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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05. 14:42 (2026.02.05. 14:42)

구명보트에 승선한 5명 선원, 거친 파도와 싸우며 6일간 표류...산토리 외 1명, 제주 주민 들 구조 및 간호로 생환

 
폭풍우와 싸우는 선원들
산토리가 탄 구명보트에는 필라데 타데이(Pilade Taddei)와 레오네 바키오네(Leone Bacchione)가 있었다. 세 사람은 물속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파도에 휩쓸려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거센 바람 때문에 동료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억수로 퍼붓는 비와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바다 위를 천천히 수색했다.
폭풍우와 싸우는 선원들
 
 
산토리가 탄 구명보트에는 필라데 타데이(Pilade Taddei)와 레오네 바키오네(Leone Bacchione)가 있었다. 세 사람은 물속에 있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파도에 휩쓸려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거센 바람 때문에 동료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억수로 퍼붓는 비와 거센 파도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바다 위를 천천히 수색했다.
 
한참 후 나무통을 꽉 붙잡고 있는 일등 항해사 체사레 파올리(Cesare Paoli)와 갑판장 파스쿠알레 첼리니(Pascuale Chelini)를 발견하고 보트에 끌어 올렸다. 그들은 앞이 하나도 안 보이지만, 계속 동료를 찾아 돌아다녔다. 사나운 폭풍 속에 범선은 사라지고 구명보트 위에 다섯 명만 있었다. 선원들은 거친 바다와 싸우다 낮과 밤이 지나갔다.
 
범선(사진:Valery Vasilevskiy)
 
구명보트에 오른 다섯 명은 작은 보트가 그저 고마웠다. 위태로운 안식처이지만 포근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미친 듯이 여러 날 울부짖고 비는 억수처럼 쏟아졌다. 거대한 파도는 작은 구명보트를 끊임없이 덮쳐 침몰시킬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험난한 바다에 내던져졌다. 배와 함께 사라진 동료들과 작별한 시간도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항해사 체사레 파올리가 지휘를 맡아 선원들에게 빈 용기든 무엇이든 찾아내 물을 계속 퍼 올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구명보트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멀리 있는 섬 쪽으로 바람이 불어오니 다행이야!”라고 안심시켰다. 선원들이 해야 할 일은 계속 물을 퍼서 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지친 항해를 한 선원들은 피난처를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품었다. 밤새도록 물을 퍼 올렸지만, 희망이 없어 보였다. 거대한 파도가 지나가면 보트 안은 온통 물바다였다. 이틀 넘게 잠을 자지 못했다 지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구명보트를 강타해 모두 바다에 빠졌다. 갑자기 잠에서 깬 선원들은 영문을 전혀 몰랐다. 큰 파도에 구명보트가 전복되었지만, 바로 세울 수가 없어 그냥 매달려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뒤집힌 구명보트를 뒤집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배의 측면을 붙잡고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을 참고 오래 견뎌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일등 항해사 체사레 파올리가 기진맥진하여 더이상 보트를 붙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선원들이 다가가 그를 도와주려 했지만, 항해사는 보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생존한 선원 4명은 휘몰아치는 파도에 휘둘리며 배의 측면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버텼다. 바다가 선원들을 자꾸 놀리는 듯했다. 생존자들은 힘들게 배를 바로 세우고 배에 올라타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그들에게는 살겠다는 의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폭풍은 조금 약해졌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는 여전히 작은 구명보트를 가라앉히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밤새도록 물을 펐다. 갑판장 첼리니가 저체온으로 인해 심하게 떨었지만, 신경을 전혀 쓸 수 없었다. 악천후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도와주려 애썼지만, 그는 자주 의식을 잃었다. 폭풍이 잠잠해진 ​​새벽, 희미한 햇살 속에서 갑판장이 의식을 잃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새벽이 밝기 직전, 여명이 되면서 첼리니는 후배 선원 세 명만 남겨두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이제 세 명만 남았다.
 
다음 날 아침(21일), 폭풍이 잦아들었다. 구명보트는 켈파트(濟州島)를 향해 해류를 타고 표류하였다. 죽은 항해사 파올리는 섬이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져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면 꼭 섬 쪽으로 가라고 말했다.
 
켈파트(제주도) 한라산(사진:박근세)
 
구명보트는 생존 선원을 싣고 계속해서 섬을 향해 항해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끝없이 표류했다. 어두운 비구름과 시원한 바람은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뜨거운 햇살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뜨거운 열기로 피부가 쭈글쭈글해졌다. 갈증이 참지 못할 정도로 더 심해졌다.
 
22일 더위와 갈증을 견딜 수 없었던 필라데(Piladi) 타데이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하다고 계속 호소했다. 그는 자신만 볼 수 있는 이상한 환영에 열광하여 자주 소리치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마음은 검게 타버리고 마음이 쓰라렸다.
 
23일, 약 40km 떨어진 곳에 켈파트(濟州島)의 바위투성이 해안이 눈에 띄었지만, 바다가 조롱하듯 다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구명보트는 섬을 향해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에서 더 멀어지고 있었다. 산토리는 “이제 어떡하지! 노도, 돛도, 식량도 없는데”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생존자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섬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날 아침, 변덕스러운 바람은 다시 한번 방향을 바꾸어 마침내 섬을 향해 돌아섰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산토리와 레오네 바키오네는 배에서 긴 나무 조각을 하나 떼어내고, 자신과 죽은 동료들의 옷으로 임시 돛대를 만들었다. 남은 두 사람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구상했다. 동료 시체를 바다에 던졌는지, 그대로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멎어 돛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산토리는 작은 노를 만들어 배를 조금씩 해안으로 가게 했다.
 
켈파트 해안가(사진:박근세)
 
26일 아침, 뜨거운 태양이 그들을 맞이했다. 불과 6마일 앞에 거대한 켈파트의 남서쪽 해안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난 6일 동안 그들은 물 한 방울도 먹지 못했다. 입술은 모두 갈라지고 혀는 뚱뚱 부어올랐다. 산토리의 목소리는 거칠고 목이 쉬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산토리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바키오네(Bacchione)는 갈증을 참을 수 없어 바닷물을 조금 마셨다. 바키오네는 바로 구역질을 하고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다 뱃머리에 쓰러졌다. 산토리가 계속 조금만 힘내라고 격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으켜 세우면 바로 쓰러졌다. 바키오네는 고열로 끙끙 앓다가 그날 밤 고통 속에 죽었다. 산토리는 죽은 동료 바키오네를 바다에 버리지 않았다. 이제 배에는 두 명만이 남았다. 산토리 혼자가 아니었다. 산토리도 목이 말라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약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토리는 감사하다고 하늘에 손짓하고 임시 돛대를 다시 조립해 선장처럼 힘차게 돛을 올렸다. 미약한 바람은 계속 불어 구명보트를 바위투성이 해안으로 점점 더 가까이 밀어붙였다.
 
29일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보니 해안에서 4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런데 바람과 해류가 배를 다시 바다로 끌려가려고 하였다. 그 순간 산토리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같이 있던 동료 바키오네(Bacchione)는 구명보트에 실려 먼바다로 다시 표류했다.
 
당시 범선에 승선했던 선원 중에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산토리는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어 자신만만하게 헤엄을 쳤다, 그런데 며칠간 아무것도 못 먹고 힘이 없어 그런지 수영이 되질 않아 바다에서 계속 허우적거렸다. 그는 지쳤고 태풍이 지나간 바다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오직 살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 때문에 바다에 뛰어든 것이다. 거의 두 시간 동안 힘없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다행히 큰 파도가 그를 해안을 따라 이빨처럼 솟아오른 거대하고 뾰족한 화산암 중 하나로 휩쓸어 갔다. 그는 힘이 빠지면 바다 위에 누워 잠시 쉬며 생각했다.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은 것 같았다. 또 다른 파도에 바다로 다시 휩쓸려 갈 위험에 처했다.
 
이때 놀랍게도 산토리가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광경을 본 바다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덕에서 보고 있다 지체하지 않고 해안가로 달려갔다. 파도가 너무 거세 바다로 나가 생존자를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달려와 서로 손을 잡고 어렵게 바다에 빠진 이상한 키 큰 사람을 구조했다. 사람들은 물에 흠뻑 젖어 지친 선원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고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음식과 물을 주며 따뜻하게 돌보아 주었다. 이에 지친 청년은 안심했는지 계속 잠이 들었다. 지쳐 쓰러져 잠들었던 선원이 충분히 강해졌을 때 한 관리가 다가와 질문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세페 산토리는 조선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손짓만 했다. 그는 거처와 식량을 받아 한동안 누워서만 지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식처를 벗어나 방황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켈파트 조랑말(사진;나무위키)
 
주민들은 청년에게 섬의 높은 관리가 자기를 데려간다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몸짓과 무언극으로 소식을 알려주었다. 잠시 후 조랑말 한 마리가 나타나고 동네 주민들이 그를 잠깐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켈파트 해안을 따라 호송되는 동안 산토리는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따라갔다. 키가 작은 말을 타고 가면서 멀리 높은 산을 바라보니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없이 길게 이어진 신비로운 돌담을 계속 쳐다보았다. 산토리는 해안을 따라 약 80km를 이동한 후 어느 큰 집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누가 와서 손을 흔들며 대화를 시도했다. 그때 섬에 난파된 배가 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켈파트 한라산과 돌담(사진:박근세)
 
산토리는 나가사키에 돌아와 나가사키 벨 뷰 호텔에 머물며 지역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켈파트 섬 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검은 화산암 사이에 평원이 펼쳐져 있었고, 언덕은 완만하게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며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부드러운 카펫을 깔아놓은 초원처럼 보였다. 농부들은 작은 밭을 일구고 있고, 집이나 오두막은 거친 돌과 진흙으로 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졌으며, 한쪽 면 또는 여러 면에 일종의 베란다가 있고, 바닥은 잘 다진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붕은 가벼운 목재로 일본의 지붕보다 경사가 낮고, 긴 갈대와 작은 대나무로 덮여 있으며 꼭대기는 거의 둥글게 생겼습니다. 큰 대나무는 지붕 끝에서 끝까지 3피트 간격으로 뻗어 있어, 갈대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The port of Nagasaki, circa 1900.
 
과거 제주도 서귀포시 앞 해상에서 태풍이나 폭풍우로 인해 좌초되거나 침몰한 선박이 상상했던 숫자보다 엄청나게 많다. 제주도는 주변이 온통 바다라 등대가 제일 중요한데, 조선왕조에서 섬 등대 운영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고대 자료를 찾아보았다.
 
《三國遺事》 券 第2 〈駕洛國記〉 편을 읽어보면 “가야국 김수로왕은 유천간을 망산도(현재 경남 진해시 소재)에 보내 멀리 인도의 아유타국으로부터 天命을 받고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해 金海까지 오는 許黃玉을 맞이하게 하였다. 유천간은 붉은색 깃발을 단 허황옥의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망산도 위에 불을 피워 안전하게 인도하였다.” 글이 있다. 이 고대 기록으로 볼 때 봉수(烽燧)를 이용해 선박의 안전운항을 유도하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주해양수산관리단 자료에 제주도 내에 국가 관리 등대가 216개, 민간이 관리하는 등대가 90개가 있다. 유인 등대는 마라도, 우도, 추자도 3개로 2024년 총 37만 8851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마라도 등대는 24만 2972명이 다녀갔다. 제주도 무인 등대는 선박이 암초 등을 피하라고 안전 항해를 돕는 등대이다. 2023년 12월 비양도 등대가 야간 선박의 항해를 보장하기 위해 등대 불빛 光力 증강 사업을 완료해 등대 불빛 도달거리가 15km에서 33km로 밝아져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이 비양도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게 됐다.
 
아이리스 촬영지 표선등대(사진:비짓제주)
 
제주관광공사는 2024년에 1,378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도를 방문했고 매년 방문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발표했다. 제주도에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은 드라마 촬영지나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이다. 연구자의 생각으로는 아이리스 촬영지로 유명한 표선등대나 표선해수욕장, 우도등대 등을 선정해 이탈리아 청년 선원 산토리(Giuseppe Santori)의 상륙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을 세워주고, 140여 년 전 제주도 앞바다를 지나 홍콩으로 항해하다 태풍으로 실종된 이탈리아 범선 비앙카 페르티카(The Bianca Pertica began)호의 마지막 항해를 기억하는 추모비를 건립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사진:Valery Vasilevskiy)
 
이탈리아 선적 비앙카 페르티카호에 탔던 20세 안팎의 선원 산토리는 구명보트를 타고 표류하다 제주도 바닷가 사람에게 발견되고 구조되어 한 달 동안 보호받았다. 이탈리아 청년 선원은 영국, 일본, 중국 선원들과 함께 나가사키로 건너갔다. 그는 상하이로 가는 배를 탔는데, 이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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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