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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23. 11:38 (2026.02.23. 11:38)

서울올림픽 때 첫 방문 후 한국 오면, 3개월간 동작 및 안무 지도 등 제자 보살펴 국립발레단 발전에 기여

 
한국 발레를 사랑한 유리 그리고로비치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1927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1946년 키로프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해 1961년까지 무용수로 활동하고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마린스키 발레단의 안무가로 발레단을 이끌다 37세 때인 1964년에 볼쇼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영입되어 1995년까지 수석 안무가를 지냈다.
한국 발레를 사랑한 유리 그리고로비치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1927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1946년 키로프 아카데미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해 1961년까지 무용수로 활동하고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마린스키 발레단의 안무가로 발레단을 이끌다 37세 때인 1964년에 볼쇼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영입되어 1995년까지 수석 안무가를 지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사진:AP뉴시스, 모스크바, 2015)
 
1988년부터 예술감독을 겸하며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참가차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했다. 이후 볼쇼이 발레단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1990년 3월 25일 단원 250명을 이끌고 대한항공 전세기 편으로 한국 김포공항에 도착해 ▲3월 28∼30일 〈백조의 호수〉 ▲4월 1∼2일 〈지젤〉 ▲4월 3일 〈쇼피니아나〉, 〈나야다와 어부〉 중 발레조곡, 〈해적〉 중 2인무, 〈호두까기〉 인형 중 인디언 인형의 춤, 〈실피다〉 중 2인무, 〈돈키호테〉 중 그랑파를 공연하였다.
 
볼쇼이 극장(사진:러시아역사학회)
 
1776년 3월 28일(신력)은 세계에서 유명한 볼쇼이 극장의 탄생일이다. 자선사업가였던 표트르 바실리예비치 우루소프 공작은 예카테리나 2세 황제로부터 극단을 창단하고 공연, 무도회, 오락 행사를 할 수 있는 공연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극장이 완공되기 전에 화재로 소실되어 우루소프 공작은 극장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 극장을 설립하고 유지할 권리를 곡예사이자 무대 기계공이었던 영국 사업가 마이클 매덕스와 나누었다.
 
표트르 바실리예비치 우루소프 공작(사진:러시아역사학회)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우루소프 공작 자신은 평생을 축산업에 헌신하며, 말 관련 백과사전으로 손꼽히는 《말의 책》(1898)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말의 책》은 말과 말 품종의 기원, 해부학과 생리학, 승마와 마차 경주의 기초, 장비와 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백과사전으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는 가족의 다섯째 자녀로 형제인 알렉산더, 블라디미르, 니콜라이는 젊은 시절 군 복무를 했고, 이후 중요한 정부 직책을 맡았다. 차르의 측근이 되어 황실 훈장을 받았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는 1880년 빌뉴스 보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말에 대한 열정이 더 커 여왕 폐하 근위 기병연대에 소위로 입대했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국립 종마 사육 총국에 들어갔다. 이후 그의 경력은 국가 농업에 헌신하였다. 그는 농업 및 국유재산부(농업 및 천연자원부에 해당) 국립 종마 사육 총국, 그리고 내무부 장관 직속 특별 보좌관으로 승진했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는 문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소, 돼지, 가금류, 염소 등 축산에 관한 책을 썼지만, 특히 말 사육에 집중하여 저서를 집필했다.
 
러시아 스포츠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12권으로 구성된 《러시아 농업 백과사전》(1900-1912)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황실 지원으로 우루소프 공작은 러시아 염소 사육 협회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전국 42개 주와 도시에 지부를 두고 그는 협회의 상임 회장직을 맡아 해외 유명 품종의 수입을 촉진하고 국내 염소 사육 활동을 조직했다. 우루소프 공작은 3년 동안 정부 공보총국의 일간지인 정부 관보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우루소프 공작은 언론 총국장과 내무부 장관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문학 활동과 말 사육을 병행하면서 직책을 수행했다. 전쟁 첫해에 아들 표트르가 전선에서 전사했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우루소프 공작의 마지막 생애는 더 끔찍했다. 그는 1918년 9월 11일 예센투키 시에서 북캅카스 체카에 체포되어 다른 상류층 인사 및 장교들과 함께 퍄티고르스크의 노보에브로페이스카야 호텔에 수감되었다. 한 달 후, 10월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 공작은 동생 니콜라이를 포함한 58명의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공동묘지로 끌려가 파놓은 구덩이 앞에 줄지어 세워진 후, 총기가 아닌 사브르, 총검, 소총 개머리판으로 맞아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우루소프 공작, 《말의 책》(사진:말 잡지)
 
초기 극단은 안무가, 음악가, 여배우, 남녀 무용수 등 약 40명으로 구성되어 발레, 오페라, 연극을 동시에 공연했다. 최초의 극장 건물은 네글린카(Neglinnaya) 강변에 6개월 만에 건설되었다. 1780년 12월 30일에 성대한 개관식이 열렸다. 초기 건설한 페트로프스키 극장 건물은 1805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1812년 조국 전쟁 이후 페트로프스카야 광장은 다시 재건되었다. 건축가 오시프 보베의 고전적인 건축물 단지 설계에 따라 옛 극장 자리에 새로운 극장을 건립했다. 건물 정면은 8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웅장한 현관으로 장식되고, 현관에는 세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를 탄 아폴로 조각상이 자리했다. 건물은 방향을 돌려 현대의 볼쇼이 극장처럼 극장 광장을 향하게 되었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저서 《모스크바의 파노라마》에서 이 새로운 건축 걸작에 대해 평했다. 극장은 화려한 내부 장식에 2천 명이 넘는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을 갖추었다. 차츰 이 새로운 극장은 볼쇼이 페트로프스키 극장으로 알려져 1825년 1월 6일에 개관했다. 1853년 3월 11일에 화재가 발생하여 극장이 파괴되고 검게 그을린 벽과 현관 기둥만 남았다. 새 극장은 황실 극장의 수석 건축가인 알베르트 카보스가 맡아 알렉산더 2세의 대관식에 맞춰 건축했다. 카보스는 7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마린스키 극장을 건설했다. 볼쇼이 극장은 1856년 8월 20일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로 개관했다. 건축가는 극장을 거대한 악기처럼 설계하고 음향 효과를 극대화했다.
 
볼쇼이 극장(사진:마루코 누비노)
 
레닌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극장 폐쇄를 주장했지만, 배우들은 무대로 돌아왔다. 극장은 각종 회의나 행사 장소로 사용되던 볼쇼이 극장은 내전과 혁명을 견뎌내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살아남았다. 1942년 겨울부터 복원 작업이 시작되어 1943년 가을에 볼쇼이 극장은 일반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볼쇼이 극장의 역사를 건축가 안나 크루스탈레바가 상세하게 기록했다.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1995년 볼쇼이 발레단 경영진과 불화로 극장을 떠날 때는 200년 만에 최초로 무용수 파업이 벌어졌다. 볼쇼이 극장을 잠시 떠나 크라스노다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발레 극장의 예술감독을 지내다가 2008년에 볼쇼이 극장으로 돌아와 발레 연출가로 활동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볼쇼이 발레 공연의 표준으로 설정되었다.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사진: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은 2000년 2월 1일 국립극장 전속 단체에서 재단법인으로 전환해 독립한 후, 행정 전문성 결여, 초기 운영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특히 공연 예산 부족으로 외국 공연은 꿈을 꾸지 못했지만 잘 극복했다. 후원회 조직을 만들고, 국고보조금을 보충하기 위해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고 우수작품 레퍼토리화를 추진하여 수입원을 창출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가는 한국에서 작품 6편을 하였지만, 저작권료를 받지 않았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 작품(사진:볼쇼이 극장)
 
안무가는 2000년 〈호두까기 인형〉, 2001년에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 시절 〈스파르타쿠스〉 초연을 안무하고, 〈백조의 호수〉, 2005년 〈호두까기 인형〉, 2008년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때는 6주간의 일정으로 안무에 맞춘 의상과 무대 장치 소품을 모두 러시아에서 제작하여 들여왔다. 그런데 아내의 병환 소식이 전해져 급히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로 돌아갔으나 사랑하는 부인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1941~2008)의 임종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 〈지젤〉(사진:위키백과)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가 부부는 한국에 오면 공연장 근처에 방을 구해 3개월간 머물며 한국 무용수를 직접 가르쳤다. 다른 유명한 안무가는 한국 공연할 때 직접 오지 않고 조수를 보내 지도했다. 그러나 러시아 안무가는 연세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발레 동작을 하나씩 직접 안무하며 수정해 주고 발레 제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고령의 안무가 부부 덕분에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2010년 국립발레단 안무(사진:국립발레단)
 
2010년에는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국립발레단과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최초로 합동 공연 〈라이몬다〉 작품을 하였다. 안무가는 서울 오페라 극장을 방문해 대화하고 발레학교 시스템을 논의했다. 〈라이몬다〉는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의 음악을 바탕으로 1898년 만든 것을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자신의 버전으로 꾸며 1984년 발표했던 작품이다. 13세기 중세 헝가리 왕국을 배경으로 십자군 전쟁에 나간 프랑스 귀족 출신 기사 장 드 브리엔의 약혼녀 라이몬다가 사라센 영주 압데라흐만의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고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 작품(사진:볼쇼이 극장)
 
2017년 1월 2일 90세 생신을 맞이하여 러시아 볼쇼이 극장은 1월과 2월 두 달간 춤의 전설 특별 시즌 공연으로 〈스파르타쿠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황금시대>, 〈사랑의 전설〉 등 그가 안무하거나 재안무한 볼쇼이 발레단의 핵심 레퍼토리 11편을 무대에 올려 안무가의 높은 업적을 기렸다. 영국에서는 볼쇼이 시네마 시리즈의 세 편을 상영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고별식(사진:볼쇼이 극장)
 
러시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거장은 평소 아주 건강하셨는데, 폐렴 합병증으로 2주간 모스크바 중앙병원에 입원해 치료하다 향년 98세로 2025년 5월 19일 월요일에 별세했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 추모식장이 마련되었다. 대극장 무대 중앙에 고인의 관이 놓여 있고, 백발의 발레 마스터 사진이 준비되었다. 5월 23일 러시아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가 모두 볼쇼이 강당에 모여 추모식을 엄숙하게 거행했다.
 
유리 그리고로비치 추모식(사진:로이터)
 
모스크바 시민들은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밖에서 꽃을 들고 위대한 영웅을 조용히 기다렸다. 러시아 발레를 암흑기에서 황금기로 이끌며 60개의 상을 받고,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33년간 볼쇼이 발레단의 수장이었던 그리고로비치의 관이 볼쇼이 극장 계단을 한 계단씩 내려올 때 대형 초상화에 경의를 표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러시아 노보데비치 수도원(사진:유네스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유해는 화장해 노보데비치 묘지(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에 있는 평생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발레리나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 아내 옆에 안장되었다. 16세기에 건축된 노보데비치 수도원 건축물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노보데비치 묘지(Novodevichy Cemetery)는 러시아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안장지 중 하나로 과거 러시아 귀족이나 성직자가 주로 묻혔으나, 지금은 국가에 높은 공로가 있거나 역사, 문화, 과학, 예술적으로 중요한 작가, 음악가, 우주비행사, 과학자 등으로 제한되었다. 묘지에는 27,000개의 묘가 있고, 고인(故人)의 약력을 형상화한 다양한 실물 크기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러시아 노보데비치 묘지(사진:Novodevichy Photo)
 
러시아 노보데비치 묘지(사진:Novodevichy Photo)
 
노보데비치 묘지 조각상 사진첩(1115장)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러시아의 근대 역사와 시민 정서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딱딱한 권위주의적 묘비 사이에 독특한 동상이 있었다. 중절모를 쓰고 휴식 중인 인물이 발치에 누워 있는 개와 함께 있는 동상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코미디언, 서커스 광대였던 유리 니쿨린(Yuri Nikulin, 1921~1997)의 생전 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의 묘비는 아주 독특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엎드려 있는 개는 반려견으로 서커스 공연에도 함께 올랐던 17세기 독일에서 개발된 자이언트 슈나우저(Giant Schnauzer) ‘페도르’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7년 동안 군 복무를 하고 제대해 모스크바 니쿨린 서커스단의 단장으로 평생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을 천직으로 여겼다. 그는 1968년 스릴러, 가족, 코미디 영화인 〈다이아몬드 팔(The Diamond Arm)〉에 주연으로 출연해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서커스의 거장이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묘지에 앉아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에 안장지가 부족해 새로운 국립묘지를 모스크바 북동쪽 19km 떨어진 미티시에 조성하였다. 노보데비치 묘지 옆으로 오카강의 왼쪽 지류인 모스크바강이 말없이 남동쪽으로 흘러갔다.
 
코메디언 유리 니쿨린(Yuri Nikulin)(사진:Novodevichy Photo)
 
2025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Sochi)에서 ‘제10회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제 발레 콩쿠르(세계의 젊은 발레)’가 개최되었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산하 국제발레콩쿠르연맹(IFBC: International Federation Ballet Competitions)이 주최한 대회는 지난 5월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발레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Yury Grigorovich)를 추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제10회 유리 그리고로비치 국제 발레 콩쿠르(사진:소치시)
 
국제 발레 콩쿠르 참가자는 각국에서 대표를 선발해 17개국 70명의 무용수가 모였다, 무용수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3차 라운드까지 경쟁하고 결선 경연대회를 열어 주니어부는 한국의 안승아(14)가 금메달, 은메달은 러시아의 소콜로바 빅토리아(Sokolova Victoria), 정윤서(18)와 유시안(14)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시니어부는 러시아 4대 발레학교 중 하나로 명성이 높은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안무학교 출신 노바트발레단(NOVAT)의 솔리스트 크세나어 밸로우소바가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녀가 다닌 안무 발레학교는 8년의 특수 무용 과정으로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선발해 최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발레리나 김주원과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사진:연합뉴스, 2010)
 
1세기를 살다가 러시아 국민 곁을 떠난 위대한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서거에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은 한국 발레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평을 크게 넓혀준 거장으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국립극장 무대에서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한국 발레를 위해 바친 뜨거운 열정을 영원토록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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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