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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08. 17:00 (2026.02.08. 15:44)

특산품 유통으로 부 축적해 2백만평 전답 사서 우송농장 창설...판소리 전승 및 교육공간 건립 등 기부 다채

 
담양 죽녹원 우송당 기증한 국채웅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나 순천중학교,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울 법대 행정학과를 나온 한창기(韓彰基, 1936~1997) 선생은 한국적 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를 1976년 3월에 펴냈다. 그는 우리 문화를 사랑해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많은 책을 발간했다.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편에는 담양군에 만석꾼 우송(又松) 국채웅(鞠採雄·1871~1949)을 비롯해 여러 명의 부자가 있다고 소개했다.
담양 죽녹원 우송당 기증한 국채웅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나 순천중학교,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울 법대 행정학과를 나온 한창기(韓彰基, 1936~1997) 선생은 한국적 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를 1976년 3월에 펴냈다. 그는 우리 문화를 사랑해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많은 책을 발간했다.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편에는 담양군에 만석꾼 우송(又松) 국채웅(鞠採雄·1871~1949)을 비롯해 여러 명의 부자가 있다고 소개했다.
 
추월산 담양호(사진;담양군)
 
담양군은 노령산맥 추월산(731m)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어 들판을 적시며 영산강 상류로 흘러 들어간다. 힘찬 젖줄로 남쪽에는 기름진 논들이 넓게 펼쳐져 봉산들, 수북들, 고서들, 대전들 같은 들녘을 배경으로 대지주들이 많이 탄생하였다. 현재 전남 무형유산 ‘담양 황금리 들노래’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담양은 1970년대부터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이 제한돼 있어 자연과 전통문화 훼손이 덜해 ‘느림보 달팽이’의 생태도시로 불렸다.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대구, 고창~담양 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사통팔달의 고장이 되어 도시에서 일하다 지친 사람들은 고즈넉한 한옥과 대나무, 담양천,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길을 방문하고 잘 꾸민 감성 카페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담양의 대나무(사진;궁인창)
 
담양 국씨는 단본(單本)으로 담양읍 학동리에 국씨 시조부터 9대의 비석을 모신 시조단이 있다. 국채웅은 고려 충신 국유의 19대손으로 고종 8년(1871년) 담양부 서변면 천변리에 사는 국완열과 영월 신씨 사이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없었다. 항상 부지런하고 사교성이 좋아 일찍이 상업과 농업에 큰 관심을 두고 담양특산품 유통사업을 하며 부를 축적해 주변 전답을 사들여 대지주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광주 전남에서 8번째로 많은 200만 평의 토지를 소유했지만,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업에 종사했다. 경기도 개성까지 오고 가며 인삼 무역상 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 금융 등 다른 여러 분야에서 경영을 꾀하였다.
 
국채웅 회갑 생신 잔치(사진:담양뉴스)
 
국채웅은 1922년 담양산업조합을 창설해 부회장 맡았다. 1922년 8월에 담양 출신 동경유학생 20여 명이 친목을 돈독히 하며 고학생을 상조할 목적으로 서광회(曙光會)를 조직했다. 이때 국채웅은 4~5백 명을 수용할 만한 회관을 건립하고 제반 비품을 기증하기로 하여 동아일보에 크게 기사가 났다. 그는 담양의 산업발전을 위해 전기회사를 담양으로 유치해 1925년 9월, 순수 조선인 자본으로 전등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3만 원을 자본금으로 투자해 지분 25%를 소유한 대주주가 되었다.
 
1930년 이후 3~4년에 걸쳐 농업회사 설립을 서둘러 1935년에 자신이 소유한 농지를 기반으로 우송농장(又松農場)을 창설하고 농업경영에 나섰다. 당시 우송농장은 호남지방 최대 대기업 규모였다. 그는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 담양읍 신성마을 인근 담양여중학교 자리에 농촌 중견 부인양성소 설립 운영에 300두락의 전답을 내놓아 농촌 여성들의 의식주 생활, 가정, 육아, 예절교육 등을 가르쳤다. 당시 전남 각 시군에서는 1명씩 선발된 여성들을 보냈다. 1년간의 교육 기간에 숙식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국채웅 회갑 남사당 놀이(사진:담양뉴스)
 
담양지역의 판소리 전승 및 교육 공간으로는 우송 국채웅이 1928년경에 지은 사랑채 우송당과 양각리에 건립한 정자 우송정, 박석기의 지실초당, 비실재의 재각(齋閣) 등이 있다.
 
국채웅은 우송당에서 지역의 유지들과 교유하며 판소리를 사랑해 담양 출신 서편제의 명창 박동실(朴東實, 1897~1968)이 그의 사랑채에서 제자들을 길러내도록 후원했다.
 
그는 양각리에 우송정(又松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국악공연이 펼쳤다. 우송당에는 한주환(대금), 박석기(거문고), 국설옥(가야금), 국채우(시조) 등의 악사(樂士)가 드나들었고, 소리꾼으로 홍매화, 박초월, 김소희, 이화중선, 이동백, 김연수, 오태석 등이 오갔고 박봉래도 잠깐 머물렀다. 박동실은 판소리 광주 소리의 초석을 만든 명인으로 정혜정 선생은 2021년 〈일제 강점기 담양지역 판소리 후원문화 고찰〉 논문을 발표했다.
 
1931년 음력 9월 3일 회갑을 맞이하여 서울 명월관에서 60명의 요리사를 초청해 대형 천막을 치고 하루 세끼 진수성찬을 음식을 장만하고 누구든지 마음껏 식사를 즐기도록 하였다, 생신 잔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쁜 소식을 사방에 전해 밥을 먹으려는 행렬이 무려 4~5km에 길게 이어졌다.
 
국채웅 회갑은 7일간 잔치를 하였는데, 하루 4회의 명창대회, 씨름대회, 줄타기 공연, 남사당 공연 등이 열려 마치 추석 명절처럼 풍요롭고 즐거웠다. 당시 생신 잔치를 축하하러 온 축하객이 무려 11,000명을 넘어 신문에 기사가 났다. 그리고 회갑을 기념하여 1932년 10월 28일 담양유치원을 건립해 다음 해에 낙성했다.
 
담양유치원 제1회 졸업식(사진:담양뉴스)
 
1932년 담양군민의 복리를 위해 담양상회를 창립하여 일본인 상점이 주류를 이루던 상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조선인 상권 확대에 기여했다. 담양의 부호들은 협력과 경쟁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행에 적극 앞장을 섰다. 그는 담양군청 청사 부지를 희사하고, 담양경찰서 청사 건축비 절반을 부담하고 광복 후에는 담양중학교 부지의 절반을 희사했다. 국채웅은 풍요로움을 혼자 누리지 않고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공덕을 쌓았다. 전남 담양군 용면 쌍태리 도로변 마을회관 앞에는 1924년~1933년간에 세워진 우송 국채웅 참사 시혜비 5개가 줄지어 서 있다.
 
우송 국채웅 참사 시혜비(사진:담양뉴스)
 
1937년 국채웅의 67세 생일잔치 사진을 보면 국채웅이 장구를 잡고 오른쪽에 박석기 선생이 거문고를 잡고 주변에 소년들이 몇 명 보인다. 이경엽 선생은 그중에 한 명이 편재준(片在俊, 1913~1976)이라고 주장한다. 편재준의 본명은 편옥석(片玉石)으로 전북 고창(高敞)에서 부친 편도일(片道一)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홍역을 앓아 치료를 받지 못해 시력을 잃었다. 부모는 아들이 음악의 재능이 있는 것을 일찍 알고 잘 돌봐주었다.
 
국채웅(鞠採雄) 67세 생신 국악잔치(사진:궁인창)
 
어린 편재준이 풀잎을 가지고 피리를 부는 모습을 본 박석기 선생이 아이를 지곡리 지실로 데려와 김토산, 유봉, 전홍련 선생을 모셔 퉁애(퉁소), 젓대, 단소, 피리, 가야금, 대금(젓대), 양금 등을 익혔다. 17세가 되던 해 남원으로 내려와 활동하고, 말년에는 충남 대전(大田)에서 지냈다. 그는 퉁소의 규격과 형태, 청공(淸孔) 첨삭 등의 변화를 시도하며 풍류 및 산조 연주를 확장한 명인으로 퉁소 연주뿐만 아니라 산조와 봉장취 등의 곡을 유성기 음반으로 남겼다.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불비상(佛碑像)이 여러 점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요고, 종적, 금, 횡적, 당비파, 소전, 생 등 악기를 소중하게 여겨 문헌이나 돌에 새겼다.
 
악기가 그려진 불비상(佛碑像)(사진:국립청주박물관)
 
조선왕조 후기 산수화가로 호가 古松流水館道人인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은 규장각에서 38년 근무하며 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의 수행화원으로 두 차례 연경을 다녀오며 예술세계를 넓혔다. 그는 神筆의 畫家로 유명하며 아주 강직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화가 이인문이 이상향으로 생각해 그린 〈목양취소(牧羊吹簫)〉에는 한 목동이 능수버들 15그루 아래에서 양 8마리, 소가 누워있는 가운데 한가롭게 퉁소를 불고 있다.
 
이인문의 목양취소(사진:간송미술관)
 
필자는 담양의 풍광이 좋아 자주 방문한다. 2019년 4월 14일에는 고속버스를 타고 담양에 도착해 담양 시가지를 구경하고 목화식당에서 맛있는 백반을 먹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에게 힘든 식당 일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질문하니 할머니는 “남편이 은퇴해 편안하게 살다가 동네에 일하러 온 일꾼들이 주변에 식당이 없어 아침을 못 먹고 일을 하러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불쌍해 천변리에 아주 작은 식당을 열고 일꾼들에게 아침과 점심 밥상을 매일 차려주다 보니 어느새 30여 년 세월이 흘러버렸다.”라고 말씀하셨다.
 
목화식당 백반정식(사진;궁인창)
 
목화식당 백반 정식 구성은 아주 평범했다. 밥과 된장찌개와 전라도 김치, 가지, 계란말이, 두부, 버섯, 고추, 장조림, 오이무침, 김자반, 조기구이, 고등어조림, 취나물, 달래 무침, 시금치나물, 호박전 등으로 반찬이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담겼다. 할머니는 반찬을 잘 만들어 백반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백반을 먹으러 관광버스가 왔지만, 일하는 사람을 한 명도 두지 않고 일했다. 할아버지는 오후 3시경에 광주로 나가 신선한 채소와 생선 등을 구해오면 오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고 찬을 정성껏 만들었다. 백반이 맛있기로 소문난 목화식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서 2024년 봄에 가게 문을 닫았다.
 
담양 목화식당(사진;궁인창)
 
목화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영산강 강가에 있는 나무 길을 걸어 호국사를 지나 죽녹원을 방문했다, 죽녹원 안에는 ‘이이남 문화센터’가 있어 갈 때마다 들려 귀한 작품을 감상한다. 죽녹원에는 대나무 숲인 죽녹원 8길과 시가문화촌으로 구성되어 있어 약 2~3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산책로 2.4km에는 운수 대통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추억의 샛길, 철학자의 길, 사색의 길, 선비의 길, 죽마고우길, 성인산 오름길의 8가지 테마 길이 있다.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죽림욕을 즐길 수가 있어 참으로 좋았다.
 
담양 영산강(사진;궁인창)
 
죽녹원 뒤쪽 숲이 무성한 곳에 조성된 시가문화촌 시비공원에는 옮겨온 한옥 명옥헌과 새로 지은 송강정, 부앙정(俛仰亭)이 있다. 우송당 사랑채를 이전해 복원하고 앞쪽에 연못을 만들어 경관이 아주 좋았다. 부드러운 흙길을 걸어 찾아간 사랑채에서는 다양한 전통 문화프로그램과 다도체험을 하고 있었다. 우송당은 본래 담양읍 담주리 105번지에 있었으나, 부호 국채웅이 1949년 78세로 천수(天壽)를 마감한 후 후손이 1963년에 유창공예사에 사랑채를 제외한 본채 및 창고를 매각하였고, 본채는 1967년 7월에 화재로 사라졌다, 후손들은 제재소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운영했으나, 한국전쟁 발발 이후 어려움을 많아 겪었다. 전남 담양군은 2004년에 우송당 사랑채를 후손에게서 매입하여 죽녹원 넓은 터에 이전 복원하고 판소리전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송당(사진:궁인창)
 
선비 송순(宋純, 1493~1582)의 호는 부앙(俛仰)으로 표기해야 한다. 俛에는 ‘힘쓸 면’과 ‘숙일 부-굽어보다’ 두 개의 뜻이 들어 있다. 송순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기 위해서 담양 제봉산 자락에 작은 팔작지붕 정자를 짓고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땅에 고개를 숙여 굽어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른다.”라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90세까지 안빈낙도하며 살다 세상을 등졌다.
 
부앙정(俛仰亭) 현판(사진:한국학호남진흥원)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俛有地仰有天)
정자 속에 크고 넓은 흥이 있네 (亭其中興浩然)
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은 끌어당겨 (招風月挹山川)
명아주 지팡이 짚고 한 평생을 보내리라. (扶藜杖送百年)
 
우리가 한자를 발음할 때 1개의 뜻만 알고 통상적으로 ‘면앙’으로 발음하는 것은 한문(漢文)를 잘 모르는 틀린 표기 방법이다. 한자 사전이나 옥편을 찾아보면 그런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송순이 쓴 시 내용을 검토해도 ‘부(俛)’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 이제는 논문과 교과서의 틀린 한자 발음을 공개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담양성당(사진:궁인창)
 
죽녹원을 둘러보고 관방제림과 메타세콰이어길을 걷고 돌아오다 버스가 오지 않아 택시를 불러 담양 읍내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가다 중간에 멋진 성당이 보여 차에서 내려 사진에 담았다. 담양성당은 1957년 2월 24일 설립되어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을 1958년에 완공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2006년에 새로 신축하였다. 성당 내부를 구경하지 못하고 외관만 구경했다. 길가에 있는 꽃집(花園)의 예쁜 꽃을 구경하고 주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광주로 나가는 버스를 타러 담양 공영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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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