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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3공화국 수교와 한국전쟁
조선왕조는 프랑스 제3공화국과 1886년(고종 23년) 6월 4일에 13개 조항이 들어있는 조불수호통상조약(朝佛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하고 수교하였다. 조선은 음력 4월 16일 김만식(金晩植, 1834~1901)을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으로 임명하고, 프랑스는 1886년 5월 외교관 코고르당(F. G. Cogordan, 戈可當/戈司當)을 전권위원으로 한성에 파견되어 두 사람은 조약 체결을 위해 교섭하여 6월 4일 최종적으로 조약을 조인하였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초대 프랑스 영사(사진:위키피디아)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는 상하이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조불수호통상조약의 비준 서류를 교환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1887년 5월 한성으로 와 잠시 머물렀다. 1887년 11월에 초대 프랑스 영사로 임명되어 일하다 1890년에 베이징으로 떠났다. 이후 1895년 조선에 와서 1906년까지 근무했다, 조선 문화를 좋아한 플랑시 영사는 고서와 도자기 등 2,500점의 문화유산들을 수집해 고서는 동양어학교에 기증하고, 도자기는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괴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등에 기증하였다.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로고(사진:주프랑스 한국대사관)
2026년은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6년 4월 2일(목)~3일(금)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State Visit)하여 공식 환영식 및 한-프랑스 정상회담, 조약 및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위한 다수의 양해각서(MOU) 서명식, 국빈 오찬을 하며 무역, 투자, AI, 우주, 원자력 등 여러 분야에서 전방위 협력을 강화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 취임 후 첫 방한이다. 2000년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때 방한하였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2011년 공식 방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이화여대 방문(사진:한국대학신문)
2015년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하고 이화여대 캠퍼스를 방문했다. 한국과 프랑스는 중요한 교역국으로 성장하여 한국은 선박, 자동차 부품, 배터리, 무선전화기 등을 수출하고 프랑스에서 농산물과 와인, 통조림, 기계류, 소비재 등을 상호보완적으로 교역하고 있다. 첨단 기술 및 미래 산업인 방산, AI, 우주, 항공산업, 양자(Quantum) 기술, 재생에너지, 보안 등 첨단산업 여러 분야에서 기술 협력과 상호 투자를 이어가며 친밀한 협력 관계가 기대된다.
로르네 쁠레방(René Pleven) 프랑스 총리(사진:위키피디아)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제4공화국 로르네 쁠레방(René Pleven) 총리 내각은 프랑스 국내의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1950년 7월 22일 유엔군에 참가할 것을 발표하고 극동 해군에 소속된 구축함 그랑디에르(La Grandiere) 호를 한반도로 파견했다. 블랑 장군과 제2차 세계대전 영웅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 1892~1964) 장군이 중심이 되어 한국전 파병동의안을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시킨 후 1개 대대를 창설하고 훈련을 거쳐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상륙했다. 프랑스 전투부대는 기차를 타고 철도로 이동하여 수원에서 부대 재편성 중인 미국 제2보병사단 제23연대에 배속되었다.
랄프 몽클라르 육군 중장(사진:국가보훈부)
프랑스 총사령관 몽클라르 중장은 당시 59세로 18개의 훈장을 받았지만, 유엔군 군대 조직 편성에 따라 스스로 계급을 4단계 낮추어 보병 대대장 중령이 되었다. 프랑스 전투대대는 1953년까지 3차례 3,421명의 군인이 교체되었다, 프랑스 장병들은 원주 문막 전투, 원주 쌍터널 전투, 경기 지평리 전투, 화천 저수지 전투, 단장의 능선(931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 전투, 티본고지 전투, 중가산 전투, 1952년 10월 초에 철원 281고지 화살머리고지 전투 등 14번의 전투에 참여했다.
경기도 지평리 비행장(사진:국가보훈부)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지평리 전투에서 미국 프리먼 대령이 지휘하는 23연대와 프랑스 대대의 5,000명 병사가 중공군 제39군 예하 3개 사단 30,000만 명과 교전하여 승리하였다. 유엔군은 38선을 지켜내 맥아더 사령관은 중공군 4차 공세를 막아내 한국전쟁에서 분기점이 된 지평리를 헬기로 방문해 유엔군 병사를 격려했다.
랄프 몽클라르 육군 중령과 맥아더 원수(사진:국가보훈부)
프랑스군 대대장 몽클라르 중령은 1951년 2월 13일 지평리 전투 때 평지에 마땅한 건물이 없어 1925년 이종환이 설립한 지평양조장의 높은 2층 건물을 발견하고 1939년에 지은 양조장을 지휘소로 삼아 전투에서 승리했다.
마오쩌둥은 1951년 2월 말에 펑더화이(彭德懷, 1898~1974)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부터 전쟁 보고를 받았다. 펑더화이는 “병사들이 조선반도 지평리 전투 패배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사기가 저하되고, 물자보급이 차질을 빚고 있어 전쟁 수행이 어렵다.”라고 보고했다. 마오쩌둥은 보고를 받자마자 중공군 9개 사단이 동원된 4차 총공세를 종료하고 정전 협상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1951년 5월 24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미 제9군단의 1단계 공격 작전인 지암리-파로호 전투에서 중공군 제180사단 7,000명 병사가 미 제7사단, 미 제24사단, 한국군 제6사단에 삼각 포위당해 병력의 86%인 약 6,000명의 인명 손실을 당하고는 패잔병 1,000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빠르게 후퇴했다.
1955년 파로호 전투비 건립(사진:위키백과)
프랑스 대대 제1진 2중대장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는 1941년 생시르 육사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인도차이나 전쟁 등에 참전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 자원해 제1진으로 한국에 발을 들였다. 구필 대위는 쌍터널 전투, 지평리 전투, 단장(斷腸)의 능선 전투 등에서 전투했다. 프랑스군이 북한군 2개 사단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단장의 능선’ 전투를 치르던 중 최전방 돌격 때 적이 쏜 박격포탄에 맞아 1951년 9월 26일 전사했다. 가평군은 2007년 가평군 북면 성황당교(일명 구필대교) 옆에 구필 대위 기념비를 세웠다.
프랑스 육사에 기증한 구필 대위 깃발(사진:국가보훈부, 2024)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31-1번지에 세워진 프랑스군 한국전 참전비 비문에는 “정의와 승리를 추구하며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을 가진 나폴레옹의 후예들!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몸 바친 288명의 고귀한 이름 위에 영세 무궁토록 영광 있으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수원 프랑스 한국전 참전비 참전용사 방문(사진: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지평리 일대가 비행기 폭격으로 모두 폐허가 되었지만, 지평양조장은 하나도 손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국가유산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양조장이고 독특한 건축 양식과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 지휘소로 사용된 점을 인정하여 2014년에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하였다. 양조장은 처음 지을 때 환기를 위해 높은 창을 두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천장에 왕겨를 채웠으며 외벽 일부에 흙벽돌을 사용했다. 지평주조는 4대 김기환 사장이 경영을 물려받으면서 성장하여 안정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2016년에 양평 공장, 2018년에 춘천공장을 새로 건설하고 양평군의 예산 지원(8억 원)을 받아 옛 지평양조장을 2020년 5월에 복원했다. 지평주조는 향토기업으로 양평지역에 공장을 크게 지으려고 했으나 상수원 보호구역 등 각종 규제로 할 수 없이 다른 지역에 공장을 건립했다.
지평양조장 복원 상량식(사진:지평주조, 2020)
필자는 모임에서 막걸리를 선택할 때 한국전쟁에 참여한 랄프 몽클라르 장군과 지평리 전투 전몰장병을 추모하며 지평막걸리를 주문한다.
지평막걸리(사진:지평주조)
프랑스 정부는 지평양조장을 사령부 삼아 전투를 지휘한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계급을 사후 국가적 예우로 중장으로 복원했다. 랄프 몽클라르 장군은 1951년 2월 프랑스 병력 600여 명을 이끌고 중공군 3만 명을 격퇴해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로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스스로 장군에서 중령으로 자발적으로 강등했다.
프랑스 정부의 몽클라르 장군 계급 복원을 축하 기념하기 위하여 2022년 11월 8일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아들 롤랑 몽클라르를 비롯해 10여 명의 프랑스 참전용사와 국가보훈처장,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양평군수, 박후성 11사단장,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가 함께 프랑스군 지평리 전투 기념비, 지평지구 전적지 등을 방문하여 지평리 전투 당시를 회상하고 지평양조장을 방문해 막걸리를 시음하며 한·불 우정을 기념했다.
랄프 몽클라르 장군 아들 지평양조장 방문(사진:지평주조, 2022)
2025년 6월 25일 오전 11시, 프랑스 파리 4구에 위치한 유엔 프랑스 대대 광장(Place du Bataillon-Français-de-l'ONU-en-Corée)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앞에서 한국전쟁 제75주년을 기리는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프랑스 참전용사협회(ANAAFF) 유가족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파리 외국작전국립기념비(Monument national des opérations extérieures)에 새겨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한국전쟁 제75주년 기념식(사진:국가보훈부)
이날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 기념식에 참석한 파트리시아 미랄레스(Patricia Miralles) 국가보훈부 장관은 “프랑스에는 한국전쟁 참전자로 95세의 아르상보 씨 등 21명이 생존해 있는데, 2026년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는 해를 맞이하여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 등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파리 외국작전국립기념비에 새기겠다.”라고 약속했다. 프랑스 대대는 한국전쟁에서 적과 전투가 많아 참전 장병 대비 전사자 비율이 가장 높은 8.5%로 전사(戰死) 292명, 부상 1,008명, 실종 7명 등 총 1,307명의 손실을 당했다.
파리 외국작전국립기념비(사진:francezone.com)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École spéciale militaire de Saint-Cyr)는 구필 대위를 기리기 위해 2022년 입교한 육사 209기를 ‘구필’ 기수로 명명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프랑스지회, 프랑스한인회, 프랑스한국전참전협회 등 프랑스 한인 단체들은 육사 209기 구필 기수의 한국 방문을 지원하기 위해 2024년 봄에 모금 운동을 펼쳐 3,537만 원(20,670유로)을 모금했다.
프랑스 교민사회 모금 후원(사진:월드코리안)
프랑스 한인 단체와 송안식 프랑스 한인회장은 한국전쟁 74주년 기념행사 식장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제209기 생도 대표에게 후원금을 전달해 프랑스 대대 제1진 2중대장 로베르 구필 대위의 숭고한 헌신에 화답했다.
생도 209기 동기회 한국 방문(사진:francezone.com)
프랑스 생시르 육사 209기 생도 180명과 인솔 간부 20여 명은 2024년 7월 3일 에어프랑스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한국군 전방 군부대 방문, 육사 방문, 프랑스군이 참전했던 전적지 답사, 전쟁박물관, 부산 유엔기념공원 참배, 문화 체험 및 세미나, 주한프랑스대사관 방문 등 뜻깊은 일정을 마치고 7월 13일 대한항공을 이용해 귀국했다.
UN프랑스대대 공원 참전기념비(사진:양평군)
양펑군은 2025년 12월 2일 UN프랑스대대 공원 참전기념비를 건립해 우리나라에는 전국 11개 지역에 16개의 프랑스군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