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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12강 강의자료 요약(2026.1.29.)
2026년 1월 29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새하곡 2. 작자: 왕창령(王昌齡, 698~756)
당나라 성기(盛期)를 풍미했던 시인 왕창령은 이백, 두보와 같은 쟁쟁한 천재들과 동시대를 살면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인물입니다.
1. 별명으로 보는 위상 왕창령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에게 붙은 수식어를 보는 것입니다. • 칠절성수(七絶聖手): '7언 절구의 성스러운 손'이라는 뜻입니다. 당나라 시의 형식 중 하나인 7언 절구에서 이백과 견주어도 손색없거나 오히려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시가천자(詩家天子): 시의 세계에서 황제와 같은 존재라는 극찬입니다.
2. 주요 시의 특징과 주제 왕창령의 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뉩니다. ① 변새시 (frontier poetry) 변방의 거친 풍경과 전쟁의 비정함, 그리고 군인들의 고뇌를 담은 시입니다. 그는 단순히 전쟁을 찬양하기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대표작: 《출새(出塞)》 - "진시황 때의 달, 한나라 때의 관문(秦時明月漢時關)"으로 시작하는 이 시는 당대 최고의 절창으로 꼽힙니다. ② 궁원시 (Gongyuan poetry) 궁궐 깊은 곳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견디는 여인들의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남성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심리를 매우 세밀하게 포착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③ 송별시 친구를 보내며 쓴 시들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대표작: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 - "얼음이 옥 항아리에 담겨 있다(一片冰心在玉壺)"는 표현은 그의 결백한 지조를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입니다.
3. 파란만장했던 삶과 비극적인 최후 그의 문학적 명성과 달리 관직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 방랑과 등용: 젊은 시절 변방을 유랑하며 세상을 배웠고, 30대에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습니다. • 유배의 연속: 성격이 대쪽 같고 구속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 탓에 조정의 미움을 사 먼 곳으로 자주 유배를 갔습니다. • 비극적 죽음: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평소 그를 시기하던 자사(지역 관리) 염경광에게 아무런 죄도 없이 살해당하고 맙니다. 훗날 염경광은 이 일로 처형되었지만, 위대한 시인의 허무한 끝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 2026년 1월 28일, 김건희 여사의 1심 선고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공직자 배우자로서 책임과 엄정한 법 적용을 강조하며 여러 한자 성어와 문구를 인용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재판부가 인용한 주요 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형무등급 (刑無等級) • 뜻: "형벌에는 등급이 없다." • 맥락: 재판장은 선고 서두에 이 문구를 언급하며 권력자 이든지 아니든지 법 적용에 차별이나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 취물불이량 (趣物而不兩) • 뜻: "재물을 추구하되 두 마음을 갖지 말라." (문맥상 공직자가 재물을 탐하여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 • 맥락: 중국 법가(法家) 사상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3.검이불루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 • 뜻: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 맥락: 삼국사기에 나오는 문구로, 재판부는 김 여사가 고가의 선물을 받는 등 외형을 꾸미는 데 몰두한 점을 꾸짖으며, "귀한 위치에 있을수록 검소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인용했습니다.
1. 후한 시대의 문인이자 과학자인 장형(張衡, 78~139)의 《동경부(東京賦)》에 있습니다. 且其宮室也, (차기궁실야) - 또한 그 궁실(궁궐)은, 體象乎天地, (체상호천지) - 천지의 형상을 본받고, 經緯乎陰陽. (경위호음양) - 음양의 이치를 실과 바늘처럼 엮었도다. 據坤靈之正位, (거곤령지정위) - 땅의 신령한 바른 위치에 근거하여, 放太紫之圓方. (방태자지원방) - 태자성)의 둥글고 네모난 모양을 본떴네. 然後儉奢折中, (연후검사절중) - 그런 뒤에 검소함과 사치함이 중용을 지켜, 不陋不侈. (불루불치) - 누추하지도 않고 사치스럽지도 않도다. 既考堂室, (기고당실) - 이미 집과 방의 구조를 완성하고, 亦序遊宴. (역서유연) - 또한 유람과 연회의 순서도 마련하였네.
2. 출처: 《삼국사기(三國史記)》 이 문구는 고려 시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새로 궁궐을 지었을 때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作新宮 儉而不陋 華而不侈" (작신궁 검이불루 화이불치) "새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 이전 사상가들의 핵심 이론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그는 신도(慎到)의 세(勢), 상앙(商鞅)의 법(法), 신불해(申不害)의 술(術)을 합쳐 제국 통치의 완벽한 시스템을 설계했죠. 이 세 가지 요소는 마치 자동차의 엔진, 핸들, 운전석과 같은 관계를 이룹니다.
🛠️ 법가 사상의 3대 핵심 요소 한비자는 군주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손에 쥐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1. 법(法): 기준과 원칙 (The Law) o 백성들에게 공포된 객관적인 상벌의 기준입니다. o 신분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적용되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2. 술(術): 통치 기술 (The Art of Statecraft) o 군주가 신하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심리적·관리적 기술입니다. o 신하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군주를 속이지 못하도록 '말(이름)과 실적'을 대조하는 '형명참동(刑名參同)'이 핵심입니다. 3. 세(勢): 권위와 위엄 (The Power/Authority) o 신도가 주장한 개념으로, 군주가 법을 집행하고 술을 부릴 수 있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의 위치입니다. o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권위(자리)가 없으면 명령이 먹히지 않으므로, 군주는 반드시 이 '세'를 장악해야 합니다. - 한비자의 비유: "법은 보배와 같고, 술은 신하를 다스리는 끈과 같으며, 세는 군주가 타는 마차와 같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4강(2024,06,13) 강의 교안
*《漢書》〈司馬遷傳〉「報任安書」 첫 단락 注, 譯, 解 【原文】 太史公牛馬走司馬遷,再拜言。 少卿足下:曩者辱賜書,教以愼於接物,推賢進士爲務,意氣勤勤懇懇。若望僕不相師,而用流俗人之言,僕非敢如此也。僕雖罷駑,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顧自以爲身殘處穢,動而見尤,欲益反損,是以獨鬱悒而無誰語。諺曰:“誰爲爲之?孰令聽之?” 蓋鍾子期死,伯牙終身不復鼓琴。何則? 士爲知己者用,女爲說己者容。若僕大質已虧缺矣,雖材懷隨和,行若由夷,終不可以爲榮,適足以發笑而自點耳。
【주석】 (1) 報書-편지 답장 (2) 任安-武帝의 태자 劉據의 난에 연루, 후에 腰斬刑에 처함. 이 편지는 몇 년 전에 사마천에 보낸 편지에 대한 사마천의 답장. (3) 太史公-自稱×, 公職×, 太史令o, 不可能自稱公, 《史記》原名《太史公》 ; 전부 152회 등장, 太史公自序에 14회, 그중 6회는 司馬談, 5회는 司馬遷, 2회는 司馬談과 司馬遷 혼용, 1회는 史記 최초명칭. 학설 a) 太史公은 司馬談을 가리킨다(尊稱說) b) 太史公은 司馬遷 자 신을 가리킨다(自稱說) c) 太史公은《史記》의 최초 명칭을 가리킨다(書名說) 즉 《太史公》 -《太史公書》-《太史公記》(《太史公傳》)-《太史記》-《史記》 d) 太史公은 부친과 자신의 관직 명칭으로 책 이름을 정한 것(官職說)
(4) 牛馬走-謙辭, 소와 말처럼 분주하게 노력하는 자신, 走는 僕과 동일. 여기 12글자는 원래 《漢書》〈司馬遷傳〉에는 없음, 후대에 《文選》에 의거하여 보충함.
* 중국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의 소명태자 소통(蕭統)이 편찬한 『문선(文選)』(일명 소명문선)은 진·한 시대부터 제·양나라에 이르는 대표적인 시와 문장을 30권(혹은 60권)으로 모은 시 문 선집입니다. 1,500년 전 문장 교범으로, 고대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 및 편찬: 양나라 무제의 장자 소명태자 소통이 주도하여 편찬. 구성 및 특징: 시, 서(序), 부(賦) 등 다양한 문체 수록. 💡 짧은 요약 『문선』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름다운 형식을 갖춘 글"이라는 답을 내린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순수 문학 선집입니다.
(5) 再拜-공경을 나타내는 절, 두 번함. 편지에서는 처음 혹은 말미에 사용하여 공경을 나타냄. 1拜, 2拜, 3拜, 4拜
* 중국식 전통 예법과 현대적 관습을 바탕으로 구분. 1. 1배 (一拜): 평등과 일반적인 존중 현대 중국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며, 주로 동년배나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예절입니다. • 평상시 인사: 스승이나 어른을 뵐 때 가볍게 허리를 굽혀 하는 절. • 혼례(일배천지): 전통 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첫 번째로 하늘과 땅에 감사를 표하며 올리는 절입니다. • 공수례(拱手禮): 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손을 맞잡고 하는 중국식 인사도 넓은 의미의 1배에 해당하며, 명절에 흔히 볼 수 있습니다. 2. 2배 (二拜) :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조상 한국과 유사하게 음(陰)의 숫자적 성격이 있으며, 주로 가족 내의 높은 어른이나 제례에서 쓰입니다. • 혼례(이배고당): 혼례의 두 번째 단계로, 양가 부모님께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올리는 절입니다. • 일반 제례: 집안의 조상님이나 돌아가신 분께 올리는 기본 횟수입니다. (단, 도교나 특정 지역에 따라 3배를 하기도 합니다.) 3. 3배 (三拜) : 신(神), 부처, 그리고 스승, 부부간 중국 문화권에서 '3'은 '완성'과 '무한함'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신성한 대상이나 절대적인 존경이 필요할 때 행합니다. • 종교적 숭배: 사찰에서 부처님께, 혹은 도관(도교 사원)에서 신들에게 절할 때 기본적으로 3번 절합니다. • 사도(師徒) 예절: 무술이나 예술 분야에서 스승(Shifu)으로 모시는 의식을 할 때 '삼배'를 통해 절대적인 복종과 존경을 표합니다. • 혼례(부부상배): 혼례의 마지막 단계로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하는 절입니다. 4. 4배 (四拜) : 가장 높은 격식과 고례(古禮) 중국에서 4배는 과거 황제나 지극히 높은 대상에게 올리던 가장 격조 높은 예법 중 하나였습니다. • 최고의 경의: 고대 예법인 '주례' 등에 따르면, 가장 귀한 분께 4번 절하는 '사배례'가 있었습니다. • 제례의 극치: 일부 지역이나 가문에서는 제사 때 조상님께 가장 극진한 대우를 하기 위해 2배의 곱절인 4배를 올리기도 합니다. (다만, 현대 중국어에서 '4(Sì)'가 '죽을 사(Sǐ)'와 발음이 비슷하여 기피하는 경향도 생겨나, 현재는 종교적/전통적 고례를 제외하고는 3배가 더 널리 쓰입니다.) • 죄를 지은 사람들과 여성들도 한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도 죄였다)
* 공수와 읍의 차이점 성격 공수(拱手) - 공손하게 손을 모아 잡는 자세 읍(揖) - 공수한 손을 사용하여 몸을 굽히는 인사 목적 공수(拱手) - 모든 예절의 기본 대기 자세 읍(揖) - 절을 대신하거나 가벼운 예우를 표할 때 연결성 공수(拱手) - 읍을 하기 위해 먼저 취해야 하는 자세 읍(揖) - 공수 자세에서 파생된 동작
(6) 少卿-任安의 字 (7) 足下-상대방에 대한 존칭, 您와 동일 (8) 曩者-從前 (9) 辱賜書-고대 書簡에 보이는 謙辭, 편지 보내는 사람이 편지 받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나타냄. 賜書는 편지를 보내주시니, 즉 미욱한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셔서... (10) 接物-待人接物의 생략, 物은 人物, 사람, 즉 타인과 교류 접촉
* 대인접물(待人接物)은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다루는 태도와 덕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주로 동학에서 강조됩니다. 이와 유사한 단어 또는 숙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라는 의미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 삼경(三敬): 하늘, 사람, 사물을 공경하라는 원칙으로, 대인접물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이는 대인접물의 실천을 통해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강조합니다. - 인내천(人乃天): 모든 인간이 하늘과 같다는 사상으로, 사람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합니다. 이는 대인접물의 철학적 기초가 됩니다. - 경물(敬物): 사물을 존중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대인접물에서 사물에 대한 올바른 대우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11) 推賢進士-推擧賢能, 引薦人才 (12) 意氣-생각과 기개 (13) 勤勤懇懇-매우 간절함 (14) 若-마치 ~같다 (15) 望-원망, 불만족 (16) 僕-자신을 낮추는 謙辭 (17) 相師-서로 학습, 모방 (18) 流俗人-세속인 (19) 非敢-감히 ~못하다 (20) 罷駑-재능이 낮은, 罷는 疲와 동일, 駑는 劣馬와 동일. (21) 側聞-곁에서 듣다, 伏聞과 동일하고 謙辭 (22) 長者-부모, 어르신, 덕망이 높은 (23) 遺風-이전부터 내려온 풍속과 교화 (24) 顧-단지, 顧自-獨自, 홀로, 단지 스스로 (25) 身殘處穢-宮刑을 받고 宦官 등과 함께 섞여 있음
* 중국 고대 형벌 체계인 '오형(五刑)' 크게 전한(前漢) 이전의 '고대 노예제 오형'과 수·당(隋·唐) 이후 정립된 '봉건제 오형'으로 나뉩니다. 가장 상징적이고 악명 높았던 초기 고대 오형(신체 훼손 중심)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묵형 (墨刑) - 문신 새기기 가장 가벼운 형벌로, 죄인의 얼굴이나 이마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는 것입니다. • 특징: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을 얼굴에 달고 살아야 했기에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 용도: 주로 경미한 절도나 부정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집행되었습니다. 2. 의형 (劓刑) - 코 베기 죄인의 코를 베어내는 형벌입니다. • 특징: 코는 얼굴의 중심이자 호흡의 통로로, 이를 제거함으로써 엄청난 수치심과 외모의 영구적 손상을 입혔습니다. • 상징: 코가 없는 사람은 멀리서도 범죄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므로 도주 예방과 경고의 효과가 컸습니다. 3. 월형 (刖刑) - 발뒤꿈치 베기 죄인의 발뒤꿈치 힘줄을 끊거나 발가락, 혹은 발목 아랫부분을 잘라내는 형벌입니다. 시대에 따라 비형(剕刑)이라고도 불렸습니다. • 특징: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여 노동력을 제한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목적이 컸습니다. • 유명 사례: 제나라의 유명한 군사 전략가 손빈(孫臏)이 모함을 받아 이 형벌을 당해 평생 휠체어 같은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4. 궁형 (宮刑) - 생식기 제거 남녀의 생식 기능을 강제로 박탈하는 형벌입니다.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벌로 여겨졌습니다. • 특징: 남성은 거세하고 여성은 유폐(幽閉)시키는 방식입니다. 유교적 가치관이 강했던 중국에서 대가 끊기는 것은 조상에게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이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굴욕이었습니다. • 유명 사례: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司馬遷)이 이 형벌을 받은 뒤,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며 역사서를 완성한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5. 대벽 (大辟) - 사형 가장 무거운 형벌로, 목숨을 빼앗는 것입니다. • 특징: 단순히 목을 베는 참수(斬首)뿐만 아니라, 거열(수레에 매달아 찢음), 능지처참(살을 조금씩 베어냄) 등 매우 잔인한 방식들이 시대마다 존재했습니다. • 의미: 사회로부터 범죄자를 완전히 격리하는 최종 단계였습니다.
💡 보너스: 형벌의 변화 이러한 잔인한 신체 훼손형(신체형)은 시간이 흐르며 인권을 고려한 '봉건제 오형'으로 교체됩니다. 수·당 이후의 오형: 1. 태형(笞刑): 가느다란 매로 때림. 2. 장형(杖刑): 굵은 몽둥이로 때림. 3. 도형(徒刑): 일정 기간 가두고 강제 노동을 시킴 (현재의 징역). 4. 유형(流刑): 먼 곳으로 귀양을 보냄. 5. 사형(死刑): 생명을 빼앗음.
(26) 動而見尤-바르게 행동해도 꾸짖음을 당하고 (27) 欲益反損-좋은 방향으로 행동해도 결과적으로 손해만 끼치다 (28) 是以-그래서, 때문에, 所以, 因此 (29) 鬱悒-근심과 번민 (30) 誰語-누구와 말하다 (31) 誰爲爲之?孰令聽之?-누구를 위해서 그것을 하고? 누구로 하여금 가서 듣게 하나? 즉 나를 알아주는 知己도 없어서 스스로 행동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32) 鍾子期-춘추시기 최고의 知音 (33) 伯牙-춘추시기 최고의 거문고 연주가, 鍾子期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함. 출전은 《呂氏春秋》〈本味篇〉에 보인다.
* 종자기(鍾子期)와 백아(伯牙)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진정한 우정'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상징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고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지음(知音)'이라는 말의 유래이기도 하다. 1. 인물 소개 • 백아(伯牙): 춘추시대의 인물로, 당대 최고의 거문고(고금) 연주자였습니다. 그의 연주 실력은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소리까지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 종자기(鍾子期): 평범한 나무꾼이었지만, 음악을 듣고 그 연주자의 마음과 의도를 완벽하게 읽어낼 줄 아는 천재적인 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 고산유수(高山流水)의 만남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그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종자기는 마치 눈으로 보듯 맞혔습니다. •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아, 하늘 높이 우뚝 솟은 태산과 같구려!"라고 감탄했습니다. •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종자기는 "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구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고산유수(高山流水)'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는 '훌륭한 음악' 또는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비유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3. 백아절현(伯牙絶絃): 거문고 줄을 끊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으나, 불행히도 종자기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슬픔에 잠긴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 앞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친 뒤,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음악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세상에 없는데, 누구를 위해 거문고를 타겠는가?" 이것이 바로 '거문고 줄을 끊는다'는 뜻의 백아절현(伯牙絶絃)이며, 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진정한 지기를 잃었을 때 사용하는 고사성어입니다.
(34) 用-목숨을 바친다, 效命, 盡心盡力 (35) 大質-신체 (36) 虧缺-흠결, 缺損不全 (37) 材懷-고상한 品德 (38) 隨和-随侯의 珠과 和氏의 璧
* 중국 역사상 가장 진귀한 보물을 꼽으라면 단연 수후지주(隨侯之珠)와 화씨지벽(和氏之璧)입니다. 이 두 보물을 합쳐 '수화(隨和)'라고 부르며, 이는 '천하 최고의 보물'이나 '빼어난 재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1. 수후지주 (隨侯之珠) - 수나라 제후의 구슬 '수후의 구슬'이라는 뜻으로, 착한 마음에 대한 보은을 상징합니다. • 전설: 어느 날 수나라의 제후(수후)가 길을 가다가 허리가 끊겨 죽어가는 커다란 뱀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수후는 불쌍히 여겨 약을 발라주고 정성껏 치료해 살려주었습니다. • 보은: 얼마 후, 그 뱀이 입에 커다란 구슬을 물고 나타나 수후에게 바쳤습니다. 그 구슬은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빛을 내뿜는 희귀한 야광주였습니다. • 상징: 아무리 미물이라도 은혜를 갚는다는 교훈과 함께, 세상에서 얻기 힘든 진귀한 보물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2. 화씨지벽 (和氏之璧) - 화씨의 옥벽 '화씨 가문의 옥'이라는 뜻으로, 진정한 가치를 알아봐 주는 안목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비극적입니다. • 발견: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화씨(변화)'가 초산에서 보옥 원석을 발견하여 초나라 여왕에게 바쳤습니다. 하지만 감정사가 "그냥 돌이다"라고 판정하는 바람에 변화는 임금을 속인 죄로 왼쪽 발을 잘렸습니다. • 반복되는 비극: 다음 왕인 무왕에게 다시 바쳤으나 또 돌이라는 판정을 받아 이번에는 오른쪽 발마저 잘리고 말았습니다. • 인정: 그 후 문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옥 원석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습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옥공에게 그 돌을 갈아보게 했더니, 안에서 천하에 다시없을 눈부신 옥(벽옥)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씨벽'입니다. • 역사적 무게: 이 화씨벽은 나중에 진시황의 손에 들어가 그 유명한 전국옥새(임금의 도장)가 됩니다.
3. '수화(隨和)'의 의미와 결합 이 두 보물은 워낙 유명해서 고대 문헌(예: 《회남자》, 《사기》 등)에서 늘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 수화지보(隨和之寶): 수후의 구슬과 화씨의 옥이라는 뜻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보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 인재 비유: 물건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완벽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찬양할 때도 "수화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 보너스: '완벽(完璧)'의 유래 우리가 흔히 쓰는 '완벽(完璧)'이라는 단어도 사실 이 화씨벽에서 유래했습니다. 조나라가 가진 화씨벽을 탐낸 진나라 소양왕이 성(城) 15개와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인상여라는 신하가 목숨을 걸고 이 옥을 지켜 내어 "벽옥을 온전하게(完) 돌려받았다"는 '완벽귀조(完璧歸趙)'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 그 후의 화씨벽 • 진나라의 승리: 세월이 흘러 진나라가 조나라를 멸망시키면서 결국 화씨벽은 진시황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 전국옥새의 탄생: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조나라에서 가져온 화씨벽(和氏之璧)을 깎아 만든 도장이 바로 그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입니다. 이 옥새에는 진나라의 승상이었던 이사(李斯)가 직접 소전체(小篆體)로 쓴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1. 옥새에 새겨진 문장 「受命於天,既壽永昌」 (수명어천, 기수영창) • 受命於天 (수명어천): 하늘로부터 명(천명)을 받았으니, • 既壽永昌 (기수영창): 그 수명이 영원하고 길이 번창하리라. 2. 역사적 의미와 디테일 • 정통성의 상징: 이 문구 때문에 “전국옥새”는 단순히 '도장'을 넘어 '천명을 받은 진정한 황제'임을 입증하는 유일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중국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 옥새를 차지하는 쪽이 정통성을 인정받았기에, 수많은 영웅이 이를 차지하려 피를 흘렸습니다. • 부서진 모서리: 훗날 전한(前漢)이 망할 때, 효원황후가 옥새를 던져 모서리가 깨졌고 이를 금으로 때웠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진품 전국옥새를 구별하는 법 중 하나가 '금으로 보수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39) 行若由夷-행동은 許由와 伯夷
* 허유(許由)와 백이(伯夷)는 동양 고전에서 '세속의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고 자기 몸을 깨끗이 지킨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들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될 만큼 청렴과 지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1. 허유(許由): "내 귀가 더러워졌다" (영수세이) 허유는 중국 고대 요(堯)임금 시대의 전설적인 은자(隱者)입니다. 요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인재를 찾다 허유의 고결함을 듣고 그를 찾아갔을 때의 일화가 유명합니다. • 요임금의 제안: 요임금은 허유에게 "나라를 맡아달라"며 왕위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 영수세이(潁水洗耳): 이 말을 들은 허유는 "못 들을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곧장 영수(潁水)라는 강가로 달려가 귀를 씻어버렸습니다. * 소부(巢父)의 꾸짖음: 마침 소를 끌고 가던 친구 소부가 왜 귀를 씻느냐고 묻자 허유가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부는 "네가 정말 은둔하며 살았다면 임금이 너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겠느냐? 네가 유명해지고 싶어 은근히 소문을 낸 탓이다. 내 소에게 그런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며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버렸다고 합니다. • 상징: 허유는 권력을 쓰레기처럼 여긴 절대적인 은둔의 상징입니다. 2. 백이(伯夷): "주나라 곡식은 먹지 않겠다" (백이숙제) 백이는 동생 숙제(叔齊)와 항상 함께 언급됩니다. 고죽국(孤竹國)이라는 나라의 왕자들이었으나,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결국 나라를 떠났습니다. • 불의에 대한 저항: 주나라 무왕이 상(은)나라를 무력으로 쳐서 멸망시키려 하자,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머리를 잡고 "신하가 임금을 치는 것은 인(仁)이 아니다"라며 간곡히 말렸습니다. • 수양산의 고사리: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이들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는 것은 수치"라며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으며 살다가 결국 굶어 죽었습니다. • 상징: 백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굳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입니다. 공자는 이들을 '고결한 사람'이라고 극찬했습니다.
💡 허유와 백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40) 適-결국, 마침, 공교롭게 (41) 發笑-비웃음사다, 耻笑 (42) 自點-스스로 汚辱을 당하다.
【국역】 《太史公》의 저자이고 소와 말처럼 분주하게 노력하는 저, 사마천이 당신을 공경하며 글을 올립니다. 임 안 선생님 이전에 부족한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셔서, 타인과의 접촉 교류에 신중하여,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을 추천하고 인재를 천거하는 일에 힘쓰며, 생각과 기개를 매우 간절하게 가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치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속의 의견을 따르는 것처럼 여기시고 원망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재능이 낮아도 또한 일찍이 부모님과 덕망이 높은 학자 곁에서 이전부터 내려온 풍속과 교화를 듣고 배웠습니다. 단지 스스로 궁형을 받고 환관 등과 함께 처해있어서, 바르게 행동해도 꾸짖음을 당하고 좋은 방향으로 행동해도 결과적으로 손해만 끼친다고 여기고, 근심과 번민으로 누구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속담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知己가 없으면, 스스로 행동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鍾子期(춘추시기 최고의 知音)가 죽고 伯牙(춘추시기 최고의 거문고 연주가)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진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단장한다고 합니다. 저는 신체가 이미 훼손되어서 비록 고상한 품덕은 마치 随侯의 珠과 和氏의 璧처럼 정결하고 행동은 許由와 伯夷처럼 고상해도, 끝내는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영광을 누릴 수 없으며 결국은 비웃음을 사고 스스로 오욕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解說】 司馬遷은 자신을 소와 말로 낮추어 밝히며, 任安이 이전에 보내준 편지의 간절한 권면을 회상한다. 편지에는 사람을 대함에 신중하고 인재를 천거하는 데 힘쓰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자신은 결코 세속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고, 비록 재주가 둔한 몸이지만 선현들의 고결한 풍모를 전해 들으며 살아왔음을 밝혔다. 지금은 형벌로 몸이 훼손된 처지에 놓여서 조금만 행동해도 비난을 받기 쉬운 상태이며 무엇을 보태려 해도 도리어 해가 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마음속 울분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를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다고 말한다. 끝으로 鍾子期를 잃은 뒤 거문고를 버린 伯牙의 고사를 들어,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뜻을 펼 수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인간으로서 본바탕이 크게 훼손되어, 설령 재능과 행실이 뛰어나도 더 이상 영예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자조적으로 결론지었다.
(요약) 任安의 권면에 대한 감사 자신은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해명 宮刑 이후의 고립과 절망 알아주는 자(知己)가 없는 삶의 허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처지를 자조적으로 마무리
① 太史公牛馬走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 사마천은 자신을 천한 신분으로 낮추어 밝히고, 공손히 절하며 임소경에게 글을 올린다. ② 曩者辱賜書,教以愼於接物,推賢進士爲務,意氣勤勤懇懇。 → 이전에 받은 편지에서 임소경은 사람을 대함에 신중하고 인재를 천거하라고 간절히 권면하였다. ③ 若望僕不相師,而用流俗人之言,僕非敢如此也。 → 혹시 자신이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속의 말을 따를까 염려했다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한다. ④ 僕雖罷駑,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 비록 둔한 인물이지만, 어른들의 고결한 풍모를 전해 들으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⑤ 顧自以爲身殘處穢,動而見尤,欲益反損, → 그러나 지금은 형벌로 몸이 훼손되어, 조금만 움직여도 비난을 받고, 무엇을 더하려 하면 도리어 손해가 된다. ⑥ 是以獨鬱悒而無誰語。 → 그 결과 마음에 울분이 쌓였으나 이를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다. ⑦ 諺曰:「誰爲爲之?孰令聽之?」 → 대신 나서 주거나 귀 기울여 줄 이가 없다는 속담으로 자신의 고립을 표현한다. ⑧ 蓋鍾子期死,伯牙終身不復鼓琴。 →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은 고사를 든다. ⑨ 何則?士爲知己者用,女爲說己者容。 → 이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만 뜻과 가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⑩ 若僕大質已虧缺矣, → 그러나 자신은 이미 인간으로서 본바탕이 크게 훼손되었다. ⑪ 雖材懷隨和,行若由夷,終不可以爲榮, → 설령 재능과 행실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영예로 삼을 수 없다. ⑫ 適足以發笑而自點耳。 → 오히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어 스스로를 더럽힐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5강(2024,06,27) 강의 교안
*《論語》〈里仁〉 4-23. 子曰:以約失之者,鮮矣。 스스로를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면 잘 못되는 경우가 드물다.
(注釋) (1) 儉束, 小心, 自我約束, 約之以禮, 謹言慎行(錢穆), 節儉(楊伯峻), 즉 항상 스스로를 단속하여 안으로는 인의를 수양하고(内修之仁義) 밖으로는 예를 실행하다(外文之以禮) (2) 失-잘못을 범하다, 差失, 犯錯誤 (3) 鮮-드물다; 의미는 做事先做人,正人先正己 일을 할 때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람이 바르게 되려면 먼저 스스로를 바르게 해야 된다.
*《史記》〈周本紀〉4-023 1. 興-갑골문, 원래는 일어나다
《說文解字》「起也。从舁从同。同力也」 일어나다, 종여종동(글자 모양은 여를 따르고 동을 따른다), 힘을 함께 하는 것이다.
《說文解字注》「廣韵曰:盛也,舉也。善也。 광운에서 설명하기를 “흥”은 풍성한 것이고 일어 키는 것이고 좋은 것이다.
《周禮》六詩,曰比,曰興。興者託事於物。按,古無平、去之别也」 《주례》의 육시(시의 여섯 가지 원칙)에 '비(比)'가 있고 '흥(興)'이 있다." "흥(興)이라는 것은 사물에 일을 의탁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살펴건대, 옛날에는 평성(平聲)과 거성(去聲)의 구별이 없었다."
(1) 일어나다, 《詩經》〈衛風·氓〉「氓之蚩蚩,抱布貿絲。匪來貿絲,來即我謀。送子涉淇,至于頓丘。匪我愆期,子無良媒。將子無怒,秋以爲期。乘彼垝垣,以望復關。不見復關,泣涕漣漣。既見復關,載笑載言。爾卜爾筮,體無咎言。以爾車來,以我賄遷。 *《詩經》 <衛風·氓>은 한 여성의 회고적 서술을 통해 사랑과 혼인의 형성, 그리고 그 파탄에 이르 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개인적 서정과 사회적 현실이 긴밀히 결합된 詩歌이다. 이 작품은 감정의 변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논리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시경》 가운데서도 敍 事性이 두드러진다. 전반부는 물물교환과 중매, 혼기 약속 등 周代의 혼인 관습을 배경으로 남녀의 결합 과정을 묘 사했다. 처음에 여성은 예를 지키며 관계의 지속을 위해 인내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중에 결혼 이 후 남성의 태도는 변하고, 배신과 폭력이 암시되면서 혼인의 균열이 표출되었다. 이것은 남성의 변심을 넘어 가부장적 혼인 구조 속에서 당시 여성의 취약한 지위를 드러내는 일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후반부에서 여성은 감정적 탄식에서 벗어나 남성의 변덕과 무책임을 비판적으로 서술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생활 경험은 의무적 인식과 활동으로 승화시킨다. 결론적으로 <氓>은 단순한 사랑 의 시(戀情詩)를 넘어서, 혼인 제도와 性別上 권력관계를 省察하는 사회 비판적 텍스트로 자리 잡 기에 충분하다.
제355강 보충설명 *《詩經》〈衛風·氓〉의 注釋과 飜譯
1연; 氓之蚩蚩, 抱布貿絲, 匪來貿絲, 來即我謀, 送子涉淇, 至于頓丘。 【주석】 (1) 氓: 외지에서 이주한 백성, 장정, 사내, 평민 남자 (2) 蚩蚩: 충직하고 순박한 모양, 어리석어 보이는 모양, 순박한 모양 (3) 抱: 안다, 들다 (4) 布: 베 (5) 貿: 교역, 교환, 바꾸다, 교환하다 (6) 匪: 아니다 (7) 即: 나아가다, 접근하다 (8) 謀: 의논하다 (9) 送: 전송하다 (10) 涉: 건너다 (11) 淇: 기수(淇水), 현재 山西省 陵川縣의 淇河 (12) 頓丘: 지명, 春秋 衛나라 邑의 명칭 【번역】 충직하고 순박한 사내가, 베를 안고 와서 실과 바꾸려 하네. 실을 바꾸러 온 것이 아니라, 와서는 나와 혼사를 의논하러 온 것이었지. 그대를 전송하여 기수를 건너, 마침내 돈구에 이르렀네.
2연; 匪我愆期, 子無良媒, 將子無怒, 秋以爲期。 【주석】 (1) 愆期: 혼인 날 자를 연기하다, 약속을 어기다, 기일을 넘기다 (2) 良媒: 좋은 중매 (3) 將: 원하다, 청하다, 부탁하다 (4) 期: 기약하다 【번역】 기약을 어긴 것은 내가 아니라, 그대가 좋은 중매쟁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지. 그 대여 노여워 말아요, 가을을 기약으로 삼읍시다.
3연; 乘彼垝垣, 以望復關, 不見復關, 泣涕漣漣, 既見復關, 載笑載言。 【주석】 (1) 乘: 오르다, 타다 (2) 垝垣: 무너진 담장 (3) 復關: 지명, 詩 중에서 남자의 거주지 (4) 漣漣: 눈물이 계속 흐르는 모양 (5) 載: 뜻 없는 조사, 또는 곧, 이에 (6) 言: 말하다 【번역】 무너진 담장에 올라, 그대가 사는 복관을 바라보았네. 복관이 보이지 않으니, 눈물이 줄줄 흘렀지. 복관이 보이자, 이내 웃고 말하였네.
4연; 爾卜爾筮, 體無咎言, 以爾車來, 以我賄遷。 【주석】 (1) 卜(거북점), 筮(산가지점): 점치다 (2) 體: 점괘의 형상 (3) 咎: 불길한 말(점괘), 허물, 불길함 (4) 賄: 혼수품, 재물 (5) 遷: 옮기다 (혼인하여 이주) 【번역】 그대가 점치고 또 점치니, 점괘에 허물이 없다고 하였지. 그대의 수레로 와서, 나의 혼수를 싣고 가서 혼인하고 거주하였네.
* 步步高升(bù bù gāo shēng)은 계단(步)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듯 착실하고 확실하게 성공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 직위나 학업, 사업 등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향상됨을 의미하는 중국어 성어입니다. 주로 승진이나 새해 인사에서 상대방의 앞날이 탄탄대로이기를 기원하는 길상어(吉祥語)로 널리 사용됩니다. - 핵심 의미 및 활용 뜻: 직위가 끊임없이 승진하거나, 성적이 계속 오르는 등 처지가 점점 좋아짐. 유래: 청나라 시대 오연인(吴趼人)의 소설 『이십년목도지괴현상(二十年目睹之怪现状)』에서 유래했습니다. - 사용 상황: 승진 축하: "祝你步步高升 (당신의 승진/영전을 축하합니다)". 새해/명절 인사: "恭喜发财, 步步高升 (부자 되시고, 매사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유의어: 蒸蒸日上 (증증일상, 날로 번창하다). 이 성어는 주로 상대방의 앞날을 축복하는 긍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격식 있는 표현입니다.
< 步步高陞: ㄅㄨˋ ㄅㄨˋ ㄍㄠㄕㄥ> 辭典檢視 祝福人仕途順利,職位不斷提升的吉祥話。如:「春節團拜,大家互祝『恭喜發財, 步步高陞 』。」也作「步步高升」。 ︿. 回頂端. 《重編國語辭典修訂本》臺灣學術網路第六版.
2026.1.29 주정봉 강의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