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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즐겨 사용한 인장의 문구...'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 않는 무심의 경지'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공연이 2025년 12월 20일 오후 4시 경기도 과천시민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웅장하고 다채로운 춤 공연에는 전통춤 원로 8분과 제자 50여 명이 함께 출연해 의미가 남달랐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춤의 희열(喜悅)을 맛보며 한없이 즐거웠다. 한뫼국악예술단(단장 오은명)은 2025년 4월에 공고한 경기문화재단 2차 원로공연예술지원사업을 보고 서류를 제출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9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사진;궁인창)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회자가 공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출연진이 바뀔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한 공연은 대단히 시끌벅적해 막이 내린 후에도 그 열기가 남아 관객들은 무대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공연을 보러 온 가족과 친구들은 로비에서 분장을 지우지 못하고 나온 출연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행복한 얼굴이 담겨있었다. 우리의 전통춤과 가락이 이렇게 좋은데 생방송으로 무대의 뜨거운 열기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전통춤 공연을 보면서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공연을 계획하고 연출한 오은명 춤꾼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춤 공연의 프로그램과 출연진을 다시 돌아보았다.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사진;궁인창)
불계공졸(不計工拙)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이 즐겨 사용한 인장의 문구이자 예술관으로, 잘되고 못됨을 초월한 무심(無心)의 경지를 나타낸 말이다. 이것은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경지로 재주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춤꾼 오은명이 제목을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이란 어려운 말로 정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그 뜻을 헤아려보았다.
추사의 삶을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 다양하지만, 딱 떨어지는 글자는 없다. 과천에는 추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필자는 창의와 혁신이라고 생각하며 추사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보았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입고출신(入古出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옛것을 두루 익히고 새것을 함께 추구한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강남 봉은사 판전(板殿) 글씨를 자주 보고 추사의 처절한 고통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적거지를 방문한 적이 있어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공연 제목이 바로 마음에 닿았다. 추사는 24세에 생부 김노경(金魯敬)이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수행하여 연경을 다녀왔다. 이후 승진하여 이조판서에 올랐지만, 선비 윤상도 상소와 관련하여 안동 김씨 측이 세도정치를 하며 추사를 멀리 제주도로 귀양보냈다. 이때가 한창 일할 나이인 54세 때 일이다.
1840년 10월 2일 제주도 대정읍 안성리 유배지에 도착한 추사는 가시울타리가 사방에 둘러친 곳에 머물렀다. 이곳은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곳이다. 추사 적거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지방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었다. 그는 연속적인 불행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정진하며 학예일치(學藝一致)하는데 애썼다. 마침내 생과 죽음을 달관할 무렵 8년 3개월의 긴 귀양살이를 마치고 63세에 겨우 풀려나 과천으로 돌아온다. 66세에 다시 무고를 당해 1851년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1853년 초에 풀려나 과천으로 돌아와 과지초당과 奉恩寺를 오가며 말년을 보냈다.
봉은사 판전(板殿)(사진;궁인창)
그는 젊은 시절 白坡대사, 草衣대사와 친분이 깊고 불경을 섭렵해 고승들과 친교를 하였다. 봉은사에 머물 때는 일반 승려들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예불하고 하루 종일 참선하고 밤늦게 자는 선승(禪僧)의 삶을 살았다. 후대 사람들이 추사를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기지만, 본인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냈다. 추사가 노력해 만든 추사체는 모방이 아닌 전통을 뛰어넘어 창조적 순환을 이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오은명 춤꾼은 초대의 글에서 “오랜 세월 한길을 걸으며 스스로 갈고 닦아 얻은 경지, 불계공졸(不計工拙-잘하고 못함의 구분을 내려놓다)하고 꾸밈과 기교를 넘어선 그 자리에 무위(無爲)의 춤이 피어납니다. 전통무용은 결코 화려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삶의 무게와 세월의 숨결을 지나 온몸에 새긴 인생의 문장, 그것이 곧 춤이 됩니다. 여기, '공(工)'과 '졸(拙)'을 넘어서려는 춤꾼들의 길이 있습니다. 기량을 경쟁하지 않고, 형식을 과시하지도 않으며, 긴 시간 축적된 마음과 몸의 깊이를 무대 위에서 고요히 펼쳐 보입니다. 이 공연은 원로의 예술적 비전과 동시에 다음 세대가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전통의 품격과 예술의 정신이 만나는 이 자리에 여러분을 정중히 모십니다.”라고 밝혔다.
오후 4시.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무대가 정돈되고 불이 모두 꺼졌다.
국가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 박승옥 선생이 무대에 등장해 인사하며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춤 프로그램의 순서와 공연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남기문의 푸리, *강선영류 태평무, *최희선류 달구벌 입춤,
*양승미류 진쇠춤
*이매방류 살풀이춤, *장구춤
*임관규류 부채입춤, *박병천류 진도북춤
공연 첫 무대는 국악인 남기문 명인이 김정주, 김영생, 서지영 단원과 함께 관객석 뒤에서 징을 우렁차게 울리며 등장해 비나리 덕담을 하며 중앙무대에 올랐다. 비나리는 잔치나 중요한 행사에서 복을 빌고 덕담을 나누는 구연 및 노래 형식의 전통공연 형식으로, 소리꾼의 재담과 함께 악기 연주가 어우러진다.
남기문 명인 '푸리'(사진:한뫼국악예술단)
남기문 명인의 <푸리>는 전통 굿의 고사(告祀)와 남사당 비나리를 바탕으로 현대의 언어와 음악을 더해 완성한 축원 의례이다. ‘풀다’라는 말처럼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정신을 담아 응어리는 풀고, 복은 여는 무대를 지향한다. <푸리>는 종교적 의례가 아닌, 우리 민속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예술적 풍습이며, 모두가 함께 마음을 풀고 복을 나누는 공동체의 축복 문화다. 공연에서 남기문 명인은 구수한 비나리를 하고 악사들의 굿 장단, 재담이 어우러지며 공연장에 참석한 관객의 안녕과 평안을 빌어주었다.
남사당놀이 꼭두각시놀음(사진:국립민속박물관)
남 명인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남사당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는 철없이 놀 때인 7살 때부터 무동(舞童)으로 남사당패 놀이를 시작했다. 남사당놀이 꼭두각시놀음은 1964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국가무형유산이다. 남사당패를 이끈 아버지 남운용(南雲龍) 명인과 박계순 (2006년 72세로 별세) 명인은 5남 1녀를 두어 남기환, 남기문, 남기수, 남기선, 남기혁을 모두 이수자로 키웠다. 남기문은 청년 시절 고생을 밥먹듯이 하다가 1985년도에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서울남사당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부천에 ‘우리 멋 풍물 동아리’와 인연이 되어 2000년부터 부천에서 활동하며 2002년에 ‘도당청소년연희단’을 창단했다.
영화 〈왕의 남자〉 (사진:나무위키)
한국의 전통 인형극은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영화 ‘왕의 남자’로 제작되고 열기가 높았으나, 이후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남사당놀이 꼭두각시놀음은 2009년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남 명인은 전통 인형극 보존과 후진 양성을 위해 2021년 군포에 남기문연희연구소(대표: 김정주)를 설립하고 전승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남사당놀이 보존회와 함께 인형극 대표 레퍼토리인 ‘박첨지 전’ 전수 교본을 편찬 배포하여 교육 자료를 만들고, 책으로 전수하기에 한계를 느껴 전통 인형극의 원형을 기록으로 남겼다.
춘천세계인형극제(사진:연합뉴스)
국제인형극협회(UNIMA, Union Internationale de la Marionnette)는 1929년 체코 프라하에서 창립된 세계 최초의 국제 공연 예술단체이다. UNIMA는 인종, 문화적 차이를 넘어 평화와 상호 이해를 증진하며 UNESCO와 협력하는 국제 비정부 기구로 100개국 8,000명의 회원이 인형극 예술의 발전과 보급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제24회 유니마(UNIMA) 총회 및 춘천세계인형극제가 2025년 5월 춘천에서 개최되었다. 총회에는 54개국에서 온 1,000명의 회원이 참가하였다. 국제인형극협회는 남기문 남사당놀이 인형극 덜미 전승자에게 ‘UNIMA 2024/2025 유산 보존 공로상 (Heritage Award)’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인형극총회에서 전통 인형극의 보전과 전승에 크게 공헌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권위가 있는 큰 상이다.
제24회 유니마(UNIMA) 총회 & 춘천세계인형극제(사진;궁인창)
남사당 덧뵈기와 덜미는 남사당놀이의 핵심 공연 요소로, 덧뵈기는 탈을 쓰고 못난 양반과 부패한 관리를 재담과 춤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가면극 탈춤이고, 꼭두각시놀음 덜미는 50여 개 인형과 대잡이, 산받이의 재담으로 구성되어 민중의 삶과 해학을 담고 있다.
현재 남 명인은 남사당놀이 여섯 마당 풍물(농악), 버나(접시 돌리기), 살판(12가지 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인형극(꼭두각시놀음)의 맥을 온전히 잇고 남사당놀이의 박첨지, 묵대사, 평양감사, 영노, 귀팔이, 피조리, 상좌, 박첨지 손자, 꼭두각시(박첨지의 본처), 돌머리집(박첨지의 첩), 상여, 절, 청노새, 홍동지 등의 전체 줄거리를 모두 아는 유일한 전승자이다.
꼭두각시놀음 어린이 관객(사진: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은 문화강국으로 145개의 국가무형유산을 보유하며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23건을 등재하였다. 국가유산청의 행정과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내지만, 이제는 전승자의 고령화 문제, 전승 환경 조성 등 실질적인 정책 구상과 집행이 필요하다. 2024년에 전수교육 지원금, 전수자나 조교, 전승 단체에 지급하는 예산이 일부 인상되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충분한 예산 확보를 통해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해야 한다.
한국은 2010년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110번째 비준국이 되었고, 2017년 24개의 위원국 중 하나로 선출돼 4년 임기로 활동하고, 2021년 제14차 정부간위원회에서 의장국을 맡아 역할을 담당했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은 소수 민족이나 토착민의 문화를 포함하여 모든 문화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며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며 문화는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발전의 문화적 측면은 그 경제적 측면만큼이나 중요하여 개인이나 민족은 이에 참여하고 향유할 기본적인 권리를 지닌다. 문화다양성은 개인과 사회에 풍부한 자산이 되어 미래세대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세계문화다양성의 날(5.21)(사진: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세계인권선언」 제27조 1항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항을 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방송 KBS는 국영방송으로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다양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KBS 1 TV는 1986년부터 ‘국악한마당’을 매주 토요일 오후 12:10~1:05(55분)에 방송하여 국민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장수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지난 10년간 각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 대중가요를 다룬 것이 가장 많다. 우리 청소년들이 한국 고유의 전통춤과 국악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적고 요일별, 시간대가 맞지 않아 깊은 내용을 잘 모른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남사당놀이(사진:안성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2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제출한 「제3차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국가보고서 작성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예술 관람률’ 추이에서 전통예술은 2018년부터 매년 줄어들어 9.3%→1.8%, 무용(춤) 부문은 1.7%→ 0.2%로 되어 있다. 국가보고서는 유네스코 협약 9조와 제22.4조 (b)항에 따른 검토를 위해 당사국총회에 4년마다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한국의 차기 국가보고서 작성은 2026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시행하는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 통계에 따라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
국악을 좋아하는 동호인이 취미로 국악방송 TV, 국악방송 라디오, 국악아카이브, e-국악 아카데미, 네이버 TV, 국립민속국악원, 유튜브 씽씽(SSiSSiN), 두 번째 달, 조선 그루브, 얼씨구TV, 서도밴드(sEODo BAND), 대금이 누나, 십이체장고춤 보존회, 가야금예지, 가야금사빠(Luv GAYAGEUM), 국악 오케스트라 ‘스누뮤 SNUMU’, 공연예술 비온뒤 Btv, 여름을 그려요, 워니샘춤소리예술TV, GROUN_D, 동아콩쿠르(Donga Concours), ACOM MUSICAL, 성영민람, 댄서스잡 DJ, 프롬더춤(From the 춤), 권명주느루무용단, 주희. ArtsKoreaTV, 국립극장, 국가유산진흥원, 국악친구, 천지윤의 해금혁명, 시나브로 등 다양한 국악 유튜브 채널에서 우리나라 전통춤과 국악을 보고 즐기는데, 이제 우리 전통춤과 국악을 개인이 보존하고 발전적으로 성장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너무나 많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2005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에 명시한 대로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모든 국민이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예술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