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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05. 17:05 (2026.02.05. 17:05)

부친과 함께 무과 급제하고 일본과 대만 표류해 제주 귀환 경험 똑같아

 
조선왕조 무신 이방익의 《표해가》1
제주도 한라산은 120만 년 전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이후 최소 5차례의 화산 활동으로 현재 지형이 완성되었다. 2021년 8월 범선 코리아나 호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바닷가의 연안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범선을 연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초기에 예정한 항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여수에서 출항하여 여러 섬을 들리고 제주 성산항에서 초도 쪽으로 돌아섰다.
조선왕조 무신 이방익의 《표해가》1
 
 
제주도 한라산은 120만 년 전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이후 최소 5차례의 화산 활동으로 현재 지형이 완성되었다. 2021년 8월 범선 코리아나 호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바닷가의 연안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범선을 연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초기에 예정한 항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여수에서 출항하여 여러 섬을 들리고 제주 성산항에서 초도 쪽으로 돌아섰다.
 
범선 코리아나 항해 코스(사진:궁인창)
 
2021년 8월 28일 새벽 4시 30분 범선 코리아나 호는 여수 소호마리나를 출항했다. 범선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 연도와 거문도에 입항하여 관광과 탐사를 하였다. 3일 차 되는 날 아침에 거문도항을 오전 6시 출항하여 제주도 성산항으로 항해했다. 제주도 가까이 다가와 우도(牛島)를 바라보니 섬 모양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주 성산포 입항(사진:궁인창)
 
성산항 컨테이너 부두에는 제주요트협회 통합 제2대 한재현 회장, 한대승 부회장과 부인 박소연(빅볼랜드 대표), 해양탐험가 채바다( 채길웅, 1944~2022) 선생이 마중을 나왔다. 그때 컨테이너 부두 책임자가 나타나 “사전에 입항 허가가 없어 범선을 절대로 부두에 접안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때 해양탐험가 채바다 선생이 나서 “육지에서 힘들게 항해하여 배가 들어왔는데 야박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제주 인심이 아니다.”라고 담당자를 설득해 배를 부두에 안전하게 접안(接岸)할 수 있었다.
 
채바다 선생은 서울에서 회사를 설립해 경영하다 연세가 많은 어머니를 모실 생각에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 제주 성산포로 내려와 10여 년간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그런데 아들의 바다 모험 첫 항해 직전에 나이 많은 어머니는 94세로 그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항상 아들에게 유언처럼 말했다. “내가 죽으면 네 아비 곁에 산에 묻지 말고, 바다에 묻으라. 너는 말려도 안 들을 애다. 네가 네 곁에 있으마!” 채바다는 제주 배 테우를 타고 일본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어머니 유골을 성산포 앞바다에 뿌렸다. 그는 바다에서는 강한 남자였지만, 항구에 앉아서 어머니를 회상하고 우는 남자였다. 그는 정말 어머니를 사랑한 뜨거운 시인이었다.
 
 
채바다 시인이 쓴 시 〈어머니 수평선〉
 
나는 아버지 무덤에서
어머니를 부른다
아버지 무덤은 산에 있고
어머니 무덤은 바다에 있다
오늘은
산에 묻힌 아버지보다
바다에 묻힌 어머니가 더 보고 싶다
수평선의 묻히신 어머니
내가 수평선 따라
노 저어 갈 때마다 따라 오신다
아들아 뱃길 조심 하거라
수평선을 따라 오시는 어머니!
수평선을 붙들고
수평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필자는 코리아나 범선의 제주도 방문을 앞두고 한 달 전에 친구인 제주요트협회 한대승 부회장에게 알렸다. 여수에서 출항 때 항해 예상 항로를 통보했다. 거문도 항구에 머물 때 한대승 부회장이 제주요트협회에서 점심을 준비할 예정이니 성산항 배에서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했다. 한 부회장과 부인 박소연은 제주를 방문하는 요트 친구들에게 제공할 대나무 전통도시락 30개를 밤을 꼬박 세우며 만들어 코리아나호 정채호 선장에게 전달하였다.
 
탐사대원들은 처음 보는 대나무 바구니 도시락에 모두 감탄하며 도시락을 에워싼 천을 벗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놀랍게도 대나무 바구니에는 제주도 주먹밥과 생선, 전, 과일이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내용물이 너무나 푸짐하고 음식에 정성이 담긴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긴 항해 끝에 느끼는 감동의 제주도 전통도시락을 받아 든 항해 탐사 대원들은 주먹밥과 반찬을 먹으며 연실 맛있다고 칭찬했다. 음식을 혼자서 장만한 박소연 대표는 음식 솜씨가 정말 뛰어나 대원들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전통도시락을 반납할 때 한 부회장과 부인 박소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허리 굽혀 인사하였다. 다음에 범선을 타고 제주를 방문하면 제주요트협회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하고 아직 실천하지 못했다.
 
제주 대나무 바구니 전통 도시락(사진:궁인창)
 
점심을 먹을 때 우도 도항선이 성산항 부두터미널로 들어와 필자는 탐사 대원들에게 우도 관광을 제안했다. 정채호 선장에게 오후 일정을 확인하고 외출을 허가받았다. 그때 마침 도항선의 기관장과 선원 2명이 범선 내부를 구경하러 배에 올라 선장에게 인사하였다. 배 내부를 안내하며 기관장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기관장은 도항선에 탐사대원을 초대해 10명이 도항선에 승선했다. 승선신고서를 작성한 지 15분 만에 건너편 우도 부두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시간표를 확인하니 성산포로 돌아가는 마지막 배 승선 때까지 약 3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었다.
 
필자는 20분 간격의 순환 버스를 확인하고 우도 방문 기념으로 6,000원 하는 순환 버스표 10장을 사서 탐사대원에게 한 장씩 선물하였다. 버스는 관광지 중에 내리고 싶은 곳에 어디든지 내리고, 반복 승차가 가능했다. 우리 일행은 우도 8경 중 경관이 뛰어난 검멀레 해변에서 내렸다. 멀레는 모래를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이날은 관광객이 많아 정말 혼잡하고 날씨가 더워 땀이 계속 났다. 정해민 선생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하고 우도 특산물인 땅콩 아이스크림 10개를 사서 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맛있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해안 절벽 경관을 구경했다. 파도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해식애(海蝕崖)가 정말 장관이었다.
 
우도 도항선(사진:궁인창)
 
탐사대원은 버스를 다시 타고 우도봉 등대로 향했다. 우도 등대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우도 등대공원 가는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서 넓은 초원과 저수지와 한라산을 구경하였다. 등대에 도착하여 푸른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는 평온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우도봉 정상의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에 처음 불을 밝혔다. 이후 2003년 12월에 16m 높이의 원형 등탑을 신축했다. 제주해양수산관리단에 따르면 제주도는 사방이 온통 바다로 등대가 중요하다. 제주 등대는 국가 관리가 216개, 민간이 90개가 있다. 사람이 상주하는 유인 등대는 마라도, 우도, 추자도 3개뿐이고, 다른 곳은 모두 암초 등을 피해 안전 항해를 돕는 무인 등대이다. 2023년 12월 비양도 등대가 야간 선박의 항해를 보장하기 위해 등대 불빛 광력 증강 사업을 완료해 등대 불빛 도달거리가 15km에서 33km로 더욱 밝아져 인근을 통항하는 선박이 비양도를 더욱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게 됐다.
 
제주 우도 등대(사진;궁인창)
 
우도봉 정상에서 바다 위를 항해하는 큰 배들과 유람선을 바라보았다. 제주도 해상 날씨는 순조로운 날도 있지만, 기상악화로 항해가 어려운 날도 많아 항해 중 갑자기 먼바다로 표류해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제주민이 많았다. 어민들은 바다에서 조업하다가 돌풍으로 표류를 많이 당했다. 관리들도 공무를 수행하러 육지로 가다가 갑자기 날씨가 급변해 심한 풍랑을 만나 일본 고토열도, 琉球(오키나와), 필리핀, 중국으로 표류한 적이 있었다.
 
제주인 성주 이씨 이방익(李邦翼, 1757년~1801년)도 우도에서 배를 탔다가 표류하여 타이완 펑후제도를 방문하고 국한문 장편 기행가사 《표해가》를 남겼다. 이 가사는 우리나라 국문학상 가장 중요한 《표해록》이다.
 
이방익의 아버지 이광빈(李光彬, 1734~1801)은 젊은 시절 과거를 보러 육지에 나가다가 일본 나가사키(長崎島)에 표류한 적이 있었다. 이때 한 의사가 이광빈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사위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님을 모시는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전라도 만경현령(萬境縣令, 현 金堤市)을 하였다.
 
이광빈의 아들 이방익도 무과에 급제하여 무겸선전관을 거쳐 임금이 궐내에 거동할 때 호위하는 정 3품 忠壯衛將을 지냈다. 이방익은 정조 20년(1796년) 음력 9월 왕국의 수비를 맡은 부대의 무관으로 근무하다 휴가를 얻어 고향 제주목 좌면(현재 조천읍) 북촌리를 찾았다. 9월 20일 동네 사람 이은성(李恩成), 金大成, 尹成任, 육촌 이방언(李方彦), 일꾼 金大玉과 任成柱, 선주인 李有寶와 함께 어선을 타고 우도로 향했다. 이방언의 어머니는 우도가 친정이라 노년에 친정에서 머물렀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시신을 고향 선산으로 완장(完葬)할 산지(山地)를 정하고 우도로 건너와 이장절차를 모두 마치고 오후에 우도를 떠나 큰 섬으로 건너오면서 시원한 바다 경치를 즐겼다. 빛나는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한라산에 붉은빛을 남겨 그 모습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강한 돌풍(突風)을 만나 파도가 점차 높아지며 물결이 출렁거렸다. 순식간에 강한 바람이 돛과 돛대를 모두 빼앗았다. 노련한 사공은 배를 제어하지 못하고 그냥 바다에 운명을 맡겼다. 배는 서북풍에 휘말려 제주 연안에서 점점 멀어졌다. 어선은 표류하기 시작하여 동남쪽으로 떠내려갔다. 오륙일이 지나 9월 25일경 섬 3개가 보이는 고토열도(五島烈島)까지 5일간 떠내려갔다. 이방익은 아버지의 나가사키 섬의 표류를 알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어선에 있는 일행을 안심시키고 조금만 더 가면 배에서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배는 고토(五島)로 향하다 다시 바람 방향이 바뀌어 서남쪽으로 표류했다. 며칠 만에 반가운 비가 내려 빗물을 마음껏 받아 마셨다.
 
며칠간 굶었던 일행에게 반가운 선물이 생겼다. 배에 큰 고기가 펄쩍 뛰어든 것이다. 그들은 물고기를 먹으며 간간이 내리는 빗물로 목마름을 해결하며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텼다. 배는 16일 만에 10월 6일 臺灣府 건너편 64개의 펑후제도(澎湖群島)의 북쪽에 있는 지베이섬 해안가(吉貝沙尾)에 겨우 닿았다. 그때 배가 부서져 표류민들은 언덕에 올라 휴식을 취하였다. 이 섬은 澎湖 본섬에서 15km 떨어진 섬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에게 발견되어 부축을 받았다. 배를 타고 본섬으로 들어가 며칠간 東衛에서 머물렀다,
 
이방익은 坤德配天堂이라는 편액이 걸린 淸朝 澎湖府 官府에 도착해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바람을 기다리느라 약 한 달 동안 머물렀다. 이방익은 당시를 기억하면서 “팽호부에 이르니, 높은 성이 열 장(丈)이나 되고, 인가(人家)도 요밀하여 모두 기와집이었다. … 그 땅의 ‘감졔’라고 하는 것은 무 같지만, 맛이 달고 먹으면 배도 불러서 기운이 났다. 또 ‘화’이라는 것은 콩 같은데, 맛이 비린 것을 볶아 기름을 내어 우리나라의 진유(眞油) 빻듯이 하였다.” 이방익 일행은 花生을 먹었는데, 땅콩과 비슷한 특산물이다. 권무일·심규호 선생은 관련 논문에서 澎湖 본섬 위에 있는 지베이섬을 주장하고, 남호현 교수는 澎湖 본섬을 주장한다.
 
지베이섬 해안가(吉貝沙尾)(사진:구글지도)
 
“그 官人 뭇자오되 어느 나라 사람인고, 一盃酒로 慰勞한 後 저 七人은 다 보내고 나 혼자 부르거늘 다시 드러가니 官人이 斂袵하고 무슨 말삼하옵는고. 그대 비록 飢困하나 七人 동무 아니로다. 무삼 일로 漂流하야 이에 이르신고. 眞情으로 뭇잡나니 隱諱 말미 엇더한고. 知鑑도 過人할사 긔일 길이 잇슬소냐. 朝鮮 末端에서 風景라 배탓다가 이 헤 오온 일을 細細히 告한 後에 故國에 도라감을 눈물로 懇請니 官人이 이 말 듯고 酒饌내여 待接하며 長揖야 出送하니 큰 公廨로 가는구나.”
 
《全世界的澎湖人都回來》(사진:國家書店)
 
타이완 평후(澎湖) 섬을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이 문학가 도야(渡也)이다. 시인의 본명은 천지유(陳啟佑, 1953~ ), 초기 필명은 歷山, 江山之助로 타이완 남부 자이(嘉義)에서 태어났다. 그는 民國 74年(1985) 文化大學에서 中國文學博士 學位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어 대학생을 지도했다. 도야(渡也)의 할아버지는 펑후 출신으로 항상 손자에게 펑후 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문학가 도야(渡也)(사진:澎湖縣政府文化局)
 
도야(渡也)는 16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88년 시 〈竹〉이 중국어 교과서에 선정되었다. 그는 1994년부터 펑후에 관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2009년에 《펑후의 꿈들은 날개를 펼친다(澎湖的夢都張開翅膀)》를 출판하였다. 저자는 “나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펑후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라고 강연에서 자주 말했다. 민국 111년(2022년)에 펑후를 소재로 한 두 번째 시집 《전 세계의 펑후 사람들이 돌아옵니다 (全世界的澎湖人都回來)》를 출판하였고, 시인은 펑후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시집에 75편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 시가 있다.
 
〈2025 펑후학 제25회 학술 심포지엄
 
타이완 펑후현 정부 문화국은 〈2025 펑후학 제25회 학술 심포지엄〉을 2025년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2일간 국립 펑후과학기술대학교 해양과학기술빌딩 국제회의장에서 “島嶼社會文化의 現地實踐”이란 주제로 개최하여 마을 역사와 가족사, 민족 이동 및 취락 문화, 묘지의 변화와 묘지 문화, 지방학 작위의 현지 실천 등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 참조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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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