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 ~ 1970] 영국의 의학자이며 선교사. 우리 나라식 이름은 석호필(石好必)이다.
1916년에 봉사와 선교를 위해 우리 나라에 와서 세브란스 의학 전문 학교의 세균학 교수로 있었다. 1919년에
3ㆍ1 운동이 일어나자 교수직을 그만두고 독립 운동에 협력하였으며, 일제의 악독한 행위를 사진으로 찍어 외국에 널리 알렸다. 그 사실로 말미암아 일제의 미움을 사서 1920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우리 나라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 때에도 총독에게 청하여 옥에 갇혀 고생하고 있는
이상재,
이갑성,
오세창 등의 애국 지사들을 일일이 면회하고 위로하였다.
귀국 후 캐나다에서 교수로 있다가, 1958년에 대한 민국 정부 수립 10주년 경축식에 초청되어 왔으며, 1969년 2월에 다시 와서 이 땅에서 묻히기를 결심하고 살다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