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을 울리는 한 소리, 학순 장판개 명창
학순(鶴舜) 장판개(張判盖, 1885~1937)는 아버지 장석중(張石中)과 어머니 이금화(李金華)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장주한은 참봉 벼슬을 지낸 거문고의 명인이자 판소리 명창이었고 아버지 장석중은 철종 어전에서 창을 한 음률의 명인으로 참봉 벼슬을 받았다. 전라도에서 이름을 날린 판소리 동편제 명창 예인(藝人) 가족은 곡성과 순창을 오가며 살았는데. 이 지역은 대대로 예인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 공간이었다.
학순 장판개 명창 추모비(사진:순창군)
장판개의 동생 장도순도 소리를 잘해 경성구파배우조합에 참여하고, 8잡가꾼으로 유명하며 딸이 장월중선(1925~1998) 명창이다. 장판개의 부인인 배설향(1895~1938)은 〈흥보가〉를 잘했다. 장판개의 남동생 장길순은 농사를 지었고, 여동생 장수향은 오빠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박상근 명인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장판개의 셋째 아들 장영찬(張泳瓚, 1930~1976)은 아버지가 9세에 죽어 임방울에게 소리를 배웠다. 그는 목 구성이 빼어나고 부침새가 정교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심청가〉 〈흥보가〉에 뛰어나 일제강점기 때 화랑창극단에서 공연하고 해방 후에 국극사, 국립창극단 등에서 판소리 공연과 창극에 출연하였다. 1968년 전국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인 세종상을 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흥부가 보유자 정순임(사진:영남일보)
조카 장중월선 명창은 아버지 장도순이 일찍 세상을 떠나 큰아버지 장판개 명창에게 단가 〈만고강산〉과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배워 판소리, 가야금병창, 춤, 아쟁산조에 능했다. 그녀는 딸 정순임(1942~ )이 소리꾼으로 입문하려 하자, 딸에게 “소리로 사는 삶은 참으로 고달프다.”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어 정응민 명창 문하에 보내 공부하게 하고 임춘앵을 소개해주었다. 정순임은 1985년 40대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9년간 주연급으로 활약하고 판소리가 보급 안 된 불모지 경주 지역에서 제자를 육성했다.
문화관광부는 2007년 6월 전통 예술의 보전과 계승에 앞장서고 있는 3대 이상의 국악 가문을 전국 지자체에서 추천을 받아 판소리 명가로 정순임 명창 집안을 ‘전통 예술 판소리 명가 1호’로 명명했다. 남동생 정경호는 아쟁산조 보전회장이고, 여동생 정경옥은 가야금병창 이수자이다. 조카 정성룡도 동국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대를 이어가고 있다.
예인의 피를 물려받은 장판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장석중 명창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복창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어려서 줄타기도 하였는데 줄을 타다 떨어진 뒤에는 줄타기를 그만두고 북을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젓대, 거문고, 장구 등을 10년 동안 배웠다. 아버지는 장판개를 당대 명창 송만갑(宋萬甲)에게 보내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네 마당을 3년 동안 배우게 하고 순창의 절로 들어가 2년간 독공하게 했지만, 장판개는 소리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송만갑의 수행 고수(鼓手)로 따라다니면서 소리를 더 익혔다. 김세종 명인에게 〈춘향가〉를 배우고, 박만순 명인에게 〈적벽가〉 등을 배웠다. 1904년 스승 송만갑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여 원각사에 참여했다.
〈적벽가〉 장판교대전(사진: 궁인창, 趙雲古里 2023)
장판개는 1904년 7월 어전에서 〈적벽가〉 ‘장판교대전’을 잘 불러 고종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 대목은 유비가 이끄는 10만 대군이 조조가 이끄는 80만 대군에게 패해 신야성을 버리고 수십만의 백성들과 함께 피난할 때 용맹한 장비가 당양(當陽, 当阳, 후베이성 이창시) 저하(沮河) 장판파(長板坡, 壩陵橋)에서 장팔사모를 들고 단신으로 나서 조조의 기병 5,000명을 막아서며 “내가 바로 그 유명한 장비다. 누구든지 목숨이 아깝거든 물러나라!”라고 호통치고 위용을 자랑하며 호령했다. 이때 조조의 호위 무장 하후걸(夏候傑)이 탄 말이 놀라 솟구쳐 장수가 말에서 떨어져 죽어 조조의 군사들이 물러나게 되었다. 장비는 많은 군사가 있는 것으로 가장하려고 20마리의 말꼬리에 빗자루를 매달아 먼지를 일으켜 군사가 많은 퍽 위장술을 사용했다. 현재 이곳 도로명은 자룡로(子龍路), 장판로(長坂路)이다. 군사 하후걸은 《三國志演義》 소설 제42회에만 등장하는 창작 인물로 ‘장판교대전’은 중국 우위썬(吳宇森) 감독이 제작한 《赤壁大戰》의 첫 장면에 등장한다.
우위썬(吳宇森) 감독 《적벽대전》(사진:적벽대전2)
중국 후베이성 당양(当阳) 시내 서쪽 경사진 언덕에는 삼국지 속의 조자룡이 유비(劉備)의 감부인(甘夫人)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 조조의 대군을 맞이하여 전투한 것을 기념해 1930년대에 조성한 역사공원 장판파공원(長坂坡公園)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옛날 当阳전투 지역이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일대 20~30km가 모두 전장(戰場) 터라 장수의 용맹을 기리기 위해 동상과 비석을 세웠다. 장판파공원 안에 있던 웅장한 ‘長坂雄風’ 비석은 중일전쟁 기간 중 일본군이 약탈해 일본으로 가져가 중화민국 36년(1947)에 다시 건립했다.
《三國志演義》에서 湖北에서 싸운 전쟁이 76회나 되고, 그중에 37회가 바로 당양에서 이루어졌다. 손권은 무성(武聖) 관우(關羽)의 목을 베어 당양에서 장례를 치르고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냈다. 당양에는 목이 없는 시신이 묻힌 송대(宋代)에 조성된 능묘 관릉(關陵)이 있다. 현재 관우의 묘는 洛陽, 成都, 當陽 3곳에 있다.
능묘 관릉(關陵)(사진;나무위키)
장판교를 지나갈 제, 수십만 백성 울음소리 산곡중에 가득하고... (장비가 장판교 위에 우뚝 서서) “내 뫼이 장익덕이라!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호령하는 소리에 조조 군사가 혼비백산하여 물러나니...
송순섭 명창 적벽가 완창(사진:송순섭판소리보존회)
젊은 장판개의 청아하고 풍부한 성음 성량은 최고의 기예를 충분히 발휘하여 많은 이들의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고종은 소리를 잘한 장판개에게 종 9품 벼슬인 혜릉 참봉을 제수했다. 그는 원각사 폐쇄 후 1908년 ‘송만갑협률사’에 참여하여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후 연흥사에서 창극 공연에 참여했고, 창극 <춘향가>에서 이도령 역을 맡아 춘향 역의 배설향과 열연했다. 1920년 전주 권번의 소리 선생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1928년 담양극장에서 개최된 신춘국악대회에 참가하였다.
제33회 임방울국악제(사진;임방울국악진흥회)
1930년대 초반 장판개(張判盖)는 아내 배설향과 함께 경주의 권번에서 장월중선(張月中仙) 등을 가르쳤다. 1935년 국창 임방울(林芳蔚, 1904~1961)과 함께 일본에 갔다가 임방울의 권유로 단가 〈진국명산〉과 〈홍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녹음했다. 이 두 곡이 장판개의 유일한 기록이다. 장판개의 〈제비노정기〉는 송만갑제를 버리고 새로 짠 것으로 한 시대를 뛰어넘는 판소리이다. 장판개 바디 〈홍보가〉는 복흥면 하리 출신의 성운선(成雲仙, 1928~1997)이 이어받았는데, 그녀는 본명은 성점옥(成點玉)이고 장재백 명창의 외종 증손녀이다. 성운선은 13세 때 군산 권번에서 〈춘향가〉를 배우고 27세 때 다시 〈홍보가〉 ‘제비노정기’를 직접 전수받았다. 성운선은 군산에서 제자들을 키우다가 1998년 작고했다. 2017년 7월 지리산 자락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에 위치한 ‘국악의 성지’ 낙성사에 위패를 안치하였다. 현재 황산 낙성사에는 50여 명의 국악인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국악 성인 위패를 모신 낙성사(樂聖祠)(사진:국악의 성지)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 말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봉에 50년간 머물며 거문고 노래 30곡을 지어 제자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하고 속명득은 이 가락을 귀금(貴金)에게 전했다고 한다. 신라 왕은 거문고 노래가 단절될까 두려워 관리 윤흥(允興, ?~866)을 보내 보존하게 하였다. 윤흥이 총명한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을 보냈지만, 귀금선생은 두 소년에게 은밀한 부분을 잘 전수하지 않아 윤흥이 다시 찾아가 예를 다해 마침내 전수하게 되었다. 전해진 거문고 노래는 상원곡(上院曲), 중원곡(中院曲), 하원곡(下院曲), 남해곡(南海曲), 의암곡(嵒曲), 노인곡(老人曲), 죽암곡(竹庵曲), 현합곡(玄合曲), 춘조곡(春朝曲), 추석곡(秋夕曲), 오사식곡(吾沙息曲), 원앙곡(鴛鴦曲), 원호곡(遠岵曲), 비목곡(比目曲), 입실상곡(入實相曲), 유곡청성곡(幽谷清聲曲), 강천성곡(降天聲曲)이다.
제22회 악성 옥보고 전국 거문고 경연대회(사진:남원시)
조선왕조 때 남원 운봉 비전마을은 〈춘향가〉 〈홍보가〉의 무대로 송흥록(1801~1862) 국창이 동편제를 창시하고 송만갑의 제자인 명창 미산(眉山) 박초월(朴初月, 1917~1978)이 탄생한 곳이다. 순조 때 8대 명창으로 권삼득, 여주 출신 염계달(廉季達), 모흥갑(牟興甲), 송흥록, 송광록, 서산 海美 출신 고수관(高壽寬), 송흥록의 매부인 김성옥(金成玉, 1801~1834), 김제 출생 황해천(黃海天)이 있었다. 모흥갑 명창은 송흥록과 함께 공연할 때 우렁찬 소리를 듣고는 송 명창에게 가왕(歌王)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염계달은 어릴 때 재질이 많았으나 집안이 가난해 뜻을 펴지 못하다가 충청도 음성 ‘벽절’에 들어가 10년간 수련하고 나와 헌종 때 어전에서 소리를 하여 동지(同知) 벼슬을 받았다. 학자들은 득음한 ‘벽절’을 찾으려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06년 판소리 우표(사진;평택시)
모흥갑이 〈적벽가〉에서 한번 지른 덜미 소리가 멀리 10리 밖까지 퍼질 정도로 매우 웅장한 성량을 가졌다고 한다. 모흥갑이 평양 연광정(練光亭)에서 통영갓을 쓰고 소리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남아 있다.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2003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판소리를 소재로 한 우표를 2006년 2종 170만 장을 특별 발행했다. 우표 디자인은 소리꾼이 관객 앞에서 소리하는 가객창장(歌客唱場)과 〈평양도십첩병풍〉에 나오는 모흥갑을 나타내었다.
송씨 집안은 판소리 명창이 많이 배출되었다. 영·정조 때 판소리 명창인 권삼득(權三得, 1772~1841)의 고수가 송첨지였다, 송첨지의 아들 송흥록은 어릴 적 집에 탁발 온 월광선사를 만나 백운산 암자에 출가하여 절에서 漢文과 소리를 배웠다. 선사는 소리 공부를 지도하며 장단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사설의 조잡함을 정리하라고 가르침을 주었다. 이후 그는 귀신 울음소리 귀곡성(鬼哭聲) 같은 정교한 선율을 구사하여 판소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1859년 봄에 의정부좌찬성 김병기의 부름을 받고 철종 앞에서 소리하여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하였다. 친동생 송광록(宋光祿)은 1803년 운봉에서 태어나 형 송흥록과 함께 다니며 고수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명창은 가마나 나귀를 타고 가게 하고, 고수는 푸대접했다. 고수는 무거운 북을 메고 다니게 천대하였고 받는 돈도 명창에 1/10에 불과해 송광록은 어느 날 소리 공부를 할 결심을 하고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배를 타고 南海 바다를 건너 제주도 한라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만리창해(萬里蒼海)를 집어삼킬 기세로 혼자 맹렬하게 5년간 소리 공부해 득음대성(得音大聲)했다. 명창은 《춘향가》를 잘했다. 송광록의 아들이 송우룡(宋雨龍)으로 《수궁가》 〈토끼, 용왕을 속이는데〉를 잘했다. 송우룡의 아들이 바로 송만갑 명창으로 이 가문은 4대를 내려오는 전통 예인 집안이다.
2007년 개관 남원 운봉 ‘국악의 성지’(사진:남원문화원)
전북대 곽장근 교수가 저술한 《전북 고대문화 역동성》 책에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 연동마을 부근 정상에 말(馬) 무덤을 소개했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 전상학 책임연구원은 〈고고자료와 문헌으로 본 상기문국〉이라 논문을 2020년 12월 《전북학연구》 제2집에 수록하며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 남강 상류의 운봉고원을 중심으로 160여 개의 중대형 고총이 분포하는 가야 소국을 자세히 소개했다. 전북 운봉은 가야 세력이 등장하기 전에 강력한 마한 세력이나 나라가 있었던 지역으로 철의 생산이 상당히 크게 교역이 행해졌던 곳이다, 100여 개의 말 무덤과 고총이 산재해 있어 여러 번 방문해 둘러보았다.
지리산 동편제 공연 기념사진(사진:우리문화신문)
장판개의 북 장단과 추임새는 임방울(1904~1961) 명창이 부른 〈적벽가〉의 ‘호전망극’에 남아 있다. 장 명창은 1935년 순창군 금과면 내동리 227번지 삿갓대마을(연화마을)에 이주해 살다가 1937년에 별세했다. 배설향은 남편이 떠난 자리가 너무 커 연일 슬픔으로 지내다 1년 후인 1938년(43세)에 세상을 떠났다. 배 명인이 1928년에 녹음한 남도잡가 ‘개고리타령’, ‘흥타령’, 〈춘향가〉의 ‘옥중가’와 ‘추월강산(秋月江山)’ 등이 콜럼비아 음반으로 남아 있다. 장판개 명창의 가문을 조사한 김석배 교수의 〈판소리 명가, 장판개 가문의 예술세계〉 논문과 창원대 김민수 교수가 2017년 《동양음악》 제41집에 발표한 〈1930년대 민속악의 공연양상-명창대회를 중심으로-〉 논문 및 선학들의 여러 연구 논문을 읽고 참조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