야기 서술 방식이 한문투의 문어체 방식이었지만, 완판본은 우리말투의 구어체 이야기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완판 고전소설의 특징은 일상언어인 구어체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방언이 많이 사용되어 있어서 방언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완판본 중에서 완판본 한글 고소설이 한글로만 써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점은 그 당시 전주의 언어생활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완판본 한글 고소설은 다른 문헌과는 달리 낭송이 중심이 되었다. 고소설이 낭송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고소설의 제목에서 발견된다. 완판본 고소설의 대부분은 그 제목에서 ‘화룡도 권지하라, 됴융젼상이라, 됴융젼권지이라’ 등과 같은 제목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화룡도 권지하, 됴융젼상, 됴융젼권지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이라’를 붙인 것은 고소설을 눈으로만 읽은 것이 아니라, 낭송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2. 완판 방각본의 생성과 발달
 
방각본(坊刻本)이란 용어는 ‘판매하기 위해 찍은 책’을 말한다. 전주에서는 서울과 비슷하게 판매를 목적으로 찍은 책이 아주 많이 생산되었다. ‘완판 방각본(完板 坊刻本)’이란 용어는 ‘판매를 목적으로 전주에서 찍은 옛 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완판 방각본 한글고전소설’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 왜 전주에서만 한글고전소설이 판매가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전주는 인쇄문화가 크게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에 호남의 모든 물산이 모여들면서 시장이 크게 발달하여 각종 물건들이 교환되고 판매되었다. 또한 사대부들이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지적 생산물인 책을 요구하게 되었다. 수요에 따라 한지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앙정부의 요청과 시장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지 생산, 시장 유통, 교통의 발달, 인쇄 문화 발달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달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전라감영이 자리했던 호남에서 발전한 판소리는 한국의 소설 문화를 선도한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을 지방에서 발간하게 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이 소설로 말미암아 ‘완판본’이란 용어가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쓰여 경판본과 더불어 인쇄문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2. 1. 전라감영과 출판 문화
 
완산감영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으로 士大夫 취향의 도서인 完營版 책이 만들어지게 된다. 완산감영에서 발행한 책으로는 정치, 역사, 제도, 사회, 어학, 문학, 유학에 관한 60여 종류의 책이 간행되었다. (鄭亨愚외, 1979:558) 서적은 학문을 진흥시키고 정치와 문화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시대마다 서적 편찬과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양선, 1997:11참조) 감영에서 발간한 일부 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정치서 : <明義錄>(명의록, 3권), <明義錄諺解>(명의록언해, 4권), <續明義錄>(속명의록, 1권), <續明義錄諺解>(속명의록언해, 1권), <今忠壯遺事>(금충장유사), <梁大司馬實記>(양대사마실기), 御製綸音(어제윤음, 1권),
* 역사서 : <綱目>(강목, 76권), <御定史記英選>(어제사기영선, 3권), <史記評林>(사기평림, 33권), <左傳>(좌전), <訓義資治通鑑綱目>(훈의자치통감강목), <新刊史略>(신간사략, 7권)
* 제도서 : <國朝喪禮補編>(국조상례보편), <大典通編>(대전통편, 5권), <喪禮補編>(상례보편, 6권), <受敎輯說>(수교집설), <增修無寃錄>(증수무원록, 3권), <欽恤典則>(흠휼전칙, 1권), <四禮便覽>(사례편람, 4권), <栗谷全書>(율곡전서, 38권)
 
완산감영의 위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물은 완영판 책과 그 책을 찍은 완영 목판들이다. 완산감영에서 책을 출판할 때 사용한 책판이 현재 전주 향교에서 위탁을 받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약 5, 000 여 판이 보관되어 있다.
 
이 책판은 1866년(고종3년)에 전라관찰사 趙翰國이 향교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보관하여 오고 있다. 주로 ‘<資治通鑑綱目>, <東醫寶鑑>, <性理大全>, <栗谷全書>, <朱子文集大全>, <增修無寃錄>, <史記>, <史略>’ 등의 책판이 있다.
 
이 책판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라감영에서 책을 출판하면서 전주의 인쇄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책판을 다루는 목수,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각수, 한지를 다루는 지장, 인쇄를 위한 여러 시설이 함께 발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감영의 인쇄문화는 전북 지역의 한지 생산을 촉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여 전국에서 가장 질좋은 한지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였다.
 
전라감영에서 판각과 인쇄기술을 익힌 각수들이 시내로 나가서 사간본(私刊本)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였다. 또한 일부 책들은 전라감영에 있던 판목을 이용하여 쇄출한 것으로 보인다.
 
 
2. 2. 사간본(私刊本) 인쇄문화의 발달
 
전라감영에서 발간한 책은 주로 사대부에게 나누어 주는 정도의 출판만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보기가 어려웠다. 이때 독자들의 요청으로 ‘私刊本’이 발행되는데 주로 전라감영에서 찍은 책과 함께 식자층들이 지적 활동을 위해 요구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2. 3. 태인방각본의 역할
 
전북 태인에서 발간된 방각본의 내용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자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한 서적이 많았다. 공자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방각본은 <孔子家語>, <孔子通紀>, <新刊素王事紀> 등이다. 둘째, 유교적 교양이나교화를 강조하는내용의 서적을 출판하여 <明心寶鑑抄>, <孝經大義>, 어린이 교육용 도서인 <童子習> 등이 출판되었다. 셋째, 실용성을 가진 방각본을 출판하였다. 농사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農家集成>과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新刊救荒撮要>가 있고, 당시의 백과사전인 <事文類聚>, 초학자들을 위한 문장 백과사전인 <古文眞寶大全> 등이 발간되었다.
 
전북 태인은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는 아주 일찌기 판매용 책을 대량으로 찍어낸 지역이다. 판매용 책을 찍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태인의 여러 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종합적으로 발전하였음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태인의 방각본은 지방의 상업적 출판의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다양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책을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큰 역할을 했다.
 
 
2. 4. 남문 시장의 발달과 상업 출판의 촉진
 
장명수(1994;119)에 따르면 전라도 전주는 시장의 발상지이고, 남문시장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승된 한국의 유일무이한 역사적 시장이다. 맨 처음 시장이 열렸다는 1473년, 시장이 허용된 1525년부터 지금까지 시장이 존속하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시대에 전국 5대 시장 중의 하나이다. 동문외장은 9일장으로 한약재와 특용작물을 거래하고, 서문외장은 7일장으로 양념과 어물을 거래하였으며, 남문외장은 2일장으로 생활품과 곡식을, 북문외장은 4일장으로 포목과 잡곡을 거래하였다. 남문시장은 ‘남밖장’이라 하여 전라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전주교는 싸전다리, 매곡교는 연죽다리, 완산교는 염전다리, 서문부근에는 약령시가 자리하여 아주 큰 시장을 형성하였다.
 
남문시장을 중심으로 방각본을 찍어 판매한 책방은 ‘다가서포, 문명서관, 서계서포, 창남서관, 칠서방, 완흥사서포’ 등이다. ‘양책방’을 제외하고 모든 책방이 남문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남문시장이 매우 큰 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전주의 남문시장은 조선시대 전국 5대 시장 중의 하나여서 수많은 상인들이 전국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하여 몰려들었는데 이 때 상인들이 책을 구입해 가거나 아니면 미리 주문을 받아서 책을 사다가 주는 경우가 되었을 것이다.
 
 
2. 5. 書堂의 발달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서당의 숫자는 약 1만개소였는데 이후 증가하여 1912년 4월 말에는 16, 540개소가 되었고, 1919년 5월 말에는 23, 556개소가 되어 학동들은 약 37만 명에 이르렀다. (국역전주부사, 391쪽 참조)
 
완판 방각본이 가장 많이 출판된 시기가 1911년, 1916년인데 이 시기가 서당이 가장 많이 증가한 시기여서 그만큼 아동용 책이 많이 발간되어 판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2월에 총령 제18호에 의거 서당 규칙이 발포되었는데 교과서는 다음의 서적 중에서 선택케 하여그에 대한 단속을 엄중히 하였다. (국역전주부사, 390쪽 참조)
 
 
천자문, 類合, 啓蒙篇, 擊蒙要訣, 소학, 효경, 사서, 삼경, 통감, 古文眞寶, 明心寶鑑, 文章軌範, 唐宋八家文讀本, 東詩, 唐詩, 法帖, 조선총독부편찬 교과서
 
 
2. 6. 종이(한지)의 대량 생산과 방각본의 발달
 
완산감영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지를 제작하였다. 이러한 한지의 제작은 자연히 서적을 발간하는 일과 관련되어 중앙정부에서 필요한 서적을 간행하게 되었다.
 
한지를 만드는 지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이 지역의 한지 생산이 중앙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생산량을 중앙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감영에서는 한지를 제작하여 중앙에 상납하고, 중앙에서 내려 보낸 책을 찍는 일 등 중앙정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지를 제작하였다. 감영의 시설로는 조지소(造紙所)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여러 종류의 종이를 제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여기에는 지장(紙匠)이 있어 질 좋은 한지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였다. 또한 전주의 인근인 상관, 구이, 임실 등에 지소(紙所)를 두기도 하였다. 전주부에는 서문과 남문사이에 ‘지전(紙廛)’이 많이 들어서서 지전거리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사서삼경과 같은 큰 책을 만들기 위해서 는많은 종이가 필요했고, 전주나 대구에서는 종이가 풍부하여 방각본으로 책을 찍을 수 있었다. 한글고전소설의경우, 완판본은 84장본이 많은 반면에 경판본은 20장에서 30장본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수지를 맞추기 위한 출판이었지만 한지의 발달이 소설의 분량을 늘이는 계기가 되었다.
 
 
2. 7. 판소리의 발달과 방각본 한글고전소설
 
전주 지역의 통인들이 즐기던 대사습놀이는 정조8년(1784)에 이 지방에 才人廳과 歌舞私習廳이 설치됨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 날은 동짓날에 통인들이 광대를 초청하여 판소리를 듣고 노는 잔치인데, 이 날이 되면 통인들은 광대를 초청하여 가무를 겨루었다.
 
동리 신재효(1812-1884)는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 박타령, 적벽가, 변강쇠가’ 등 판소리 여섯마당을 새롭게 정리하였다. <심쳥가>(41장본)를 저본으로 다시 소설로서 재미를 덧붙이면서 완판 <심청전>(71장본)을 만든 것이다. 완판 29장본 <別春香傳>이 33장본으로 확대되면서 <열여춘향슈졀가>라는 새 표제가 붙게 되었다. 이 대본이 독자의 호응을 받게 되자, 다시 84장본으로 재확대하면서도 <열여춘향슈졀가>라는표제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상권45장, 하권39장으로 된 完西溪書舖판을 <열여춘향슈졀가>로 부르고 있다.
 
일찍이 상업이 발달하여 온갖 물건이 거래되었던 전주에서는 호남평야를 배경으로 소작농민층이 형성되어 대량의 쌀과 닥나무를 재배하였고, 상업으로 여유가 생긴 서민 인구가 확대되어 갔다. 이처럼 여유를 가진 서민들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독서 욕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사대부들의 취향에 맞는 도서로서는 도저히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고 이러한 서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완판 방각본이 출현한 것이다.
 
비방각본이 상류층의 고도한 지식을 내용으로 하는 책인 반면에, 방각본은 서민층이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대중적 책들이었다. 비방각본이 政敎와 救恤을 위한 교화적인 것이 주된 내용인데 반하여, 방각본은 擊蒙을 위한 교육용 기초서적, 가정생활 백과 도서, 흥미 위주의 고전소설 등이 대부분이었다.
 
방각본 한글고전소설을 많이 발간한 것은 개화기 시대에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며, 이 계층은 넓은 호남평야를 일구는 경제적 안정을 얻은 농민들이나 상인들이었다. 결론적으로 호남지방의 농토를 배경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은 서민층과 상업으로 여유를 갖게 된 서민층의 문화적 욕구에 맞게 간행한 것이 완판 방각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영향으로 전주에 모여든 많은 가내수공업은 목장(木匠), 지장(紙匠), 주석장, 선자장(扇子匠), 야장(冶匠), 유장(鍮匠), 마조장(磨造匠) 등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량생산을 위한 분업과 기계화가 되면서 전주의 가내수공업은 쇠퇴하기시작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내수공업의 하나인 목판 인쇄 출판업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완판 방각본이 한창 판매되던 1900년대 초에는 이미 서울에서는 활자본 신소설과 딱지본 고소설이 출판되었다. 신소설은 양지에 활자로 인쇄한 책이어서 목판에 한지를 사용하던 완판본과는 출판비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다. 실제로 1920년대에는 필경으로 인쇄한 책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194·50년대에도 전주에서는 노루지에 석판으로 인쇄한 석판본이 유행하였었다. 이 석판본들은 다시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사간본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따라서 활자 인쇄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완판 방각본은 차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양종이인 양지의 발달로 인하여 수공으로 인한 인건비가 많이 드는 한지 생산은 급속히 줄어들게 되었고 이는 곧 방각본 출판에 많은 비용이 들게 한 이유가 되었다.
 
완판 방각본이 시대의 흐름에 밀려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지만 그 책들은 여전히 남아서 우리에게 화려했던 방각본의 역사와 문화를 말하고 있다. 서민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개화 의식, 민주적 의식은 매우 높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은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은 책을 통하여 배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완판 방각본이 그 역할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특히 완판본 한문고전소설과 한글고전소설은 목판본과 필사본을 포함하여 수많은 양이 이 지역에서 출판되었다. 특히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서울의 경판본에 비교하여 양과 질이 매우 우수하여 후대의 소설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활자본 소설은 물론, 한국의 현대소설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명실공히 소설문학의 원천지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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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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