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고대 소설로 작자와 발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두꺼비를 의인화하여 사람들을 풍자한
우화 소설이다.
두껍전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근본적인 내용은 같으나 부분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대체로 두꺼비가 주인공인 고전 소설을 모두 일컬어 두껍전류라고 한다. 삼광서림·박문서림·덕흥서림 등에서 손으로 베끼어 쓴 필사본과, 활자판으로 박은 활자판이 나와 있다.
내용으로는 여러 짐승들이 모여서 서로 윗자리에 앉기 위하여 옥신각신 다투는 '쟁좌형 두껍전'과, 적강선관이 두꺼비의 탈을 쓴 '선관형 두껍전', 그리고 해와 달 사이의 정을 노래하는 '일월형 두껍전'으로 나뉜다.
'쟁좌형 두껍전 '으로는 《섬동지전》 《옥섬전》 《섬공전》 《섬자호생의설전》 외에도 여러 종류의 《두껍전》 등이 있다.
조선조 16대 임금이었던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충청도에 위치하고 있는 오룡산에서 장선생(노루)이 여러 짐승들을 모두 불러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이 잔치 자리에서 뭇짐승들이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토끼가 '윗자리 앉기'를 정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자 두꺼비는 나이가 많고 적은 순서대로 정하되 듣고 보고 깨달은 지식이 많고 적음을 견주어 결정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윽고 여우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두꺼비는 한 술 더 떠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이야기는 물론, 오래된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여우에게 맞섰다. 이에 질세라 여우는 다시 하늘 나라를 구경하였던 이야기와 함께 천문·지리·시서 등을 동원하며 자신의 폭넓은 지식을 뽐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두꺼비가 아니었다. 두꺼비는 마음대로 자신의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하는 둔갑술, 군사에 대한 병법, 얼굴의 특징이나 몸가짐을 보고 사람의 특성을 알아내는 관상법, 그리고 이미 망하여 없어진 나라에 대한 이야기 등 보다 넓고 깊은 지식으로 대응했다. 결국 두꺼비가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 소설로서 역시 지은이와 그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고려대장경》의 '십송률'에 나오는 탈새와 원숭이와 코끼리가 자신의 나이를 내세우며 서로 존경받기 위해 옥신각신 하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그런가 하면, 박지원(1737~1805)의 '
민옹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선관형 두껍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조선 시대에 일월산 부근에서 살고 있던 양옹 부처는 늙어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하루는 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두꺼비가 물 위로 올라와서 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애원하므로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꺼비는 재주를 부려 양옹 부처에게 돈과 쌀과 온갖 보물을 주었다. 두꺼비가 다시 양옹 부처에게 수양 아들로 받아들여 줄 것을 애원하므로 두꺼비를 수양 아들로 받아 주었다. 하루는 두꺼비가 부근에 살고 있는 이판서 댁 막내딸과 혼인하고 싶다고 청하므로 이판서 댁에 청혼을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꺼비는 부득부득 행장을 꾸려 신부집에 이르렀으나, 두꺼비를 본 신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두꺼비는 신부에게 칼을 건네 주며 자신의 배를 긋게 하였다. 그러자 두꺼비는 자신의 탈을 벗고 씩씩한 남자로 변신하여 신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튿날 날이 샐 무렵 다시 두꺼비의 모습으로 밖으로 나오니 두 동서와 모든 식구들이 두꺼비를 비웃고 무시하는 눈치였다. 세월이 흘러 장인의 회갑이 되자 잔치를 베풀기 위해 동서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두꺼비는 흙을 다스리는 신을 부리고 주문을 외워 많은 짐승들을 잡아들였다. 이에 짐승들을 잡지 못한 다른 동서들이 두꺼비에게 잡은 짐승을 자신들에게도 나누어 달라고 청하였다. 두꺼비는 자신이 잡은 짐승의 등에 도장을 찍어서 동서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니 짐승을 잡지 못한 두꺼비에 대한 괄시가 한결 더 심해졌다. 두꺼비는 장인의 회갑날 탈을 벗고 옥과 살이 희고 깨끗하며 고결한 선비의 모습으로 처가에 이르러 두 동서를 자기의 종이라고 하였다. 이에 두 동서가 아니라고 부인하였으나 짐승의 등에 찍힌 도장 자국이 증거물이 되어 발뺌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남을 멸시하고 괄시한 죄목으로 이들에게 매를 때리다가, 두꺼비는 비로소 자신이 두꺼비 사위라는 것을 밝히고는 아내와 함께 하늘 나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책에 따라 새로운 장면이 하나 더 소개되기도 한다.
즉, 장인의 회갑 잔치가 끝난 뒤 동서들과 함께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길을 가던 중 동서가 두꺼비 의 주머니를 털어 중원으로 도망친 것을 다시 잡아와서 함께 과거 시험을 보았다. 두꺼비는 장원 급제를 하여 임금이 있는 곳에서 두꺼비의 탈을 벗고 선관임을 아뢰어 판서 가 되었다가 뒤에 하늘 나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주로 영남 북부 지방에 많이 퍼져 있던 '두꺼비 사위' 이야기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소개되는 책에 따라서는 장소·시대·배경·등장 인물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서로 틀린 것들도 있다. 장소는 주로 경상도나 전라도가 많고, 가상으로 만들어 낸 지역도 있다. 또한 시대의 배경은 영락(광개토대왕의 연호) 또는 성화 연대로 된 것과 연대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일월형 두껍전'에 속하는 《
오섬가》는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로서 까마귀와 두꺼비 가 보고 들은 아름답고 슬픈 고금의 사랑 이야기를 문답체로 구성하여 여자와의 관계에 주의를 준 이야기이다.
태양을 금오라 하여 까마귀를 해의 정이라 하고, 태음을 옥섬이라 하여 두꺼비를 달의 정이라 한다. 이 해와 달을 아울러서 오섬이라 한다. 오섬은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로 남녀의 색정에 대한 욕망으로 일어나는 사랑의 즐거움과 슬픔의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 형태와는 다르게 사랑에 얽힌 개개의 사건들을 엮어 놓았다. 이야기의 출처는 중국의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들과 우리 나라의 애정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추려서 소재로 하였다. 여기에는 양귀비(719~756)의 슬픈 이별을 비롯하여 한무제와 이 부인의 죽음의 이별, 한태조와 척 부인의 헤어짐, 주목왕과 서왕모의 이별 등 동서고금의 많은 슬픈 이별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이야기로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 《배비장전》에 얽힌 애랑의 정비장, 《강릉매화타령》에 나오는 매화와 골생원의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여자를 경계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소개되고 있는 사실적인 소재들이 대개 미인들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꾸며진 소재는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쟁좌형 두껍전'은 장유유서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과 지식은 곧 힘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한 권학사상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관형 두껍전 '은 신분이 높은 사람과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는 업신여김과 갈등을 그려 약자가 이긴다는 이상적 인 이야기이다.
'일월형 두껍전'인 《오섬가》는 사랑의 즐거움과 슬픔을 다룬 이야기로, 몸을 닦고 집안을 깨끗이 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르기까지 여자와의 관계를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