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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정조(正祖) 어우에 화가 최북(崔北)의 호는 칠칠(七七)인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와 수월도인 임희지(水月道人 林熙之) 등으로 더불어 화계(畫界)에 이름을 날린 사람이다. 그는 예술가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고상하고 호협한 성격을 가졌고 또 술과 유람을 좋아하였다. 일찍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 가서 크게 술취하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다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천하 명인 최칠칠은 마땅히 천하 명산 금강산에 와서 죽을 것이라 하고 문득 못 가운데 내려 뛰려다가 밑에 있던 사람의 제지로써 죽지 못했다. 누가 비단을 가지고 산수화를 청하거늘 칠칠이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아니하니 그 사람이 괴이히 여겨 물은즉 칠칠이 붓을 던지고 일어나면서 가로되 종이 이외는 다 물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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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그린 것이 좋은데 사례금이 적으면 그림 구하러 온 사람을 꾸짖으면서 화폭을 찢어 버리고, 만일 잘 그리지 못한 것으로 사례금이 많으면 그림 구하러 온 사람을 불러서 도로 내어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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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한두 가기 예로써도 칠칠의 인격이 예술가로서의 풍격(風格)을 가히 상상할 수 있거니와 그의 고상한 성격이 부귀와 권세에 대하여 굴치 않을 뿐더러 한걸음 나아가 그것을 업수이 여겼던 실례 하나를 들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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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이 일찍 어떤 재상가에 갔는데 청지기가 칠칠의 이름을 부르기가 무엇해서 최 직장(崔直長)이라고 부르거늘 칠칠의 노여워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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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제 직장을 하였느뇨? 만일 차함(借啣)으로 나를 존칭코자 할진대 정승이라고 않고 직장이라 하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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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주인 재상을 보지 않고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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