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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05. 16:33 (2026.02.05. 16:33)

산시성 사마천 사당 입구 현판에 “위대한 역사가의 붓이 세상의 진실을 널리 드러낸다” 새겨져

 
사필소세(史筆昭世)
사마천(司馬遷) 《史記》 강좌는 後外 金榮煥 교수가 2013년 4월 19일 저녁 7시에 영등포구 5번 출구에 있는 삼보빌딩 8층 대교 HRD 센터에서 동양고전아카데미 무료 강좌를 처음 개설하였다. 이후 교육 장소를 여의도, 시청, 종로 3가 등 4번이나 이전하다 코로라 이후에는 마포구 공덕역 5호선 지하철 2번 출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301호에 정착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司馬遷 《史記》 및 관련 漢文古典(文, 史, 哲)과 중국 현대사를 무료 학습모임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필소세(史筆昭世)
 
 
사마천(司馬遷) 《史記》 강좌는 後外 金榮煥 교수가 2013년 4월 19일 저녁 7시에 영등포구 5번 출구에 있는 삼보빌딩 8층 대교 HRD 센터에서 동양고전아카데미 무료 강좌를 처음 개설하였다. 이후 교육 장소를 여의도, 시청, 종로 3가 등 4번이나 이전하다 코로라 이후에는 마포구 공덕역 5호선 지하철 2번 출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301호에 정착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司馬遷 《史記》 및 관련 漢文古典(文, 史, 哲)과 중국 현대사를 무료 학습모임으로 진행하고 있다.
 
김영환 교수는 첫 강의 시간에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史記》를 소개하며 고전 공부의 필요성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첫째, 고전은 원전을 그대로 읽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상황이다.” 둘째, 인간성 파괴 현상이 시급한 현실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고전을 읽고 고전의 정신인 사랑, 정의, 평화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무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검증된 온갖 지혜의 창고인 고전은 당신에게 필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史記》는 역대 제왕의 중요 사적을 기록한 〈本紀〉 12편, 왕후장상(王侯將相) 및 걸출한 인물의 전기를 기록한 〈世家〉 30편, 각계각층 인물의 전기를 기록한 〈列傳〉 70편, 천문역법 등 방면의 제도를 기록한 〈書〉 8편,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한 대사건 연표를 기록한 〈表〉 10편을 포함한 130편의 52만 6,500글자로 되어있다.
 
강좌를 개설한 이유를 설명하며 “누구나 이 강좌를 통해서(또는 책을 읽고) 고전의 바다에서 마음껏 소요(逍遙)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유(heal)되고, 평온(calmness)해 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인내심을 가지고 길게 10년을 내다보며 함께 공부하자.”라고 말했다.
 
동양고전아카데미 강좌 1강에 참여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중간에 여러 번 빠지기도 했지만, 꾸준하게 듣고 복습하며 배웠다. 첫 시간에 배운 내용은 중국사의 始源인 神話時代부터 傳說時代(五帝-新石器時代後期), 歷史時代(夏, 商, 周-靑銅器時代), 信史時代(秦以後-鐵器時代-民國初期), 産業革命으로 당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96강 강의(사진:궁인창)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오후에 진행된 제396강 강의는 “司馬遷 《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秋日湖上〉과 작자 薛瑩 및 주요 단어(薛瑩, 落日, 五湖, 太湖, 煙波, 處處, 沈浮, 千古......)에 대해서 설명, (2)樂의 여러 가지 의미와 발음 및 품사에 대해서 설명, (3)知備와 有備無患 설명, (4)《論語》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君子, 仁, 智, 禮, 學, 善, 信, 義, 敬, 勇, 小人.......)와 仁義(昭公)와 禮樂(周公) 및 孔子의 家系와 野合의 기준(나이와 신분)에 대하여 설명, (5)《孟子》〈梁惠王上〉에 등장하는 恒産(경제 기초)과 恒心(도덕 수양), 制民之産(기본 산업정책)의 용어에 대하여 상세 설명, (6)3經, 5經, 6經, 9經, 12經, 13經의 구분과 《孟子》가 가장 나중에 들어간 이유와 시대를 설명, (7)古文獻에 나오는 兼詞(諸, 焉, 盍, 曷, 叵, 旃......)와 인용 문장에 대하여 설명, (8)取雅號記의 작성 사례에 대하여 설명, (9)司馬遷 祠堂을 참배한 느낌을 묘사한 自作 漢詩(5言律詩, 7言律詩)”이다.
 
강의가 끝나면, 다음날 주정봉 學友가 복습 자료를 정리하여 인터넷 ‘다빈치 지식지도(www.davincimap.co.kr)’에 게재하여 전국 어디서나 무료로 강의 자료를 볼 수 있다.
 
김영환 교수와 대한검정회 회원들은 2025년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중국 산시성 司馬遷의 고향 한청(韓城)과 龍門 일대, 古芮國박물관, 당가촌, 임동, 진시황 병마용, 매력 도시 西安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탐방하였다.
 
사마천 사당 전경(사진:바이두백과)
 
사마천의 집안은 대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사관(史官)을 세습했다. 기원전 110년, 한무제(漢武帝)가 봉선(封禪)을 하러 18만 대군을 이끌고 長安을 떠나 태산으로 향했다. 봉선(封禪)은 고대 중국의 제왕이 즉위한 후 하늘과 땅에 왕의 통치 시작을 알리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는 제사 의식으로 '봉(封)'은 태산에 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이고, '선(禪)'은 땅을 정결히 하여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무제는 태산에 오른 후 21년 동안 8차례 동쪽 태산을 순시하고, 6차례의 봉선을 진행하여 후세 제왕들이 앞다투어 봉선을 모방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도 황제를 따라 수행했다. 태산(泰山)으로 향하는 봉선 행렬의 규모는 대단하여 10여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든 울긋불긋한 깃발은 온 하늘을 덮었다. 기세가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평생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하는 성대한 행사는 백성의 큰 관심사였다. 태사공 사마담(司馬談)이 중병에 들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漢武帝는 사마담을 낙양(洛陽)에서 병을 치료하도록 허락했다.
 
병상에 누워있던 사마담은 봉선에 참여하지 못해 기록하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안타깝게 생각했다. 사마담은 낙양에 온 어린 아들 사마천을 보고는 “천아, 네가 폐하를 따라 봉선제를 지내러 가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사마천은 아버지에게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버님께서 그렇게 봉선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제가 황제 폐하를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마담은 “봉선은 우리 사관들에게 정말로 너무 중요하다. 사관으로 그런 일을 사서에 써넣지 않을 수 없구나. 그리고 실록(實錄)이니 두 눈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쓰겠느냐?”라고 말했다. 사마천이 “역사의 이 무거운 소임을 소자 어찌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능력은 안 되지만, 모든 힘을 다해 선인들이 남긴 사료를 편찬하여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마담은 병이 깊어져 얼마 후 세상을 하직했다.
 
3년 후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이 되었다. 태사령 직책은 황실의 도서를 관리하고 역사 자료를 수집하며 천문역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사마천은 각종 서적과 문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사마담이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물려받아 7번의 여행 답사를 통해 역사서 《사기》를 완성했다.
 
중국 산시성 韓城 사마천 사당 입구에 도착하여 누각에 걸린 현판을 바라보면 사필소세(史筆昭世)라는 글이 있다. 이는 “역사의 붓으로 세상을 밝힌다.”라는 숭고한 뜻으로 “위대한 역사가의 붓이 세상의 진실을 널리 드러낸다.”라는 심오(深奧)한 의미를 지녔다.
 
사필소세(史筆昭世)(사진:김영환)
 
태사공 사마천이 쓴 《报任安书》에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用之所趋异也。」 라는 문장이 있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인데. 혹자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혹자의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받아들여진다.”라고 사람의 삶의 무게와 가치를 표현했다.
 
이 문장은 태사공이 격정적으로 분개하며, 자신의 글 때문에 치욕과 굴욕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굴욕을 감수하려는 불굴(不屈)의 투지(鬪志)를 보여주는 문장으로 진심 어린 감정과 강렬한 예술적 호소력을 지녔다.
 
사마천의 여행로(사진:西安市長安區圖書館)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1893~1976)은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 1918년 베이징대학교 도서관 사서 보조로 근무하면서 대학도서관의 다양한 서적을 접했다, 마오쩌둥은 특히 《史記》 《資治通鑑》 《紅樓夢》을 즐겨 읽었다. 그는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고 독자적인 사상과 가치관을 형성했다.
 
한성시 사마천사(司马迁祠)풍경구(사진:平安韓城網)
 
사마천은 20대 초반에 아버지의 권유로 기원전 116년 고향을 떠나(出遊) 長江, 湘江, 沅江, 黃河, 淮水, 泗水, 山東 등 古迹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역사 자료를 수집했다. 마오쩌둥은 사마천의 답사 자료를 보고 공부하며 자산만의 포부를 키웠다. 그는 사마천의 글을 무척 좋아해 사마천 사당에 붓글씨를 남겼다.
 
사마천 비문(사진:김영환)
 
태사공 사마천 제사는 고향에서 후손 중심의 민간 제사였으나, 2007년에 사마천의 업적과 《사기》 등 역사서의 가치를 기리는 행사가 陝西省 최초 성급 비물질 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2010년에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黃帝, 孔子 제사와 함께 국가 3대 제사로 격상되었고 모든 행사는 중국의 관영방송인 CCTV에서 전국으로 중계한다.
 
2025년 3월 30일 을사년 사마천 제사(사진:平安韓城網)
 
2012년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CCTV-10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풍추사마(风追司马)》는 상하 두 편으로 태사령 사마천의 생애와 그의 《사기》 저술 역사 기여에 초점을 맞추었다. 《风追司马》는 중국 청소년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하나의 커다란 사회현상으로 등장하여 사마천의 강인한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매년 4월 청명절에 거행하는 사마천 제사는 사마천의 동상과 사당과 무덤이 위치한 드넓은 광장에서 거행한다.
 
2025년 3월 30일 을사년 사마천 제사(사진:平安韓城網)
 
김영환 교수는 2013년 4월 19일 첫 강의 시간에 사마천은 《사기》 저술 동기를 〈報任安書〉에 적기를 “구천인지제(究天人之際),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성일가지언(成一家之言)”
 
즉 “우주 만물의 자연적 현상과 인류사회의 규율적 질서 사이의 모든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무수한 변화과정을 깨우치고 통달해서, 자신의 독립적이고 완벽한 이론과 저술체계를 이룩한다.”라고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했다.
 
사마천 사묘(祠墓) 건물 현판에는 청나라 서예가 元白 계공(启功, 치궁, 1912~2005)이 쓴 대형 붓글씨 현판이 있다. 서예가는 스스로 성계명공(姓启名功)이라 불렀다. 자는 완백(元白), 호는 苑北居士로 옹정황제(雍正帝)의 제9대손이다. 그는 유년 시절에 아버지 恒同을 일찍 여의고, 집안이 가난하여 베이징 휘문중학을 중퇴한 후 독학했다. 성장해서는 贾羲民, 吴镜汀으로부터 書法과 丹靑을 배우고, 姜福修에게 고전문학을 배웠다. 사학자 진원(陈垣) 선생에게 학위를 수여받고, 중국 문학사, 중국미술사, 중국 근대 산문, 근대 시선, 唐宋詩 등 과정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漢太史 司馬遷祠墓 启功題 威場(사진:바이두백과)
 
그는 서화가, 고전문헌학자, 紅學家(紅樓夢 硏究), 시인, 국학 대가로 베이징 사범대학부 교수를 역임하며 국가문물감정위원회 주임위원, 중앙문사연구관 관장, 구삼학사 고문, 중국 서법가협회 명예주석, 중국불교협회 고문, 고궁박물원 고문 등을 지내며 중국 고전 문화 교학 및 연구 등 방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시, 서, 화 세 부분에 능통 당대 삼절(三绝)이라 불렸다. 저서에 《古代字体论稿》 《书法概论》 《启功书法选》 《启功书法作品选》 《启功草书千字文》 《启功书画留影集》 《启功论书札记》 《启功论书绝句百首》 《启功三帖集》 《诗文声律论稿》 《古代字体论稿》 《启功丛稿》 《汉语现象论丛》 《说八股》 등이 있다. 치궁(启功)은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필법이라고 말하지만, 저 자신은 글씨의 구조라고 본다. 글씨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체 조형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예가 치궁(启功)의 붓글씨(사진:바이두백과)
 
김영환 교수는 2013년 첫 강의에서 고전학습하는 방법은 《禮記》 〈學記〉 편에 나오는 문장 「學然後知不足,教然後知困。知不足然後能自反也,知困然後能自强也。故曰教學相長也。」이라고 설명했다. “배운 연후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남을 가르친 뒤에야 자신 학문의 빈약함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어려움을 아는 것은 자신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항상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마음가짐으로 진행하라.”라고 가르쳐주셨다.
 
사마천 著 《史記》(사진;바이두백과)
 
지난 13년 동안 정성을 다해 한문 고전을 가르쳐주신 교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학습 노트를 다시 꺼내 첫 장부터 복습하며 귀한 말씀을 되새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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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