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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론
본 논문은 14세기 후반에 명과 서·북 몽골 사이의 완충 세력이었던 가욕관이서의 제 위소가 북부와 서부의 몽골 세력의 공세에 맞서 어떤 과정을 거쳐 15세기 말~16세기 초에 폐지되는지를 살펴보는 논문이다. 본문은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위소의 형성과 북·서 세력의 공세에 대한 위소의 대응, 그리고 위소의 폐지와 이후 향방에 관해 다루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7개의 위소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7개의 위소는 모두 몽골제국의 종왕이나 도원수부, 또는 승상과 같은 고위 관료에서 기원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명과의 우호관계를 선택했을까. 당시의 상황을 검토해 보았을 때, 이 시기 북·서에 자리했던 몽골 세력이 비교적 약했다는 점, 반대로 명이 위소들에 많은 경제적 이득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 또한 명이 당시 비한족 지역에 적용했던 토사제도로 인해 고도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는 점 등이 위소들의 판단을 좌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장에서 다루었듯 15세기에 접어들면서 북쪽과 서쪽에서 각기 오이라트와 모굴 칸국의 세력이 강력해져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특히 관서 일대에서 오이라트의 영향력은 1420년에 오이라트가 하미와 통혼을 맺었을 때부터 시작하여 1449년 에센 타이시가 명의 정통제를 사로잡았을 때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이때 명에 의해 추장으로 임명된 이들은 줄곧 명의 지시에 순응하여 오이라트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보였던 반면, 위소 내에서 추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또 다른 세력은 오이라트 세력과 손을 잡고 명의 사신을 공격하는 등 서북 변경에 혼란을 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첫 번째로 사주위의 추장이 가욕관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폐지되었고, 곡선위가 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투르판에 점령되었다.
3장의 시기는 에센이 사망한 15세기 하반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에센이라는 구심점을 상실한 오이라트는 다얀 칸이 몽골리아 초원을 장악하자 물밀 듯이 관서 일대로 흘러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서쪽에서 모굴 칸국 역시 위구리스탄의 지배를 탈환하고 동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두 세력의 각축에 밀려 관서의 모든 위소가 차례로 폐지되었다. 이때 일부는 모굴 칸국에 예속되었고 다른 일부는 명의 강역 내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위치한 지역이 이슬람권과 티베트불교권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보니 모굴 칸국에 복종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무슬림들이 많고, 명으로 이주한 이들은 티베트불교도들이 많았다. 결국 15세기 말~16세기 초 관서 위소들의 폐지는 두 문화권의 경계를 보다 명확하게 가르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러다보니 16세기 이후 이 일대에서 발생한 갈등과 충돌은 양 종교의 과도한 종교적 열정의 결과로 해석되곤 했다.
그러나 관서의 여러 위소가 각기 명과 모굴 칸국을 선택한 데에는, 전면에 드러나는 종교적 이유 외에 경제·정치적 이유가 맞물려 있다. 명은 관서 위소에 경제적 특혜를 베풀 때 티베트 인들을 매개로 삼았으며, 승려에게 경제·정치적인 특혜를 부여하여 위소 내에서의 위상을 제고했다. 마찬가지로 하미의 회회나 곡선위가 모굴 칸국을 선택한 것 역시 물론 무력의 문제도 있지만 그들이 서역의 이슬람 상인 네트워크에 속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슬람권의 구성원과 티베트 불교의 구성원이 일으킨 갈등과 충돌을 종교적인 열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처럼 관서 위소의 폐지가 이루어진 16세기 초 이후, 중국 서부에서 이슬람 문화권과 티베트몽골 문화권의 경계는 과거에 비해 한층 명확해졌으며, 대체로 그 경계는 현재 중국의 간쑤-칭하이성과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계선과 일치한다. 14세기 이전에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에 도달하기 위해 먼 길을 여행했던 많은 여행자들은 불교 사찰과 이슬람 사원이 나란히 자리한 여러 도시에 관한 기록을 남겼고, 본문에서 보았듯이 명대 중기까지만 해도 무슬림과 불교도가 한 오아시스 도시의 공동 지배자로 활약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이슬람권 내에 비무슬림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반대로 티베트 불교 문화권 내에서 무슬림은 특수한 구역에 모여 사는 경우 외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종교 문화권의 변경 지역에서 양자 간의 혼재 상황은, 몽골 제국의 후예이면서 명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무슬림과 티베트 불교도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던 관서 7위라는 모호한 존재의 소멸과 동시에 사라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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