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4~1531]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 신학자.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고
에라스무스와 사귀면서, 그의 영향을 받아 점차‘복음주의’로 기울어졌다.
1519년 취리히의 목사가 된 뒤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켜 로마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
1529년 마르부르크 토론에서
루터와 ‘성찬론’으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헤어졌으며, 그 뒤 반개혁파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예정설을 앞세운 그의 합리적인 개혁 운동은 뒷날
칼뱅에 의해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