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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담징이 그린 法隆寺 금당벽화
한·일 정상이 셔틀 외교로 2026년 1월 13일 일본 나라현(奈良縣)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은 첫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다음 날 오전에 이코마 군에 위치한 쇼토쿠(聖德, 574~622) 태자가 607년 창건한 호류지(법륭사, 法隆寺)를 방문했다. 호류지는 1,400여 년 전에 건립된 성덕종(聖德鐘) 총본산으로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와 전쟁에서 약탈을 당하지 않고 창건 당시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큰 사찰이다.
호류지 항공 사진(사진:연합뉴스)
호류지 지역의 불교 건축물(法隆寺地域の仏教建造物)은 1993년(平成, へいせい, 헤이세이 5년) 12월 남미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개최된 제17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日本書紀》에는 창건 후 670년에 화재로 재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역사 깊은 사찰에는 많은 유산과 문헌, 유물이 남아 있고 종류도 많아 한·일 역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사찰이다.
호류지 방문(사진:연합뉴스)
倭 야마토국 쇼토쿠 태자는 百濟 威德王 때 승려인 혜총(惠聰)과 595년에 倭 땅에 도착한 高句麗 승려 惠慈를 스승으로 모시고 佛敎와 儒敎를 배웠다. 쇼토쿠 태자는 백제인이 많이 거주하는 난바(難波: 오사카는 15세기 지명)에 四天王寺를 창건하고 20년 후, 601년에 건축을 시작해 607년에 완성했다. 호류지 주지가 사찰 남대문 앞에 마중 나와 한·일 양국 정상을 사찰 안으로 안내해 중문을 지나 오중탑과 국보 문화재를 설명하고 금당 벽화를 친견했다. 화재로 손상된 벽화는 별도 수장고에서 보존하며 일반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호류지 금당벽화(사진:한겨레 김태형)
호류지 금당 벽화는 고구려 담징(曇徵, 579~631) 和尙이 그린 것으로 고구려 고분 변화의 기법이 엿보이며 석가, 아미타, 약사, 미륵정토도 등의 그림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949년 1월 26일 호류지 금당을 수리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하여 위쪽 벽에 그려진 비천상 일부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다행히 화재가 발생하기 전인 1935년에 찍어 둔 사진과 영상이 남아 있어 복원하는 전문가와 미술사가들은 당시 사진 자료를 보고 금당 연구를 하고 있다.
쇼와(昭和, しょうわ) 9년(1934년), 문부성에 호류지 국보 보존 사업부가 설치되고, 국가사업으로 ‘法隆寺 昭和 大修理’가 시작되면서, 금당 벽화의 정확한 현황 기록 작성을 목표로 벽화의 원본 크기 분할 사진 유리 원판 촬영이 기획되었다. 당시 사진 촬영은 1887년 교토에서 창업한 미술 전문 인쇄회사인 벤리도(株式会社 便利堂, Benrido)가 도맡아 1935년 여름에 테스트 촬영을 진행하고, 다음 해 8월 1일부터 시작해 10월 15일에 종료했다. 당시 벤리도는 콜로타이프(Collotype)라는 매우 섬세한 사진 인쇄 기술을 보유한 세계적인 회사로 이 회사가 보유한 기술 방식은 잉크의 농담을 통해 사진의 깊이감을 표현하며 잉크가 반영구적으로 보존되어 박물관의 문화재나 고미술품 복제에 주로 사용되었다. 원래 편리당은 서점으로 출발해 신문배달업을 하였다. 메이지 38년(1905) 러일전쟁 이후 그림엽서 붐이 크게 일어나 엽서를 판매할 목적으로 사진 공방을 세웠다.
1935년 금당 벽화 촬영(사진:벤리도)
70일이 걸린 촬영은 벤리도의 사진 기술자 사토 하마지가 주임으로 하고, 10명이 함께 진행했다. 사토 주임이 벽화를 촬영한 것은 대정 8년과 쇼와 9년 두 차례로 원본 크기로 분할 촬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실물 크기로 분할 촬영한 사진은 대벽에서 세로 6, 가로 7인 42컷, 소벽에서는 세로 6, 가로 4인 24컷으로 촬영되었으며, 각 면의 부처님 주존을 별도로 촬영해 374개 분할이 되었다. 외전 벽화를 촬영할 때는 전당 내부 공간이 제한적이고 벽화를 분할 해 실제 크기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벽화를 정면에서 볼 수 있도록 벽화 앞쪽에 분할 촬영용 프레임을 설치하고, 그 프레임 안에 맞춤형 대형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이동시킬 수 있는 구조가 고안되었다. 또한. 촬영할 때 조명 불균형을 방지하기 위해 카메라 위치 네 곳에 250W 백열전구 4개를 달아 카메라와 함께 이동시켰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촬영된 사진 유리 원판은 2015년(헤이세이 27년)에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도쿄 국립박물관 디지털 호류지 금당 벽화(사진:디지털 호류지)
聖德鐘 제6대 관장이며 호류지 제129세 주지인 오노 겐묘(大野玄妙, 1947~2019, 향년 71세 별세) 관장(管長)은 불에 탄 담징 화상이 그린 벽화를 일반인에게도 보여주기를 원했다. 주지는 1947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호류지 제106세 주지였다. 3세에 절에 들어가 1957년 9세에 득도했다. 카미노미야 고등학교를 거쳐 1970년 3월 용곡대학 문학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72년 3월, 용곡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관장은 1982년 성덕종 서무부장, 호류지 집사보로 취임, 1983년 호류지 집사, 1992년(헤이세이 4) 성덕종 교학부장, 호류지 보존사무소 소장 보좌, 1993년 성덕종 종무소장, 교학부장, 호류지 집사장, 쇼와자재장 편찬소 소장, 1999년 4월에 성덕종 제6대 관장 겸 호류지 제129세 주지에 취임했다.
호류지 제129세 주지인 오노 겐묘(大野玄妙)(사진:法隆寺)
오노 겐묘 관장은 일본 제1호 세계유산 호류사의 미래를 곰곰이 생각하고는 2015년 9월 문화청을 방문해 화재로 손상된 벽화의 영구 보존을 문화청장과 의논하였다. 우선 벽화를 공개하기 위해서 사전 조사를 하고, 그 보존 및 활용의 기본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위원회를 요청했다. 그는 문화재 보수에 필요한 목재 확보를 위해 임업 진흥을 하며 문화재 건조물 보호에 앞장을 섰다.
문화청과 아사히신문사가 호응해 3개월 후인 12월 5일에 제1차 ‘法隆寺 금당벽화 보존 활용 위원회’가 호류지에서 개최되었다. 위원장에 아리가 쇼타카가 선임되고 보존 활용 위원회 구성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 연구자 11명으로 구성하여 보존 환경 그룹, 벽화 미술사반과 재료 조사반 그룹, 건축 부재 그룹, 아카이브 그룹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각 그룹 및 팀에 좌장을 두고, 구성원은 5명에서 10명으로 배정했다. 아카이브 그룹에서는 벽화 관련 자료의 디지털화와 분석, 벽화(현황)의 기록 보존을 지속함과 동시에, 쇼와 10년(1935) 미술 인쇄회사 벤리도에서 촬영된 실물 크기 분할 사진 유리 원판 法隆寺 소장 363장의 디지털화를 함께 진행했다. 유리 원판은 일반적인 망목 오프셋 인쇄나 부드러운 농담 표현이 가능한 콜로타입 인쇄와는 달리, 예를 들어 금당 벽화 외전의 사방 사불 중 서방 아미타 정토도(제6호벽)의 아미타여래 소용돌이에 나타난 나선 머리카락과 옆에 있는 관음, 대세지 두 보살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의상 등은 인쇄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풍부한 정보가 새겨져 있다. 사진 유리 원판에는 수배 확대율을 견딜 수 있는 고해상도 정보가 유제에 포함된 은 입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유리 원판 363장에 대해 보존 및 수리 사업 중 스캐너를 이용한 고정밀 디지털화 작업이 함께 진행되었다.
도쿄국립박물관 내 호류지보물관(사진:法隆寺)
2020년 공개한 〈디지털 호류지 보물관〉은 호류지 관련 보물을 고해상도 디지털 콘텐츠와 정밀 복제품으로 컴퓨터와 핸드폰에서 즉시 관람이 가능하다. 1878년 法隆寺는 약 300점의 명보(名寶)를 황실에 봉납했다. 오랜 기간 일본 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다 보물 일부를 디지털로 구현하였다. 이것은 일본 7~8세기 고대 미술품을 3D 데이터로 정밀하게 관찰하거나 고해상도 화면을 통해 상세히 감상할 수 있어, 문화재의 숨겨진 세부 사항까지 학습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 공간이다.
석가정토도(1호)
2호
3호
4호
도쿄국립박물관 내 호류지보물관은 2023년 1월 31일에 호류지 헌납 보물인 국보 〈쇼토쿠 태자 그림 전기〉, 8월 1일부터는 〈호류지 금당벽화〉를 테마로 실감 넘치는 그래픽 패널(복제)과 대형 8K 모니터를 통해 그림의 세부까지 자유자재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전시했다. 호류지 금당 벽화를 조사한 전문가들은 벽화는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보고사를 작성했다. “벽화는 50면 중 다수를 포함하고, 금당 외전의 대벽 4면에 그려진 사방사불과 소벽 8면에 나란히 배치된 보살을 합쳐 총 12면이 중심이다. 쇼와 24년(1949) 1월 26일 오전 7시경에 화재가 발생해 그 벽화들은 3년 후에 건립된 수장고에 손상된 건축 부재와 함께 보존되고 있다.”라고 적었다.
5호
아미타 정토(6호)
7호
8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불상의 세부 묘사나 금속 공예품의 문양을 확대하여 관찰이 가능하고 실제 유물의 보존과 동시에 대중에게 고대 문화재를 새로운 방식 체험형 콘텐츠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전시는 보물 자체의 세밀한 부분까지 디지털로 구현하여 육안으로 보기 힘든 부분까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호류지 보물관은 또 기악, 가면, 의상의 당시 모습을 고증한 복원 모조품을 통해 과거 사람들을 매료한 예능 기악의 다채로운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대정 9년(1920)에 발간된 《法隆寺 벽화 보존 방법 조사 보고서》의 서문에서 古社寺 보존 회장인 구키 류이치(九鬼 隆一, Baron Kuki Ryūichi, 1852~1931)는 “法隆寺 금당의 벽화는 현재 세계에 알려진 동양 각국의 벽화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곳이다....(이하 생략) 이처럼 法隆寺 금당 벽화는 화재 이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왔으며, 그 가치도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표현 기법의 특징이기도 한 佛菩薩의 육신을 묶는 철선묘와 옷의 옷주름을 나타내는 凹凸 기법, 그리고 얇은 물체(우스모노)의 투시묘법 등 서역의 화법을 전하는 중국의 화법을 빠르고 짧은 시간에 습득하여 훌륭히 드러내어 그려낸 것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라고 적었다.
9호
10호
11호
12호
1949년 화재로 사라졌던 호류지(法隆寺) 금당벽화가 나라현 카시하라시 현립 카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박물관에 의하여 다시 원래의 색채로 복원되어 2023년 3월 19일 일반에 공개되었다. 벽화는 카시하라 고고학연구소가 2021년도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소실된 벽화에 남은 안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1939년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을 활용해 금당벽화 제1호 석가정토도를 복원했다. 복원된 벽화 중앙에는 선명한 붉은 가사를 수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살과 나한이 협시로 서 있는 구도이다.
法隆寺 금당벽화 복원품(사진:奈良新聞, 2023)
벽화는 높이 약 3m, 너비 2m 50cm 정도로 그림은 도판에 그려져 소성한 것으로 안료의 변색을 막고 그림의 내구성을 높였다. 복원을 책임진 회사는 오츠카 그룹의 일원으로 고분벽화의 복원과 복제로 유명한 오사카의 오츠카 오미 도자회사(Otsuka Ohmi Ceramics Co., Ltd.,)로 일본의 대형 도판(陶板, Ceramic Board) 및 건축용 세라믹 제품 제조 회사이다. 이 회사는 1970년 후반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대형 도판(최대 900 x 3,000 x 20mm) 제조 기술을 개발하여 예술 작품, 문화재 복원, 건축 외장재 등을 제작하고 있다.
오츠카 국제미술관(사진:오츠카 미술관)
도자회사의 도판 명화는 종이나 캔버스, 흙벽과 달리 색이 바래지 않고, 1000~1350도의 고온으로 구워내어 실외에서도 반영구적으로 보존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오츠카 그룹 관계자들은 회사 설립자의 고향인 도쿠시마현 주민들을 5년간 찾아가 대화하며 설득하였다. 미술관을 지상 위로 올려 짓지 않고 지하 3층에 거대한 전시 공간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주민이 미술관이 지어지면 경관을 크게 해치고 사람이 많이 방문해 시끄럽다고 주장해 반대하는 주민을 찾아가 간곡하게 미술관을 짓는 목적을 계속 설득해 동의를 받아냈다. 오츠카 그룹은 4,000억 원을 투자해 국제미술관을 세우고 세계 26개국 190개 미술관 작품 1,000여 점을 특수 기술을 이용해 원화의 색채와 크기를 사실적으로 제작해 작품을 전시했다. 현재 도쿠시마현 시골 마을에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이제 주민이 사라지던 마을은 활기차고 풍요로운 부자 마을이 되었다. 고향을 떠났던 오츠카 그룹 창업가 가족들은 바닷가의 흔한 모래를 가지고 고향에 보은(報恩)하였다.
中·日교류 2천년(사진:淸華大學)
일본 나라현과 중국 청화대학은 중·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공동 특별전 〈아시아를 연결하는 아름다움과 정신 中·日교류 2천년〉을 2022년 9월 23일부터 12월까지 베이징 청화대학 예술박물관에서 개최하였다. 일본 나라현은 2022년 3월에 복원한 ‘法隆寺 금당벽화’를 특별전에 처음 선보였다. 특별전에는 중·일 양국의 오랜 문화 교류사를 나타내는 문화재 100여 점이 전시되었다. 전시회는 漢, 唐. 宋의 시대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 사상, 미술 공예의 교류를 테마로 佛敎, 書, 繪畵, 도자기 등 다양한 문물을 소개했다.
春满乾坤福满门:年时里的礼仪芳华(사진:清华大学美术馆)
일본 가시하라 고고학 연구소 부속 박물관은 1940년에 야마토국사관으로 개관하여 약 13,000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2021년 11월에 단장을 마치고 法隆寺 금당벽화 복원품을 2023년 3월 18일 공개하였다. 복원된 벽화의 건너편에는 화재로 손상된 현 상태의 벽화를 복제한 도판이 전시하여 화재의 전후를 한눈에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문화유산 교류협력 업무 약정 체결식’(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일본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는 1938년부터 나라현(奈良県)의 유적을 조사하고,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어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2023년 2월 17일 카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과 문화유산 교류협력 업무 약정 체결식을 하였다.
후지노키 고분 출토품(사진:奈良県立 橿原考古学研究所付屬所博物館)
후지노키 고분 출토품(사진:奈良県立 橿原考古学研究所付屬所博物館)
카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부속 박물관은 구석기, 죠몬(縄文), 야요이(弥生), 고훈(古墳),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해이안(平安)~무로마치(室町) 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고고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奈良県立 橿原考古学研究所付屬所博物館 내부 전경
나라(奈良) 현립 카시하라 고고학연구소 아오야기 마사노리 소장은 호류지(法隆寺) 금당 벽화 중에 아직 복원하지 못한 벽화가 빨리 복원되기를 원하고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