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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강선영류의 태평무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원로 출연 작품으로 남기문 명인의 〈푸리〉 공연이 끝나고 〈강선영류의 태평무〉가 이어졌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인 이순림 명인이 등장하여 독무를 추었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축원하기 위해 추는 춤으로 아주 경쾌하고 절도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로 저절로 신명이 나서 어깨가 들썩거리고 발이 움직이게 만든다. 기교를 넘어선 무위의 춤은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강성영류의 태평무〉 이순림 독무(사진:궁인창)
태평무는 경기도 도당굿 위에 펼쳐지는 우아하고 역동적인 팔사위와 절도있는 발디딤새, 화려한 의상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격조 높은 춤이다. 태평무에 쓰이는 장단은 진쇠 가락을 비롯하여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순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터벌림 장단은 10박의 박자에 맞추어 추는 묵직한 발 놀음의 성격이 강하며, 올림채 장단은 장단의 변화가 무궁하고 가락의 전개가 다채로워 발 놀음 또한 다양하게 활용된다. 터벌림 장단과 올림채장단은 태평무의 중심이자 절정기의 과장이므로 장단과 발 놀음의 형태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태평무는 다른 춤 장단보다 조금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춤꾼 이순림 명인의 발디딤과 구르는 동작, 한복의 곡선, 우아한 자태와 경쾌한 분위기는 관객들의 흥을 사로잡아 큰 박수가 쏟아졌다. 엄숙하고 장중한 가운데 국왕이 등장해 함께 춤을 추며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했다.
공연진: 이순림, 임관규, 조여원, 김순경, 최리나(사진:궁인창)
태평무 이수자인 이순림 선생은 아직 젊지만, 춤 인생 50여 년이 넘어 제자들이 원로라 모신다. 이순림 명인은 1973년 경기도 성남시 향토무용가 향곡(香谷) 정금란(鄭錦蘭, 1942~1994)에게 춤을 배워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와 제92호 태평무 이수자가 되었다. 그녀는 한성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동덕여대 대학원에서 무용학박사를 받았다.
정금란 명인은 1942년 4월 21일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학담리 독재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정금내(鄭金乃), 예명이 금란(錦蘭)이고 아호는 향곡(香谷)이다.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릴 때부터 17~18세까지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봉사로 일했다. 일을 마치고 종로 5가에 있던 극동무용학원에 달려가 김여란(金如蘭, 1907~ 1983)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힘써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무용 학원비가 없어 학원에서 허드렛일을 대신하였다. 이소애 선생에게 한국무용을 사사 받고, 한영숙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춤을, 김진걸 선생에게 산조를 사사 받았다.
조선여류명창대회(1947년 11월 28일) 광고 (사진:군산신문)
김여란 명창은 본명은 분칠(粉七), 호는 향곡(香谷)이며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노래를 잘해 6살 때 조홍련에게 육자배기를 배우고, 김비취 명창에게 가곡, 가사, 가야금을 사사했다. 9살 때 익산 성림사에 초대받아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도 잘하고 예쁘니까 한 부호가 아버지를 찾아와 11살에 혼인했지만, 김여란은 5년 후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친구 외숙모를 따라 일본으로 出家하여 공장에서 일했다. 이후 아버지 사업이 몰락해 국내로 돌아왔다. 가정 살림이 어려워 정읍 권번에 들어갔는데, 소리 선생이 정정렬 명창이었다. 이후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은해사, 금강산 등지에서 정 명창을 독선생으로 모시며 《춘향가》를 공부했다.
23살 때인 1929년 대구에서 ‘명창 김여란 판소리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30년에는 빅타레코드사와 전속 계약하여 라디오에 출연했다. 해방 후 한때 국극운동에 참여하고 1954~1957년경에는 수도국악예술학원을 설립해 후진을 양성했다. 여성국악동호회 소속이던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한영숙, 김련수 등과 함께 한국의 민속 공연예술을 가르치기 위해 1955년 4월에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했다. 1958년 4월 20일에 찍은 제3회 졸업식 사진에 박귀희, 박초월, 한영숙 교사의 사진이 남아있다.
한국민속예술학원 제3회 졸업식 사진(1958)(사진:국악사전)
한국민속예술학원은 비록 사설 기관이지만, 공공 교육기관의 면모를 갖추었고 교육부 인가를 받으려고 많은 여성 국악인이 동참하고 기업인 이병철 회장 등 여러 사람의 후원으로 관훈동에 학교 건물을 마련했다. 1960년 3월 문교부 인가를 받아 5월 13일 국악예술학교를 개교해 국악예술학교 제2대 이사장을 지냈다. 학교는 2002년에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로 성장했다.
김여란 명창은 정정렬 소리제를 가장 순수하고 완벽하게 정통적으로 계승해 1964년 12월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로 6명이 지정될 때 김연수, 박녹주, 정광수, 박초월, 김소희와 함께 뽑혔다. 향곡(香谷) 김여란은 노년에 홀로 지내다가 1983년 5월 3일 봉천동 집에서 별세하여 삼성동 문화재전수회관에서 (사)판소리보존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했다. 박초선(朴初宣), 최승희(崔承希), 정금란, 최영기(崔英基), 정금내(鄭今乃), 최희정, 이규호가 제자이다.
좌: 최희정. 김여란 선생. 정금란. 이규호(사진:김성태)
성남에 터를 잡은 정금란 선생은 빈민 지역의 철거민이 모여 사는 동네에 무용학원을 차려 학생들을 지도했다. 무용학원에 등록했다가 중간에 돈이 없어 말없이 사라진 소질이 있는 학생들의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 부모들을 설득했다. 그녀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꿈나무들의 학원비를 받지 않았다. 제자들이 공연에 나갈 때면 재봉기에 앉아 직접 옷을 만들어주었다. 스승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은 학생들은 모두 훌륭한 춤꾼으로 성장해 지금도 은사를 그리워한다.
그녀는 대회에 나가는 어린 제자들의 춤을 안무하며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자신 있게 너의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기죽어서 고개 숙이고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고 눈빛에 힘이 없는 것을 나는 아주 싫어한다. 지금은 나의 도움을 받지만, 나중에 네가 나를 도우면 되는 거야. 나한테 당당하게 춤을 배워. 알았지! 집안이 가난하다고 자존심까지 가난해지면 절대 안 되는 거야!”라고 무대에 걸어 나가는 학생들을 따끔하게 호통쳤다. 선생은 무용가로서 춤에 대한 열정을 갖고 춤을 추었고 안무가로서 다수의 작품을 창작했다. 제자들에게 승무, 살풀이춤, 산조를 춤의 기본으로 여기고 엄격하게 가르쳤다.
정금란 명인의 20년 무용 역사는 문화 불모지였던 성남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성남시사편찬위원회에서 2004년, 2014년에 발행한 《성남시사》를 보면 선생의 춤과 삶에 대한 자료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선생이 안무한 창작 작품은 <즉흥무>, <선열>, <추모의 정>, <산성풀이>, <환희>, <고목>, <학의 노래>, <구원>, <문>, <여명>, <예맥>, <잉여인간>, <무릉도원>, <무녀도>, <빛과 소리>, <풍속도> 등 예술성을 인정받은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선생은 무용, 판소리, 가야금, 민요, 서예 등 한국의 전통예술을 두루 섭렵해 현재 성남 무용계의 대모로서 추앙받고 있다. 정금란 명인의 생애는 조카인 춤꾼 정은선이 2017년에 「춤 명인 정금란 연구-생애와 작품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이화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 제출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24회 정금란 무용제(사진:궁인창)
경기도 성남시는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가 성남의 예술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하여 매년 <정금란 무용제>를 개최하여 제24회 정금란 무용제가 2025년 12월 12일 개최되었다.
성남시는 1998년 8월 31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와 자매도시를 맺고, 활발한 인적 문화적 상호 교류를 하였다. 선양시는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이며 동북 3성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도시로 인구는 약 924만 명이며 철강, 기계, 섬유, 화학, 비철금속이 주요 사업이다.
성남시 생활무용협회는 (재)瀋陽대한체육회(회장 정인호)와 신한민속촌(회장 김관식)과 오랜 교류를 통해 장구, 한복, 무용 소품 등 다양한 물품들을 지원했다.
제2회 瀋陽 이순림배 국제무용대회(사진:시사&스포츠)
성남시 생활무용협회는 2017년과 2018년에 “이순림배 국제무용대회”를 선양 만융호텔에서 개최해 무용수 220여 명이 출전했다. 2017년에 입상 팀들을 한국에 초청하였고, 조선족 동포신문 흑룡강신문이 국제무용대회와 문화교류를 크게 보도하였다.
경기도 성남시 생활무용협회 이순림 회장은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 이순림 무용단은 김좌진 장군의 역사적 발자취를 춤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여 창작춤 ‘진혼입춘’ 무용극을 고안했다. 중국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는 이순림 무용단을 초청하여 2019년 1월 24일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목단강 하이린시(海林) 한중우의공원에서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장군 추모제’를 개최했다. 牧丹江은 꽃 이름과 상관이 없고 만주어로 ‘구불구불한 강’이란 뜻이다.
하이린시 韓中友誼公園 김좌진 장군 흉상(사진:궁인창)
이순림 무용단은 추모 행사에서 창작 작품 “진혼입춘”으로 김좌진 장군의 넋을 기렸다. 당일 오후에 牧丹江 한국인상공인회가 주관하는 행사에서 태평무를 추고 하미영, 김희자와 함께 소고춤 등 다양한 전통춤을 선보였다.
한중우의(韓中友誼) 공원은 (사)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하이린시(海林)에 기부한 부지에 2002년 6월 15일 착공하여 2005년 10월 29일 완공해, 우호공원의 운영은 중국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맡고 있다. 공원 내 건물 1층에 연수원과 강의실, 숙소, pc실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2층 역사문화관은 1~5관으로 구성하여 한인의 동북 이주, 독립전쟁 준비, 독립군 단체 소개, 동북지방 항일 투쟁역사, 민족의 길을 밝힌 영웅의 발자취, 한중수교 등을 전시하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백야 김좌진 장군이 남긴 詩 단장지통(斷腸之痛)이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 끝에 찬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는구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민족의 길을 밝힌 영웅의 발자취(사진;궁인창)
성남시와 경기문화재단은 매년 ‘문화예술 일제 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공모 지원사업’을 시행하여 이순림 무용단의 〈백야의 혼과 얼〉 창작 작품이 2021년에 선정되었다. 이순림 무용단은 2021년 11월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백야 김좌진 장군의 삶과 청산리 전투, 순국 장면을 무용극 6막으로 극화하여 성황리에 공연했다.
청산리 대첩 100주년 주년 김좌진 장군 浮彫(사진;서경덕)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와 배우 송혜교는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기념하여 2020년 10월에 중국 헤이룽장성 하이린시(海林) 韓中友誼公園 抗日民族英雄 김좌진(金佐镇) 장군 기념관에 청동으로 제작한 가로 80cm, 세로 90cm 크기의 부조 작품을 기증했다. 두 사람은 2019년에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에 3.1 독립투쟁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준 열사 기념관’ 한글 간판을 기증하고 2019년 4월 상하이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윤봉길 부조 작품을 기증했다. 2020년 3월에는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주립과학도서관에 홍범도 장군 대형 부조 작품을 기증했다.
봉오동전투 100 주년를 맞이하여 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2021년 8월 15일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공항을 출발해 공군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고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78년 만에 고국에 귀환하는 홍 장군의 유해는 국민의 환호 속에 대통령이 공항에서 영접하고, 8월 18일 대전현충원 제3 묘역에 안장되었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홍범도 장군 기념공원(사진;국가보훈부)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2년 만인 2023년 8월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이념 문제를 거론하며 육사 교내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밝혀 논란이 일어났다. 이후 국민의 강한 반대와 여론의 질타(叱咤) 속에 2025년 5월 육사 충무관 앞 존치가 확정되었다.
국가보훈부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시 이반주르바 거리에 위치한 홍 장군 옛 묘역에 7억 원의 예산을 들여 고려인 동포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념공원 조성공사를 마쳤다. 2023년 11월 3일 개원식에 윤종진 차관과 우원식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 크즐오르다 고려인협회장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공원에는 봉오동전투의 지세를 형상화한 참배 공간과 전시관, 야외 휴게공간 등이 들어서고 생전에 홍 장군이 거주하던 집 인근 3km의 '홍범도 거리'에는 표지석 2곳이 설치되었다.
청산리 독립전쟁 勝戰(사진: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일대 백운평, 천수평, 완루구(完樓溝) 등지에서 김좌진, 서일(徐一), 나중소(羅仲昭), 이범석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대한독립군의 홍범도(洪範圖) 장군 등 독립군 연합부대는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로 출병한 일본 육군을 상대로 10여 차례의 전투를 치러 대파해 청산리대첩으로 기록되고 있다.
만주 항일 독립전쟁의 신화를 이뤄낸 백야 김좌진 장군의 96주기 추모식은 2026년 1월 24일 목단강 하이린시(海林) 한중우의공원에서 개최된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