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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09강 강의자료 요약(2026.1.8.)
2026년 1월 8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 망동정호증장승상 2. 작자 : 맹호연(孟浩然)( 689~740)
작자에 대한 정보는 407강을 참조 하세요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0강(2024,05,09) 강의 교안
* 《論語》〈里仁〉 4-20. 子曰. 三年無改於父之道,可謂孝矣
*《史記》〈周本紀〉4-023
1. 睦 - 金文
《說文解字》「目順也。从目,坴聲。一曰敬和也」
(1) 서로 융합하고 우애 있는,
《尙書》〈堯典〉「昔在帝堯,聰明文思,光宅天下。將遜于位,讓于虞舜,作《堯典》。曰若稽古,帝堯,曰放勛,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旣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于變時雍」 제350강 보충설명 참조
顔之推, 《顔氏家訓》〈兄弟〉「兄弟不睦,則子侄不愛. 子侄不爱,則群從疏薄., 群從疏薄,則僮僕爲仇敵矣。如此,則行路皆踖其面而蹈其心,誰救之哉!」 형제가 화목하지 않으면 즉 자식과 조카들이 사랑하지 않는다. 자식과 조카들이 사랑하지 않으면 4촌 6촌 조카들이 관계가 소원해지고 옅어 지고, 조카들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옅어지면 즉 남녀 종들이 원수가 된다. 이와 같이 되면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 모욕을 하고 멸시를 하게 된다. 누가 구원하겠는가?
(2) 친밀, 王粲, 〈酒賦〉「糾骨肉之睦親,成朋友之歡好」 형제 간의 친목 함을 바로잡고 친구 간의 우호 교류를 촉진한다.
(3) 공경하는 모양, 穆과 통용, 《史記》〈司馬相如列傳〉(封禪頌)「般般之獸,樂我君囿;白質黑章,其儀可喜;旼旼睦睦,君子之能。蓋聞其聲, 今觀其來, 厥涂靡踪, 天瑞之征。兹亦于舜, 虞氏以興, 濯濯之麟, 游彼靈疇。孟冬十月, 君俎郊祀, 馳我君輿, 帝以享祉」 상서로운 짐승이 우리 군주의 동산에서 즐겁게 뛰놀고, 흰 바탕에 검은 무늬는 그 모양이 좋아 보인다. 온화하고 공경하는 모습은 군주의 재능을 갖고 있고, 대개 그 소리를 듣고 지금 오는 것을 보니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하늘의 상서로운 장조 이것은 또한 순의 시기에 흥하면서 빛나는 기린이구나. 저 신성한 동산에서 놀고 있구나. 겨울 십 월에 군주가 교외에서 제수 품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고 우리 군주의 수레를 모니 천제가 복을 내려 주셨다.
* 이 도표는 고대 중국의 예제(禮制)에서 신분에 따라 누가 어떤 대상에게, 어떤 방식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는가를 정리한 것이다. 제사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우주 질서와 정치·사회 질서를 동시에 반영하는 제도였다.
1. 황제(皇帝)의 제사 황제는 천하의 유일한 주재자로서 천·지·인 전체에 대한 제사 권한을 가진다. • 하지(夏至)에는 북교(北郊)에서 땅의 신에게 제사하고 • 동지(冬至)에는 남교(南郊)에서 하늘의 신에게 제사한다.
2. 제후(諸侯)의 제사 제후는 황제보다 한 단계 낮은 통치자로서, 제사의 대상이 제한된다. • 산천(山川), 즉 자연신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고 • 사람의 혼령(人鬼), 곧 역사적 인물이나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제후의 제사는 영토 통치권과 지역 질서의 정당성을 나타낸다.
3. 경·대부·사(卿·大夫·士) 및 서민(庶人) 의 제사 이 계층은 조상신(祖上神)과 가신(예: 蕭, 灶王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 제사의 예물, 1) 고기 제물 2) 반찬 3) 햇곡식을 올린다. 이는 가문 윤리와 생활 질서를 중심으로 한 사적 제사권을 의미한다.
* 유교 예제의 신분별 제사 규범 체계 1. 제사 권한의 신분적 위계 유교 예서는 제사 대상과 범위를 신분에 따라 엄격히 구분했다. 《예기·왕제(禮記·王制)》에 따르면 천자(天子)는 천지(天地)를 제사할 수 있고, 제후(諸侯)는 사직(社稷)을, 대부(大夫)는 오사(五祀)를 제사하는 것으로 권한이 나뉜다. 이는 제사권이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신분질서를 구현하는 제도적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2. 종묘 규모의 신분별 차등 조상 제사를 지내는 종묘(宗廟)의 규모 역시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천자는 칠묘(七廟)로 삼소삼목(三昭三穆)에 태조(太祖)를 더한 구조를 갖추고, 제후는 오묘(五廟)로 이소이목(二昭二穆)에 태조를 합친다. 대부는 삼묘(三廟)로 일소일목(一昭一穆)과 태조를, 사(士)는 일묘(一廟)만을 허용받는다. 서인(庶人)은 아예 정식 묘를 세울 수 없고 침(寢), 즉 거처에서 제사를 지낼 뿐이다. 이 차등은 조상에 대한 기억의 깊이와 범위조차 신분에 따라 규제했음을 의미한다. 3. 사시제(四時祭)의 명칭 천자와 제후의 종묘 제사는 사계절로 정례화되었으며, 《예기·왕제》는 그 명칭을 봄 약(禴), 여름 체(禘), 가을 상(嘗), 겨울 증(烝)으로 제시한다. 이는 시간의 순환에 따라 조상 제사를 반복함으로써 종법질서를 확인하는 의례적 리듬을 만들어냈다. 4. 명산대천 제사의 공간적 경계 천자는 천하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제사할 수 있으며, 오악(五岳)은 삼공(三公)에, 사독(四瀆)은 제후에 견주는 격으로 대우한다. 반면 제후는 자기 봉지(封地) 안에 있는 명산대천만을 제사할 수 있다. 이는 제사 공간이 정치적 관할권과 일치하며, 봉지를 넘어선 제사는 월권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다. 5. 오사(五祀)의 신분별 배분 오사는 가정과 국가의 일상적 공간을 수호하는 신들에 대한 제사로, 《예기·제법(禮記·祭法)》은 이를 신분에 따라 차등 배분한다. 왕(王)은 칠사(七祀)를, 제후는 오사(五祀)를, 대부는 삼사(三祀)를, 적사(適士)는 이사(二祀)를, 서사와 서인(庶士·庶人)은 일사(一祀)만을 세운다. 오사의 구체적 대상은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어 《월령(月令)》 계열은 문(門)·행(行)·호(戶)·조(竈)·중류(中霤)를 들고, 다른 전통에서는 정(井)이 포함되거나 행이 빠지기도 한다. 오사의 존재와 위상은 확실하나 정확히 어떤 다섯 가지인가는 문헌에 따라 달라진다. 6, 서인 제사의 제약 서인은 정식 사당인 묘(廟)를 세울 수 없고 침(寢), 즉 생활 공간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점이 《예기·왕제》에 명시되어 있다. 이는 서인에게 조상 제사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제사 공간의 격을 낮춤으로써 신분적 차이를 공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7. 남교·북교 제사의 원칙과 유보 《예기·교특생(禮記·郊特牲)》은 교제(郊祭)가 남교(南郊)에서 양(陽)의 자리에 따라 긴 낮이 오는 때를 맞이하여 하늘에 보답하는 의례라고 설명한다. 동지에 남교에서 제천(祭天)하고 하지에 북교에서 제지(祭地)한다는 도식이 전해지나, 실제로는 교사일(郊祀日)을 신일(辛日)로 잡는다는 등 날짜와 절차에 대한 논쟁이 있어 단선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8. 제사 정당성의 윤리적 기준 《논어(論語)》는 “자기 귀신이 아닌데 제사하면 아첨이다(非其鬼而祭之 諂也).“라고 하여, 제사의 정당성이 제사 주체와 대상 사이의 정당한 소속·관계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제사가 단순한 종교적 숭배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신분적 질서를 확인하는 윤리적 실천이었음을 보여주는 핵심 원칙이다.
* 厥涂靡踪 ~ 궐도미종’(厥涂靡踪)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중 하나인 《상서(尙書)》, 그 중에서도 〈하서(夏書) 우공(禹貢)〉 편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출전 및 의미 • 출전: 《상서(尙書)》 〈우공(禹貢)〉 • 원문 맥락: "厥土惟塗泥, 厥田惟下下, 厥賦惟上上錯, 厥篚織貝, 厥篚織文... 厥涂靡踪" (대략적인 맥락) • 직역과 비유: * 궐(厥): 그, 그것 (지시대명사) o 도(涂/途): 길, 경로 o 미(靡): 없다, 아니다 o 종(踪): 자취, 흔적 o 즉, "그 길에 흔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2. 문헌 속의 배경 《상서》의 〈우공〉 편은 고대 중국의 성군인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뒤, 전국의 지형을 9개 주(九州)로 나누어 각 지역의 토질, 조세, 공물 등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지역이나 물자의 이동 경로를 설명할 때, "길이 험하거나 자취가 끊겨 알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어떤 사건의 경위나 사람의 행방이 묘연할 때 비유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 원구단(圜丘壇)은 황제가 하늘(상제)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제단을 말합니다. 1. 한자 풀이 ① 원 (圜): 1) 두를 환(동사) 2) 둥글 원(명사) ~명사일 경우 하늘 천체를 의미함 뜻: '둥글다', '둘러싸다', '돌다'라는 뜻입니다. 상징: 하늘(天)을 상징합니다. 동양 철학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하여 둥글게 지었습니다. ② 구 (丘): 언덕 구 뜻: '언덕', '높은 땅'을 뜻합니다. 상징: 평지보다 높게 솟은 곳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사는 땅에서 가장 높은 곳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하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제사를 올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③ 단 (壇): 제터 단 뜻: 제사를 지내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게 쌓아 올린 터를 말합니다. 상징: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구별된 공간을 의미합니다.
2. 종합적인 의미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圜) 모양으로, 언덕(丘)처럼 높게 쌓아 올린 제단(壇)" 고대 예법에 따르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오직 천자(황제)만의 고유 권한이었습니다. (제후국인 왕은 땅과 조상에게만 제사 지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고종이 1897년 원구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은 조선이 더 이상 중국의 제후국이 아니라 '자주적인 황제국(대한제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4) 복종하다, 《左傳》僖公二十二年「富辰言于王曰:請召大叔。《詩》曰:協比其隣,昏姻孔云。吾兄弟之不協,焉能怨諸侯之不睦? 王說。王子帶自齊夏歸于京師,王召之也。邾人以須句故出師。公卑邾,不設備而御之。臧文仲曰:國無小,不可易也。無備,雖衆不可恃也。《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又曰:敬之敬之,天惟顯思,命不易哉! 先王之明德,猶無不難也,無不惧也,况我小國乎!君其無謂邾小。」 부진이 양왕에게 말했다. 제 나라에 도망가 있는 이복동생 대숙을 부르세요. 시경이 말하길 이웃 나라와 화목하고 혼인으로 화해하세요. 내 형제와 화목하지 않는데 제후와 화목 하지 않음을 어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왕자 대가 제 나라 하천으로 부터 수도로 돌아오도록 불렀다. 주나라 사람들이 수구 ( 제후국)때문에 군대를 보냈다. 노나라 시공이 주나라를 우습게 보고 전쟁 준비를 위한 방어를 하지 않았다. 노나라 대부 장문중이 말하기를 나라가 비록 작아도 쉽게 엎을 수 없다. 준비 안되 있으면 비록 숫자가 많아도 믿을 수가 없다. 또 시경에 말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듯이, 또 얕은 얼음을 밟듯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또 이르기를 신중해라 하늘은 사리가 밟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다. 선왕의 명덕은 곤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음도 없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같은 작은 나라는 말할 것도 없지 않나, 그래서 주나라가 작다고 일컫지 마라
*주나라: 왕자 대의 난(王子帶之亂)사건은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제후국인 진(晉)나라 문공이 패자(覇者)로 등극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 배경: 혜왕의 편애 (17대 혜왕 시절) • 주 혜왕(惠王)은 정실 왕후가 낳은 태자 '정(鄭, 훗날 양왕)'보다, 후궁인 혜후(惠后)가 낳은 작은 아들 '왕자 대(帶, 숙대)'를 훨씬 총애했습니다. • 혜왕은 태자를 폐하고 왕자 대를 세우려 했으나, 제나라 환공 등 제후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2. 1차 반란과 도주 (제나라로 도망간 사람은 '왕자 대') • 혜왕이 죽고 18대 양왕(襄王)이 즉위했습니다. • 형이 왕이 된 것에 불만을 품은 왕자 대는 융족(戎人) 등을 끌어들여 반란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 이때 왕자 대는 제(齊)나라로 도망을 쳤습니다. ( 왕자 대의 1차 도주) • 후에 양왕은 형제의 정을 생각하여 왕자 대를 용서하고 다시 주나라 도성으로 불러들였습니다.
3. 2차 반란: 융족(戎人)의 침입과 양왕의 피난 • 기원전 636년, 돌아온 왕자 대는 개과천선하지 않고 다시 적적(狄籍/융족)과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 왕자 대는 융족의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공격했고, 스스로 왕을 칭했습니다. • 주 양왕은 반란군을 피해 도성(낙양)을 버리고 정(鄭)나라의 범(泛)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천자가 오랑캐와 동생에게 쫓겨난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4. 진 문공(晉 文公)의 토벌과 '존왕양이' • 피난 간 양왕은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 이때, 긴 유랑 생활 끝에 막 즉위한 진(晉)나라 문공(중이)이 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그는 "천자를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존왕양이)"는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 기원전 635년, 진 문공은 군대를 이끌고 주나라로 진격하여 왕자 대와 융족을 토벌하고, 왕자 대를 처형했습니다. • 진 문공은 양왕을 다시 도성으로 모셨고, 이 공로로 주나라 왕실로부터 하내(河內) 등의 땅을 하사 받으며 춘추오패의 두 번째 패자로 공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약 정리 1. 17대 혜왕: 태자(양왕)보다 동생(왕자 대)을 더 사랑하여 갈등의 씨앗을 뿌림. 2. 18대 양왕 즉위: 동생 왕자 대가 불만을 품음. 3. 1차 사건: 왕자 대가 반란 모의 실패 후 제(齊)나라로 도망 (후에 양왕이 용서하고 부름). 4. 2차 사건 (본격적인 난): 왕자 대가 융족(戎人)을 끌어들여 왕궁 점령. 양왕은 정(鄭)나라로 피난. 5. 결말: 진 문공(晉 文公)이 군사를 일으켜 왕자 대를 죽이고 양왕을 복위시킴.
* 선왕 ~ 요, 순, 우, 탕왕 문왕, 무왕, (주공) * 선군 ~ 1) 선왕 2) 제후국 군주 * 선현 ~ 성인 밑의 12철 * 성현 ~ 유가 6육성 중 일찍 죽은 복성을 제외한 5명임
* 주공을 원성이라고 한 이유 1. 제천 시 상제 위패 옆에 고공단부(증조), 계력(조부) 문왕(부)의 위폐를 모셨다. 2. 공자가 이 위폐를 모신 것을 보고 극효라고 칭찬했다.
* 중국과 한국의 문묘(文廟)에 인물을 모시는 기준. 1. 공통적인 선발 기준 기본적으로 문묘에 모셔 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 도학(道學): 유교의 정통 경전과 주자학적 원리에 정통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거나 계승한 업적. • 덕행(德行): 평생 유교적 가치(충, 효, 예)를 몸소 실천하여 타의 모범이 된 도덕성. • 공로(功勞): 유교 사상을 전파하거나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업적.
2. 한국(조선)의 선발 기준과 특징 한국은 중국보다 종사 기준이 훨씬 엄격하고 보수적이었습니다. • 정통 성리학 중시: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를 자처했기에, 주자학 이외의 학설(양명학 등)을 주장한 인물은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 도덕적 절개와 충절: '해동 18현'으로 불리는 한국의 성현들을 선발할 때는 학문뿐만 아니라, 난세에 보여준 충절(忠節)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예: 정몽주) • 사림의 공론과 국왕의 승인: 사림(선비들) 사이에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 끊임없는 상소가 올라오고, '공론(公論)'이 형성되어야만 국왕이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지식인 사회의 합의가 필수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3. 중국의 선발 기준과 특징 중국은 왕조의 교체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종사 범위가 한국보다 유연하고 넓었습니다. • 시대별 확장: 한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을 폭넓게 수용했습니다. 한때는 160명이 넘는 인물이 모셔 지기도 했습니다. • 다양한 학맥 인정: 송대 성리 학자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왕수인(양명학)처럼 학문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도 시대에 따라 문묘에 포함되었습니다. (단, 조선은 이들을 인정하지 않아 우리 문묘에는 모시지 않았습니다.) • 정치적 영향: 황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특정 학파를 밀어주거나 배제하는 등 정치적 의도가 한국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4. 핵심 차이점 비교 구분 한국 (동방 18현) 중국 인원 18명으로 매우 한정적 시대별로 변동, 훨씬 대규모 성향 원칙과 절개, 주자학 일변도 학문적 성과 위주, 비교적 포용적 기준 "학문과 삶이 일치하는가?" "독창성이 있는가?"
* 한국 문묘에 모신 동방18현 명단 한국의 문묘(文廟)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문묘에 함께 모셔진 18분의 선비를 '동방18현(東方十八賢)'이라 부릅니다.
1. 신라 시대 (2분) • 설총 (薛聰): 이두를 정리하여 유교 경선을 풀이함. • 최치원 (崔致遠):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천재 문장가.
2. 고려 시대 (2분) • 안향 (安珦):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으로 도입함. • 정몽주 (鄭夢周):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자 '동방 이학(理學)의 조종'.
3. 조선 시대 (14분) 조선 시대는 성리학이 국가의 근본 이념이었던 만큼 가장 많은 현인이 배출되었습니다.
1. 김괴산(김굉필) 한훤당 - 조광조의 스승, 도학의 실천 강조 2. 정여창 일두 - 실천적 유학자 3. 조광조 정암 - 도학 정치와 개혁을 꿈꾼 인물 4. 이언적 회재 - 영남학파의 선구자 5. 이황 퇴계 - 주자학을 집대성한 '동방의 주자' 6. 김인후 하서 - 인종의 스승, 도덕과 문장에 능함 7. 이이 율곡 - 기호학파의 거두, 현실 개혁론 제시 8. 성혼 우계 - 이이와 함께 기호학을 이끈 인물 9. 김장생 사계 - 조선 예학(禮學)의 대성자 10. 조헌 중봉 -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강직한 선비 11. 김집 신독재 - 김장생의 아들로 예학을 계승 12. 송시열 우암 -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 13. 송준길 동춘당 - 송시열과 함께 예학에 정통 14. 박세채 남계 - 탕평책을 주장하고 예론을 정리
- 문묘 배향의 의미 문묘에 모셔진다는 것은 단순히 공부를 잘했다는 의미를 넘어, 학문적 성취와 실천을 겸비하여 후세의 귀감이 됨을 국가적으로 공인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균관과 전국 각지의 향교에서는 매년 봄, 가을로 이분들을 기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5) 조화하다, 左思, 〈魏都賦〉「以娛四夷之君,以睦八荒之俗」 사방의 이방인(외국)의 군주들을 즐겁게 하고, "팔방의 풍속을 화목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이는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풍속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 八荒 ~ 이는 '사방(四方)과 사우(四隅)의 아주 먼 변두리 지역', 즉 '천하 전체' 또는 '세상 끝의 모든 나라'를 의미합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중심지를 제외한 아주 먼 외곽 지역을 팔황(八荒)이라 칭했습니다.
(6) 隋나라 시기 설치한 州, 韓愈, 〈曹成王碑〉「道古進士,司門郎,刺利、隨、唐、睦」 ; 이도고라는 사람이 진사가 되었고, 사문 즉 물품 반입과 세금징수를 관리하는 사문의 책임자가 되었고, 이주 수주 당주 목주의 자사가 되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51강(2024,05,16) 강의 교안
* 《論語》〈里仁〉 4-21. 父母之年,不可不知也。一則以喜,一則以懼。
(주석) 1) 年 - 나이(幾歲, 多大, 年齡, 年歲, 年數, 年事, 年景, 年紀, 春秋, 貴庚)
* 중국의 나이 관련 표현의 분류와 용법 정리 1. 직접적 나이 표현 가. 년령(年齡) 나이를 가리키는 가장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표현이다. 사전에서 세수(歲數)로 풀이되며, 한 사람의 나이를 직접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한다. 나. 년기(年紀) 년령(年齡)과 동의어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문헌 예문에서도 나이의 의미로 확인된다.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는 나이 표현이다. 다. 기세(幾歲) 나이를 묻는 직접적 의문 표현이다. “년기다대(年紀多大, 나이가 얼마냐)“로 풀이되며, “문기세료(問幾歲了, 몇 살이냐고 묻다)“처럼 나이를 질문할 때 사용한다. 라. 세수(歲數) 나이를 뜻하는 기본적 표현이다. “다대세수(多大歲數)“처럼 나이를 묻는 문맥에서 자주 결합되어 쓰인다.
2. 복합적·문맥 의존형 표현 가. 년세(年歲) 사전의 첫째 뜻이 “년령, 년기(年齡、年紀, 나이)“로 제시되며, “년세수고(年歲雖高, 나이가 비록 많으나)” 등 고령을 말하는 문맥에 쓰인다. 다만 ‘농작물의 세수(歲收, 수확) 상황’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므로, 문맥에 따라 나이가 아닐 수 있다. 나. 년사(年事) “년사이고(年事已高, 한 사람의 세수가 이미 매우 많다)“처럼 고령을 나타내는 고정 표현에서 결합되어 쓰인다. 특히 높은 나이를 말하는 문맥에서 사용된다는 점이 확인된다. 다. 춘추(春秋) 본래 여러 뜻을 가지나, 사전에서 년령(年齡)의 뜻을 분명히 올리고 “춘추정부(春秋正富)“를 예로 든다. 문어적 맥락에서 나이를 가리키는 우아한 표현으로 쓰인다. 라. 년수(年數) 사전에서 ‘해의 수(年的數目)’, ‘수년(數年、多年)’, 그리고 ’년령, 세수(年齡、歲數, 나이)’의 뜻이 함께 제시된다. 맥락에 따라 기간을 뜻하기도 하고 나이를 뜻하기도 하는 다의적 표현이다.
3. 경칭 표현 가. 귀경(貴庚) 타인의 년령(年齡)을 묻는 경사(敬詞, 경칭)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청문령매금년귀경(請問令妹今年貴庚, 따님의 금년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등 상대의 나이를 정중히 물을 때 사용하는 존칭 표현이다.
4. 간접 표현 가. 다대(多大) 본래 크기를 묻는 말이나, “니금년다대세수료(你今年多大歲數了, 올해 나이가 얼마나 되느냐)“처럼 세수(歲數)와 결합하여 나이를 묻는 용법으로 확장되었다. 단독으로는 나이를 뜻하지 않으나, 나이 관련 어휘와 함께 쓰일 때 나이를 묻는 표현이 된다. 나. 년경(年景) 사전에서 ‘과년적경상(過年的景象, 설·명절의 분위기)’ 또는 ‘농작물적세수상황(農作物的歲收狀況, 한 해 농사의 수확 형편)’ 등으로 풀이되어 있다. 나이를 직접 나타내는 말로 단정할 수 없으며, 기본 뜻은 그 해의 형편이나 경기, 수확 상태에 있다.
(2) 一 - 한편으로, 一方面 (3) 喜 - 건강 장수로 기뻐하고 (4) 懼 - 늙고 쇠약함을 두려워하다
* 이단
* 性理學의 주요도서 소개 (先正, 宋朝6賢(北宋5子+南宋朱子), 呂祖謙, 眞德秀-제352강에서)
(1) 《近思錄》은 朱熹(南宋)와 呂祖謙(南宋)이 儒學思想의 체계를 저술한 서적이다. 近思라는 명칭은 《論語》〈子張〉「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에서 취했다. 주요 내용은 우주 생성의 本體로부터 人格理想과 道德境界의 명제는 물론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및 고대 聖王의 禮法制度와 異端에 대한 비판 등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서술하였다. 특히 이 책은 北宋 5子(周敦頤, 邵雍, 張載, 程顥, 程頤)와 朱呂 학파의 주체가 되었고, 儒學의 道統과 理學思想 전파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2) 《家禮》는 朱熹(南宋)의 禮學에 관한 저술이다. 달리 《朱子家禮》라고 일컫는다. 내용은 通禮와 冠禮, 婚禮, 喪禮, 祭禮의 5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喪禮는 초년의 부친상을 당한 뒤부터 정리하기 시작하였고, 중년에 모친상을 겪으면서 사리에 맞고 실제로 행하기 쉬운 예의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작성하였다고 한다. 《家禮》의 내용은 모두 당시 사회의 풍속을 근거로 하고 고금의 家禮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3) 《心經》은 宋나라 眞德秀(南宋)(1178-1235)가 성현들의 마음에 관한 격언들을 모으고 여러 유학자들의 핵심적인 議論을 채집하여서 주석을 단 것이다. 주요내용은 正心을 근본으로 하였다.
(4) 《二程全書》는 程顥(南宋)와 程頤(南宋)가 저술한 철학 저서이다. 구성은 《二程遺書》25卷, 附錄1卷(行狀), 《二程外書》12卷, 《明道先生文集》5卷, 《伊川先生文集》8卷, 《伊川易傳》4卷, 《程氏經說》8卷, 《二程粹言》2卷을 포함한다. 주요 내용은 첫째, 宇宙觀은 理를 세계 만물의 本体, 自然界의 최고 원칙, 社會의 최고 원칙으로 여겼다. 즉 天地萬物一體之仁, 物我合一, 天人合一을 주장하였다. 둘째, 認識論은 格物, 致知를 제창하고 天理를 인식하고, 內心의 도덕수양으로 誠과 敬을 주장하였다. 셋째, 人性論은 性善과 性即理, 禮即天理 등을 주장하였다.
(5) 《朱子大全》은 朱熹(南宋)(1130-1200)의 작품집이다. 정식 명칭은 《晦庵先生朱文公文集》이고 달리 《朱文公文集》, 《朱子大全》, 《晦庵集》, 《朱子大全文集》, 《朱子文集大全》, 《朱子文集》 등으로 일컫는다. 구성은 《朱文公文集》100卷, 《續集》 11卷, 《别集》10卷으로 이루어졌다. 《朱文公文集》100卷은 아들 朱在(南宋)가 편집하였고, 《别集》은 余師魯(南宋)가 편집하였으며, 《續集》은 누가 편집했는지 알 수 없다. 주요 내용은 朱熹의 詩, 奏稿, 書札, 論文 등으로 朱熹의 理學에 대한 관점과 정치사상 등이 수록되었다.
(6) 語類(어류)-《語類》의 정식 명칭은 《朱子語類大全》이다. 朱熹 사후에 黎靖德(南宋)이 朱熹와 제자들이 문답한 語錄(제자 97명, 그 중에서 無名氏 4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26개 항목 140권으로 편찬되었다. 度宗(南宋) 咸淳六年(1270)에 발간된 것이 현재 통용본이다. 주요 내용은 구어체로 기록되었고, 經典에 관하여 담론한 것, 사물에 대한 論說과 이치를 밝히는 내용 등이 있다. 이 책은 朱子學派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익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026.1.8. 주정봉 강의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