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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6.02.05. 14:20 (2026.02.05. 14:12)

제주 주민, 1878년 태풍으로 표착한 외국인 12명 구조 한달 보호... 66년간 외교일기 작성한 어네스트 사토우 외교문서 공개

 
영국 상선 바바라 테일러 호
대영제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Ernest M. Satow, 1843~1929)의 외교 문서가 1980년 처음 공개되어 한국에서도 조선 개화 시기 국제정세를 쉽게 알게 되었다. 사토는 1861년 외무부가 파견하는 극동통역관 시험에 합격한 후 1861년 11월 상하이에 도착하고 18세에 일본에 도착했다. 그가 처음 일본에 발을 디딜 때는 일본어를 하나도 하지 못해 미국 선교사와 도쿠시마 번사(藩司)에게 언어를 배워 능숙하게 사용해 일본제국 주재 공사 통역수습생이 되었다.
영국 상선 바바라 테일러 호
 
 
대영제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Ernest M. Satow, 1843~1929)의 외교 문서가 1980년 처음 공개되어 한국에서도 조선 개화 시기 국제정세를 쉽게 알게 되었다. 사토는 1861년 외무부가 파견하는 극동통역관 시험에 합격한 후 1861년 11월 상하이에 도착하고 18세에 일본에 도착했다. 그가 처음 일본에 발을 디딜 때는 일본어를 하나도 하지 못해 미국 선교사와 도쿠시마 번사(藩司)에게 언어를 배워 능숙하게 사용해 일본제국 주재 공사 통역수습생이 되었다.
 
1863년 사쓰에이 전쟁 당시 영국 함선에 승선해 통역하고, 시모노세키 전쟁에서도 조슈 번과의 강화 협상에 참여했다. 1865년 통역관으로 승진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서기관으로 영국공사의 통역을 맡아 천황 및 일본제국 고위관리와 대화했다.
 
1900년 Ernest M. Satow(사진:London News)
 
사토는 조선 승려 이동인에게 조선어를 배웠다. 그는 우루과이, 모로코 총영사를 마치고 다시 일본제국으로 돌아와 일본 공사를 했다. 그는 1926년 12월 말에 영국에 도착하기까지 66년간 외교 일기를 작성하였고 사토의 일기와 편지는 유언에 따라 영국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비공개 시효가 종료되어 1980년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특히 일본제국 시절에 25년을 지내며 사토 아이노스케(일본어: 佐藤 愛之助/薩道 愛之助)로 널리 알려졌고 영국에서 일본학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Ernest M. Satow 묘비
 
외교관 사토는 동아시아와 일본, 특히 막부 말기(1853~1867)와 메이지 시대(1868~1912)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청나라 의화단 운동(1900~1906) 이후 중국, 시암(Siam), 우루과이, 모로코에서 복무했으며, 1907년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Hague Peace Conference)에서 대영제국을 대표했다. 사토는 외교관 은퇴 후에 《외교 실무 지침서, A Guide to Diplomatic Practice》를 집필해 1917년에 출간했다. 책은 1922년에 추가 판이 발행되었고 연구자는 1932년 런던, 토론토, 뉴욕에서 538p로 동시 출간된 제3판을 읽었다. 제3판 책의 서문에서 “초판의 사설 서문에 외교 실무 지침서의 출판은 국제변호사, 외교관, 역사학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적었다.
 
책은 외교의 정의로 시작한다. “외교는 독립국 정부 간의 공식 관계를 운영하는 데 지성과 재치를 적용하는 것으로, 때로는 속국과의 관계에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어 부스(Lord Gore-Booth) 경을 비롯한 저명한 외교관들에 의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아이버 로버츠(Sir Ivor Roberts) 경이 편집한 제6판은 2009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이 즐겨 읽는다. 국내에서 사토에 관해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한 분은 인하대 백용선 교수이다.
 
동북아역사넷 근대한국외교문서를 열람하면 조선이 대영제국과 공식 외교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제주도(Quelpart, 퀄파트) 인근 해상에서 태풍 피해로 영군 상선이 난파되어 외교관 사토가 직접 제주도를 방문한 내용이 있다. 일본주재 영국공사 헨리 파크스(H.S. Parkes)는 1878년 음력 11월 11일에 영국 외상 솔즈베리(Sailsbury) 후작에게 선박 난파 문서를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하러 서기관 사토가 제주와 부산을 방문했다고 보고했다.
 
대영제국 상선 바바라 테일러(Barbara Taylor)호는 청나라 상하이에서 상당량의 차(茶)와 잡화를 싣고 러시아 아무르(Amoor) 해협 러시아 정착촌으로 가던 중에 1878년(고종 15) 9월 21일 제주도 남단 해상에서 태풍을 만났다. 상선은 폭풍우 속에 항해하다 바람이 너무 강해 인구 항구를 찾아 피항하다 제주도 바닷가 해안마을에 표착했다. 바다에서 난파된 배를 발견한 주민들은 신속하게 제주 정의현 관아에 신고해 정의현감은 매일 100여 명의 사람을 4일간 동원하여 영국인 3명과 9명의 중국인 선원을 구조하고 배에 있는 화물을 모두 뭍으로 운반했다. 정의현감은 표류민을 한 달 동안 보호하며 집과 옷을 제공하고 음식을 제공했다. 그리고 현감은 영국 선장에게 구조대를 만들어 해난 사고를 나가사키에 직접 전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Nagasaki, circa 1900-1910s.(사진:로버트 네프 컬렉션)
 
제주도 해난 사고 구조가 종결된 후 영국공사 헨리 파크스는 나가사키에 있는 해군 장교 폴란드(Poland) 대위에게 협조 요청을 하였다. 서기관 사토는 영국 상선 구조에 대한 감사 공문을 전하려고 제주와 부산에 파견했으나 조선 관리들은 문서를 받지 않았다.
 
외교관 사토는 1878년 11월 13일 배를 타고 나가사키로 출발해 11월 17일 나가사키 항구에 도착한 사토우는 영사관원 폴(Paul), 일본인 통역관 다케다, 중국 작가 류세간(劉斗干, Liu Shegan) 등과 함께 11월 19일 아침 H.M.S, 에게레이호를 타고 나가사키 항을 출발해 20일 오전 6시에 제주 서귀포 남원읍 지귀도 해상에 도착했다. 사토는 작은 배에 옮겨 타고 정의현을 방문해 영국 상선 Taylor호가 제주도 앞바다에서 난파되었을 때 제주민이 선원을 구조하여 송환한 일에 대해 중국어로 된 외교 문서를 전하고 감사 인사를 하였다. 서기관 사토가 제주 목사 백낙연(白樂淵)을 만나려고 여러 차례 정의현감에게 청했으나 관리들은 “조난선을 구조하는 것은 각국 공통의 의무이니 감사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제주 목사가 상급기관의 특별 허가를 받지 않고 외국 사절을 접견하거나 서한(書翰)을 수령하는 것은 모두 국법에 반한다.”라고 답변했다.
 
당시 제주 목사는 백낙연(白樂淵)으로 그는 1866년 음력 7월 27일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가 대동강으로 올라와 마구 대포를 쏘아대며 행패를 일삼고 통상을 요청하였을 때 철산부사로 있으면서 외양선을 물리친 인물이다, 그는 1877년 1월에 제295대 제주 목사로 부임해 1881년 5월까지 5년간 재직하며 제주민을 자식처럼 돌보며 심한 흉년에 규휼(救恤)하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그는 제주성 동쪽과 남쪽에 길을 낼 때 가장 먼저 돈을 내고, 1879년에는 사마재(司馬齋)를 설치하여 선비들이 모여 과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관덕정을 중창하려고 기금을 모으고 공장(工匠)을 소집하여 일하려던 차에 육지로 전출 명령이 나서 1881년(고종 18) 5월에 목민관으로 소임을 훌륭히 마치고 제주를 떠나 청의 영선사로 가는 김윤식을 수행했다. 제주민은 제주 목사 백낙연의 선정에 감사해 선정비를 세웠다.
 
연구자는 1960년대에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를 한 적이 있어 제주 역사에 관심이 매우 많다. 오늘날 濟州史가 활성화하게 된 계기는 1997년 3월 전 대우그룹 김우중(1936~2019) 회장이 제주를 방문하여 도지사와 환담을 하였다. 도지사가 김 회장에게 제주사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김 회장이 ‘제주사 정립 사업 연구조사비’ 기금으로 10억 원을 기부하였다. 이후 도내 학자들이 6년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해 《제주사 연표》 3권을 발간했다.
 
몇 년 전 한라일보 2009년 8월 21일 자 신문에서 진선희 기자가 쓴 ‘영국 상선 제주에 표착, 섬에 표착했던 이탈리아 선원도 영국 상선 귀환길에 동행해 나가사키로 돌아갔다.”라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려다 그만 깜박 잊어버렸다. 한동안 이탈리아 선원에 관한 자료를 추적했지만, 어려움에 봉착해 그만두었다. 조선말 개화기 승려 이동인을 연구하면서 이동인이 영국 외교관 사토에게 조선말을 가르쳐주었다고 해 사토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읽다가 사토가 제주도를 방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엣 기억을 더듬어 이탈리아 선원의 이름을 추적하다 한라일보사에 전화를 걸어 진선희 기자와의 통화를 부탁하고 메모를 남겼다. 20분이 지나 진선희 부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반갑게 인사했다. “기자님! 혹시 이탈리아 선원의 이름을 아시나요? 이탈리아 선원에 대한 자료는 어디서 구하셨나요?”하고 질문했다. 진선희 부국장은 “기자 초보 시절인 2009년에 작성한 기사인데, 우당도서관의 《제주도 이야기》란 책에서 자료를 본 기억이 납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도 구조 선원 인터뷰 기사가 났다.”라고 설명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왜! 내가 국내 자료만 찾았지” 자책하면서 혹시나 하면서 외신 신문과 영자지를 검색하니 관련 자료가 있었다. 영문 기사를 모두 읽고 당시의 제주도 태풍과 구조한 선박을 상세하고 알게 되었다. 진선희 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탈리아 선원 산토리 이름을 찾았다고 말했다.
 
Robert D. Neff(사진:Korea and the World)
 
이탈리아 선원 자료는 1880년대부터 1930년대 말까지 조선에서 활동한 서양인들에 대한 글을 집필하는 로버트 네프(Robert D. Neff) 칼럼리스트가 2019년 코리아타임스 영자 신문에 5회에 걸쳐 기고한 〈Giuseppe Santori: An Italian castaway on Jeju〉 영문 기사에 있었다. 로버트 네프는 제국주의 시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해 《조선에서 온 편지》, 《서구인의 눈으로 본 한국》, 《짧은 만남》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 및 공동 집필하며 신문에 기사를 연재하였다. 칼럼니스트는 2007년 RAS(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Transactions에 있는 기사를 다시 개정했다고 밝혔다, RAS는 1900년 세계 최초 한국학 연구 기관으로 한반도의 역사, 문화, 자연경관에 대한 학술 연구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영어 학술단체이다.
 
범선 코리아나호(사진:박근세)
 
연구자는 지난 10여 년간 범선 코리아나호(선장 정채호)를 타고 나가사키, 독도, 어청도, 블라디보스토크, 남해안, 제주도, 거문도를 항해하며 漁民, 官人, 僧侶들의 표류와 送還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 범선 코리아나호는 나가사키 국제범선축제에 19번 참가해 국제교류릏 하였고, 연구자도 2016년부터 축제에 참여하여 여수 소호요트장에서 범선을 타고 여러 번 나가사키를 방문해 견문을 넓혔다.
 
나가사키 범선축제 코리아나호 일본 환송회(사진;궁인창, 2016.4.23.)
 
학예연구사 김나영은 제주도민 표류를 주제로 연구하여 조선왕조에서 제주민이 유구(琉球), 중국, 일본, 안남, 타이완 등에 표류한 것이 336건 4,442명이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3,681명이라고 조사했다. 김나영은 2017년 〈조선시대 제주도 표류 표착연구〉 제목의 논문을 제주대학교에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표류의 섬, 제주, 이동, 교차, 융합(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도립미술관은 제4회 제주비엔날레를 2025년 1월 18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모다들영관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제주도의 문화와 역사 사회적 관점에서 표류가 지닌 의미를 탐구하여 전시 주제를 ’표류의 섬, 제주: 이동, 교차, 융합‘으로 정해 컨퍼러스를 개최하고 《아파기 표류기 : 물과 바람과 별의 길, The Drift of Apagi :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 등 14개국 39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작품을 전시 발표하였다.
 
제주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제주도는 그 자체로 표류의 역사를 간직한 섬입니다. 이 전시는 자연, 종교, 문화, 정치 등 제주도를 형성한 다양한 요소들이 어떻게 국제적 맥락과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공통점과 독창성, 정체성이 형성되었는지 탐구합니다. 자연 현상인 쿠로시오 해류와 제주의 별자리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며, 표류라는 개념이 문명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인식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조명합니다.”라고 개최 목적을 밝혔다.
 
아파기 표류기:물과 바람과 별의 길(사진:제주도립미술관)
 
연구자가 제4회 제주비엔날레에서 흥미롭게 여긴 것은 탐라의 왕자 ‘아파기(阿波伎)’가 항해 중 표류하여 일본을 방문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 내용이다.
 
김동전 교수는 왜국이 659년 당에 사신을 보냈는데, 사신단이 월주에서 귀국하면서 태풍으로 풍랑을 만나 탐라국에 표착했다, 탐라의 왕자 아파기는 661년 그들을 호송하러 제주민 9명을 데리고 왜국을 방문했다고 2025년 2월 발간한 《한국학연구》 제76집 〈탐라국사의 전개와 이해 방향 모색〉 논문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김 교수는 탐라 국왕 유리도라(儒李都羅)가 661년 8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입조해 조공했다고 주장한다. 당시는 당과 백제가 전쟁을 하고, 왜국이 백제를 지원해 병력을 보내고, 김춘추 태종 무열왕이 죽어 김법민이 제30대 문무왕으로 등극했던 시기로. 四國(신라, 백제, 고구려, 왜) 시대의 국제 외교가 아주 민감하고 복잡하고 어려웠던 시기로 문헌에 등장하는 아파기(阿波伎) 年代가 조금 의심스럽다.
 
코리아나호 범선 항해(사진:궁인창)
 
동북아역사넷 자료에는 “왜국 사신이 배를 타고 1월 25일 越州(현재 杭州灣南岸)에 도착하였고 4월 1일 월주를 출발하여 동쪽으로 귀국하려고 하였다. 배는 서남풍을 받아 순조롭게 항해하다 드넓은 바다에서 가던 길을 잃어버리고 표류하였지만. 천신만고 끝에 탐라에 도착했다.... 탐라 왕자 阿伎 등 9명을 태워 왜국에 도착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원문】
丁巳, 耽羅始遣王子阿波伎等貢獻[伊吉連博德書云, 辛酉年正月廿五日, 還到越州. 四月一日, 從越州上路, 東歸. 七日, 行到檉岸山明. 以八日鷄鳴之時, 順西南風, 放船大海. 海中迷途, 漂蕩辛苦. 九日八夜, 僅到耽羅之嶋. 便卽招慰嶋人王子阿伎等九人, 同載客船, 擬獻帝朝. 五月廿三日, 奉進朝倉之朝. 耽羅入朝, 始於此時. 又, 爲智興傔人東漢草直足嶋, 所讒, 使人等不蒙寵命. 使人等怨, 徹于上天之神, 震死足嶋. 時人稱曰, 大倭天報之近.
 
제주도 외국 선박 표류사(漂流史)를 조사하면서 강력한 가을 태풍을 만나 제주도 넓은 바다를 표류하다 사라진 많은 선박을 만났다. 가슴을 울리는 절절하고 애절한 생존자 사연이 많아 표류기를 읽고 조난 당시를 생각하며 글을 재구성해 보았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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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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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