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 ~ 1884] 조선 후기 혁신파 정객으로 자는 자명(子明), 본관은 반남, 시호는 충목이다.
박원양의 아들이자,
박영효의 형이다. 관직은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에 이르렀다.
박규수,
유대치의 문인이다.
일찍부터 먼 친척이자 개화사상가인 재동
박규수의 문하에 출입하며 수학했고 이어
유대치의 문하에도 출입했다. 이어 동생인 박영효 역시 박규수와 유대치의 문하에 출입하게 하여 수학케 했다.
188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1884년 동생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등과 모의하여
갑신정변을 일으키는데 가담,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으나 3일만에 왕비 민씨의 청나라 군대 요청으로 거사가 좌절되자 북관동묘까지 고종을 끝까지 호위하다가 청나라 군사들에게
홍영식과 함께 살해당했다.
사후 규장각제학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