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 ~ 1881] 조선 후기의 문신 겸 정치인이다.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서장자이자, 흥친왕
이재면과
고종의 서형이다. 이준용의 서백부가 된다. 1881년
이재선 추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아명은 李載璿이며, 호(號)는 산남(山南)이고 자(字)는 미상.
1857년 음서로써 하위급 관료 문관직에 천거된 그는 2년 후 1859년에 무과 급제하여 1864년 훈련원첨정, 1865년 오위장, 1872년 중추부첨지사 등을 지냈다. 1874년 별군직, 부호군 등을 거쳐 양주목사로 부임했다가 이조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후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별군직, 부호군, 1879년 중추부동지사 등을 역임했다. 1881년 흥선대원군의 측근
안기영(安驥永),
권정호(權鼎鎬) 등이 고종을 폐위하고 그를 추대하려던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 제주목에 유배, 사사되었다. 일설에는 처형 직전 제주에서 한성부 서대문으로 압송되어 생존하였다는 설이 있다.
1899년(광무 2) 고조부 사도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었을 때에도 그는 아직 아무 봉작을 받지 못했다. 이후 순종 때 완은군(完恩君)으로 추봉(追封)되었다. 경기도 양주군에 안장되었다가, 1909년 다시 동대문밖 왕십리, 경기도 시흥군(現 서울 시흥동) 등로 이장되었다가 후일 그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흥원묘역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