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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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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7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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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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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대로 말이지 나는 약수보다도 약주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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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때문에 집을 망치고 해도 술 먹는 사람이면 후회하는 법이 없지만, 병이 나으라고 약물을 먹었는데 낫지 않고 죽었다면 사람은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려 듭니다. 우리 백부께서 몇 해 전에 뇌일혈로 작고하셨는데 평소에 퍽 건강하셔서 피를 어쨌든지 내 짐작으로 화인(火印) 한 되는 쏟았건만 일 주일을 버티셨습니다. 마지막에 돈과 약을 물 쓰듯 해도 오히려 구할 길이 없는지라 백부께서 나더러 약수를 길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친구 한 사람이 악박골 바로 넘어서 살았는데 그저 밥, 국, 김치, 숭늉 모두가 약물로 뒤범벅이었건만 그의 가족들은 그리 튼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먼저 해에는 그의 막내누이를 폐환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은 미신이구나, 하고 병을 들고 악박골로 가서 한 병 얻어 가지고 오는 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내일은 우리 집에 초상이 날 것 같으니 사퇴 시간에 좀 들러 달라고 그래 놓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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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께서는 혼란된 의식 가운데서도 이 약물을 아마 한 종발이나 잡수셨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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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튿날 낮에 운명하셨습니다. 임종을 마치고 나는 뒤꼍으로 가서 5월 속에서 잉잉거리는 벌떼, 파리떼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물진 작약꽃 이 파리 하나 가만히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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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키! 하고 나는 가만히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또 술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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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는 공연히 약물을 잡수시게 해서 그랬느니 마니 하고 자꾸 후회를 하시길래 나는 듣기 싫어서 자꾸 술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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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 손님 약주 잡수세욧” 소리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 목로집 마당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우러져서 서성거리는 맛이란 굴비나 암치를 먹어 가면서 약물을 퍼먹고 급기야 체하여 배탈이 나고 그만두는 프래그머티즘에 견줄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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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 하고 얼러 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얘 ― 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3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3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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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 않으면 부지런히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 게 또 마음에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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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병이 나서 앓으면서 나더러 약물을 떠오라길래 그것은 미신이라고 그랬더니 뾰로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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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가버린 것은 내가 약물을 안 길어다 주었대서 그런 것 같은데 또 내가 약주만 밤낮 먹으러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같고 하여간 나는 지금 세상이 시들해져서 그날그날이 심심한데 술 따로 안주 따로 판다는 목로조합 결의가 아주 마음에 안 들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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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술만 끊으면 내 위해 주마고 그러지만 세상에 약물 안 먹어도 사람이 살겠거니와 술 안 먹고는 못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모르는 말입니다.
【원문】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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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李箱) [저자]
 
  중앙(中央)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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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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