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 ~ 1635]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는 월사(月沙)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90년에 문과 에 급제, 설서가 되었고, 1593년에 황신 등과 함께 경서를 강의하여 학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1598년에 문과에 급제, 설서가 되었고, 명나라의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과 힘을 모아 쳐들어오려 한다.'고 자기 나라에 거짓 보고한 사건이 일어나자 명나라에 가서 사실이 아님을 밝혀 정응태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 뒤로 자주 중국 사신을 접대하였고, 다시 명나라에 갔을 때 그 곳 문사들의 요청으로 기행문 을 모아 《
조천 기행록》을 펴내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왕을 충청도 공주로 모셨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모시고 강화에 피란, 적과 화의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는 한문학에 뛰어나
신흠·
장유·
이식과 함께 조선 중기의 한문 4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로 《월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