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두산(切頭山)
절두산은 양화진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 절두산이라고 불려지는 이 봉우리는 조선 때의 지리책인 《동국여지승람》과 《세종실록》에는 가을두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원래 우리 말의 ‘들머리’, 즉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을 가리키는데, 지금도 절두산 근처에서 대대로 살아온 노인들은 이곳을 ‘덜머리’라고 부른다. ‘덜머리’는 아마도 ‘들머리’가 변화된 말로 보인다. 또한 불쑥 솟은 자세가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 같다고 하여 잠두봉이라고도 불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이 이름이 나오는데, 강희맹은 그 형상을 자라의 머리에 비겨 이렇게 적고 있다. “서호는 도성에서 10리도 안 되게 떨어져 있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푸르러 형승이 나라에서 제일간다. 호수 남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는데 형상이 큰 자라 머리 같으며 혹은 잠두라고 불린다. 언덕의 발부리가 호수 가운데 뾰족하게 바늘처럼 나왔고 형세도 높아서 호수 가운데 승경을 모두 볼 수 있다.”
잠두봉과 비슷한 지명으로는 잠두령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데, 조선 때의 실록에 따르면 성종 때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곳은 형세가 용의 머리 모양 같다고 하여 용두봉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그냥 용산(龍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오늘날 불리는 절두산이라는 명칭은 잠두봉의 원명칭이 아니다. 한국 순교자 현양회가 병인박해(1866년) 때 순교한 천주교인의 신앙을 현양하기 위해 잠두봉 일대 1,381평을 구입할 당시,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인이 참수형으로 목잘려 죽은 곳이라 하여 절두산이라고 불러 왔다는 그 지역 일대 주민들의 구두 전승을 받아 잠두봉을 절두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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