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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잔존세력의 후속 역사 소고(小考)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6.04.14. 19:20 (2026.04.14. 19:14)

I. 서론

 
본 연구는 몽골제국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 남았던 여러 몽골제국의 후예 중에 조치 울루스의 제(諸) 칸국이나 모굴 칸국(Moghul Khanate), 북원(北元)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군소 세력의 명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군소세력은 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 여러 국가들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 명과 모굴 칸국, 북원과 티베트 사이에는 명의 군사 행정구역인 위소로 편성되어 있지만 구성원은 몽골, 티베트, 투르크 등 비한족이며, 명의 강역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나 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던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을 명에서는 관서 7위(혹은 8위)라 부른다.
몽골제국 잔존세력의 후속 역사 소고(小考):
명대(明代) 서북(西北)의 관서(關西) 위소(衛所)를 중심으로*)
- 이주연 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본 연구는 몽골제국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 남았던 여러 몽골제국의 후예 중에 조치 울루스의 제(諸) 칸국이나 모굴 칸국 및 북원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 보기 어려운 군소 세력의 명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명과 모굴 칸국, 북원과 티베트 사이에서 명의 군사 행정구역인 위소로 편성되어 있지만 구성원은 몽골, 티베트, 투르크 등 비한족이며, 명의 강역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나 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던 관서 7위가 바로 그들이다. 본고에서는 이들이 명의 위소로 편성된 시점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동족이었던 북·서부 몽골 세력의 침입과 그로 인해 발생한 내홍을 겪으며 폐지에 이르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 각 단계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고찰할 것이다.
 
주제어 : 관서 7위, 오이라트, 북원, 모굴 칸국, 티베트, 명
 
Abstract
The Subsequent History of the Remaining Force of the Mongol Empire: Guan-xi Wei-suo of the Ming Dynasty
Juyeon Lee Kyung Hee University
 
This research examines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destruction of small groups, which were the succeeding forces of the Mongol Empire that could not form a nation because of its size. These groups, Guan-xi 7 wei, was located between the Ming dynasty and Moghul khanate, Beiyuan, and Tibet. Their members are Mongolians, Tibetans and Turkish and not the Han tribes. The Han tribes were located outside of the Ming dynasty but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other tribes, and they were organized into Ming’s military administrative districts, Wei-suo (衛所). The Han tribes were organized as Ming’s Wei-suo from the late 14th century to the early 15th century, and were invaded by other succeeding forces of the Mongol Empire, which is Oirat (Western Mongol): Eastern Mongol forces from the north and Moghul Khanate from the west during the 15th century. Some of the Han tribes moved to Ming’s territory and other Han tribes were subjected to the north-west powers in the early 16th century. This article examines all the process, divides the process into three stages, and considers several issues about each stage.
 
Keywords | Guan-xi 7 wei, Oirat, Bei-yuan, Moghul Khanate, Tibet, Ming
 
 
 
I. 서론
 
본 연구는 몽골제국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 남았던 여러 몽골제국의 후예 중에 조치 울루스의 제(諸) 칸국이나 모굴 칸국(Moghul Khanate), 북원(北元)1)처럼 국가를 이루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군소 세력의 명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군소세력은 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위치하여 주변 여러 국가들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 명과 모굴 칸국, 북원과 티베트 사이에는 명의 군사 행정구역인 위소로 편성되어 있지만 구성원은 몽골, 티베트, 투르크 등 비한족이며, 명의 강역 바깥에 존재하고 있으나 명과 긴밀한 관계를 지녔던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을 명에서는 관서 7위(혹은 8위)라 부른다.2)
 
이 위소들에 대한 기존 연구는 이들의 계보 및 위치비정, 그리고 이 위소들에 적용되는 명의 제도에 치우쳐 있으며, 이들에 관한 연구 또한 대체로 명의 기록에 의존한다(Serruy, 1963: 434-445; 1956: 82-90; 1977: 353-380; 杉山正明, 1982: 1-40; 2004; 杨富学, 2018; 曾文芳, 2002). 그러나 이 위소들은 엄연히 명의 강역 바깥에 있었던 별도의 세력이다. 그들의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모두 비한족이며, 특히 지배층의 경우 그들의 북쪽에 자리한 몽골리아 초원의 북원 황제 및 서쪽의 모굴 칸국의 칸과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요컨대 그들 역시 몽골 제국에서 비롯한 세력인 것이다. 건국 초기에 국가의 서북부에 자리한 수많은 세력들 중에 일부를 택하여 번병으로 삼고 위소를 설치하였으며, 이들을 위무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한 것이 명이었지만, 이후의 역사는 명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이 위소를 둘러싼 주변세력의 영향과 그에 대한 위소의 대응이 이 지역의 역사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이 명의 위소로 편성된 시점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동족이었던 북·서부 몽골 세력의 침입과 그로 인해 발생한 내홍을 겪으며 폐지에 이르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 각 단계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고찰할 것이다. 우선 중원 왕조인 명은 북부와 서부에 자리했던 몽골 세력의 공세에 맞서 또 다른 몽골 세력을 번병으로 내세웠는데, 이 전략은 적어도 100년 이상 유효했다. 이러한 전략이 어떻게 유효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로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몽골 세력, 즉 몽골리아 초원의 오이라트(瓦剌) 및 모굴리스탄 초원의 모굴 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위소 내부에서도 파열을 알리는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즉 15세기에 위소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을 오이라트 및 모굴 칸국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고, 위소를 둘러싼 주변 세력의 역학관계가 위소 내의 세력 구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 위소가 자리했던 곳은 동쪽의 티베트 불교 문화권과 서쪽의 이슬람 문화권이 접점을 이루는 곳으로, 단적인 예로 위구르 불교도들의 찬양시와 둔황 막고굴의 공덕주 명단에 등장하는 몽골계 종왕이 이슬람 성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만큼 두 종교의 영향력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3 이러한 지역에서 무슬림과 티베트 불교도를 함께 포함하고 있었던 위소의 폐지가 두 문화권의 경계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것이다. 즉, 이 글은 여러 국가와 문화권의 변경에 자리했지만 스스로는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군소 세력이, 국가 및 문화 간의 경계선이 과거보다 한층 명확해지는 15세기 이후에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살펴보는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
 
 

 
*   이 연구는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음(NRF2019S1A5C2A01083578).
1   ‘북원’은 몽골제국의 카안 울루스가 1368년에 주원장의 공격으로 인해 몽골리아 초원으로 되돌아간 이후의 정권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다만 이것은 사료용어라 볼 수는 없는데, 몽골인들은 몽골리아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동안 ‘대원(大元)’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가, 이것을 폐지하고는 원래 스스로를 칭하던 대로 몽골, 예케 몽골(Yeke Mongol) 등으로 칭했다. 반면 중국 사료에서도 ‘북원’이라는 단어는 잘 나타나지 않으며, 달단(韃靼)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이 글에서는 명의 건국 무렵 몽골리아 초원으로 향하여 1368~1635년 동안 존속했던 국가를 지칭하고자 ‘북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주로 학술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2   관서 7위는 후술할 하미위, 적근몽고위, 사주위, 한동위, 안정위, 아단위, 곡선위인데, 이 중에 사주위가 폐지된 후 한동위가 좌위와 우위로 분열되어 좌위가 사주위의 옛 영토를 점거했다. 그러므로 이 한동좌위를 별도로 보아 관서 8위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욕관 서쪽에 8위가 모두 병존한 적은 없었다.
3   이는 본문에서 후술할 서녕왕 술래이만의 사례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름 때문에 그를 무슬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위구르 불교도들의 찬양시 등이 돈황 문서에서 발견되었고, 『막고굴육자진언게』, 『중수황경사기』 등의 석각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그와 이슬람의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Yakup, 1999: 1-25).
【작성】 가담항설 - 떠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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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