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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출산, 모두의 잔치’ 특별전
화창한 토요일, 글을 쓰다가 국립민속박물관의 출산 문화를 담은 ‘출산, 모두의 잔치’ 특별전을 보러 갔다. 전시회는 “출산으로 맺어지는 관계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아기의 탄생이 한 가정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축하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잔치임을 보여주며 집의 출산 환경과 탄생을 빌었던 관습과 출산을 통해 공동체가 함께했던 신성한 순간을 재현하고 전통적 출산과 분만 환경의 변화, 돌봄의 가치를 전시하는 특별한 전시회이다.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100개의 옷감을 이어 만든 백일 저고리, 아빠가 쓴 육아일기, 아이를 위해 1,000명의 글자를 받아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등 328건을 전시하고 돌잔치, 백일잔치 등을 다양하게 꾸몄다.”라고 소개해 특별전 전시회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출산, 모두의 잔치〉(사진:국립민속박물관)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출구로 빠져나오니 방탄소년단(BTS) 멤버 7명이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3년여 만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지는 ‘아리랑’ 컴백 공연을 즐기려는 외국인이 가득했다. 열린 송현녹지광장에서 멀리 있는 백악산을 바라보았다.
열린 송현녹지광장(사진:궁인창)
송현녹지광장에는 2025년 가을에 열렸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이 끝나 작품 철거를 준비하고 있고 안내문에 철거 시한이 2026년 3월 16일부터 5월 31로 적혀 있었다. 부지런하게 걸어 동십자각을 지나 삼청로의 법련사 앞에서 법당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길 건너에 있는 조선 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 건춘문(建春門)으로 걸어갔다.
건춘문(사진:궁인창)
조선왕조 경복궁은 사방으로 4개의 문을 두었다. 남쪽의 광화문(光化門), 동쪽의 건춘문(建春門), 서쪽의 영추문(迎秋門), 북쪽의 신무문(神武門)이 그것이다. 건춘문의 유래는 오행설에서 동쪽은 봄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봄이 시작되는 건춘문 안쪽에 세자가 머물던 동궁(春宮)과 종친부가 있어 왕세자와 종친, 상궁들이 드나들었다. 건춘문의 이름은 조선왕조 초기 세종 8년(1426년)에 지어졌다. 건춘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우진각 지붕 형태이며, 석축 위에 목조 문루가 올라간 구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중건되었다. 서쪽 영추문은 조선왕조의 문무백관이 출입한 문으로 문헌에는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하였다. 송강 정철(1536∼1593)은 〈관동별곡〉에서 “연츄문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하직고 물러나니”라고 노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진 후 19세기 중반에 경복궁이 중건되었지만, 1926년 석축(石築)이 무너지면서 철거됐다. 문은 1975년에 복원되어 43년 만인 2018년 12월 6일 전면 개방되어 서울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영추문 개방(사진:서울시)
건춘문 밖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삼청동 카페거리가 이어져 사람들이 즐겨 찾는데 봄이 와도 이 문은 절대 열리지 않아 봄이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 봄이 되면 건춘문을 활짝 열어 봄기운을 맞이해야 경복궁이 활짝 살아나는데, 어찌 된 일인지 1년 내내 문을 열 생각을 안 한다. 경복궁관리소가 건춘문 바로 옆에 있어 사람 통행은 막더라도 화사한 봄기운이 잠시 들어가도록 일정 기간만이라도 제발 대문만 개방했으면 정말 좋겠다. 옛날에는 이 문으로 자주 드나들었는데, 문을 열어 놓자! 간절한 소원이다! 문을 여시오!
건춘문(建春門) 앞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 2명이 사진 촬영에 열중했다. 사람들은 민속박물관 쪽으로 게속 올라갔다. 외국인 한 가족이 맥이 빠진 채 땅만 바라보고 내려오고 있어 왜 그런 표정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사진:궁인창)
건춘문 주변을 사진에 담으며 국립민속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고종의 어진을 그렸던 무신(武臣) 출신 초상화가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이 1921년에 그린 임실 유학자 추수(秋水) 김제덕(1855~1927) 선생 작품이 걸려있었다. 초상화를 자세히 보니 정자관과 심의를 갖춰 입고 《주자대전》을 손에 든 단아한 모습의 비단 채색 초상화였다.
추수 김제덕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전라도 임실의 한학자이자 문인으로, 노년에는 학문과 저술에 매진했던 인물이다. 선생은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식과 견해를 정리해 엮은 《한훤요람(寒暄要覽)》과 시문집인 《추수사고(秋水私稿)》를 유산으로 남겼다.
임실 유학자 추수 김제덕 초상화 사진(사진:궁인창)
석지가 그린 추수의 초상화는 유학자의 본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전주에 사는 사진작가 사천 김학수(金學洙, 1933~2022) 선생이 2007년 8월에 민속사진 1,870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민속박물관은 2008년 10월에 사진작가 김학수 기증전 ‘떠나보낸 시간, 잊혀진 시간’ 특별전을 개최하여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렸다.
김학수 기증 특별전(사진:연합뉴스)
귀로(歸路) 詩 김학수
내 세상의 바다에서 빈 손으로 돌아가네
한낮 새파랗고 싱그러운 저 세상의 바다에 던진 그물
때로 빛나는 고기떼도 건져 올리고 때로 구름마저 건져 올린 날들 있었나니
이제 그물을 빠져나가는 바람같이 이제 그물을 빠져나가는 바람같이
내 세상의 바다에서 빈 손으로 돌아오네
국립민속박물관과 북악산(사진:궁인창)
국립민속박물관 철문에는 “방탄소년단의 공연에 따른 관람객 안전 확보를 위해 임시 휴관한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공연은 저녁 8시에 있는데, 오전부터 종일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장 문을 닫는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치에 슬며시 화가 났다. 국립민속박물관을 다음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돌아섰다. 그때 국립민속박물관 직원 한 분이 안에다 소리쳐 간신히 안으로 들어갔다. BTS 저녁 공연은 여기에서 한참 떨어진 광화문광장에서 하는데, 서울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을 휴관하게 한 것은 정말 대단히 놀라운 발상이었다. 아쉬움 속에 많은 사람이 건너편에 있는 북촌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주변 분위기는 국립민속박물관과 달리 활기가 넘쳐 대조를 이루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외부 작품(사진:궁인창)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 4개의 분관을 운영하고 2026년 하반기에 대전 분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미술관은 1년 내내 즐겁고 다채로운 전시를 열어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2023년 9월 관장으로 취임한 김성희 관장은 소장품 확대, 국제교류 강화, 대중과의 소통, 작가에 대한 배려심(配慮心), 국제거장전 정례화, 문화콘텐츠 지역향유 증진, 청년 보존전문가 양성, 미술 아카이브 디지털 서비스, 학예연구 국제네트워크 구축을 내걸고 세대 변화에 따른 변화를 잘 읽어내며 미술관을 활기차게 이끌고 있다. 일부 미술 평론가와 기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방향이 상업성이 강하다고 지적하지만, 미술관을 활성화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s)(사진:궁인창)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예산은 47억 원 정도로 규모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최근 5년간 2,400여 점을 수증(受贈) 받으며 내실을 다져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3월 전시는 영국의 현대 예술가 초청 ‘데이미언 허스트(1965~)의 개인전’, ‘소명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3개 전시회가 열려 표를 사려는 관람객이 많았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s)이 벽에 장식되어 있고, 2010년 발표한 강렬한 존재감의 신화(myth)가 있었다. 말 형상의 한쪽 면은 백색 유니콘이지만, 다른 쪽은 근육과 앙상한 뼈가 드러나게 표현되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신화(myth)(사진:궁인창)
허스트 작가의 서울 전시에 작품이 50점이 선보였으나, 설명문 위치를 찾지 못했다. 작가의 해부학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여 년 전에 천안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본 ‘찬가(Hymm)로 대형 해부학 작품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 당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데이미언 허스트(사진:The Sunday Times, 2017)
데이미언 허스트는 1965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했다. 그는 미술에 재능을 보여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때인 1988년, 런던 도클랜드의 빈 창고를 빌려 프리즈(Freeze) 전시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영국 현대 미술(YBA: Young British Artists) 열풍을 주도하고 젊은 작가들을 발굴한 광고 재벌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와 1993년 런던에 현대 미술 갤러리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설립한 제이 조플링(Jay Jopling) 갤러리스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해 1995년에는 영국 최고의 권위를 가진 터너상(Turner Prize)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90회의 개인전과 300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 서울 전시는 런던 작업실 풍경을 그대로 서울로 옮겨와 전시했는데,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대단히 강렬했다.
천사의 해부학(2019 요크셔 국제조각전)(사진:LEEDBID)
영국 웨스트요크셔주 웨이크필드(Wakefield) 인근 브레튼 홀(Bretton Hall) 부지에 위치한 요크셔 조각공원(Yorkshire Sculpture Park)은 1977년 설립된 야외 현대 조각 미술관이다. 약 500에이커(60만 평) 광활한 대지에 헨리 무어(Henry Moore),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 호안 미로(Joan Miró) 등 거장들의 대형 조각작품과 국제적인 현대미술 기획전을 상시 선보인다. 특히 영국 최대 규모의 조각공원은 18세기 풍경식 정원의 수려한 경관과 현대 미술품의 조화가 잘 어울려 매력으로 꼽힌다.
요크셔 조각공원(사진:트립컴)
영국의 첫 번째 조각공원인 요크셔 조각공원(YSP)은 리즈에서 차로 약 30분, 맨체스터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대자연 속에 들판을 걷기 좋아하는 관람객들은 야외 전시물과 지하 전시관을 포함한 총 5개의 실내 갤러리를 한가롭게 거닐며 작품을 감상한다. 현재 이곳 미술관은 현대 조각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를 유치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Small Lie’ by Kaws(사진:Andrew's Walks)
국립민속박물관 전시를 보러 나섰다가 뜻밖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을 감상했다. 집에 돌아온 뒤 여러 작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밤이 깊도록 영국 요크셔 조각공원(YSP)에 전시된 거장들의 조각품 자료를 찾아보며 또 다른 감상 세계에 빠져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