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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04강 강의자료 요약(2025.11.20.)
2025년 11월 20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제목 : 송두소부지임촉주서변사 2. 작자 : 왕발(王勃) (650~676) 왕발은 중국 당나라 초기의 저명한 시인으로, 자는 자안(子安)이다. 그는 현재의 산서성(山西省) 직산현(稷山縣)에서 태어났으며, 수나라 말기의 유학자 왕통(王通)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왕발은 초당(初唐) 사걸(四傑) 중 한 명으로,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鄰), 낙빈왕(駱賓王)과 함께 당나라 초기 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생애와 업적 왕발은 6세에 이미 문장을 잘 썼고, 17세에는 과거에 급제하여 조산랑(朝散郎)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일찍이 인정 받았으나, 젊은 시절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고종(高宗)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四川) 지방으로 방랑하게 되었고, 결국 그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중 배에서 떨어져 익사하게 된다. 왕발의 시는 주로 5언 절구(五言絶句) 형식으로 쓰였으며, 그의 대표작인 '등왕각서(滕王閣序)'는 중국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왕발이 남창(南昌)의 등왕각에서 친구를 보내며 쓴 것으로, 그 시작 구절은 특히 유명하다. 이 작품은 왕발의 문학적 재능을 잘 보여주며, 그의 시적 감성과 철학적 깊이를 드러낸다.
- 문학적 특징 왕발의 시는 전통적인 육조시(六朝詩)의 형식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서를 담고 있다. 그는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그의 작품은 후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왕발은 특히 감정의 표현이 뛰어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시를 남겼다.
- 주요 작품 등왕각서(滕王閣序): 왕발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친구를 보내며 쓴 시로, 그 시작 구절이 특히 유명하다. 送杜少府之任蜀州: 이 시는 왕발이 친구의 임명을 축하하며 쓴 것으로, "해내에 친구가 있으면 천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것과 같다"는 구절이 유명하다.
왕발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80여 편의 시와 90여 편의 문장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의 문학적 유산은 당나라 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6강(2024,04,11) 강의 교안
* 義利之辨 1) 孔子(春秋) ~ 見利思義
2) 孟子(戰國) ~ 何必曰利 *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의미
3) 荀子(戰國) - 荀子는 義를 먼저 추구하고 利는 나중에 추구하라는 주장을 하였다. 《荀子》〈榮辱〉「先義而後利者榮, 先利而後義者辱」에 나온다. 즉 義와 利를 이분법으로 나누고 先義後利를 주장하였다.
* 순자 (BC 310년경 ~ BC 238년경 이후)
- 순자(荀子)와 그의 사상 순자(荀子)는 중국 전국시대 후기의 유가(儒家) 사상가로, 이름은 화(況)이며, 그의 자는 경(卿)입니다. 그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이후 고대 유학의 세 번째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되며, 특히 성악설(性惡說)과 예치(禮治) 사상을 통해 유가 사상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 주요 사상: 성악설(性惡說)과 화성기위(化性起偽) 순자 사상의 가장 특징적이고 유명한 부분은 인간의 본성(性)에 대한 주장입니다.
성악설 (性惡說) : 순자는 인간이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악'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욕구, 본능적인 충동(예: 이 익을 추구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마음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본성 대로 행동하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다툼과 혼란(투쟁)이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화성기위 (化性起偽) : 인간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는 악한 본성을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교육과 수양이 필수적이며, 인위적인 노력(위, 偽)을 통해 선(善)을 일으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본성을 변화시키는 수단이자 핵심이 바로 예(禮)입니다.
- 천론(天論) 순자는 하늘(天)에 대해 당시의 주술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 나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는 합리주의적 관점을 취했습니다. 천(天)은 자연 : 하늘은 인간의 길흉화복에 개입하거나 어떤 의지를 가진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며, 단지 일식, 월식 등 자연 현상을 일으키는 자연물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주체성 :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노력과 행위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며,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영향 순자는 유가 사상의 거두로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의 제자 중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는 훗날 강력한 법가(法家) 사상가로 성장 하여, 순자 사상이 법가 사상의 연원이 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송 나라 시대 성리학이 맹자의 성선설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순자의 성악설은 이단으로 취급 받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그의 현실적인 정치 사상과 체계적인 유가 철학이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직하학파(稷下學派)와 직하학궁(稷下學宮) 직하 학파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중 후기에 제(齊)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에 설치된 국립 학문 기관인 직하학궁 (稷下學宮)에서 활동한 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적 경향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직하 학궁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실 부설 정책 연구원이자 최고의 학술 중심지로 평가받습니다.
1. 직하학궁의 유래와 위치 명칭 : 제나라 도성 임치성(臨淄城)의 서쪽에 있던 성문 이름이 직문(稷門)이었는데, 이 문 아래(下)에 학자들의 거주 지와 강학 장소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직하(稷下)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참고 : '직(稷)'은 농업의 신인 후직(后稷)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습니다.
설립 목적 : 전씨(田氏)가 강씨(姜氏)를 몰아내고 제 나라의 권력을 찬탈하면서,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부국 강병(富國強兵)을 달성하기 위한 지식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2. 백가쟁명의 중심지 전국시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가장 활발한 무대였습니다.
학파의 다양성 : 유가, 도가, 법가, 묵가, 음양가, 명가 등 당시의 모든 주요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자유 롭게 자신의 사상을 펼치고 서로 토론했습니다. 대표적 인물: 유가 : 맹자(孟子), 순자(荀子)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제 선왕과 교류했습니다. 도가/황노학 : 전변, 신도, 팽몽 등 (직하학궁은 초기에 황노학 사상을 중심으로 학술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음양가 : 추연(鄒衍)
규모와 위상 : 제 선왕(宣王) 시절 전성기를 맞았으며, 학궁에 모인 학자가 천 여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들은 고위직(상대부)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으며, 국군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자유롭게 비판하고 정책을 건의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학궁의 최고 책임자는 좨주(祭酒)라고 불렸습니다.
3. 직하학파의 특징과 영향 직하학궁에서 활동한 학자들의 사상을 통틀어 직하학(稷下學) 또는 직하학파라고 합니다. 사상의 통합과 융합 : 다양한 학파가 모여 서로 경쟁하고 비판하면서, 학문이 상호 융합하고 통합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제 나라의 정치 이념인 황노학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책적 영향 : 학자들은 직접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보다는 통치자의 자문과 방책 건의등 정책 연구와 학술 활동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제 나라의 강력한 국력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저술의 생산 : 《관자(管子)》는 직하학자들의 사상과 학설을 선별하여 엮은 것으로 추정되며, 직하 학파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직하 학궁은 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침공으로 잠시 쇠퇴했다가 다시 복구되기도 했으나, 제나라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직하 학궁은 이후 여러 국가에서 식객단이나 학술 기관을 운영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고대 사상의 황금시대를 이끈 중요한 학문적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삼진지학 (三晋之學)이란? 삼진지학(三晋之學)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유가 사상 중 하나로, 주로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에서 발전하였습니다. 이 학문은 유교의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하여, 법치와 현실 정치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삼진지학의 배경 삼진지학은 원래 진(晋)나라에서 시작된 유가 사상의 변형으로, 진나라가 세 분으로 나뉘면서 각 나라에서 독자적인 유교적 해석과 실천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가 사상은 법과 현실 정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자하(子夏)라는 인물이 삼진지학의 중요한 창시자로 여겨지며, 그는 유교의 교리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주요 특징 • 법치주의 : 삼진지학은 법을 중시하며, 법을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유교의 도덕적 이상과는 대조적입니다. 법가 사상과의 연관성도 강하게 나타나며, 법을 통해 군주 권력을 강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강조됩니다. • 현실 정치 : 삼진지학은 이상적인 도덕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정치적 필요에 따라 유교의 원칙을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사상적 융합 : 삼진지학은 다양한 사상과 학파들이 서로 논쟁하고 융합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이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와 같은 다양한 철학적 흐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결론 삼진지학은 유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법치와 현실 정치에 중점을 두어 발전한 사상입니다. 이는 당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유교의 교리를 재해석하고 적용한 결과로, 삼진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삼진지학이 단순한 이론적 사상이 아니라, 실제 정치와 사회 운영에 깊이 관여한 사상임을 보여줍니다.
* 유가(儒家)의 사걸 공자 사후, 유가 학파는 주로 다음 네 명의 제자로부터 유래한 학파들로 나뉘어 발전했습니다. 직하학파는 이 분파들의 사상이 혼합되거나 특정한 분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습니다.
1) 자하 (子夏, 복상 卜商) - 문학(文學) 계열 특징 : 문헌과 경전 연구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경(詩經)》, 《춘추(春秋)》 등의 해석에 능했습니다. 사상 : 엄격한 예(禮)의 준수와 실제적 통치술을 강조했으며, 이후 위(魏)나라 지역에서 활동하며 법가(法家) 사상의 일부에 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향 : 서하학파(西河學派)를 형성했으며, 순자(荀子)의 사상에 문헌학적 토대를 제공하여 직하학파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2) 증자 (曾子, 증삼 曾參) - 효(孝)와 성(誠) 계열 특징 : 효(孝)와 신(信), 성(誠)을 중시하며, 도덕적 실천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공자의 사상을 "일이관지(一以貫之)" 즉, 충서(忠恕)로 해석하며 내면 수양에 집중했습니다. 사상 :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통치가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공자 사상의 정통 후계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영향 : 자사(子思)에게 학통을 전하여 맹자(孟子)로 이어지는 성선설 계열의 성(性)과 천(天)에 대한 학설의 기 틀을 마련했습니다.
3) 자장 (子張, 전사 顓孫師) - 위업(偉業)과 현명(顯名) 계열 특징 : 위대한 일(偉業)을 이루어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는 현명(顯名)을 중시했습니다. 사상 : 인(仁)을 도덕적 실천으로 한정하기보다 사회적 명예나 정치적 성공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영향 : 공부지묘(孔府之廟)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사상적으로는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4) 자유 (子游, 언언 言偃) - 예악(禮樂) 계열 특징 : 예(禮)와 악(樂)을 통한 문화적 교화와 정치적 안정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상 : 작은 일에도 예법을 적용하여 백성들을 덕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문화를 통한 통치를 강조했습니다. 영향 : 강남 지역의 유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문화와 예술을 중시하는 유가 학자들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2. 직하학파(稷下學派)와 이들의 관계 직하학파는 제나라가 전국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맡긴 기관인 직하학궁에서 형성된 학파입니다. 특징 : 이들은 특정 분파에만 얽매이지 않고, 유가, 도가, 음양가, 명가 등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계승: 순자(荀子)와 같은 직하학파의 거두는 자하 계열의 경전 연구와 예(禮)에 대한 강조를 계승하면서도, 법가 사상의 합리적인 통치술을 결합하여 독자적인 법가적 유가 사상(성악설)을 발전시켰습니다. 직하학파 중 맹자(孟子)와 같은 인물은 증자 계열의 학통을 이어받아 성선설을 중심으로 도덕적인 통치(왕도 정치)를 강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직하학설은 이 네 제자들의 사상을 개별적으로 연구한 학파라기보다는, 이들의 학문적 유산과 논쟁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사상을 융합하고 국가의 부국강병을 논한 학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董仲舒(西漢) - 董仲舒는 孔子와 孟子의 사상을 계승하였고 義와 利에 관해서 전면적으로 서술하였다. 《春秋繁露》〈身之養莫重于義〉「天之生人也, 使人生義與利。利以養其體, 義以養其心。心不得義不能樂, 體不得利不能安。 義者, 心之養也., 利者, 體之養也。 體莫貴于心., 故養莫重于義」 즉 하늘이 사람을 낳고 아울러 사람으로 하여금 義와 利의 생각도 가지게 하였다. 利는 사람의 신체를 유지하는데 사용하였고 義는 사람의 마음을 수양하는데 사용 하였다. 마음에 義가 없으면 쾌락을 말할 수 없고 신체가 利를 얻지 못하면 편안함을 말할 수 없다. 義는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고 利는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신체는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서 그런 까닭에 마음을 수양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5) 陸九淵(南宋) 《宋史》〈陸九淵傳〉所收〈白鹿洞書院講義〉「人之所喻, 由其所習., 所習, 由其所志。 志乎義, 則所習者必在于義., 所習在義, 斯喻于義矣。志乎利, 則所習者必在于利., 所習在利, 斯喻于利矣」 즉 사람들이 명백히 깨닫고 있는 사물의 이치는 사람들이 학습한 내용에 의하여 결정되고, 학습한 내용은 또 그 사람의 意志에 의하여 결정된다. 만약 의지가 道義를 추구한다면 그 사람이 학습한 내용은 道義에 부합할 것이고, 그 사람이 학습한 내용이 道義에 부합하면 그 사람은 道義에 대해서 분명히 알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의지가 利慾을 추구하는데 있다면 그 사람의 학습한 내용은 반드시 利慾에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학습한 내용이 利慾에 있으면 그 사람은 利慾에 대해서 분명히 알 것이다.
* 耆(기) 의미 : '늙은이'라는 뜻으로, 특히 60세 이상의 노인을 지칭합니다. 오랜 경험과 지혜를 가진 노인을 나타냅니다. 사용 : '耆'는 아랫 사람을 부리는 사회적 능력이 있는 자이며, 존칭이고 , 문어체에서 사용한다.
老(노) 의미 : '늙다', '노인'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합니다. 사용 : '老'는 나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며, 능력이 없으며, 구어체에서 사용한다.
欲(욕) 의미 : '욕'은 일반적으로 '원하다', '필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욕구나 바람을 나타내며, 물질적이거 나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식욕', '물욕', '욕망' 등에서 사용됩니다. 사용 : '欲'는 동사로도 사용되며, '원하다'는 의미로 자주 쓰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것을 원한다"는 문장에서 '欲'가 사 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어체에서 자주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慾 (욕) 의미 : 欲의 이체자이다. 또 '욕'과 달리 '慾'는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니며, 주로 '성욕'이나 '정욕'과 같은 생리적이고 감정적인 욕구를 나타냅 니다. 이는 단순한 바람을 넘어서, 강한 집착이나 갈망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용 : '慾'는 주로 명사로 사용되며, 특히 성적인 욕구나 감정적인 욕망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성욕', '정욕' 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습니다.
6) 墨家 - 墨子는 利를 숭상(尙利)하였는데, 利도 백성에게 유리하면 義라고 여겼다. 즉 생산 노동을 통하여 사람의 물질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인식하였다. 《墨子》〈非樂〉「民有三患, 飢者不得食, 寒者不得衣, 勞者不得息。三者, 民之巨患也。......賴其力者生, 不賴其力者不生」에 이르기를, 본문의 3가지 근심을 해소하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義이고 동시에 利라고 주장하였다. (그 노동력에 의지하는 자는 살고, 그 노동력에 의지 아니하는 자는 살지 못한다)
7) 道家 - 老子는 義와 利를 모두 배척하였다. 즉 義와 利는 모두 국가 통치를 해롭게 하는 근원이라고 여겼다. 또 義는 利의 假飾이고 義가 없으면 利의 존재도 없으므로 僞善的인 것을 제거하여 원초적인 상태인 無爲之治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1. 無爲而無不爲~ 인위적 함이 없고 ,또 인위적으로 하지 아노음도 없다. * 法 ~ 본받는다.
2. 無爲而治(무위이치 )~ 《論語》〈衛靈公〉「無爲而治者, 其舜也與 。 夫何爲哉 。 恭己,正南面而已矣」 인위적으로 함이 없이 다스르는 자 그 사람은 오직 순임금뿐이다. 왜그러느냐? 스스로 공손하게 되는 사람 또 모든 사람 상대해서 공손하게 대하면서 바르게 임금 노릇만 했을 뿐이다.
* 南面 ~ 임금 노릇하다.
* 주자의 “不爲外物所乘 이것은 주자의 철학적 사유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외부의 사물이나 환경에 의해 자신의 마음이나 본성을 지배받지 말라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주자의 인식론과 윤리적 태도를 반영하며, 인간이 외부의 유혹이나 압력에 휘둘리 지 않고 자신의 본래 성품과 도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의미 해설 자기 통제 : “不爲外物所乘”은 외부의 물질적 유혹이나 감정적 압박에 의해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입니다. 이는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과 자기 통제를 강조합니다. 내적 성찰 : 주자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본래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 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행동을 선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유교적 가치 : 이 구절은 유교의 핵심 가치인 도덕성과 자기 수양을 반영합니다. 주자는 인간이 외부의 물질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도덕적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주잠의 이주 송나라 말기, 주자(朱子)의 증손자이자 한림학사였던 주잠(朱潛)은 1224년에 송나라가 원나라에 패망하자 고려로 망명했습 니다. 그는 망명 후 고려 왕의 벼슬을 거부하고 재야 사림으로 청절한 기풍을 지켰습니다. 주잠은 처음에는 나주에 정착했으나, 이후 원나라의 압송을 피해 이름을 주적덕(朱積德)으로 바꾸고 능성(현재의 화순군 능주면) 고정리에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 화순 지역과의 관련성 주자묘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에는 주희(주자)를 주향으로 모시는 주자묘가 있습니다. 이 사당은 신안 주씨 문중 에서 1905년에 창건하여 1978년에 재축한 것으로, 현재 주자의 증손이자 신안 주씨의 시조인 주잠을 포함하여 총 6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매년 5월 5일에는 전국 신안 주씨 후손들이 모여 주자 대제를 올립니다. 주잠의 후손 : 주잠의 아들 주여경이 고려 고종 때 은사과에 급제하였고, 그의 아들 주열은 충렬왕 때 지도첨의부사에 이 르러 능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이들 주잠의 후손들이 대대로 화순 지역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신안 주씨의 본관 통일 : 주잠의 후손들은 조선조 때 여러 곳으로 이거 하며 지명에 따라 신안, 나주, 능성 등 45개 파로 나 뉘어 본관을 사용해왔으나, 1902년 종중의 합의로 선조의 고향인 신안으로 본관을 통일하였습니다. 주문고(朱文皐)라는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자료에서 찾기 어렵지만, 신안 주씨의 시조인 주잠과 그의 후손들이 화순 지역에 깊은 연고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화순 능주면에 위치한 주자묘는 주희와 그 후손들을 기리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3. 無爲之治, 曹雪芹(淸), 《紅樓夢》56回「旣能奪他們之權,生他們之利,豈不能行無爲之治?」
* 지치(之治 ) = 이치(而治)
8) 法家 - 법가는 義는 거시적인 측면의 도덕이고 利는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필요조건으로 여겼다. 利를 조성하는 현실 문제에 있어서는 奉公去私의 관점을 주장하였다. 법가는 荀子의 性惡論과 道家의 因循觀 및 墨家의 尙利思想을 흡수한 이후에, 利를 국가 발전의 기초로 여기고 義는 利에 대한 방해물로 여기는 동시에 체제 유지를 위하여 義와 利를 동시에 견제하는 방식을 추구하였다. 즉 사람이 물질에 대한 수요는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고 물질 추구는 반드시 정신적인 추구 이전의 행위라고 인식하였다. 이로 인하여 법가는 利를 매우 중시하였고, 통치자는 물론 백성들이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利를 추구할 것을 제창하였다.
결론적으로 중국 고대 도덕 행위와 물질 이익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다음의 몇 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儒家 학파와 소속 인물들은 대체로 重義輕利, 義利分離, 부도덕한 방법으로 획득한 利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즉 儒家 학파의 주장이 고대 사회에서 주도적인 관점으로 자리매김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道家 학파와 소속 인물들은 義와 利를 모두 부정하고 無爲之治를 주장하는 비교적 독특한 입장이다. 셋째, 墨家와 法家 학파와 소속 인물들은 대체로 重利(尙利)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 奉公去私 =滅私奉公= 克己奉公= 公而忘私= 大公無私 * 先公後私(x) =先人後己 = 損人利己(x)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7강(2024,04,18) 강의 교안
*《論語》〈里仁〉 4-17. 見賢思齊焉,見不賢而内自省也 어진 사람을 보면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내 마음 속으로 반성하라
(주석) 1) 賢 - 賢者, 有賢德, 有才華之人 * 현제(賢弟) ~ 친척간의 숙질에게 이르는 단어임. 賢甥: 생질 2) 思 - 思考,心想 3) 齊 - 같은 수준에 도달하다(達到同樣之水準) 4) 焉 - 그래서, 이에(于是, 于此, 于加之, 乃, 就) 5) 内 - 마음속으로 6) 自省 - 自我反省, 나의 결점 有無
*下字 들어가는 상대방에 대한 敬稱
1. 冕下 - 神에 대한 존칭 2. 陛下 - 宮殿의 台階, 황제에 대한 존칭 3. 殿下 - 殿은 宮殿, 皇后, 皇太子, 諸王, 公主에 대한 존칭 4. 嵐下 - 殿下와 동급, 일본어 5. 闕下 - 宮闕, 朝廷을 나타냄 6. 閣下 - 계급이 높은 사람(천주교의 主敎)→점차 당신, 足下와 동일, 서면어(외교문서) 7. 閤下 - 宮中의 작은 문, 朝鮮의 大院君 8. 麾下 - 장군(장군의 旗幟) 9. 節下 - 대장군→使臣(외교사절) 10. 手下 - 부하 11. 膝下 - 父母膝下, 幼年 12. 足下 - 아랫사람, 동급(您) 13. 在下 - 尊長者在上, 自稱在下 14. 聖下 - 천주교 교황 15. 猊下 - 불교 종정 16. 尊下 - 지위, 항렬이 높은 사람 17. 貴下 - 일본어, 동급 또는 아래 사람, 서면어 18. 崗下 - 대인 19. 座下 = 机下 = 席下 ~강의 하시는 분,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경칭(敬稱)으로, 상대방이 앉아 있는 곳 아래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한국 : 賢母良妻 중국: 賢妻良母
* 使 ~ 외교사절에 붙임 師 ~ 몸으로 하는사람 士 ~자격증이 있고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 (7대 전문직)
(2025.11.20. 주정봉 강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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