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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세비야(Sevilla)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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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Sevilla)
남부 유럽에 속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에스파냐의 남서부에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이루고 있는 8개 주 가운데 하나. 이 곳에 세비야주의 정부 청사가 있다. 이 주의 옛날 이름은 히스팔리스이고, 영어로는 세빌이라고 한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세비야 (Sevilla) 미술 바로크 미술 오페라 음악 에스파냐 1649년 1623년 프로스페르 메리메 디에고 벨라스케스 보마르셰 루이 16세 모차르트 비제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세비야의 이발사
▣ 백과사전
남부 유럽에 속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에스파냐의 남서부에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이루고 있는 8개 주 가운데 하나. 이 곳에 세비야주의 정부 청사가 있다. 이 주의 옛날 이름은 히스팔리스이고, 영어로는 세빌이라고 한다.
 
이 주는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540㎞ 떨어진 지점, 즉 과달키비르강 하구에서 87㎞ 떨어진 상류 연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16세기에는 대륙과의 무역 이 활발히 진행되어 무역의 근거지가 되는 것은 물론, 안달루시아 지방의 모든 역사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옛날 도시는 주로 과달키비르강의 왼쪽 어귀에 발달하였고, 반대쪽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가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사벨 2세 다리와 산테르모 다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주택가 남쪽에는 크고 작은 공업 지대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강 어귀에 있는 항구에는 20세기에 건설된 수문이 있는데, 이 수문을 통하여 배 밑이 물 속 7.6m까지 잠기는 외항선이 출입을 하며, 또한 하천 개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무역이 한층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항구에서 수출하는 것으로는 올리브유·셰리주· 코르크 · 곡물을 비롯하여 과실이나 광석 등이 있으며, 수입한 물품으로는 대부분 중화학 공업에 필요한 기계· 목재· 석탄· 석유를 비롯하여 화학 비료 등이다. 이 도시는 옛날부터 올리브유를 많이 생산했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만들거나 찰흙 따위를 가공하는 요업 등이 특히 발달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금속 공업을 비롯하여 섬유· 화학 공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이 도시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크리스트교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성 주간과 1847년부터 시작된 4월 축제이다.
 
성 주간이란, 부활절 전의 일주일 동안 성체 를 주는 행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 기간 동안 크리스트교 신자는 단식을 하며 기쁘고 성스럽게 보낸다. 이 도시 에 있는 산타크루스 거리는 좁고 복잡한 길가에 흰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이 곳은 1492년에 추방된 유태인들이 살고 있던 곳이기 때문에 개발이 되지 않아 지금도 예스러운 멋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2세기의 대종루 히랄다의 탑을 비롯하여, 이슬람교 문화의 모든 것을 모은 궁전 알카사드가 있으며, 15세기의 대성당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물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이 도시는 프랑스의 극작가 보마르셰가 쓴 4막 희극 《셰빌랴의 이발사》를 비롯하여, 같은 작가가 쓴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메리메 의 중편 소설 《카르멘》 등과 같은 불후의 명작의 무대가 되기도 했으며, 풍부한 색체와 명암법을 사용한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와 세빌랴파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주로 성모상을 많이 그린 무릴료도 이 곳에서 태어났다.
 
세비야 의 전신이었던 히스팔리스는 기원전 205년 로마의 지배를 받고 부터 크게 발전하였고, 5세기에서 8세기까지는 서고트의 지배를 받다가, 8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무어의 지배를 받았다.
 
서고트 시대 초대 학자 이시도로는 그 대주교구에 재직하기도 했다. 이슬람 시대 초기에는 코르도바로 수도가 바뀌었으나,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 에 속했고, 15세기 말기에 들어서는 신대륙 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히랄탑과 황금의 탑은 모두 이 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로부터 약 2세기 동안 이 수도 마드리드보다 많은 인구를 가질 만큼 번성하였고, '이 세상의 불사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크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는 대형 선박 이 드나들기가 편리하게 되어 있는 카디스 항구에 뒤져, 점점 쇠퇴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 가 되었으나, 여전히 보수적인 성격을 띤 안달루시아 지방의 커다란 도시로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이슬람풍의 거리 모습과 건물, 성 주간의 크리스트교 전례와 투우 등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요소가 많이 있다. 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세비야 성당은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 목록에 수록되었을 만큼 귀중한 유물의 하나이다. 인디아스 고문 서관에는 그 동안 세비야를 말해 주는 역사적인 자료가 잘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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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