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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대전자령 전투(大甸子嶺戰鬪)
대전자령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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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자령 전투 (大甸子嶺戰鬪)
1933년 지청천(池靑天)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여 대전자령을 지나는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이어 3대 대첩으로 평가받는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대전자령 전투 (大甸子嶺戰鬪) 1933년 1940년 1920년 지청천 김좌진 서일 이범석 홍범도 나중소 강근호 광복군 대동 청년단 대한 독립군 북로 군정서 신흥 무관 학교 대한독립군단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간도 참변
▣ 백과사전
1933년 7월 지청천(池靑天)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여 대전자령을 지나는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이어 3대 대첩으로 평가받는다.
 
한국독립군과 중국군은 둥징청을 확보하기 위하여 닝안[寧安]을 점령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한 ·중 연합군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인원과 장비 때문에 1933년 6월 28일 라오쑹링[老松嶺]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다뎬쯔[大甸子]에 주둔하던 일본군 이즈카[飯塚] 부대는 이동하는 한 ·중 연합군을 전멸할 계획을 세웠으나, 7월 1일 일본군의 동정(動靜)에 대한 정보를 얻은 한 ·중 연합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한국독립군 2,500명, 중국군 2,000명을 대전자령에 잠복시켰다가 대접전을 벌였다.
 
4시간의 격전 끝에 이즈카 부대를 전멸시키고, 전리품(戰利品)으로 군복 3,000벌, 박격포 5문, 군용물자 200마차분, 담요 3천 장, 평사포(平射砲) 3문, 소총 1,500자루 등을 얻은 이 전투는 독립군의 항일전에서 특기할 만한 대승리였다. 그러나 전리품의 분배문제로 한 ·중 간에 대립이 생겨 그 후의 한 ·중 연합에 큰 지장을 주었다. 같은해 9월 1일에 한국독립군은 둥닝현[東寧縣]의 적군을 공격했는데, 원병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중국 구국군은 독립군의 총사령(總司令) 이하 수십 명의 고급간부를 구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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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