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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김홍륙 독다 사건(金鴻陸毒茶事件)
김홍륙 독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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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륙 독다 사건 (金鴻陸毒茶事件)
1898년(광무 2년)에 고종 황제와 황태자(나중에 순종 황제가 됨)를 독살하려 한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독립 협회의 활동은 더욱 격렬해지고 항일 운동은 거세졌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김홍륙 독다 사건 (金鴻陸毒茶事件) 동학 운동 만민 공동회 민족 대표 48인 1898년 대한 제국 1907년 1894년 1896년 1863년 조선 고종 함태영 김홍륙 김규식 김병국 김병시 김홍집 남궁억 명성 황후 박정양 서재필 조선 순종 신채호 안창호 양기탁 여흥부 대부인 민씨 오세창 월산 대군 유길준 윤치호 이동녕 이상재 이승만 이완용 인목 왕후 조선 철종 흥선 대원군 흥인군 홍순목 조두순 독립 협회 황국 협회 고종실록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 협회 사건 아관 파천 을미사변 을사늑약 임오군란 경운궁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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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2) 백과 1896년 (2)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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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광무 2년)에 고종 황제와 황태자(나중에 순종 황제가 됨)를 독살하려 한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독립 협회의 활동은 더욱 격렬해지고 항일 운동은 거세졌다.
 
고종 황제의 생일 다음 날인 9월 11일 저녁, 이재순·심상훈·민영기 등 3대신은 경운궁에서 임금님을 알현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임금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가 커피를 들여왔는데 고종 황제는 냄새가 좋지 않다고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황태자는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경련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모두 한 모금씩 마셨는데 모두 경련을 일으켰다. 고종 황제가 쓰러진 황태자를 안고 '독차'라고 고함치자 궁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급히 의원을 불러 황태자를 치료하여 살려 놓고, 커피를 검사해 본 결과 아편 독소가 들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누군가가 황제와 황태자를 암살하려고 일부러 독을 넣었다고 판단하고 궁중 요리사인 김종화를 불러다 신문하였다. 그 결과 김홍륙의 지시를 받은 그의 아내 김소사가 공홍식을 시켜 일으킨 사건임이 밝혀졌다.
 
이 사건의 주모자인 김홍륙을 별실에 감금했으나 김종화와 공홍식은 그날 밤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어 끝내 사건의 진상은 밝혀 내지 못했다. 단지 김홍륙만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다.
 

 

무고설

훗날 대한민국 부통령 직책을 지낸 함태영이 남긴 회고 및 증언에 의하면 그가 고종, 순종의 커피에 독을 탔다는 증거가 없다는 설을 제기하였다. 1898년(광무 1년) 7월 26일 김홍륙이 황태자의 커피에 독을 타서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 되었다. 고종은 냄새가 이상하여 마시지 않았는데, 황태자는 마시다가 토하고 기절했다. 김홍륙에 대한 재판을 평리원 판사 함태영이 맡게 되었다. 7월 25일 고종 탄신 다음 날에 발생한 것으로 김홍륙은 아는 사람인 공홍식과 시베리아에서 서양 요리사 김종화(아명은 김종호)를 궁중 요리사로 추천하여 고종 과 황태자의 수라상을 차리고 있었다. 수라상은 내 소주방에서 접시와 음식을 먼저 검사하고 맛보고 올리는데, 그 커피를 맛본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함태영은 일단 김홍륙에게 증거 불충분 이란 이유로 무죄 또는 가벼운 처벌로 끝내려 하였다. 그 후 1898년 9월 8일을 기하여 민씨 가문에서는 민영찬이 대표로 나서면서 함태영에게 차라리 김홍륙을 극형에 처하라고 계속 압력을 보냈다. 그러나 함태영은 일주일만인 1898년 9월 15일을 기하여 민영찬 가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렇지만 결국 1898년 10월 10일을 기하여 김홍륙은 사형 집행되었다.
 
훗날 김홍륙의 먼 일가 후손인 김재준(金在俊) 목사는 만년의 함태영에게 이 사건의 진상을 물어보았다. 함태영은 이 사태 및 사건은 민씨네(주로 민영찬 일가)가 조작한 음모 섞인 추태였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고종으로부터 어떠한 밀지가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끝내 함구하였다. 재판은 다른 판사에게 넘겨지고 김홍륙 등은 사형 집행되었다.
 
하지만 무고설이 신빙성이 없는 이유가 바로 순종의 몸 상태였는데 순종은 이 시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치아가 모두 결손되어 어린 나이에 틀니를 착용하고 대변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등 평생을 걸쳐 엄청나게 고생했다. 일국의 국왕이 신하 하나를 모함하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세자의 몸을 그 지경으로 만들 리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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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