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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6.01.20. 12:04 (2026.01.17. 17:25)

동양고전 아카데미 410강 강의자료 요약(2026.1.15.)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 〈歲暮歸南山〉와 작자 孟浩然 및 주요 단어(歲暮, 歲除, 年終, 南山, 北闕, 敝廬, 青陽, 永懷... 등)에 대해서 설명 ; (2)頌의 甲骨文과 《說文解字》에서의 문자학적 의미와 孰與, 逸民, 專精 등 어휘 설명 ; (3)《詩經》의 분류와 표현 기법인 6義(風, 雅, 頌, 賦, 比, 興)에 대하여 설명 ; (4)宋의 先正과 주요 저서(宋代 6賢-周敦頤, 張載, 邵雍, 程顥, 程頤, 朱子) 및 呂祖謙, 眞德秀, 그 외에 《中庸》20장「誠者天之道, 誠之者人之道也」를 비교해서 설명 ; (5)孔子의 학문하는 태도를 《論語》〈子罕〉「我有知乎哉, 無知也。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我叩其兩端而竭焉」를 통하여 상세히 설명 ; (6)慶原僞學之禁(慶原黨禁)을 통하여 朱子에 대한 彈劾 과정과 주요 내용을 설명 ; (7)《論語》〈里仁〉「古者言之不出,恥躬之不逮也」에 대한 版本 차이와 古注와 新注에 대한 해석 설명 ; (8)戰國時代 李悝의 變法과 識人五法에 대하여 상세 설명 ; (8)《論語》〈陽貨〉「惡紫之奪朱也」의 분석(孔子의 色彩, 政治的, 文化的, 倫理的 방면의 重層 의미)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동양고전 아카데미 410강 강의자료 요약(2026.1.15.)
 
2026년 1월 8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 세모귀남산
2. 작자 : 맹호연(孟浩然)( 689~740)
 
작자에 대한 정보는 407강을 참조 하세요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1강(2024,05,16) 강의 교안
 
*《論語》〈里仁〉
4-21. 父母之年,不可不知也。一則以喜,一則以懼。
 
 

 
*《史記》〈周本紀〉4-023
1. 頌 - 金文, 원래는 周代 祭祀에 사용하는 舞曲(춤곡)
 
(1) 容貌(자태),
《說文解字》「頌, 貌也」
송은 모(모양)이다.
 
(2) 점 칠 때 사용하는 용어,
《周禮》〈大卜〉「其頌皆千有二百」
점 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모두 1,200개가 있다.
 
(3) 《詩經》에 사용된 六義(6가지 형식)의 하나, 風, 雅, 頌, 賦, 比, 興
 
 
* 시경을 윤길보가 수집하고 공자 편집'설은 유교적 전통에서 내려오는 전설적인 성격이 강하며, 현대 학계에서는 이를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1. 윤길보(尹吉甫) 수집설
• 주장 : 서주(西周) 시대 선왕(宣王) 때의 현신인 윤길보가 민간의 노래와 조정의 음악을 수집하여 정리했다는 설입니다.
• 사실 여부 : 윤길보는 실제로 《시경》 중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의 여러 시를 지었거나 관련이 있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시경》 전체를 체계적으로 수집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부족합니다. 다만, 당시 '채시(採詩)'라 하여 관리들이 민요를 수집하던 제도적 배경과 맞물려 윤길보가 그 상징적인 인물로 거론되곤 합니다.
 
2. 공자(孔子) 편집설 (산삭설, 刪削說)
• 주장 : 본래 3,000여 편에 달하던 시를 공자가 도덕적·교육적 기준에 따라 305편으로 추려내고 정리했다는 설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등에 기록됨)
• 사실 여부 : 현대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 증거의 부재 : 공자 이전의 기록(예: 《좌전》)에도 이미 현재와 비슷한 300여 편 규모의 시들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 내용의 모순 : 공자가 '음란한 시'를 삭제했다고 하기에는, 현재 《시경》에도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정풍, 위풍 등)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공자의 역할 : 공자가 시를 '삭제'했다기보다는, 흩어져 있던 시들의 순서를 바로잡고 음악(악보)을 정비하여 교육용 텍스트로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즉, 윤길보와 공자가 《시경》의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집하고 편집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시경》은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점진적으로 형성된 공동의 저작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 六義(6가지 형식)
1. 風 (풍)
풍은 15개 제후국에서 불리던 민요로, 주로 민중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가는 사랑, 이별, 전쟁의 고통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연결 짓는 내용이 많습니다. 풍은 일반적으로 소박하고 직관적인 언어로 표현됩니다. 163개가 있다
2. 雅 (아)
雅는 궁정에서 불리던 정제된 시가로, 주로 귀족이나 왕족이 사용하는 공식적인 시입니다. 雅는 다시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로 나뉘며, 대아는 국가의 중대한 사건이나 의식을 다루고, 소아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일상적인 주제를 다룹니다. 이 시가는 고전적인 음악과 함께 연주되며, 정교한 언어와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3. 頌 (송)
송은 주로 제사나 의식에서 사용되는 시가로, 조상이나 신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周頌》, 《魯頌》, 《商頌》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각각 주나라, 노나라, 상 나라의 전통을 반영합니다. 송은 종교적이고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며, 음악과 춤과 함께 공연됩니다.
4. 賦 (부)
부는 주로 서술적인 형식의 시가로, 특정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 형식은 주로 시가의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며, 비유와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5. 比 (비)
비는 두 가지 대상을 비교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는 형식입니다. 이 시가는 주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비는 다른 시가와의 연결성을 강조하며, 주제의 깊이를 더합니다.
6. 興 (흥)
흥은 특정한 감정이나 주제를 연상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형식으로, 주로 다른 시가의 내용을 인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합니다. 이 형식은 독자가 시의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4) 노래하다,
《荀子》〈天論〉「從天而頌之,孰與制天命而用之」
하늘을 우러르고 그것을 노래하고 하늘의 명령을 통제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보다 낫지않겠는가?
 
(5) 낭독하다,
《孟子》〈萬章下〉「頌其詩,讀其書。不知其人,可否?」
그 시를 낭독하고 그 책을 읽어도 그 사람이 어떤지 가부를 모르겠다.
 
* 可否 = 可否 不可否= 能 不能
 
 
또 《後漢書》〈逸民傳〉「少爲書生,家以農畝爲業,而專精頌讀,晝夜不息」
젊어서 서생이 되어 농사를 업으로 삼았고, 한마음 한 뜻으로 낭독하여 밤 낮으로 쉼이 없었다.
 
* 逸民 ~ 1) 편안한 사람이 아니고 세속을 초월해서 은둔한 사람
2) 왕조가 바뀌어 불러도 벼슬 길에 나가지 않는 사람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2강(2024,05,30) 강의 교안
 
 
* 宋之先正 = 宋代6賢(文廟配享)과 呂祖謙, 眞德秀의 간략소개
송대6현은 北宋 5子와 南宋 朱子를 합해서 일컫는다.
 
(1) 周敦頤(1017-1073)의 사상은 《周易》에 근거하여 太極을 理, 陰陽五行을 氣로 정하고, 이것으로 대자연과 인류사회의 발전 규칙을 해석하였다. 주요 저서는 《太極圖說》, 《通書》 등이 있다. 《太極圖說》은 《易經》, 《中庸》, 韓愈의 《原道》, 도교, 불교사상을 수용하고 도교 학자 陳摶의 《無極圖》를 개량하여 太極, 理, 氣, 性, 命 등 일련의 철학 이론을 주장하였다. 《通書》는 《中庸》의 誠 사상을 易學(天人相應의 학술 사상에 입각하여 萬事萬物의 운행 규율 및 그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의 체계 안으로 흡수시켜 철학체계를 형성한 것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도교적 색채가 강했던 진단(陳摶)의 《무극도(無極圖)》를 유교적으로 재해석하여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술했습니다.
이는 훗날 주희(주자)에 의해 성리학의 핵심 우주론으로 정립됩니다.
 
1. 무극(無極)과 태극(太極)
주돈이는 《태극도설》의 첫머리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으로 시작합니다.
• 무극(無極):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 우주의 근원적 상태(공허함이 아닌 무궁무진한 잠재력)를 의미합니다.
• 태극(太極):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 원리입니다.
• 의미: "무극이면서 곧 태극이다." 즉, 우주의 근본 원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무극), 동시에 만물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법칙(태극)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2. 이(理)와 기(氣)의 조화
진단의 도교적 도상이 신선이 되기 위한 '수련'에 초점을 맞췄다면, 주돈이는 이를 우주 생성의 질서로 바꾸었습니다.
• 동(動)과 정(靜): 태극이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고요 해지면 음(陰)이 됩니다.
• 오행(五行): 음양의 변화를 통해 금, 목, 수, 화, 토의 다섯 가지 기운이 생겨납니다.
• 리(理): 이 모든 과정에 흐르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 기(氣): 만물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재료입니다.
 
3. 성(性)과 명(命)
우주의 원리가 어떻게 인간의 도덕성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 명(命): 하늘(우주)이 만물에게 부여한 원리와 질서입니다. (천명)
• 성(性): 하늘로부터 받은 '명'이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본성입니다.
• 논리: 우주의 원리(태극)가 곧 나의 본성(성)이므로, 인간은 본래 선하며 우주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근거가 됩니다.
 
4. 진단의 《무극도》 vs 주돈이의 《태극도》
두 그림은 모양이 비슷하지만 지향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2) 邵雍(1011-1077)의 사상은 伏羲의 八卦와 文王의 《周易》 학설에 근거하여 伏羲八卦圖와 文王八卦圖를 작성하고, 각각을 先天之學과 後天之學으로 명명하였다. 또 자신의 《先天圖說》에 근거하여 順과 逆으로 우주만물의 生成과 變化를 추론하고 先天象數學을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皇極經世書》가 있다.
 
 
 
(3) 張載(1020-1077)의 사상은 氣를 만물의 근원으로 여겼다. 氣의 聚散과 變化는 객관세계의 각종 물질현상을 형성하고, 氣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萬物이고 氣가 흩어진 것이 無形의 太虛라고 여겼다. 또 《論語》의 「两端」으로 사물 내부의 모순 성질을 설명하였다. 즉 氣는 陰陽 兩端으로 분리되고 事物도 모두 대립하는 兩端이 존재하며, 兩端의 모순 투쟁은 우주 만물의 운동을 형성한다고 여겼다. 주요 저서는 《正蒙》, 《西銘》, 《易說》, 《經學理窟》 등이 있다.
 
 
 
* 공자는 스스로에게 “내가 과연 안다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라고 묻고, 곧 바로 “無知也”, 곧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知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확실한 지식과 통찰을 뜻하며, 無知는 겸손의 수사가 아니라 학문적 출발점으로 서의 자기 인식이다.
이어 공자는 “有鄙夫問於我”라고 말한다. 여기서 鄙夫란 식견이 천박한 사람, 혹은 농부나 시골 사람처럼 학문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는 그 질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묻는 순간, 자신 역시 “空空如也”, 즉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는 질문 앞에서 선입견이나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를 내려놓고, 문제 자체와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 다음 공자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我叩其兩端而竭焉.”
여기서 叩는 두드리다, 캐묻다, 따져 “묻다”의 뜻으로,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집요한 탐문을 의미한다. 兩端이란 사물의 양극, 곧 正과 反, 始와 終, 過와 不及처럼 서로 대립하는 두 측면을 말한다. 공자는 질문 받은 사안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양쪽 끝을 모두 두드리듯 살펴본다. 그리고 그렇게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탐구하여 竭, 곧 힘이 다할 때까지 사유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은 공자의 학문 태도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논증하는 사고 방식, 곧 思維方法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질문을 통해 사유를 촉발하며, 사물의 양면을 끝까지 검토하는 방식을 통해 지식에 접근한다. 이는 곧 求知의 徹底性, 다시 말해 앎을 구하는 데 있어 타협하지 않는 태도이다.
 
 
(4) 程顥(1032-1085)의 사상은 理를 사람 마음에 존재하는 것으로 「心是理, 理是心」을 주장하였다. 그는 객관 세계의 존재를 부인하였고 마음속의 理를 萬事萬物을 주재하는 최고 존재로 여겼으며, 이것을 기초로 「萬物一切」를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主觀唯心主義心學으로 후대 陸九淵과 楊簡에 의하여 계승되어 心學을 형성하였고 王守仁에 의하여 陽明學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 주요 저서는 《定性書》, 《識仁篇》 등이 있다.
 
(5) 程頤(1033-1107)의 사상은 易學에 집중하였고 《伊川易傳》에 잘 드러나 있다. 그 는 理를 易學의 최고 범주에 두고 「隨時變易以從道」와 「易周盡萬物之理」의 명제를 주장하여 《易經》을 사물변화의 규율과 인간 행위의 규범을 설명하는 근거로 보았다. 또 程顥와 달리 心과 理를 구별하는 理學을 형성하였다. 주요 저서는 《易傳》, 《伊川文集》 등이 있다.
 
(6) 朱熹(1130-1200)의 사상은 이전의 儒學을 총결하고 理學 사상을 집대성하여 元, 明, 淸 3代에서는 官方哲學으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朱熹는 張載와 2程의 기초위에서 天命之性과 氣質之性의 人性二元論을 논증하였다. 理는 존재의 기초이고 太極이 최고 경지이다. 氣는 물질 성질의 第二性으로 여겼고 理와 氣는 상호 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하였다. 程顥와 程頤의 학설을 계승 발전시켜서 程朱學派로 일컫는다. 주요 저서는 《周易本義》, 《四書集註》, 《家禮》, 《近思錄》 등이 있다.
 
이 외에 (1) 呂祖謙(1137-1181)의 사상은 程頤의 理學 관점을 숭상하였고, 朱熹, 張栻과 더불어 東南三賢으로 일컬어졌다. 그는 「明理躬行, 學以致用」을 주장하고 心性에 대하여 헛된 주장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현상을 반대하였다. 理 또는 天理는 천지만물의 근원이고 사물의 보편 법칙이며, 心은 만물을 관장하고 자연계와 인류사회에 일종의 규정성이 있다고 여겼다. 그가 창립한 婺學은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였고, 理學 발전 사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요 저서로는 《東萊集》, 《東萊博議》 및 朱熹와 공저한 《近思錄》이 있다. (2) 眞德秀(1178-1235)의 理學 사상은 기본적으로 朱熹를 추종하였고, 魏了翁 등과 함께 朱熹를 百代宗師라고 칭송하였다. 그는 理學을 진흥하고 발전시켜서 朱熹 이후 정통계승자로 일컬어졌다. 주요 저서로는 《西山文集》, 《四書集編》, 《大學衍義》 등이 있다.
 
 
*「明理躬行, 學以致用」
 
1. 明理 (명리): "이치를 밝히다" 또는 "원리를 이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물의 본질이나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2. 躬行 (궁행): "몸소 실천하다"라는 뜻으로, 이론이나 원리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3. 學以致用 (학이치용):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학습한 지식이나 기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明理躬行, 學以致用"은 "이치를 밝히고 몸소 실천하며,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하라"는 의미로, 지식의 습득과 그 지식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이는 학문과 실천의 통합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지향하는 자세를 나타냅니다.
 
 
*《近思录》는 남송 시대의 저명한 학자 주희(朱熹)와 여조겸(吕祖谦)이 공동으로 편찬한 철학적 저작입니다. 이 책은 1175년에 완성되었으며, 북송 시대의 주요 이론가인 주돈이(周敦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장재(张载)의 어록을 선별하여 622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14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책은 중국 철학의 중요한 기초서로 여겨집니다.
주요 내용 및 목적
《近思录》의 제목은 《논어》의 "切问而近思"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깊이 질문하고 가까이 생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초학자들이 이론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주희는 이 책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연결하고, 학습자가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구성 및 철학적 배경
이 책은 이론적 내용과 실천적 지침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주희의 이론적 체계에 따라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요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도체(道体): 이론의 본질과 원리
•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
• 수양(修养): 개인의 도덕적 수양
• 치국(治国):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
이러한 주제들은 유교의 핵심 가치와 원리를 반영하며, 후에 송대의 여러 저작들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히고 연구되었습니다.
 
영향력
《近思录》은 이후 수세기 동안 중국, 한국, 일본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교의 공식 교과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책은 유교 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많은 후속 저작들이 이 책의 구조와 내용을 따랐습니다.
결론적으로, 《近思录》는 유교 철학의 중요한 저작으로,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하며, 동아시아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 진덕수(眞德秀, 1178-1235)는 남송 시대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본래 성은 신(慎)이며, 후에 진(眞)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푸젠성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진덕수는 주희(朱熹)의 제자로서, 성리학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주요 업적
진덕수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대학연의》(大學衍義)로, 이는 제왕학의 교과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유교의 기본 원리와 통치 철학을 황제에게 간언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의 왕들이 필독서로 삼았습니다. 특히 태조와 태종, 세종대왕이 이 책을 탐독하며 정치적 이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왕학의 중요성
진덕수의 《대학연의》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 내적 수양과 외적 통치: 진덕수는 "내성외왕"(内圣外王)의 이념을 강조하며, 군주가 먼저 자신의 도덕적 수양을 통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통치 철학으로, 군주의 도덕성이 국가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 정치적 실천: 그는 통치자가 이론을 실제 정치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후에 조선의 정치 이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에서의 영향
진덕수의 사상은 한국에서 유교적 통치 이념의 기초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 시대의 여러 왕들이 그의 저작을 통해 정치적 지혜를 얻었으며, 이는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정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은 《대학연의》를 통해 자신의 통치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덕수는 유교적 제왕학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그의 사상과 저작은 한국 역사에서 여전히 존경받고 있습니다.
 
 
* 한탁주 계열의 심계조가 주희를 탄핵한 내용
한탁주(韓侂胄)와 그의 지지 세력은 남송 시대의 유학자 주희(朱熹)를 탄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경원당안'(慶元黨案)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희의 학문과 정치적 입지를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 심계조가 제시한 주희의 10가지 죄목
1. 도학(道學)의 위선: 겉으로는 성현의 도를 말하나 속으로는 사리사욕을 채우는 '위학(僞學, 가짜 학문)'의 우두머리라는 점.
2. 임금을 기만함: 조정에 출사하여 임금을 가르치려 들고, 자신의 학설을 앞세워 군주를 압박했다는 죄.
3. 조정을 비방함: 사사로이 제자들을 모아 조정의 정치를 비판하고 여론을 선동했다는 점.
4. 불효(不孝):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예법에 맞지 않게 치렀거나 정성이 부족했다는 비난.
5. 사생활 문란 (여색): 비구니 두 명을 첩으로 삼아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는 파격적인 모함.
6. 가정 관리 부실: 며느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임신시켰다는 근거 없는 악의적 소문 유포.
7. 재물 탐욕: 지방관으로 재직할 때 공금을 횡령하거나 백성의 재물을 갈취했다는 비난.
8. 조성: 자기 학파 사람들로 파벌을 만들어 조정을 분열시키려 했다는 점.
9. 신(怪力亂神): 정통 유학이 아닌 술수나 기괴한 학설로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비판
10.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놓고 다른 학자들을 멸시했다는 점.
 
참고 : 이 중 특히 사생활과 관련된 '비구니 첩'이나 '며느리 관련 루머'는 당시 주희를 정계에서 영원히 매장하기 위해 조작된 정치적 공작으로 평가받습니다.
 
- 탄핵의 결과
이 탄핵 사건은 주희 개인의 실각을 넘어 남송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 관직 박탈 및 낙향: 주희는 모든 관직과 봉록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쫓겨났습니다.
• 경원당금(慶元黨禁)의 심화: 주희의 학문은 '위학(僞學)'으로 규정되어 금지되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학자 59명이 '역당(逆黨)'으로 몰려 유배되거나 파면당했습니다.
• 학문적 탄압: 성리학 서적의 간행이 금지되었고, 과거 시험에서 주희의 해석을 답안에 쓰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 쓸쓸한 최후: 주희는 이 금령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1200년, 제자 몇 명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조차 감시의 눈길 속에 치러졌습니다.
 
- 역사적 반전
비록 심계조의 탄핵으로 주희는 생전에 큰 고초를 겪었으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탁주가 몰락하면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주희의 학문은 다시 복권되었고, 오히려 '위학'에서 '관학(국가 공인 학문)'으로 격상되어 이후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탁주와 심계조의 탄핵은 주희의 정치적 생명과 학문적 명성을 크게 훼손시켰으며, 이는 남송 시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 대만의 전목(錢穆)이 “朱子之學集全仁之大成 開後世之新國” 문장으로 주희(朱熹)를 해명한 배경은 주희의 사상이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유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발생한 여러 가지 철학적, 정치적 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목은 주희의 성리학적 사상을 재조명하고, 그의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주요 배경
• 유교의 재조명: 전목은 주희의 사상이 단순히 과거의 유교적 전통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와 원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주희의 철학이 도덕적 수양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철학적 논쟁: 주희와 육구연(陸九淵) 간의 사상적 대립은 전목의 해명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희는 이성 중심의 철학을 강조한 반면, 육구연은 감정과 주관성을 중시했습니다. 전목은 이러한 두 사상의 차이를 분석하며, 주희의 철학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실천을 통합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 동아시아 유교의 발전: 전목은 주희의 사상이 대만과 한국에서 유교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강조했습니다. 주희의 철학은 교육과 정치 이념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목의 주희 해명은 주희의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도덕적 실천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중요한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공자는 만세지 사표 (孔子是萬世之師表)~ 모든 학문에 있어 스승의 표상
* 주희는 만세지 종사 (朱熹是萬世之宗師) ~ 성리학의 종파를 열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3강(2024,06,13) 강의 교안
 
*《論語》〈里仁〉
4-22. 子曰:“古者言之不出,耻躬之不逮也
옛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입에서 가볍게 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그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주석)
1) 古者 - 古人,
《朱子集注》..「言古者,以見今之不然」
 
2) 言之不出 - 不肯輕易出言, 包咸《論語章句》..「古人之言不妄出口」
3) 耻 - 羞耻于,以……爲耻
4) 躬 - 躬親、親身,親自去做
5) 逮 - 及也。不逮,不及、赶不上,
 
黄震(南宋), 《黄氏日钞》「耻者,謂言或過其行,則古之人以爲深耻也」
즉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말이 혹시라도 행동보다 앞서게(지나치게) 되면 옛사람들은 이를 깊은 수치로 여겼음을 말한다."
 
皇侃(梁), 《論語義疏》「古人不輕出言者,耻身行之不能及也」
옛 사람들은 말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몸소 행하는 것이 이르지 못 할까를 부끄러워한다.
 
邢昺(北宋), 《論語注疏》「此章明慎言躬身也」
이 장은 신중하게 말하고 몸소 행동하라는 것을 밟힌 것이다.
 
朱子(南宋), 《朱子集注》..「行不及言,可耻之甚。古者所以不出其言,爲此故也」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가히 부끄러움이 매우 심한 일이다.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부끄러움) 때문이었다."
 
 
* 【識人法5】- 李悝(BC.445-BC.395), 달리 李克,戰國 政治家、魏国丞相
《史記》〈魏世家〉「李克曰..“君不察故也。居視其所親, 富視其所與, 達視其所擧, 窮視其所不爲, 貧視其所不取, 五者足以定之矣, 何待克哉!” 文侯曰..“先生就舍, 寡人之相定矣”」에 보인다. 즉 戰國時代 초기 魏나라의 승상 李悝(克)의 「識人五法」의 일부분이다. 魏나라 文侯가 魏成子와 翟璜 두 사람 중에서 승상을 선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재주가 뛰어나서 누구를 선택할지 몰랐다. 그래서 李悝에게 선발의 기준에 대해서 문의하였고, 李悝는 5가지 인재를 구별하는 표준(識人5法)을 제시하였다. 魏나라 文侯는 이에 근거하여 최종적으로 魏成子를 승상으로 선발하였다. 「識人五法」을 요약하면 第一, 居視其所親(평상시 賢人과 함께 하는지를 살핌) ; 第二, 達視其所擧(고위직에 있을 때 어떻게 부하를 선발하는지를 살핌) ; 第三, 富視其所與(부유할 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지를 살핌) ; 第四,窮時其所不爲(곤경에 처했을 때 지조를 잃지 않고 구차한 일을 하지 않음을 살핌) ; 第五, 貧視其所不取(가난할 때 의롭지 않은 재물을 받지 않음을 살핌) 등이다.
 
 
 
* 戰國時代 李悝의 變法과 識人五法
이회(李悝)의 변법(李悝之變法)은 전국시대 초기 위(魏) 문후(文侯) 치세에, 위나라가 부국강병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한 일련의 제도 개혁으로 전해진다.
 
위나라가 문후 시기에 시행했다고 전해지는 농정(農政)의 핵심은 ‘지력을 다하게 하는 가르침’인 진지력지교(盡地力之敎)이다.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는 “李悝為魏文侯作盡地力之教”라고 하여, 이회가 위 문후를 위해 진지력지교를 마련했다고 명시한다.
정책은 토지의 생산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중농(重農)·근작(勤作)’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며, 풍흉(豊凶)의 변동이 큰 곡물 경제에서 국가가 매입·방출을 통해 가격과 생계를 완충하려는 조치가 결합해 ‘평적법(平糴法)’으로 설명되곤 한다. 다만 ‘상평창(常平倉)’이라는 명칭과 제도 정비는 한대(漢代) 기록에서 별도로 확인되는 대목이므로, 위나라의 ‘평적(平糴)’ 전승을 곧바로 한대 상평창과 동일시하는 식의 단정은 곤란하다.
 
정치·사회 영역에서는 ‘선현임능(選賢任能)’과 상벌의 분명함을 내세워, 공로 없는 귀족 특권을 제약하고 능력·공적에 기반한 관료 운용을 강화하는 방향이 전해진다. 이는 씨족·봉건적 질서의 관성 위에서 왕권과 중앙의 통제력을 높이려는 전국 초기 개혁의 전형적 지향과 맞닿아 있다.
법제(法制)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전승은 법경(法經) 편찬이다. 『진서(晉書)』 「형법지(刑法志)」는 “悝撰次諸國法,著《法經》”이라 하고, 그 구성과 취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법경은 6편으로 정리되며, 기본 골격은 도(盜)·적(賊)·수(囚)·포(捕)·잡(雜)·구(具)로 전한다. 또한 같은 대목은 “王者之政,莫急於盜賊(왕자의 정치에서 가장 급한 것은 도적을 다스리는 일이다)”라는 취지로 시작하여, 사회 질서(특히 도적·범죄) 통제와 처벌 규범의 정비를 국가 운영의 우선 과제로 놓았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상앙(商鞅)이 위에서 진(秦)으로 들어갈 때 위의 법제 경험(특히 법경 전통)이 진나라 법제에 흡수·변용 되었다는 설명은 법제사 연구와 후대 주석 전통에서도 반복된다.
이회의 변법 전승은 농정(盡地力之敎)과 법제(法經)를 축으로, 전국시대의 ‘전쟁 수행 가능한 관료국가’로의 이행을 촉진한 사례로 이해된다. 특히 법경 6편(盜·賊·囚·捕·雜·具) 전통이 후대 율령 체계 논의의 중요한 기층으로 거론되고, 진(秦) 법제에의 영향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史記》〈周本紀〉4-023
1. 聲 - 甲骨文, 원래는 매달아 놓은 종(懸磬)을 때려서 나는 소리
《說文解字》「音也。從耳殸聲。殸,籀文磬」
소리다. 귀자와 소리성이다.
 
 
1) 소리,
《詩經》〈鷄鳴〉「匪鷄則鳴,蒼蠅之聲」
닭이 우는 소리가 아니고, 파리 소리다
 
2) 음악,
《論語》〈陽貨〉「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2026. 1. 15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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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