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문수산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산성. 사적 제139호이다. 둘레는 약 2,400m이고, 면적은 약 208㎢이다.
김포시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의 지세가 높고 가파른 산줄기에서 시작하여 해안 지대를 연결하고 있다. 현재 해안 쪽의 성벽과 성문 위의 다락집인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강화의 갑곶진과 마주 보면서 강화도 입구를 지키던 산성으로,
1694년(숙종 20)에 쌓았으며,
1812년(순조 12)에 커다란 규모로 고쳐 쌓았다. 성벽은 큰 돌들을 다듬어 단단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긴 채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인 여장을 둘러 쌓았다. 산성을 건축할 당시에는 성문은 취예루와 공해루 등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성벽에다 누 없이 만든 암문이 있었다. 이 중에서 취예루는 갑곶진 과 마주 보이는 해안에 위치하여 있었는데, 강화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이 산성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1866년 프랑스의 포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왔다. 그 때 초관 한성근이 문수산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산성의 남문으로 침입하여 들어오는 프랑스군을 맞아 용감히 싸워 물리쳤다. 이 때의 치열한 싸움으로 해안 쪽 성벽과 문루가 파괴되었고, 성안은 적들에 의하여 마구 짓밟혔다.
지금은 그 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산성은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