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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세조에 맞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는 "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달게 받겠다(위선피화 오소감심 爲善被禍 吾所甘心)"고 소신을 피력하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가 절찬리 상영되고 있다. 단종 임금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육지의 섬인 청령포에 유배되어 죽고 그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든 영화이다.
2007년 9월 영월 청령포로 배로 타고 들어가려다 비가 많이 내려 가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비 내리는 청령포를 바라보며 단종이 묻힌 장릉과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각에 대한 사진을 찾아 포스팅한다.
▣ 영월 청령포(寧越 淸泠浦) 1.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번지 2. 조선 6대 왕 단종이 1457년 삼촌인 세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유배된 곳으로, 삼면이 강으로 막히고 뒤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섬과 같은 "육지 속의 섬"이라며 오로지 배를 타야만 출입이 가능한 곳입니다.(월요일 휴무. 입장료 : 3000원)
3. 유배된 1457년 여름, 홍수때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 사망한 곳)으로 옮기기 전까지 2개월간 단종이 머물던 곳이 청령포이며 , 객사인 관풍헌 옆의 누각에서 지은 자규사가 전해진다.(자규子規는 두견새의 다른 이름)
1726년(영조 2)에는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고자 일반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1763년(영조 39)에는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단종이 영월부에 있을 때의 옛 터)"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비와 비각을 세웠다. 4. 1457년 10월 21일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기록하였지만, 세조가 직접 죽음을 지휘한 정황은 여러 기록에서 발견된다. 인조 때 나만갑이 지은 『병자록』에는 세조가 보낸 사약을 가지고 간 금부도사 왕방연이 차마 어명을 전하지 못하고 주저하자, 단종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단종 곁에서 늘 시중을 들던 통인(通引:시중드는 사람)이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고 한다.
5.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왕비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은 "망향탑 돌무더기", 약 600살로 추정하는 천연기념물 349호인 "관음송(觀音松)", "단종 어소(1996년 홍수로 유실돼 2000년 4월에 기와집을 복원)"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들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명승 50호)다.
★ https://youtu.be/5Ep40-vnaCI
▣ 단종의 장릉 1. 단종(端宗)은 조선 6대 국왕이며, 문종의 장남으로 12세에 즉위하였다.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어 17세에 사망한 비운의 왕이다. -영화 포스터 및 나무위키 사진- 2. 단종의 가계도 단종은 세종의 손자이고 문종의 장남으로 누이가 경혜공주(남편 정종)이며 단종비는 생이별한 정순왕후 송(宋,82세) 씨다.
3. 장릉(입장료 2000원)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의 능으로 단종이 1457년(세조 3) 노산군(魯山君)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 호장 엄흥도(嚴興道)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위선피화 오소감심 爲善被禍 吾所甘心)"는 소신으로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 석물을 세운 후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 능침은 추존 왕릉 제도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 등을 생략하여 간소하게 조성하였고, 홍살문과 정자각, 비각, 수라간과 수복방, 재실 등은 지형에 맞게 능침 서쪽 아래에 조성하였다. 비각 안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朝鮮國 端宗大王 莊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고,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 묘를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 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 능침(위키백과 사진)과 봉분
※ 장릉 위치가 명당이라는 설화 단종이 죽고 영월 호장(戶長)이었던 엄흥도가 밤중에 몰래 아들들을 데리고 가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산에 올랐다.(이때 사용한 관과 수의는 당시 고령이었던 엄흥도의 노모를 위해서 준비해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급하게 일어난 일인데다가 눈보라가 치고 땅이 얼어 맨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산속에 앉아있던 노루 한 마리가 일행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는데 노루가 앉았던 그 자리에는 눈이 녹아서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이를 보고 엄흥도 일행은 천우신조라 여겨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한 후, 식솔을 거느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후에 단종이 정식으로 복권되어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지관을 조정에서 내려보냈는데 그들이 살펴보니 단종이 묻힌 그 자리가 이미 천하의 명당이었기에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고쳤다. 처음 엄흥도가 시신을 안치했을 때는 봉분도 없는 평평한 맨땅이었기에 다른 땅과 구분이 가지 않았고 풀도 무성한 자리였다. 그러나 그 지역 사람들 중에 그 자리를 밟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도 그 주변에서 놀 때, 그 자리를 향해서 돌을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위키-
4. 엄흥도(嚴興道) 정려각(旌閭閣) 엄흥도 초상화(나무위키 사진)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각
5. 박충원(朴忠元,1507~ 1581) 낙촌비각(駱村碑閣) 노산군 묘를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 군수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비각
▼ 장릉의 가을
▼ 단종 관련 장소
★ 단종비 정순왕후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숭인동 정업원과 청룡사 https://blog.naver.com/jawkoh/222888511410
출처 : 나무위키, 궁능유적본부,영월시청, 네이버,구글, 문화재청
▣ 영월 볼거리 - 영월 시청 사진- - 별마로 천문대 - 한반도 지형 전망대 - 선돌(신선 놀던 곳) - 고씨동굴 고씨동굴은 임진왜란때 고씨가족이 피란했던 곳으로 1969년 6월에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으며, 4억년전 석회동굴로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조이며 하층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는 수평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입구로부터 남서 방향으로 통로가 발달해 있다. 총 주굴의 길이는 약 950m, 지굴의 길이는 약 2,438m로 총연장은 3,388m이며, 이 중에서 약 620m 구간만 1974년 5월에 일반인에게 공개 - 법흥사(적멸보궁)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오래된 사찰로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중 하나,그래서 적멸보궁 건물 안에는 불상이 없고, 대신 뒤쪽 풍경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 하나가 뚫려 있다. 그 창을 통해 보이는 언덕이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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