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52] 고려 후기에, 한림학사, 원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동생인
기황후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일삼다가 공민왕에 의해 숙청된 관리.
본관은 행주(幸州). 아버지는 총부산랑(總部散郎)인
기자오(奇子敖)이다.
1340년(충혜왕 복위 1) 누이동생이 원나라 순제(順帝)의 후궁이 된 뒤 제2황후에 봉해지고 황태자 애유식리달랍(愛猷識理達臘)을 낳으니, 원나라로부터 한림학사에 임명되었으며 고려에서는 덕양군(德陽君)에 봉하였다.
그 뒤 누이의 세도를 믿고 횡포를 일삼았다. 1352년 3월에는 원사(院使)로서 감찰대부(監察大夫)
이연종(李衍宗)의 간교함을 기롱하였으며, 같은 해 9월
조일신(趙日新)이 난을 일으켜 기씨일파를 숙청할 때 살해되었다. (
조일신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