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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6.02.04. 15:51 (2026.01.24. 11:50)

동양고전 아카데미 411강 강의자료 요약(2026.1.22.)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過故人莊〉과 작자 孟浩然 및 주요 단어(故人,田家,小米와 黃米,軒,場圃,把酒... 등)에 대해서 설명 ; (2)聲의 甲骨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와 다양한 의미 설명 ; (3)《論語》〈陽貨〉「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에서 鄭聲과 雅樂에 대한 논쟁을 사료를 중심으로 상세한 비교와 설명 및 利口 및 邦家의 의미 풀이, 그 외에 夏商과 春秋戰國의 女樂과 鄭,衛의 美女와 美人計(左抱鄭姬,右抱趙女) 설명 ; (4)戰國時代 孟施舍와 北宮黝의 勇猛에 대하여 비교 설명 ; (5)3軍, 6軍, 蚤知之士, 雙聲, 疊韻 등 의미 설명 ; (6)《六韜》〈軍勢〉「疾雷不及掩耳, 迅電不及瞑目」과 掩其不意의 정확한 의미 설명 ; (7)《文子》〈道原〉「風興雲蒸,雷聲雨降」의 단순한 글자 풀이에서 해석으로, 다시 의미 종합, 번역으로 완성하는 전 과정과 정확한 의미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11강 강의자료 요약(2026.1.22.)
 
2026년 1월 22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 과고인장
2. 작자 : 맹호연(孟浩然)( 689~740)
 
작자에 대한 정보는 407강을 참조 하세요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3강(2024,06,13) 강의 교안
 
* 《論語》〈里仁〉
4-22. 子曰:“古者言之不出,耻躬之不逮也
 
 

 
*《史記》〈周本紀〉4-023
1. 聲 - 甲骨文, 원래는 매달아 놓은 종(懸磬)을 때려서 나는 소리
《說文解字》「音也。從耳殸聲。殸,籀文磬」
 
1) 소리,
 
2) 음악,
《論語》〈陽貨〉「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춘추전국의 혼란한 시기에 주나라에 대한 상하 계층의 엄격한 질서가 무너지므로 인하여, 첫째 옷의 주색의 권위가 변화되고, 둘째 음악이 세속화되고, 셋째 아첨하는 자들이 나라를 뒤엎는 세태를 부끄럽게 여긴다.
 
1) 고대 중국에서 '주색'은 정색(正色, 순수한 색)으로 귀함을 상징했고, '자색'은 간색(間色, 섞인 색)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색이 주색과 비슷해 보이면서 세속에서 더 유행하며 주색의 권위를 가리는 현상을 비판한 것입니다.
2) 아락'은 제사나 공식 행사에서 쓰이는 바르고 단정한 음악입니다. 반면 '정나라 음악(정성)'은 당시 유행하던 자극적이고 화려한 대중음악이었습니다. 공자는 감각적인 즐거움에 빠져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3) 진실함 없이 번지르르한 말재주만 부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면 결국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 이구(利口) = 영(佞)
以是爲非, 以非爲是, 多言小實
 
 
* 金榮煥, 雅淫之爭에 대한 小考
-《論語》〈陽貨〉「惡鄭聲之亂雅樂也」를 중심으로-
(Ⅰ, Ⅱ, Ⅲ은 설명의 편리를 위해서 앞부분에 두었음.)
 
Ⅰ. 중요 참고자료 ;
1.《論語》〈衛靈公〉「放鄭聲,遠佞人。鄭聲淫,佞人殆」
정나라 음악을 없애고 아첨하는 사람은 멀리한다. 정나라 음악은 음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다
〈子罕〉「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나, 공자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것 같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鄭聲 - 衛靈公이 南子와 노는 것을 공자가 보고 이 글이 나옴.
 
2. 《論語》〈陽貨〉「惡鄭聲之亂雅樂也」
 
3. 《荀子》〈樂論〉「鄭聲、衛聲,新聲也,淫樂也」
정나라 음악하고 위나라 음악은 새로운 음악이고 음란한 음악이다.
 
4. 《韓非子》〈十過〉「聽鄭聲而不聽古樂,則國削」
정나라 음악을 듣고 옛 음악(주나라 음악)을 듣지 않으면 즉 나라가 쇠약해진다.
 
5. 《孟子》「今之樂,猶古之樂也」
요즈음 음악은 옛날 음악과 비슷하다.
 
6. 《國語》, 《禮記》〈樂記〉「鄭衛之音, 亂世之音也」
정나라 위나라 음악은 난세의 음악이다.
 
7. 《左傳》襄公 29년「鄭聲淫,志不在禮」
정나라 음악은 음란 하고 그 뜻이 예에 있지 않다.
昭公 20년 「鄭、衛之音,亂人心」
정나라 위나라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昭公 25년「聲淫則政亂」
음악이 음란하면 정치가 혼란해진다.
哀公 11년「君聽淫聲,則志荒」
임금이 음란한 음악을 들으면 즉 뜻이 황당해진다.
 
鄭·衛 음악이 제후를 미혹하는 사례 반복된다.
 
8. 《史記》〈樂書〉「鄭聲淫,志不立」
정나라 음악이 음란해서 뜻을 세울 수가 없다.
 
9. 《漢書》〈禮樂志〉「鄭聲代作,而雅樂微矣」
정나라 음악이 대신 만들어 져서 아악이 쇠약 해졌다.
 
10. 鄭玄, 《論語注》「鄭聲,鄭國之淫樂」
“정성”은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이다.
 
11. 許愼, 《五經異義》〈魯論〉「鄭國之俗, 유溱、有之水, 男女聚會, 謳歌相感, 故云鄭聲淫」
정나라의 풍속은 진수와 유수에 남녀가 모여서 노래하고 서로 느꼈다. 그래서 정나라 음악은 음란하다고 한다.
 
12. 朱熹, 《論語集注》「鄭聲,世俗之淫聲,亂正樂者也」
정성은 세속의 음란한 음악이고 정악(正樂)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Ⅱ. 雅樂(주나라)과 俗樂(鄭聲)의 비교
 
雅樂, 崇雅, 正歌, 莊重, 祭祀, 古樂, 男樂
↔ 俗樂, 黜俗, 邪樂(淫樂), 自由奔放, 民間, 新聲, 女樂(夏商, 女樂3萬+傾國之色, 紅顔之禍(禍水)
 
 
 
Ⅲ. 鄭나라-河南, 商의 遺民, 自由奔放, 美女 많음,
春秋戰國의 美人計-鄭姬, 趙女, 楚莊王, 左抱鄭姬, 右抱趙女
초나라 장왕이 왼쪽에 정나라 미녀를 껴 앉고 오른쪽에 조나라 미인을 껴 앉았다.
 
 
Ⅳ. 내용 요약
孔子의 鄭聲은 음란하다는 비판은 음악 자체에 대한 미학적 판단 보다, 세속의 정치 타락의 연관성에 대한 정치 윤리적 상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孔子가 비판한 鄭聲은 《詩經》에 수록된 鄭風과 동일시될 수 없다. 전해오기를 孔子는 《詩經》을 정리하고 이를 絃樂 반주로 노래하였다고 한다. 鄭風 역시 다른 國風과 함께 經典에 포함되었다. 鄭風에 남녀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는 감정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지닌 詩歌로서 곧바로 淫亂으로 규정될 수 없다. 東漢 許愼이나 朱熹의 부정적 평가는 일부 해석에 불과하며, 주류적 견해라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孔子의 비판 대상인 鄭聲은 문학 텍스트 로서의 《詩經》 鄭風이 아니라, 춘추시대 鄭나라를 중심으로 유행한 세속 음악을 가리킨다.
둘째, 鄭聲은 흔히 鄭衛之音 · 新聲」과 통칭되며, 雅樂에 대비되는 오락적 음악 전반을 의미한다. 이는 祭禮와 敎化를 목적으로 한 儀禮 음악이 아니라, 귀족의 향락을 위한 음악으로서 리듬이 경쾌하고 자유로움을 노래하며 감각적 쾌락을 중시하였다. 특히 이러한 음악은 女性 연주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雅樂이 男性 중심의 公的 연주였다면, 鄭聲은 젊은 여성들이 예능과 용모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女樂의 영역에 속했다. 孔子가 鄭聲을 음란하다고 본 핵심 이유는 바로 이 女樂이 정치적 타락과 직결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先秦 문헌에서 女樂은 夏의 桀王, 商의 紂王과 같은 폭군의 몰락 이야기와 반복적으로 결부된다. 西周 禮制는 女樂을 엄격히 제한했으나, 춘추시기에 이르러 鄭나라에서는 女樂이 성행하였고, 정치·외교의 수단으로 활용되기까지 하였다. 孔子는 齊나라가 魯나라에 女樂을 바친 이후 조정이 문란해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魯나라를 떠났으며, 衛나라에서 衛靈公이 南子를 총애하는 장면을 통해 女樂의 정치적 위험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孔子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鄭聲은 쇠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정서 표현과 오락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雅樂을 점차 대체하였고, 漢代에 이르러 궁정 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司馬遷이 말한 바와 같이, 이 시기 雅樂은 傳承 체계 자체가 거의 소멸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女樂의 擡頭이자,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 敎化 중심에서 감정 표현과 예술 영역으로 확장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孔子의 비판은 정치 윤리적 경고로서 의미를 지니지만, 音樂史의 흐름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歐陽修, 〈梅聖俞墓志銘〉「養其和平,以發厥聲〉
그 평화로운 소리를 길러서 그 음악을 냈다.
 
이 구절은 매성유의 시가 단순히 기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길러진 평온하고 순수한 인품(기운)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온 것임을 찬탄하는 표현입니다.
구양수는 이 묘지명에서 매성유의 시가 겉으로는 담백하고 평범해 보이지만(평담, 平淡), 그 안에는 깊은 뜻과 고결한 기운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즉, "내면의 수양(和平)이 극에 달했기에, 거기서 나오는 시의 울림(聲)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격조가 높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매성유(梅聖俞, 1002~1060)는 중국 북송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송대 시풍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본명은 매요신(梅堯臣)이며, '성유'는 그의 자(字)입니다. 호는 완릉선생(宛陵先生)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는 구양수(歐陽修)와 함께 송시(宋詩)의 혁신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 생애: 불우한 관직 생활
매성유는 안휘성 선성(宣城) 출신으로, 학식이 매우 깊었으나 관직 운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 지방관 생활: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방의 하급 관리로 떠돌았습니다.
• 뒤늦은 급제: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겨우 진사(進士)에 급제하였으며, 절친한 벗이었던 구양수의 추천으로 중앙 관직인 도관원외랑(道官員外郞)에 올랐습니다.
• 고단한 삶: 평생 가난과 가족의 죽음 등 개인적인 비극을 많이 겪었으며, 이러한 삶의 애환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2. 시풍: '평담(平淡)'의 미학
매성유는 당나라 말기부터 유행하던 화려하고 기교 중심의 시풍(서곤체)을 반대하고, 새로운 송대만의 시풍을 개척했습니다.
• 평담(平淡): 그의 시론을 요약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꾸밈이 없고 담백하며, 일상적인 언어로 깊은 맛을 내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 현실주의: 추상적인 관념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사물, 서민들의 고통, 사회의 부조리 등 현실적인 소재를 시로 끌어들였습니다.
• 영물시(詠物詩): 특히 사물을 관찰하여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복어를 노래한 '하돈(河豚)' 시가 매우 유명하여 '매하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3. 문학사적 의의
매성유는 "송시의 개산시조(開山始祖)"라고 불릴 만큼 송나라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 송시의 정체성 확립: 감정 중심의 당시(唐詩)와 달리, 이성적이고 관조적이며 철학적인 송시(宋詩) 특유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 구양수와의 교류: 구양수와 깊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의 시를 비평하고 격려했습니다. 구양수는 매성유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고문운동과의 결합: 시에서도 유교적인 도리와 현실 비판 정신을 담아내며 당시 전개되던 고문 부흥 운동과 궤를 같이했습니다.
 
대표적인 별칭들
• 매도관(梅都官): 그의 마지막 관직명에서 유래.
• 매하돈(梅河豚): 복어 시를 기가 막히게 잘 지어서 붙여진 별명.
• 완릉선생(宛陵先生): 그의 고향인 완릉(현 안휘성 선성)의 이름을 딴 호.
 
 
3) 언어,
《孟子》〈公孫丑上〉「無嚴諸侯,惡聲至,必反之。孟施舍之所養勇也,曰..視不勝獲勝也。量敵而後進,慮勝而後會,是畏三軍者也」
"제후들을 위엄 있게 대하지(두려워하지) 않아, 나쁜 소리(모욕하는 말)가 들려오면 반드시 되받아 쳤다. 맹시사가 기른 용기란 이러했다. 그는 말하기를,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적을 보더라도 이길 수 있는 적을 대하듯 하였다. 적의 세력을 헤아린 뒤 에야 나아가고, 승산이 있는지를 생각한 뒤 에야 교전하는 자는, 이는 (적의 대군인) 삼군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맹사시 용맹 ~ 내재, 공격적, 도덕성이 없다
북궁유 용맹 ~ 외재, 방어적, 혈기 왕성
 
 
*《맹자(孟子)》 〈공손추 상〉 편에서 맹자는 부동심(不動心,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설명하며 고대의 용사였던 북궁유(北宮黝)와 맹사시(孟施舍)의 용기를 예로 듭니다.
이 두 사람의 용기는 겉으로 보기엔 대단하지만, 맹자는 이들이 기른 용기가 ' 혈기의 용기'인지, 아니면 '도의(道義)에 바탕을 둔 용기'인지에 따라 그 수준을 다르게 평가했습니다.
 
1. 북궁유(北宮黝)의 용맹: 상대적인 강함 (외부 지향)
북궁유는 자객의 부류로, 외부의 자극에 절대 굴하지 않는 육체적·심리적 강인함을 중시했습니다.
• 특징: 살을 찔러도 몸을 떨지 않고, 눈동자를 찔러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모욕도 참지 않았으며, 상대가 만승의 군주(대국의 왕)든 미천한 사람이든 똑같이 대우하며 보복했습니다.
• 평가: 그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길렀습니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강해야 한다는 외부적인 승부에 집착하는 용기입니다. 맹자는 이를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기상과 비슷하다고 보았습니다.
 
2. 맹사시(孟施舍)의 용맹: 스스로의 두려움 극복 (내부 지향)
맹사시는 전쟁터의 전사와 같은 부류로, 승패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 특징: 그는 "이기지 못할 적이라도 이길 것처럼 대한다. 적의 형세를 다 헤아린 뒤에 나아가거나 승리를 계산한 뒤에 싸우는 것은 적군을 두려워하는 짓이다. 내가 어찌 필승을 장담하겠는가? 오직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평가: 그는 외부의 승패보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통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맹자는 이를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의 기상과 비슷하다고 평가했습니다.
 
3. 두 용맹의 비교 및 맹자의 결론
맹자는 두 사람 중 맹사시의 용기가 북궁유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이유는 맹사시가 '지키는 바의 요점(守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 삼군
1) 좌 중 우
2) 상 중 하
3) 보 차 기
* 6군 ~ 천자(주 나라 )가 거느리는 군대이다
 
《史記》〈樂毅列傳〉「臣聞賢明之君,功立而不廢,故著于《春秋》,蚤知之士,名成而不毁,故稱于後世。......臣聞善作者不必善成,善始者不必善終。......臣聞古之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之去也,不潔其名」
신이 듣기로 현명한 군주는 공을 세우면 그것이 폐기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기록을 《춘추》에 뚜렷이 남기고, 앞날을 내다보는 선비는 명성을 이루면 그것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에 후세에 일컬어지는 것이라 합니다."
신이 듣기로 시작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무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며, 처음이 좋았다고 해서 반드시 끝이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 신이 듣기로 옛날의 군자는 사귐이 끊어지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나쁜 말을 내뱉지 않으며, 충신은 나라를 떠날 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왕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4) 정보,
《漢書》〈趙廣漢傳〉「界上亭長寄聲謝我,何以不爲致問?」
마을 경계 지역의 정장(亭長)이 사람을 시켜 나에게 안부를 전해 왔는데, 그대는 왜 찾아 가서 문안드리지 않는가?
 
5) 명예,
《詩經》〈文王有聲〉「文王有聲,遹駿有聲」
문왕이 명예가 있으니 그 명성이 참으로 크다.
 
6) 기세,
《戰國策》〈齊策一〉「吾三戰而三勝,聲威天下」
내가 세번 싸워 세번 이겼으니 그 기세와 위엄이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7) 聲母(자음),
《南史》〈謝莊傳〉「又王玄謨問莊何者爲双聲,何者爲叠韵。答曰..玄獲爲双聲,碻磝爲叠韵
또 왕현모가 사장에게 무엇을 '쌍성(双聲)'이라 하고, 무엇을 '첩운(叠韵)'이라 하는지 물었다. (사장이) 답하기를, "'현획(玄獲)'은 쌍성이 되고, '확오(碻磝)'는 첩운이 됩니다"라고 했다.
 
이 개념은 한자 소리의 구성 요소인 성모(聲母, 첫소리)와 운모(韻母, 가운뎃소리+끝소리)를 이해해야 풀립니다.
 
 
쌍성 (双聲)
두 글자의 첫소리(성모)가 같은 것. (예시) 玄獲 (현획)
-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Xuán-Huò (고대음에서는 둘 다 후음 계열로 첫소리가 같음)
첩운 (叠韵)
두 글자의 운(운모)이 같은 것 (예시) 碻磝 (확오)
-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Qiāo-Gáo (뒷부분의 '아오' 소리가 겹침)
 
• 배경: 당시 남조 시대에는 시를 지을 때 소리의 조화를 맞추는 '성률설(聲律說)'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왕현모는 무장(武將) 출신이라 문학적 소양이 깊지 않아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사장에게 이 기초적인 개념을 물어본 것입니다.
• 사장의 재치: 사장은 단순히 이론을 설명하지 않고, 왕현모의 이름(玄)과 그가 패배했던 지명(碻磝, 확오) 등을 교묘하게 섞어 답변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요약
이 문장은 "쌍성은 첫소리가 같은 글자의 조합이고, 첩운은 가운뎃소리와 끝소리가 같은 글자의 조합이다"라는 음운학적 원리를 구체적인 예시(현획, 확오)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8) 성조,
《南齊書》〈陸厥傳〉「約等文皆用宮商,以平上去入爲四聲」
"(심)약 등은 문장을 지을 때 모두 궁상(음악의 가락)을 적용하였고, 평성·상성·거성·입성을 사성(四聲)으로 삼았다."
 
상세 풀이 및 배경
이 문장은 당시 문단을 주도했던 심약(沈約)과 그 동료들이 시를 지을 때 소리의 높낮이와 리듬을 어떻게 체계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1. 約等(약등): 여기서 '약'은 남조의 대표적인 문인인 심약(沈約)을 가리킵니다. 그는 한자의 소리 값을 연구해 사성(四聲)의 체계를 세운 인물입니다.
2. 用宮商(용궁상): '궁상'은 동양의 전통 오음(궁·상·각·치·우) 중 앞의 두 음으로, 음악적인 선율을 의미합니다. 즉, 글을 쓸 때 단순히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운율을 고려하여 글자를 배치했다는 뜻입니다.
3. 四聲(사성): 한자의 성조를 평(平), 상(上), 거(去), 입(入)의 네 가지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이 훗날 우리가 아는 한시(율시, 절구 등)의 엄격한 규칙인 평측법(平仄法)의 기초가 됩니다.
 
역사적 의의
이 구절이 언급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음성학의 발견: 이전까지 중국 문인들은 직관적으로 운을 맞췄으나, 심약 시대에 이르러 한자에 네 가지 성조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 영명체의 탄생: 남제 영명(永明) 연간에 유행한 이 화려하고 음악적인 시풍은, 이후 당나라 시대에 꽃피운 근체시(近體詩)의 직접적인 뿌리가 됩니다.
• 육궐의 비판: 사실 이 구절이 들어있는 〈육궐전〉의 맥락을 보면, 육궐은 심약 등의 이러한 인위적이고 까다로운 성률 제한이 오히려 시의 자연스러운 기세를 해친다고 비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요약
이 문장은 "심약 등이 문장에 음악적 원리를 도입하고, 한자의 소리를 사성(평·상·거·입)으로 체계화하여 성률을 엄격히 따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심약(沈約, 441~513)은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저명한 문학가, 역사학자, 정치인으로 《송서(宋書)》를 찬술하고 ‘영명시풍(永明詩風)’을 개척하여 4성 8운의 성률론을 확립한 인물입니다. 남조의 송, 제, 양 3대에 걸쳐 관직을 지냈으며, 학문적 깊이가 깊어 당대 최고의 문재(文才)로 평가받았습니다. 생애와 활동: 441년 유송 오흥군 무강현에서 태어나 513년 양나라 건강에서 사망했습니다. 제나라 시절 경릉왕 소연(후일 양 무제)의 ‘경릉팔우(竟陵八友)’ 중 한 명으로 활동했습니다.
 
 
韓愈, 〈唐故相權公墓碑〉「公生三歲,知變四聲,四歲能爲詩」
"공(권덕여)은 태어난 지 세 살 때 벌써 사성(四聲)의 변화를 알았고, 네 살 때는 시를 지을 줄 알았다."
 
* 한유가 묘비명에서 "세 살에 사성을 알고 네 살에 시를 지었다"고 칭송한 권덕여(權德輿, 759~818)는 당나라 후기를 대표하는 저명한 정치가이자 문장가입니다.
그는 중당(中唐) 시기 문단의 영수로서, 한유나 유종원 같은 대 문장가들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문단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1. 권덕여의 생애와 정치적 위상
• 가문과 성장: 명문가인 천수 권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특이하게도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그 재능을 인정받아 관직에 등용된 '자급자족형 천재'였습니다.
• 정치적 업적: 덕종, 순종, 헌종의 세 황제를 섬겼으며, 예부상서와 동중서문하평장사(재상) 등 최고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온화하고 공정한 성품으로 조정의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 인재 양성: 그는 문장뿐만 아니라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젊은 문인들이 그에게 글을 올리고 평가받기를 원했는데, 그가 한 번 칭찬하면 그 문인의 명성이 천하에 퍼졌다고 합니다.
 
2. 문학적 특징
• 전통의 계승: 화려한 수식보다는 유교적 도덕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는 훗날 한유가 주도한 '고문부흥운동'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 방대한 저술: 그는 당나라 중기에서 가장 다작(多作)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그의 글은 당시 조정의 공식 문서나 국가적 행사의 비문으로 가장 선호되었습니다.
 
3. 주요 저서
권덕여의 저서는 양이 매우 방대하여 당대 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권문공집(權文公集)》 (개인 문집)
- 그의 사후에 정리된 문집으로, 총 5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그의 시와 산문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권덕여시(權德輿詩)》 (시문 선집)
-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가 약 300여 수 이상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시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각종 묘지명 및 제문 (중요 산문)
- 한유가 쓴 그의 묘비명에서 알 수 있듯, 권덕여 자신도 당대 유명 인사들의 묘지명(墓誌銘)을 수천 편 썼으며 이는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 사료가 됩니다.
 
4. 한유와의 관계
한유는 비록 권덕여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권덕여의 문학적 위상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권덕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유가 그 묘비명을 직접 쓴 이유도, 당시 권덕여의 위상에 걸맞은 문장력을 가진 사람이 한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질문하신 "세 살에 사성을 알았다"는 표현은 한유가 선배 문인에 대해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였습니다.
 
 
* 권덕여(權德輿)가 저술한 《동몽집(童蒙集)》은 그가 아주 어린 시절(아동기)에 지은 글들을 모은 문집으로, 그의 천재성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저술입니다.
1. 《동몽집》의 성격
• 신동의 기록: 권덕여가 관례(갓을 쓰는 성인식)를 치르기 전, 즉 어린아이(童蒙) 시절에 지은 시와 글들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 성립 배경: 당시 권덕여의 재능이 워낙 출중하여, 그가 어린 시절에 쓴 글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주변에서 모아 문집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보통 문인이 장성한 뒤에 문집을 내는 것과 달리, 어린 시절의 저술만으로 별도의 '집(集)'이 구성되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2. 문학적 가치
• 조숙한 천재성: 《동몽집》에 수록된 글들은 어린아이의 수준을 뛰어넘어, 이미 한시의 엄격한 운율과 전고(典故)를 정확히 활용하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 초기 문학 세계: 그가 훗날 당나라 문단의 영수가 되기까지, 어떤 언어적 감각과 유교적 소양을 쌓았는지 보여주는 성장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큽니다.
• 현대의 상태: 안타깝게도 권덕여의 방대한 전체 문집인 《권문공집(權文公集)》 50권 속에 그 내용이 일부 흡수되거나 전해질 뿐, 《동몽집》이라는 단독 서적 자체가 온전하게 독립되어 전해지는 판본은 드뭅니다. 하지만 '권덕여'라는 인물을 논할 때 "어릴 때 이미 《동몽집》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늘 인용됩니다.
 
3. 왜 '동몽(童蒙)'인가?
• 동몽(童蒙): 《주역(周易)》 몽괘(蒙卦)에서 유래한 말로, '어리고 미망한 아이'를 뜻하지만, 동시에 '순수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권덕여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글에 이 이름을 붙임으로써 겸손을 표하는 동시에, 자신의 학문적 뿌리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형성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9) 노래하다
葉適, 〈祭鄭景元文〉「且吊公墓,且哭公堂,且聲此詞,以紀我傷」
"또한 공의 묘소를 참배하고, 또한 공의 집(빈소)에서 통곡하며,
또한 이 추도문을 소리 내어 읽어, 나의 슬픔을 기록하노라."
 
* 남송 시대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영가학파(永嘉學派)의 대성자인 엽적(葉適)이 자신의 친구인 정경원(鄭景元)을 추모하며 지은 〈제정경원문(祭鄭景元文)〉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이 구절은 친구를 잃은 슬픔과 그를 기리는 마음을 '차(且, ~하고 또한 ~하다)'라는 글자를 반복 사용하여 리듬감 있고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학적 배경
엽적은 실천적 학문을 중시했던 인물이었으나, 이 제문에서만큼은 친구에 대한 지극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吊) - 곡(哭) - 성(聲)'으로 이어지는 세 가지 행위는 친구를 보내는 마지막 예우를 다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0) 선포하다,
《國語》〈晉語五〉「是故伐備鐘鼓,聲其罪也」
이런 까닭에 (상대의 죄를 묻는) '벌(伐)'을 할 때는 종과 북을 갖추어 울리니, 이는 그 죄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後漢書》〈荀彧傳〉「可聲出宛葉而間行輕進,以掩其不意」
(겉으로는) 완(宛)과 엽(葉) 땅으로 군사를 내보낸다고 소문을 내고, 실제로는 사잇길로 가볍게 진격하여 그들이 예상치 못한 틈을 타 습격해야 합니다."
 
 
* 間行輕進은 사잇길로 몰래 가고, 가벼운 차림으로 신속하게 진격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빨리 간다'는 뜻을 넘어, 군사적 기습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1) 비밀성 (間行): 적의 감시가 심한 큰길(대로)을 피하고, 좁은 길이나 험한 사잇길을 이용해 아군의 이동 경로를 숨기는 것입니다. 현대적으로 보면 '레이더망을 피하는 은밀한 기동'과 같습니다.
2) 신속성 (輕進): 군장을 가볍게 하고 불필요한 보급 부대를 줄여 이동속도를 최대로 높이는 것입니다. 적이 아군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대비하기 전에 타격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강태공(강상)의 저작으로 알려진 고대 병법서 《육도(六韜)》에는 군대의 위용과 형세를 다루는 〈군세(軍勢)〉 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세'는 단순히 병력의 숫자가 아니라, 군대의 기세, 심리적 우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주요 핵심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군세의 핵심 개념: "보이지 않는 힘"
《육도》 〈군세〉 편에서 강태공은 전쟁의 승패가 겉으로 드러난 무기나 병력보다 '보이지 않는 기세'에 달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 지혜와 기만: "최고의 싸움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그다음은 기세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변화무쌍함: 군대의 형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물처럼 흘러야 하며, 적이 나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 승리를 결정짓는 3가지 요소
강태공은 장수가 군세를 장악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시(時): 때를 아는 것.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는 타이밍입니다.
2. 세(勢): 형세의 유리함을 점하는 것. 적의 약점을 파악하여 아군의 강점을 집중시키는 형국입니다.
3. 기(機): 기밀과 기틀.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3. 〈군세〉 편의 유명한 논리: "넓고도 깊은 전략"
이 편에서는 장수가 가져야 할 심리적 태도와 군대의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선전자는 불전(善戰者者不戰)" (싸움을 잘하는 자는 함부로 싸우지 않는다)
• 적의 마음을 흔들어라: 적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적의 사기를 꺾고 지휘 체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진정한 '군세'의 활용입니다.
• 완벽한 정보력: 적의 동태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어야 군세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습니다.
 
4. 《육도》의 구성과 군세의 위치
《육도》는 문도, 무도, 용도, 호도, 표도, 견도의 6권으로 나뉘는데, 각 권은 상황별 군세를 다룹니다.
• 용도(龍韜): 군대의 지휘와 통제, 기만술을 다루며 '군세'의 핵심 이론이 담겨 있습니다.
• 호도(虎韜)·표도(豹韜): 지형에 따른 구체적인 전술과 군세의 전개를 다룹니다.
 
* 疾雷不及掩耳, 迅電不及瞑目"
• 疾雷(질뢰): 매우 빠르게 치는 우뢰(천둥).
• 不及(불급): 미치지 못하다. (미처 ~할 사이가 없다.)
• 掩耳(엄이): 귀를 막다.
• 迅電(신전): 매우 빠른 번개.
• 瞑目(명목): 눈을 감다. (여기서는 번쩍이는 빛에 눈을 깜빡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빠른 천둥소리는 미처 귀를 막을 사이가 없고, 번뜩이는 번개는 미처 눈을 깜빡일 사이도 없이 지나간다."
 
핵심 메시지 및 전략적 가치
이 구절은 군사 전략에서 전격전의 원조 격인 이론으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1. 압도적인 속도: 적이 아군의 공격을 인지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거나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아예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 기습의 효과: 천둥과 번개처럼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면, 설령 상대가 뛰어난 용병술을 가졌더라도 몸을 사리거나 대처할 방법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11) 소리 내다,
《儀禮》〈士虞禮〉「祝升,止哭,聲三,啓户」
축관(祝官)이 계단을 올라가면 통곡을 그치고, (축관이) 세 번 소리를 낸 뒤에 문을 연다."
 
* 王 ~ 행정
祝 ~제사장
卜 ~ 점치는 사람
醫 ~치료
史 ~기록
作冊 ~문서
 
《文子》〈道原〉「風興雲蒸,雷聲雨降」
성인의 도에 부합하면 저절로 감흥이 일어나고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변화가 저절로 일어난다.
 
12) 通馨(향기 형)
 
 
2026.1.22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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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