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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정재관(鄭在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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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관 (鄭在寬)
1880~1930 독립 운동가·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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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관 (鄭在寬) 신문 더럼 W. 스티븐스 장인환 전명운 박은식 신채호 양기탁 대한 매일 신보 매일 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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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 1930] 독립 운동가·언론인. 부산에서 태어났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수탈에 갖은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이에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지키기 위해 교육을 보급하고,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은 국민들을 계몽시켜 민족의 실력을 쌓게 하는 것으로, 민족 의 토대가 되는 것이었다. 또, 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 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대한 매일 신보" 등의 신문은 이러한 의도로 발행되었다. 나라 밖에서는 미국에서 "신한 민보"가 발행되었고, 연해주에서는 "해조 신문"이 발행되었다.
 
정재관은 1905년 "신한 민보"에 들어가 신문 편집 전체를 책임지는 주필이 되었다. 그는 이 때부터 언론을 통해서 독립 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905년 일제가 보호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나라 안에서 나온 신문들은 간행이 중단되거나 내용이 많이 변하였다. 그러나 나라 밖의 신문들은 계속해서 민족의 입장을 대변 하고 있었다. 그는 "신한 민보"의 주필로서, 민족의 독립 을 위해서는 대중의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7년에는 미국에서 "공립 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공립 협회의 총회장으로도 뽑혀 언론을 통한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다.
 
1908년 3월 미국인 스티븐스가 한 발언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스티븐스는 우리 나라의 정부에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븐스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일은 피할 수 없고, 많은 한국 사람들도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보호조약이 체결된 지금 한국 의 문화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는 망발을 하였다.
 
정재관은 신문 기사를 보고 스티븐스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생각하고, 최유섭· 문양목 ·이학현 등과 함께 스티븐스를 방문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호텔로 찾아가 면담을 요구하였다. 스티븐스와 마주한 이들은 친일적인 말을 한 것을 꾸짖고, 잘못한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스티븐스가 오히려 무례한 태도를 보이자 주먹으로 구타하여 보복하였다.
 
장인환·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사살한 것도 정재관 등이 보복 조치를 한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재관은 1909년 공립 협회와 합성 협회를 하나로 합하여 '북미 대한인 국민회'를 세우고 회장을 지냈다.
 
그 뒤에는 소련으로 건너가 19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종호와 권업회를 조직하였다. 그는 이 조직을 통해서 한인들을 모아 강연회를 열어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그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 국민회에 관계하며 일본에 항거하는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이 주어졌고, 1980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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