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성주 받이를 할 때 무당 이 복을 빌어 부르는 노래. 성주 받이란 민간에서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한 뒤에 집터를 지키고 보호한다고 알려진 성주신 또는 성조신과 성주 부인 또는 성조 부인을 다시 받아들이는 굿으로 무당이나 점치는 일을 하던 소경인 판수는 성주 받이를 할 때 성주의 내력을 읊으며 집안의 복을 기원하기도 하고, 또는 새해가 되어 집안의 평안을 구할 때나, 걸립패들이 성주 고사를 지낼 때 부르던 노래 가 바로 성주 풀이다.
이들이 부르던 성주 풀이의 장단은 중중모리, 자진모리였다. 이렇게 무당이 성주 받이를 할 때 부르던 성주 풀이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잡가로서 주로 남부 지방에서 많이 불려지는 민요가 되었으며, 성조 풀이라고도 한다. 이 노래를 만든 작자나 만들어진 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민요화된 성주 풀이의 장단 은 굿거리로 성주굿을 할 때 부르던 노래는 통절 형식이었지만 민요화되면서 장절 형식으로 바뀌었고, 앞소리와 뒷소리인 후렴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 노래의 가사는 "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나/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이로다/제비원에 솔씨를 받아 소평 대평에 던졌더니 그 솔씨 점점 자라 소부동이 되었구나/소부동이 점점 자라 대부동이 되었구나/대부동이 점점 자라 청장목이 되고 황장목이 되고 도리기둥이 되었구나/에라 만소 에라 대신이야/대활연으로 서리서리 내소서."와 같이 성조 무가와 관련된 내용이었으나 점차 대중적인 민요가 되어 무가와는 관계 없는 일반 서민들의 정서가 담겨 있는 가사가 덧붙여져 상당히 긴 민요 사설 이 되었으며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불려졌다.
뒷소리 "에라 만수 에라 대신, 대활연으로 서리서리 내리소서."는 지금도 그대로 불려지며, 곡조는 상당히 경쾌하고 시원스럽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