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모차 공수작전과 제주 클라리넷 소녀
제주국제관악제(사진:제주국제관악제)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7월 3일 제주도를 방문했다. 《정부기록사진집》을 보면 단발머리를 한 어린 소녀가 대통령 앞에서 목관악기 클라리넷(clarinet, clarinetto)를 연주하는 흑백사진이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전쟁고아로 대통령이 좋아하는 미국 민요 ‘매기의 추억’을 연주했다. 오현고 음악 교사 이상철은 1995년부터 제주국제관악대회를 개최하며 목관악기를 부는 소녀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꼭 한번 만나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전쟁고아의 클라리넷 연주(사진:제주국제관악제)
1950년 12월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어 수도 서울이 다시 함락되기 직전에 유엔군은 전쟁고아 1,000여 명을 미공군 C-54 수송기 16대에 태워 제주도로 보냈다. 종군기자들은 이 사건을 유모차 공수작전(Operation Kiddy Car)이라고 불렀다.
이상철 교사는 제주에 건너온 소녀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목관악기를 부는 모습이 한국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해 2010년 8월 제주도청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어 클라리넷 소녀를 찾는다고 방송사, 일간지 기자들에게 호소했다. 기자들은 특종 기사를 써서 신문에 크게 보도하고 TV에서는 연일 전쟁고아의 클라리넷 연주를 내보냈다.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에 제주도청에는 각종 제보가 잇따랐다. 하루는 서울 중랑구에 사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제주도 한국보육원에서 클라리넷을 부는 소녀와 함께 지냈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억하기에 그 소녀의 이름은 유인자이다.”라고 제보했다. 이상철 선생은 소식을 듣고 공무원의 도움으로 수소문하고 본인과 연락하여 2010년 10월 28일 서울 성북구에 사는 유인자(69)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다.
클라리넷 연주자 유인자(사진:제주국제관악제)
유인자 씨는 방문단과 기자들을 만나 놀라며 “어릴 때 내 사진이 이렇게 유명한 줄 몰랐다, 전쟁고아가 돼 제주도에 홀로 남은 내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라고 말하며 이상철 선생 일행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차와 과일을 내오며 한국전쟁 당시 살았던 이야기를 천천히 자세하게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나는 9세로 6남매의 맏이였어요. 어느 날 북한이 쳐들어왔다는 어른들의 고함과 함께 하늘에서 폭탄이 마구 떨어졌어요. 가족이 함께 살던 서울시 중구 주자동(필동) 집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됐고 그 난리 통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어요.
3개월 된 막내와 어린 동생 2명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는 나중에 소문으로만 듣고 인천으로 정신없이 걷다가 군인 아저씨가 나를 불쌍히 여겨 전쟁고아라며 군용기로 제주도까지 옮겨주었습니다. 전쟁고아들을 수용한 한국보육원에 들어가 그곳에 관악대가 있어 클라리넷을 처음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성장 후 한국보육원장 황온순 여사의 배려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음대 기악과를 지망했는데 실력이 안되어 1차 지망은 떨어지고 2차 지망으로 지원했던 국악과에 합격했지요. 당시 일간지 신문에 합격자로 내 이름 석 자가 크게 났지만, 대학 입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하고는 지금까지 클라리넷을 불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불던 음악을 그만두던 그때 내 심정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에요. 매우 슬픈 일이지요. 24살이 되던 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습니다. 30개월 전에는 첫 손자도 품에 안았고 전쟁 때 헤어진 부모님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해 이산가족 등록을 했습니다.
전쟁고아라면 불쌍하고 고달픈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겠지만, 저는 호강만 하고 살았어요. 그 어렵던 시기에 살아남아 지금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게 됐는데, 전쟁고아를 돌보러 제주도까지 내려온 대통령 할아버지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품어왔고 당시 대통령이 귀엽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 대단한 사람인 줄 전혀 모르고 그냥 인자한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를 지금까지 돌봐줬던 많은 분에게 감사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옛날을 조용히 회상했다.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는 환갑을 넘어 69세 할머니가 된 클라리넷 연주자를 2011년 제주국제관악제 행사에 초청해 할머니는 제주시 탑동 해변에서 개최된 연주회에 참석하여 무대에 올라 제주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길버트(Charles E.Gilbert) 소령(사진;제주국제관악제)
오하이오주립대 음악 교수였던 길버트(Charles E.Gilbert, 1912∼1998) 소령은 유엔 민간기구 협력단체(UN Civil Asst. Command Field Team in Korea)의 제주 책임자로 1952년 2월에 제주에 와 1953년 9월까지 1년 6개월가량 머물렀다.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는 전쟁을 피해 섬에 들어온 사람이 많아 매우 혼잡했다. 제주 시내 전농로에 있던 제주농업학교 폐건물에는 미 제5공군 군목 러셀 L. 블레이즈델 중령과 한국 공군 조종사를 육성한 딘 헤스 소령이 돌보던 육지에서 데려온 많은 전쟁고아들이 있었다. 길버트 소령은 한국보육원 황온순 원장을 만나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길버트 소령은 고봉식(1923~2018) 음악 교사를 도와 관악대를 창설하고 오현고, 제주중, 제주농업중학교 등 도내 학교 관악대의 활동을 순회 지도하며 제주 관악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길버트 소령과 관악대(사진;제주국제관악제)
그는 미국의 여러 단체와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 후원을 약속받고 신호나팔 등 악기와 연습용 악보를 제공하며 아이들을 정성껏 지도했다. 교악대 창설은 길버트 소령이 오현초급중학교에 작은북 2점과 신호나팔 6점을 처음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보육원 악대는 40여 명으로 편성돼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의 호의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 있는 유엔군 부대를 찾아가 위문 공연을 하며 포연 속에서 평화와 희망을 노래했다. 길버트 소령은 미국에 갈 때마다 악기와 악보를 들여와 오현고, 제주농업학교, 제주중학교 등 6개 관악대를 순회 지도했다. 그리고 틈틈이 제주 음악 교사에게 지휘법을 가르쳐 제주가 관악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게 일깨웠다. 전쟁고아들은 따뜻한 보살핌 속에 부모를 잃은 전쟁의 쓰라린 상처를 잊고 매일 악기를 즐겁게 연주했다. 그러던 중 길버트 소령의 근무지가 변경되어 제주를 떠나게 되었다. 제주 음악인들은 1953년 7월 22일에는 제주 관악의 은인 길버트 소령을 기리기 위해 제주 시내 오현단 경내에 길버트 음악관을 세웠다.
길버트 소령 송별음악회(사진:제주특별자치도)
길성운 제주도 지사(1953∼1959년, 왼쪽 세 번째)는 1953년 8월 20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찰스 길버트 소령(왼쪽 여섯 번째) 송별음악회를 개최하여 그의 헌신적인 활동에 대해 제주 도민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제주를 떠나는 배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학생들은 부두에서 악기를 꺼내 불며 이별의 연주로 스승을 배웅했다.
길버트 음악관(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와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는 2010년 클라리넷 연주자 유인자 선생을 만난 이후 2년 동안 길버트 소령이 근무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을 중심으로 길버트 교수의 행적을 추적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조직위는 용기를 내어 미국 대사관과 미8군 군악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 대사관 조명준 공보관은 2014년 3월에 길버트 소령이 1998년 86세 일기로 사망해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스프링스 에버그린 묘지에 안장했다는 내용과 각종 자료를 장기범 서울 교대 명예교수에게 전달했다. 장기범 교수는 서울 교대 음악교육과에서 대학생을 지도하며 오랜 기간 길버트 소령 찾기에 나섰다. 장 교수는 보육원 아동들에게 관악 합주를 가르쳤다.
제8회 제주국제관악콩쿠르(사진:제주국제관악제)
2014년 8월 개최된 ‘제주국제관악제·아시아태평양 관악제’에 길버트 소령의 딸 다이안 아널드(68·미국 애리조나) 부부가 제주도에서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운 소녀 유인자(73·서울)와 상봉했다. 유인자 여사는 어릴 때를 회상하며 “길버트 소령은 선하고 다정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어리벙벙했는데 음악을 배우고 보살핌을 받으며 이렇게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가 클라리넷을 불고 길버트 소령이 지휘를 해주던 그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길버트 소령의 딸 다이안 아널드(사진:연합뉴스)
아버지의 제자인 유인자 여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아널드 여사는 “아버지가 제주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지도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버지의 행적이 이렇게 한 지역의 관악을 크게 키웠다는 사실을 제주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오늘의 소중한 만남에 정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U-13 관악경연대회와 아시아·태평양 관악제 폐막공연 등 관악제 행사에 함께 손잡고 관람했다.
‘고봉식 & 길버트(Charles E.Gilbert)전’(사진;제주국제관악제)
2021년 제주국제관악제(위원장 이상철)는 제주 관악의 은인 길버트 소령(1930~1998)과 고봉식 교육감(1923~2018)을 기리는 행사로 '고봉식 & 길버트전'을 제주문예회관 제2전시실에서 개최하고 VR 전시를 하였다. 고봉식 선생은 1952년 제주 오현고 관악대를 창설해 1953년에 진주개천예술제에 참가해 최고상을 수상하고, 10여 년 동안 최고상을 받았다.
초대 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며 관악의 불모지였던 제주도를 관악의 고장으로 이끌었다. '관악! 여명을 밝히다' ‘섬, 그 바람의 울림!’을 주제로 한 전시는 제주 관악의 70년 역사를 되돌아보며, 고봉식 선생과 길버트 소령 두 인물이 관악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입은 제주에 희망을 불어넣었던 순간을 보여주었다.
‘고봉식 & 길버트(Charles E.Gilbert)전’(사진;제주국제관악제)
고봉식(1923~2018) 교육감은 1923년 제주시 오라동에서 태어나 목포상고를 나오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947년 오현중학교에 음악교사로 부임해 제주제일고 교장, 제주관광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며 41년간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학생을 지도했다. 교장할 때 교사들에게 “주말 숙제를 내지 말라, 스스로 공부해야지 숙제는 벌(罰)이나 다름없다. 학생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라.”라고 말했다. 제6대 제주교육감으로 선출된 이후에는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47년 3월 1일에 제주도 제주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삼일절 기념식 대회가 열려 25,000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때 기념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통제하러 경찰 430명과 기마경찰이 출동하여 인원을 통제하였다. 그런데 오후 2시 50분경 임영관 경위의 말이 갑자기 흥분해 말굽으로 5~6세 소녀의 머리를 내려쳐 피가 났다. 주위의 사람들이 항의하자, 기마경찰은 말에서 내려 다친 아이를 돌보지 않고 그대로 도망쳐 제주경찰서로 달아났다. 아이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본 사람들은 도망친 기마경찰을 잡으러 달려갔다. 화가 난 사람들이 경찰서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문을 걸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항의하는 주민들과 구경꾼이 관덕정 앞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제주경찰서 책임자가 나와 사과하면 해결될 것을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고봉식 음악교사와 오현고 브라스밴드(사진:제주국제관악제)
경찰은 주민을 해산하려고 시도하다 총을 시민들에게 직접 발포해 아이를 업은 엄마 등 6명이 현장에서 죽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송덕윤(49세, 농부), 김태진(38세, 농부), 양무봉(49세, 농부), 오문수(34세, 농부), 허두용(15세, 학생), 박재옥(21세, 주부)이 총에 맞아 절명해 관덕정 앞은 한순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희생자를 확인할 결과 5명이 모두 등 뒤에서 사격한 총에 맞아 절명했다.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대응이었다. 다음날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평온하게 행동했지만, 시민들의 원성이 더 높아졌다.
미 군정은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려고 했다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리며 여론을 조작했다. 그리고는 육지로부터 수백 명의 경찰을 지원받아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구금을 시작해 2,000명 이상을 체포하고 200명을 구속했다. 미군정의 미온적인 처사에 반발해 박경훈 초대 도지사가 지사직을 사임했다. 3월 10일 총파업으로 이어져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공무원과 교사들도 출근하지 않았다. 다음 해 1948년 3월 6일과 14일에 경찰 고문으로 민간인이 사망하자 주민들은 흥분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한라산과 제주지역 89개 오름에서 일제히 봉화가 피어올랐다. 민중봉기가 시작되고 무장항쟁이 시작되어 민중자위대는 제주도 11개 지서를 습격했다. 이에 미 군정은 경비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4월 10일 부산에 주둔한 제5연대 제2대대 병력을 제주도로 보냈다. 제9연대장 김익렬이 미군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4월 28일 무장대 김달삼과 회담하여 협의를 잘 마쳤다. 4월 29일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극비리에 제주를 다녀가고 나서 분위가 아주 달라졌다. 5월 1일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제주읍 오라리를 습격하여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5월 12일부터 잔인한 토벌과 학살이 자행되었다.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알 수 없는 많은 제주도민이 무참히 학살되고 희생되었다.
고봉식은 자기가 태어난 오라리 마을의 약 240명의 주민이 희생되고 방화로 인해 마을이 불에 탄 것을 항상 마음속에서 아파하고는 내색하지 않았다. 군경합동작전에 의해 정실마을과 연미(淵味)마을이 불타 사라져 주민들은 야산으로 피신하고 해변에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했다. 당시 제주도는 160개 부락이 참화를 입었다. 피해 가호가 15,228호, 유족에 대한 연좌제 시행으로 이재민이 9만 명에 달하고 가축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엄청난 산림이 벌채되고 불에 타서 사라졌다.
한강 작가는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소설《작별하지 않는다》를 2014년 6월에 쓰기 시작해 딱 두 페이지를 쓰고는 2018년 세밑에 겨우 그다음을 이어 썼다. 작가는 2021년에 소설을 문학동네에 발표하여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202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제주 도민과 남은 유족의 아름을 어루만져 주었다.
제주국제관악제(사진:제주국제관악제)
고봉식 음악 선생은 제주 4·3 사건의 큰 상처를 입은 제주인의 가슴을 음악을 통해 아픈 상처를 치유하게 하려고 어린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제주국제관악제를 개최했다. 그의 가슴은 항상 새까맣게 타서 그 안에는 空虛라는 글자만 있었다. 2008년 11월 10일 출범한 ‘제주4·3평화재단’에서 확정한 희생자는 2024년 기준 14,882명, 유족은 2025년 5월 기준 139,434명이다.
고봉식 제주교육감은 76세 때인 2009년에 고향 동네 오라동 연미마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리는 마음에서 노인의료복지시설 연화원을 건립했다. 연화원은 병마와 씨름하며 외롭게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시설로 간호사 경력이 있는 며느리 전상혜 원장과 직원들은 포근한 사랑, 사귀는 정, 상서로운 빛으로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연화원은 따뜻한 간호의 손길과 찬불가 음성공양으로 보현행원을 실천하고 있는 복지시설이다. 평생을 제주도 교육 발전과 제주도민을 위해 헌신한 고봉식 교육감은 2018년 7월 20일 향년 95세로 타계했다.
노인의료복지시설 연화원(사진:연화원)
제주토박이 관악인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1995년에 시작된 제주국제관악제는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였다. 30년 역사를 돌아보면 1998년에는 일본, 대만, 독일, 한국의 연주자가 참가한 소규모 전문앙상블축제를 마련했고 2000년에는 국제관악경연대회를 개최해 금관악기 전 부문인 호른, 트럼펫, 테너트롬본, 베이스트롬본, 유포니움, 튜바, 금관 5중주와 타악기 8개 부문을 진행했다. 2004년 제13회 아시아ㆍ태평양관악제를 개최했다. 2006년에는 세계마칭쇼밴드챔피언십대회를 개최했다.
2009년 4월에 유네스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에 가입하였다. 2014년에는 제18회 아시아 · 태평양관악제를 함께 개최했다.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평화의 섬에서 열리는 제주국제관악제와 국제관악콩쿠르는 우수한 연주자와 작곡가를 계속 발굴해 지원하며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협업을 통해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음악극, 미술 전시, 영화 음악회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관객의 경험을 풍성하게 만들고 세계의 우수한 음악가와 작곡가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음악제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5 제주국제관악제(사진:제주국제관악제)
길버트 음악관은 오현고의 이전으로 1972년에 건물은 헐려 현재 표지석만 남아 있어 제주 음악인들은 다른 장소에라도 길버트 음악관이 복원되기를 간절하게 염원(念願)한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