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 시대의 산성. 사적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사비성이라고도 한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백제 고유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낙화암을 비롯해 백제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고란사, 군창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부소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1차로 테뫼식 산성을 만들고 다시 그 주위를 약 1.5㎞에 걸쳐서 포곡식으로 만든 복합식 산성 이다. 이 산성의 내부에는 사비루 · 영일루 · 반월루 · 고란사 · 낙화암 · 군창지(軍倉地) 등이 있다.
이 산성은 500년경 테뫼형 산성이 만들어졌다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538년 수도를 옮긴 시기에 개축되었다가 605년경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을 쌓은 방식을 살펴보면 성벽 안쪽의 흙을 파서 벽쪽에 구덩이를 만드는 한편, 그 파낸 흙을 성내의 벽에 덧붙였다. 성의 바깥쪽은 황색 사질토와 적색 점질토를 겹겹이 다져 놓고 그 위에 돌을 3~5단으로 쌓고 흙을 덮었다.
1982년 사비성 복원 작업시 토성의 단면을 자른 결과 아래로부터 4층을 확인하였는데, 맨 아래 층은 붉은색의 진흙으로 판축하여 밑부분을 만들었고 층의 높이는 1.9m 정도 되었다. 그 다음 층은 황갈색 토층으로 북반부는 맨 아래 층 위에 퇴적되었고, 남반부는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렸는데, 이는 맨 아래 층을 수축하기 위해 그 다음 층이 만들어졌음을 말해 준다. 바로 이 곳에서 백제 시대의 연질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세 번째 층은 황갈색 사질토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것은 이전 층의 바깥쪽 경사면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 같다.
맨 위의 층에서는 조선 시대의 유물 이 출토되고 있어 부소 산성이 백제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시대까지 개축을 거치면서 사용된 것을 입증할 수 있다.
성내에는 동·서·남문터가 있으며,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북문과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문터로 짐작되는 곳에서 대형 철제 자물쇠가 발견되어 이 곳에 문이 있었음을 입증해 주며, 남문터에는 문주로 사용하였던 초석 2개가 동서로 나란히 아직도 남아 있다. 성벽 내부에는 적심석을 넣었다는 것이 금강 상수도 사업 공사 때 확인되었다.
이 산성의 성내에 군의 창고와 건물터·탄화미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가 평상시에는 이 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왕과 귀족들이 즐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산성은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긴 후 백제가 멸망 할 때까지 중심 산성으로서, 인근에 있는 청산성·청마 산성 등과 같은 보조 산성으로 왕도의 방어를 강화한 성곽 발달사의 새로운 양상을 볼 수 있다.
위치 :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관북리, 구교리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