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잡영(六家雜詠)』 序文
육가(六家)'는 여섯 사람이고, '잡영(雜詠)'은 혹은 절구(絶句)고, 혹은 고시(古詩)며, 혹은 율의 장단으로 그 형식이 하나가 아님을 이른다. 남응침 군(君)은 곧 나의 어릴 적 옛날 교우이다. 중년에는 오랫동안 소원하였다가 내가 줄곧 내의원 제조로 일할 때에 미쳐서는 서로 자주 만났는데, 일찍이 그처럼 뜻이 잘 통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국의 심양을 왕래함에서도 또한 더불어 동고(同苦)하여 정의(情意)가 더욱 친밀하여 시(詩)를 노래하면 이에 화답함이 있었으며, 그 시어(詩語)의 넉넉하면서도 뜻이 원만함을 사랑하였다.
하루는 옷소매에 책 한 권을 넣고 와서는 간청하며 말하기를, "저희들은 소인(小人)인지라 어찌 감히 뛰어난 문장가를 바라겠습니까마는 마침 뜻이 통하는 몇 사람들끼리 서로 결합해 친구를 삼고는, 대강 술 마시고 글 쓰기를 일삼아서 각각 저술한 바가 있어 장차 후손에게 남겨주고자 하는데, 만일 한 말씀 써 주신다면 영원히 가문에 전하는 보물로 삼고자 합니다. 돌보아 주신다면, 참람되고 외람되이 어찌 감히 더럽히겠습니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를 아까워 한다면 어찌 옛날에 좋아했겠는가?" 드디어 그 책을 열람하며 말했다. "정(鄭)은 내국에서 벼슬할 적에 안면이 있는 터라, 익히 그 시의 재주가 있는 줄 아는 자이다. 또 최(崔)는 동회도위로 재직시에 나를 위해 말을 했었고 또한 일찍이 눈여겨 보아서 마음이 그 옛것을 사모하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었다. 남(南)은 곧 어릴 적 친구이고, 또 정(鄭)은 옛날에 내가 제조전의(提調典醫)로 있을 때, 문장과 행실이 뛰어남을 알고 있어서 늘 덧없이 죽은 것을 애도하였다. 김(金)과 최(崔)로 말하자면, 한 번도 대면은 못했었지만 이름은 곧 들었다. 안타깝도다! 모두가 이미 저승 사람이로구나."
열람을 마치고 내가 이에 책을 덮고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이 같은 여섯 명이 의원 일을 하느라 업(業)이 살구나무를 심는데 있거나 혹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이웃한지라 종적이 장사치들과 섞여 있으면서도, 능히 바깥 사람들의 유혹에 빠지는 바가 되지 않고, 우뚝우뚝 솟았구나! 오직 시(詩)를 다듬으며 서로 더불어 문장 공부에 정진하였으니, 진실로 즐겨함이 마치 짐승들이 꼴을 좋아함과 같으니,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무릇,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가운데 연주하여 외롭게 부르다가 동조함을 얻어 번갈아가며 둘, 셋에 화답함도 오히려 어렵건만, 하물며 대 여섯 명의 많음이랴.
바야흐로 그 안개와 노을을 능멸하고, 구름과 달을 쫓으며, 시를 읊는 동안에는 형상을 잊었으니, 세상의 시끄러움 밖에 취미를 부치고는 어찌하여 서둘러 태연한 선비의 회포로써 스스로를 기약하지 않고서, 눈(雪)과 서리(霜)를 먼저 모았다가 우레(雷)와 이슬(露)로 쉽게 재촉하였는가! 평생 주막(酒幕)을 멀리하면서 하산(河山)만을 탄식하였으니 곧 애써 생각해보면, 속세의 종적을 어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가히 탄식할 일이로다.
그러나 한 번 죽고, 한 번 사는 것인데, 이에 여섯 사람이 사귄 정을 보니, 오늘에서야 각자의 원고(原稿)를 거두어 쌓았는데, 현재 생존해 있거나 이미 죽어버린 그 간의 쓰임으로써만 하지 않고 책으로 만들어서 보관하려 함이라.
무릇, 말세에 두텁고 멀리 있는 계곡에 손을 뒤집어 구름을 둘로 하는 것(厚顔無恥)을 볼 때, 그 의(義)로운 사람들에게서의 돈독함은 어떠한가? 또한 공자님께서도, 시(詩)는 가히 흥(興)할 수 있으며, 무리지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능히 시를 배워서 무리 지어 삶을 얻고, 부지런히 절차탁마 한다면 곧 어버이를 섬기고, 임금을 섬기는 도리 또한 가히 이로 말미암아 미루어 밝혀짐이니, 시가 가히 작은 것이겠는가! 진실로 이러할진대, 곧 오직 시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두려워 할 뿐이다. 비록 시를 쓰는 사람이 백 명, 천 명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히려 장차 여러 시인들의 서문을 써 줄 것인데, 오히려 어찌 이를 꺼리끼겠는가?" 마침내, 이렇게 써서 말하고는 돌려보낸다.
세사(歲舍) 무술년(戊戌年;1658) 음력 이월(二月)에 백헌(白軒)은 서(序)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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