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금수산에 있던 불교
사찰이다.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 동안 인근의 법흥사와 함께 평안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큰 절이었다.
영명사는 평양 중심지인 모란봉구역의
모란봉 언덕에 있다. 모란봉은 조선8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영명사는 대동강과 능라도, 평양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장소에 지어져 예전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다.
평양 8경 중에는 영명사와 함께 영명사 아랫쪽에 지어진 부속 건물인 부벽루의 달맞이도 들어 있다. 또다른 평양 8경인 을밀대도 인근에 있다.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고구려
광개토왕 때 지어진 것으로 기록된 9개의 절 중 하나라는 전승이 있다. 김시습은 영명사가 고구려 동명성왕의 구제궁(九梯宮)이라고 언급했다. 고려 말기에 이색이 영명사와 부벽루를 소재로 지은 회고조의 시가 전해지는 등 뛰어난 풍치로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했다. 조선 영조 때의 규방문학 작품인 《의유당일기》에는 〈영명사득월루상량문〉이라는 제목으로 영명사 부속 득월루의 상량문을 번역한 글도 남아 있다.
영명사는 청일 전쟁으로 큰 피해를 당해 다시 지은 것이 한국 전쟁 때 완전히 전소되어 흔적이 없어졌고, 지금은 부벽루와 팔각오층석탑, 만경대구역의 부속 암자인 법운암만 남아 있다. 영명사 자리에는 요양원이 들어서 부벽루까지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