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74] 고려의 문신으로, 조선시대 추존왕이자 익조(翼祖)의 아버지이며,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이다. 이름은 이안사(李安社)이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대장군을 지낸
이양무와 상장군 이강제 삼척 이씨와의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다. 일설에는 그가 이양무의 장남이라 하고, 다른 설에 따르면 주부를 지낸 영습이 그의 형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전주에 살았는데, 산성 별감(山城 別監)과 갈등을 빚고 삼척으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왜구와 원의 침략을 막아냈다. 산성 별감이 안찰사로 임명되어 오자 다시 의주(宜州: 덕원, 현재의 원산)로 이주하였다.
조정에서 그를 의주 병마사로 삼아 원의 침략을 막게 했는데,
1254년 원의
산길(散吉)이 항복을 몇 번씩 청해 오자 항복하였고, 개원로(開元路) 남경(南京)의 오동(斡東, 알동)으로 이주하였으며, 1255년 오동천호소의 우두머리 천호(千戶) 겸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임명되었다.
1274년 세상을 떠나 아들
이행리가 관직을 이어받았다. 1392년 7월 28일 태조 이성계에 의해 목왕(穆王)에 추봉되었다가 1411년 4월 22일 태종에 의해 목조(穆祖) 인문성목대왕(仁文聖穆大王)에 재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