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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신문학사론서설(朝鮮新文學史論序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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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10.9~
임화(林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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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 和篇[임 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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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新文學史論序說[조선신문학사론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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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人稙 이인직]으로 부터 崔曙海[최서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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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言[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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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신경향파 문학(新傾向派文學)의 역사에 대한 전혀 부당한 수삼(數三)의 논문을 비판의 대상으로 하는 국한된 목적으로 기초된 것 이 의외의 방면으로 벌어지고 길어져서 전혀 발표의 사정에 의하여 불손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사론(史論)’에 상응하는 풍부한 내용을 기다린다면 적지 않은 실망을 가질 것을 미리 말해 두는 바이다. 필자 병와(病臥)한지 연여(年餘)에 하등의 자료도 없이 단지 낡은 수첩 일개의 힘을 빌어 이 소론을 여지(旅地)에서 적었으므로 독자는 충분한 양해 밑에 보아주기를 바란다. 오직 우리들의 문학사 연구에 대 한 필자 연래의 소회(所懷)의 일단을 기술할 기회를 얻은 바이니 독자의 연구에 자(資)함이 있으면 만행(萬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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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文學史的 硏究[문학사적 연구]의 現實的 意義[현실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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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있어 우리 조선 문학사상의 모든 사실에 대하여 엄밀한 과학적 평가를 내리고 그 복잡다단한 역사적 발전의 전노정 가운데서 일관 한 객관적 법칙성을 찾아내어 한 개의 정확한 체계적 묘사를 만든다는 것 은실로 곤란한 사업이면서도 또한 가장 존귀한 일의 하나가 아니면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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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이 문학사적 노력의 가치와 의의에 관하여 오늘날에 있어서 란한 개 특별한 시대적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하게 됨은 이 오늘날이란 시기가 가지고 있는 바 제 내용이 , 그 가치와 결과하는 바 의의를 다른 여하한 시기보다도 실로 고유의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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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그 절박한 필요에 있어 또 비상히 높고 큰 의의에 있어 다른 시기에 있을 문학사적 사업과 스스로 구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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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가 문학사적 사업에 요구하는 과학적 엄밀성은, 일층 가혹하고 또 고도의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오늘날에 있어서 처해지는, 근 소 한 과학적 부정확성은, 명일에 볼 수 있는 우리의 문화적 창조에 있어 실로 금일에 앉아, 상상키 어려운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출발점이 되는 때문이다. 마치 두 개의 직선이 일점 상에서 상교(相交)함에 있어, 그 한 점상을 통과한 직후에 두 선의 거리란 무한히 협소한 것이나, 드디어 는 영원히 상합치 않을 무한대의 방면으로 발전하는 기하학상의 범례와 같이, 금일의 시기란 우리들의 문학적 발전상에 있어 정히 중대한 일 점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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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어떠한 조건하에 있으며 또 그 외의 건전한 문학 전반이 미증유의 심각한 역사적 국면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다언(多言)을 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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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한 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운명에 관한 사태가 아님도 또한 역연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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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사람의 양심 있는 문학자의 입으로 부터 이대로 가면 조선 문학은 멸망할 것이다라는 비통한 부르짖음이 발해진 것도 1,2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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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위기적 곤감(困感)을 가장 우심히 받고 있는 문학은 일반적인 조선 문학의 영역 가운데서도 자연주의 문학의 쇠미 이후 올 민족적 문학의 진실한 길을 걷고 있던 그 유일의 예술적 사상적 지 주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는 것은 과거 프로문학에 관아여 부당한 평가를 내리고 있던 일련의 맹안자류(盲眼者流)에게 정히 두상(頭上)의 일봉(一棒)이 아니면 아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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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있어서 이들 맹안자들이 문학상의 한 개 광폭한 좌익적 이 단 자의 조류로 보아오던 문학 위에 가하여진 침통을 극한 시대적 압력이 파급 하는 범위의 넓음을 감지하지 못하는 자가 아직도 이 나라 문학계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전혀 예술저그로 사유하고 인식할 하등의 자질을 갖지 않은 자 뿐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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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 곳에가 장 육체적인 절박성을 가지고 만인의 가슴에 전해지는 사실은 우리 조선 문학이란 ……(삭제) 생활과 함께 있다는 것, 다시말하면 조선의 문학적 성쇠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의 일 층의 확인이 아니면 아니 된다. 이 압력이란 오늘날에 와서는 여하히 두터운 피부가 신경 체계의 작용을 무디게 하던 인간의 피부라도 용이하게 감각 할 만한 노골적이고 강렬한 형태를 가지고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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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만일 어떠한 형태로든 금일 우리의 문학이 위기에 서 있다면 ……(삭제) 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적 위기의 극복 또한 생활적 위기의 타개 그것과 한 장소한 시기에서 수행될 것이며 문학상의 위기 현상이란 한개의 정직한 반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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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이 생활적 진실의 반영자 구현자이고 그 토대 위에서 자기의 자유스러운 창조적 세계를 개척하는 것이 진리라고 하면 문학이 그 자신의 위기를 타개치 못하고 기피하거나 좌절한다면 그것은 곧 생활적 현실 로부터 격리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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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이 위기현상의 구체적 인식을 그르친다고 하면 이것 역시 문학이 그것 위에 서서 발전해 나갈 토양으로부터 자기를 뽑아내는 비참한 결과에 도달 할 것도 논리의 지극히 명확한 두서(頭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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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생활로부터 유리되는 문학이 곧 진정 의미의 예술성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자기를 예술적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결과에 도달 할 것이니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의 조선의 문학사적 연찬이란 이 위기 현상의 정확한 인식과 또한 그의 극복의 엄밀한 과학적 기초가 되는 의미에 있어 특별히 중대한 현실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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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선 현재의 문학사적 노력은 결코 일반이 상식으로써 이해되는, 단순한 '학구적’ 의미로부터는 훨씬 거리가 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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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취급되는 문학적 대상은, 결코 단순한 평화스러운 '학문적’ 연구와 그 흥미의 대상이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현실적 필요의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과제는 우리를 앞길에 산같이 쌓인 잡다한 난관을 극복할 문학적, 자조적인 실천의 생X(한 자 삭제. 이하 같음)적 문제와 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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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것 없이는 우리들의 문학이 현재 가지고 있는 예술적 세계관 적제 결함을 보정할 수 없고, 동시에 이곳에서 일보를 그르친다면 이 위기 가운데서 자기를 전일적(全一的)으로 완성하면서 XX(두 자 삭제. 이하 같음)적으로 위기를 초극하여 이 것을 만드는 대신 , 일직선적으로 자기의 일층의 비약적 발전의 계기로 쇠망의 길로 이끌고 말 역사적 실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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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생활의 역사적 운동의 조류 위에서 자기 스스로를 전방으로 이끌 통일 된 예술적 X치적인 실X의 절박한 육체적 필요만이 문학사적 제 문제를 정당히 취급하고, 또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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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한 문학적 전진이 지극히 곤란한 조건하에 높인 금일, 다난한 전진운동의 급류로부터 자기를 어떤 안일한 장소로 이끌어가기 위한 한 개의 방편으로서의 역사적 반성의 휴식처를 구하는 기도라든지 또는 문학적 실천의 복잡한 과정 위에 과학적 조명을 던지려는 하등의 적극적 열의도 없는 아카데미안의 무미건조한 해석적 분석으로부터 이 사업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금일에 있어 문학사적 문제 란 실로 완전한 한 개의 실천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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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近代文學의 形成과 新傾向派[근대문학의 형성과 신경향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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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금 내가 수언(數言)을 소비하려는 신경향파 문학 발생의 역사를 천명하는데 있어서는 이 고유의 의의는, 일층 더 첨예하게 나타나며, 문 학운동의 예술적 X치적 X천과의 관계는 백배 더 긴요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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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프로문학의 예술적 X치적인 전발전의 단 초이고, 그 전공과의 비판적 해명의 기초인 때문이다. 동시에 신경향파 문학 대두 이후, 카프 문학의 10년은 그 형태의 변이와 공과 모두가, 이 시대의 제 내용의 각개의 연장이고, 또 지금으로 부터 먼 미래로 향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그것에 의하여 제약될 조선의 민족 문학 전반도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것의 특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구체적이고, 발전 적인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이 중요성은 배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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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경향파 문학의 역사적 검토의 결론은 곧 조선의 프로문학 운동 전반의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며 아울러 현재로부터의 창조적 실천의 행로와 방향을 지시하는 한 개 행동적 기간(基幹)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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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에 있어 필자는 일찍이, 현재의 시기에 있어 금일까지의 신문학의 전역사에 관한 과학적인 역사적 반성을 요망한 것이고, 특히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선행한 신문학으로 부터 계승한 제 유산과 부채를 과학적 문예학의 조명하에 밝힐 것을 희망한 것이다. 이것은 곧 프로문학의 10년간에 긍(亘)한 예술적 정치적 실천이 자기의 쌍견(雙肩) 위에 지워진 예술사적 임무를 정확히 자각하고 실천하였는지 그렇지 못하였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며, 또 그것의 과학적인 비판은 곧 장래할 우리들의 문학의 역사적 진로를 조명하는 예술적 강령의 범위를 지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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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비록 희귀하고 실로 완전치 못하나마 이러한 문학사적 반 성의 맹아에 접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귀중한 관심의 앙양으로서 반가워해 하여야 할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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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일까지 우리가 통독할 수 있는 이 문제를 위하여 씌어진 몇 개의 노작을 살펴볼 때 우리들의 이러한 원칙적인 요구의 방향과는 전혀 무연 한 어떤 일관된 경향의 견해를 발견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발표 된 거의 전부의 논문의 필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들이란 데는 일경을 불금(不禁)할 뿐더러 한 개 중대한 사태의 표현으로써 우리들은 확고한 태도와 방침으로써 이것과 대립하지 않으면실로 슬퍼할 결과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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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행되는 문학사적 사상이란 별 것이 아니라 신경향문학과 프로문학의 비판상에 나타난 문학과 생활의 이원적(二元的) 분리의 관념론이다. 동시 에이 이원론적 사관은 문예와 예술의 역사적 발전의 해명에 있어 푸리 체적 상대 주의의 아류자들로서 한 시대의 문학과 그 전과 후의 시대의 문학적 발전의 내적 관련의 설명에 있어 완전히 무력할 뿐더러 자기류의 독특한 기계론을 가지고 모든 시대의 문학을 수화(水火)와 같이 절단하는 데 높은 기술을 가진 사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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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곳에는 하등의 문학적 또는 예술사적 교양을 상반치 않고 관념 형태와 생산 관계와의 복잡 다기한 관계를 죽은 변증법과 경화 한 유물사관의 공식을 가지고 요리하는 독단론의 칼이 준비 되어 있는데 불과하다. 그리하여 문예 예술상의 계급적 상극과 창조적인 실천의 이해는 안일한 몇 개 공식에 의하여 교묘히 대치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원 사관(二元史觀)은, 과거 카프의 조직적 와해를 촉진시킨 변질 주의의 이론적 무기였다는 것을 날카롭게 기억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신경향파 문학의 형성으로부터 이기영의 소설 《고향》을 생산한 높은 수준에 이르는 10년간에 긍한 고난에 찬 행로를 걸어온 프로문학의 전 존재(全存在)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립하고, 또 발전해온, 예술상의 X 파적 견지를 파괴하려는 데 이 이원 사관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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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영희·이형림(李荊林)에 의하여 대표되는 신장한 예술 지상 주의 이론 (명기하라. 이것은 카프 해산론이었다!)은 금일에 와서 아무도 거기에 공연한 찬의(贊意)를 표하는 자를 발견할 수는 없을 만치, 이 이론의 가치와 명예는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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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들 진보적 문학의 영역에 있어 이러한 이론의 여당(餘黨)은 완전히 묵살되고 소청(掃淸)되어 있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몇 사람의 작가들이 창작상에서 서서한 퇴거를 실천하는 데 이 고마운 교설은 진리가 되어 있고, 프로문학의 사적 평가란 과학적 노력의 형태를 통하여, 이 경향은 복잡한 과학적 논리의 외모를 갖추어 재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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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류의 견해는 9월 《신동아》지에 실린 근대 조선 문학의 사상적 천이를 위하여 쓰여진 신남철·이종수(李鐘洙) 양씨의 논문과 좀 멀리는 작년 《신동아》에 실린 김기진(金基鎭)씨의 조선 문학의 현계단과 수준에 관한 제 논(論)에서 그 한 개 기초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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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흥미 있는 것은, 박영희적 이론에 관하여 정면의 비판자로 등장 한 김기진 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신남철·이종수 양씨가 다 박영희적 이원론의 비판자라는 점에서 한 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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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다면 박영희·이형림 등과 그 비판자인 제씨들을 지금 한 개의 이론적 계열하에 놓는다는 것이, 모순하는 것 같으나, 그러나 우리들의 이해 할 요점은 이 비판자나 비판당하는 자나 모두가, 동일한 이론적 기 간위에서 출발한 두 개의 지엽이란 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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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기장 적당하고 또 종합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대상은 신 남철씨의 '신경향의 대두와 그 내면적 관련에 대한 한 개의 소묘’란 긴 부제가 붙은 〈최근 조선 문예사조의 변천〉이란 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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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주로 이 논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비판을 따라 문예 사관의 신 이원론(新二元論)을 해명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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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경향파는 프로문학의 역사적 단초이고 그가 가진 문학적 사상적 이상은, 금일까지의 프로문학운동의 창조적 비평적 제 활동을 지배해온 것이라고 보아도 대범한 의미에서 별로 사실과 모 순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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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문학은 현실생활에 의존한다는 견지에 있고, 동시에 문학은 생활 현실에 일정한 정도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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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경향파 문학의 창시자들의 대단히 오랜 논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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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실을, 우리의 생활을 XX해야만, 우리의 문학을 XX할 수 있고 …… 중략…… 예술, 이것을 해방시키고 생명의 본질을 찾자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XX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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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진,〈금일의 문학 명일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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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의 위대한 생활의 발견이 위대한 예수를 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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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로 문예가 생활에 영향이 있다느니보다 생활이 문예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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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조선을 지나는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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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견 소박하나 그러나 명확한 사적 유물론의 견지 위에서 자기들의 예술적 출발을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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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느 시대의 문학도 대부분 그러한 것과 같이 신경향파 시대에 있어서도 실제의 창조적 활동과 비평의 이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즉 이러한 비평가들의 이상적 욕구에 상응하기에는 신경향파 문학의 예술적 정치적 수준은 비교적 얕은 곳에 서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신 경향 파의 원칙적 욕구가 작가들의 창조 X천에 맞지 않았다든지 공허한것이라든지 하는 관찰은 가능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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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비평의 요구는 항상 비평과 문학 그것이 의존한 X 급의 현실적 X천의 이상적 요구를 가장 높게 집결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문학상의 창조적 X천이 현실적 제 과정에 비하여 후행적이었다는 것은 신 경향 파 이후 전프로문학의 공통의 약점이면서도 또한 역사적인 한 개개 연성을 가진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 생활의 현실적 과정이 도달한 이상의 고처(高處)를 문학이나 예술이 걸을 수 없다는 단순한 관계 로부터 귀납되는 것이다. 특히 조선과 같이 근대 노동층의 자각적 XX 가 옅은 단계에 있는 곳의 유소한 문학이 맛보는 제 곤란이란 특히 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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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경향파 문학의 이 원칙적 욕구는 금일에 이르기까지 프로문학 의전 X천을 일관한 프린시플(principle;원칙) 이었다. 하나 이 유소한 문학적 세대들은 이러한 원칙을 강조하는 나머지 문학상에서 내용 편중 주의라고 하는 한 개의 마이너스를 가졌었다. 그리하여 문학상에 있어, 그 사상성과 예술성에 대한 통일된 과학적 견지를 가지는 대신 예술의 형식의 의의에 관한 유명한 김기진 대 박영희의 역사적 논쟁을 거쳐, 문학적 창작과 그 운동과 공히 정치의 우위성이란 것을 곧 정치 및 사상에의 직접의 봉사주의란 방향을 가지고 최근까지에 이르도록 지배적 원칙으로써 통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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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땅의 사회적 제 조건에 의하여 이러한 결함은 거의 불가피의 것으로써 문학 자신이 혼자 다른 유력한 현실적 힘의 명확하고 정당한 지도를 떠다 자기의 정로(正路)를 찾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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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이러한 경향은 신경향파나 주로 문학 자신만이 생각해낸 방향이 아니라 조선의 새로운 층의 유약한 X천이 이러한 문학상의 결함을 시정 할 능력을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 그릇된 방향을 시인하고 또 조장 요구까지 하고 있었다는 중요 사실이 이 가운데 개재되어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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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인 제결점이 박영희·이형림을 두목으로 하는 일련의 이원론적 당파성 해제론자들의 교설과 같이 그 전체계를 일률로 부정 할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냐 하면, 천만의 말이다. 이것은 조선의 유소한 근로층이 성장의 통고(痛苦) 가운데서 지불한 불가피의 XX 적 희생이고 이것에 수반하는 경험 없고 나이 어린 문학예술의 대오가, 역사적 과정 가운데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실로 아픈 공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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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우리들의 현실적 제 과정이나 문학 예술의 운동이, 이러한 희생을 지불치 않으려고 아끼었다면, 그보다 몇 백배 귀중한 본질적인 것을 희생의 제단에 내놓아야 했을 것 임므로 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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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이 부차적인 조그만 희생을 아끼었다면, 모든 것은 태초 로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신경향파 문학이 그 제 일보를 내놓을 때는,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근로층의 문학적 창조와 그 운동의 정당한 경험을 섭취할 지주와 실례가 없었다는, 역사적 약점을 더 한번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소련에 있어서는 시민 전쟁 시대의 초연(硝煙)이 쓰러질락말락 한 때로, 겨우 프로작가의 단일적 운동 이형성 된 직후이고, 일본에 내지(內地)에 있어서도 겨우 '신흥 문학’ '파종인’ 등의 연소한 운동이 조선과 대차(大差)없는 형태로 출발 한때 이었다는 국제적 사정은 그들로 하여금, 금일에 생각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예술적 수준으로 부터의 반성을 불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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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과연 오늘날 신경향파 문학에 대하여, 거의 지배적 평가로 되어있는 것과 같이 '비상히 유치한 수법, 졸렬한 취제(取題), 미숙한 문장, 초보적인 자각 의식을 가지고 시를 쓰고 소설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광수 등의 개인적 상인적 문학작품보다 더 낫다는 것은, 그 수법, 그 문장, 그 취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소위 목적 의식적 개조 운동과의 관련과에 있어 우위를 가졌다(《신동아》9월호, 전게 논문, 신 남철)’라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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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春園文學의 歷史的 價値[춘원문학의 역사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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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보다 평이한 말로 바꾸면 신경향파 문학이란 대체로 문예· 예술적으로는 이광수 기타의 부르주아 문학에 비하여 떨어지면서도 그것이 후자보다 우월하다는 유일한 근거는 그들이 '소위 목적 의식적 개조 운동’ 과 연결되는 '초보적인 자각 의식’을 그 내용으로 하였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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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세계관상의 조화에 대하여 예술적 발전은 상부치 않았다는 것, 다시말하면 우위적 발전적 상태에 있는 것은 사상상의 형상뿐이고 예술상으로는 퇴화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누구의 눈에도 명료한 것과 같이 문 화사상에 있어 세계관적 과정과 예술적 과정의 내적 관계를 설명치 않고 문학적 발전상에 있어 사상과 예술성을 만리의 장성을 가지고 분리 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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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석이 고의의 독단적 판단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견해는 상기의 인용 중에 표시된 씨의 이른바 초보적인 목적의식과 '목적의식적 개조운동과의 관련’이란 전일적 내용의 개념을 두 개 상이한 것으로 취급한 역사이해의 방법으로부터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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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적 유물론은 한 개 관념 형태로서의 자각 의식의 초보성으로부터 목적의식적 개조운동 그 자체의 초보성으로부터 연역하고 후자가 가진 현실적 초보성의 정신적 반영으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제약 된 필연적 결과로서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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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점은 역사의 현실적 주의와 그 상부 구조와의 내적 관련에 대 한신씨의 파악 방법이, 사적 유물론의 원칙 그것과는 상당히 먼 거리의 것임을 이야기 하며, 아울러 문학현상의 사상성————현실운동과의 관련의 표현으로서의 ———— 과 예술성의 내적 과년에 대한 그릇된 이해의 사상적 핵심이고 무엇임을 알게 하는 가장 명확한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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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우리는 신씨의 자랑하는 바 내적 관련의 이론이 결국은 양자의 분리의 이론이며 동시에, 이 이원론은 결코 한 개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씨 가모든 현상과 그 역사적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체계적 방법으로서가 지고 있는 수미일관(首尾一貫)한 것임을 이해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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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이해에 있어서 이러한 입장은, 문학사 서술의 국면에 있어서 종으로는 각 문학적 유파의 사적 소장(消長)의 일관한 법칙적 발전의 연락을 절단하고 횡으로는 동시대에 존재한 제 작가의 유파 경향의 복잡한 교호 관계 중의 과거적인 것과 융흥적인 것의 역사적————이것은 필 여적으로 당파적 평가에 도달한다————사회적인 분석과 구별을 불가능케 하고 문학적 비평에 있어서는 내용과 형식의 분리로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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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씨의 여사한 문학사관은 제일로 신경향파 문학 평가에 있어 그 종적 표현인 그 전시대의 신문학과의 복잡한 제 관계를 사상하고 시 대 구별의 안일한 개념으로써 대치하는 낡은 역사학의 관용된 방법으로부터 출발 한다. 우리는 씨의 논문의 서두적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 한 일절을 인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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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무정》《개척자》 등에 있어서는 사실 진보적 경향적 요소를 간취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끝끝내 개인 인간의 생활 개선의 성(城)을 탈각치 못하였다. 그것은 상당의 사회적 계급분화의 개인주의적· 상인적· 유물 주의적 표현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조만간 새로운 세력의 성장과 함께 대두한 소위 신경향파 문학과 대립하게 된 것은 아주 자연적인 이치가 있으니 그것은 각기 사회적 지반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신동아》9월호, 상게 논문, 신 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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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씨의 이론적 출발로써 지극히 당연한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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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인용문 가운데 곧 간취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곳에는 해(該) 논문에 있어 씨의 기도의 주요 방향이 되어 있는 문학적 세대 교체의 사 회사적 측면에 있어서도 씨는 심히 부정확한 개념밖에 못 가지고 있 음을 우선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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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향파 문학이 형성되지 않으면 아니 될 사회적 계급적 근거와 이광수 등의 문학이 과거의 문학으로서 역사의 국면으로부터 퇴거치 아니하면 아니 될 동일한 근거의 분석을 볼 수 없고, 또 그때의 대립된 근거의 역사적 관련의 필연성의 석명(釋明)이란 가장 중요한 사업이 결여되어 있다.
 
73
뿐만 아니라 씨의 논문의 대상이 아무리 사조 변천의 묘출에 있다 하여도 그것이 문학사를 대상으로 하는 한 반드시 해명해야 하고 또 사실상 이 것 없 이는 문학 사조의 추이를 이해하기 불가능한 불가결의 것인 이광수 이래신 경향 파 문학 이전에 개재하였던 문학 현상에 대하여의 고구를 결한 것은 불가사의의 일이다.
 
74
신경향파가 그 자체을 문학적으로 형성함에 있어 직접으로 관계한 것은 기미(己未) 이후에 개화된 자연주위와 데카당티슴·낭만주의 등의 문학 이었다.
 
75
이 조류는 신문학사상 가장 화려 융성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써 춘원 이 후의 문학발전과 시대정신의 찬란한 축도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76
이때 비로서 조선의 신문학은 문단이란 것을 가졌고 유치하나마 비평이 생기고 시와 소설이 근대적 형태의 터를 잡아 마치 황혼을 맞는 하늘 과같이 어린 문학조선의 하늘은 미증유의 성관(盛觀)을 정(呈)하였다.
 
77
프로문학의 영아 신경향파 문학이 이 가운데서 자기의 정신적 문학적 영양을 섭취하고 그들이 해결치 못한 잡다한 사상적 문학적 부채를 계승 하면서 차등(此等) 문학의 부정적인 제 점에 화살을 던지고 생활적 역사의 새로운 요구에 조응하면서 시대의 전면에 일어선 것이다.
 
78
이곳에는 춘원으로부터 신경향파 문학에 이르는 문학적 발전의 역연한 법칙과 사실이 아울러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79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남철 씨에 있어서는 춘원에 대한 부정확한 추상적 평가와 차등의 선행적 문학과 신경향파 문학을 대등의 균형 론상에서 취급하는 무원칙적 대립의 이론이 지배하고 있을 뿐으로 구체적 사실(史實)과 그 제관계와 발전에 대한 고학적인 배려는 완전히 무시 되어 버렸다.
 
80
첫째 춘원의 《무정》등을 신경향파 문학의 직접의 선행자로서의 위치상에 놓고 아울러 그 '많이 간취할 수 있다는 진보적 경향적 요소를 당시의 사회적 계급분화의 개인주의적·상인적·유물주의적 표현’이란 간단한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처리하고 오히려 그것이 개인의 생활 개선의 역을 탈각 치 못한 데 불과하다고 불만은 피력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하면서도 기실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무의미한 말이다.
 
81
춘원이 대표하는 문학이 신경향파 문학의 직접의 선행자가 아님은 말 할것도 없거니와 그 진보성 경향성이란 신씨의 평가와 같이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며, 또 그것은 당시의 사회 계급의 분화과정에서 생산된 상인적 사상(씨의 표현을 빌면 개인주의와 유물주의)의 본래적 의미의 표현도 아니었으며, 그것이 '개인적 생활개선’의 한계 밖을 나가지 못함은 결코 '불과하다’ 고 볼 것이 아니다.
 
82
오히려 상인적 사상이란 본래에 있어 개인주의에 입각하고 또 그것의 최대의 고려점이 산업상·상업상의 수리(受利) 그것임은 당연한 것이고 필연의 결과이다.
 
83
그러므로 만일 당시 춘원의 문학이 이 상인적인 요구를 완미한 의미에서 자기의 예술상에 표현 반영할 수 있었다면 문학사적 견지에서는 최대의 찬사를 가지고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84
씨는 레닌의 그 〈톨스토이 평〉가운데서 레오 톨스토이의 제 견해에 있 어서의 모순은 근대 노동자 운동과 근대의 사회주의의 견지에서 평가 할것이 아니라 (그것은 물론 필요할 것이나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 운운(云云) 의 논문 가운데서 지시한 유명한 교의를 기 억 케 해야 할 것이다.
 
85
이곳에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추상적 지수를 가지고 척도할 것이 아니라 문학사의 구체적 사업과 그 문학을 낳은 사회적 현실로부터 출발 하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XX주의의 태도라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86
그러므로 이리잇치는 고정화된 프롤레타리아 XX이 견지에서가 아니라, 러시아 역사의 부르주아, 데모크라시의 과정 가운데 문제 해명의 제 기점을 든 것이다.
 
87
이러한 착오 혼란된 견해는 구체적 현실의 무시와 역사 현실의 계루(繼累) 과정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 즉 발전의 사상의 결핍으로 부터 유래 하는것이다.
 
88
춘원의 문학은 우선 그 자신이 소위 발아기를 독점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이해조(李海朝), 이인직(李人稙)으로부터의 진화의 결과이고 동시에 동인(東人), 상섭(想涉), 빙허(憑虛) 등의 자연주의 문학에의 하나 매개적 계기 였다는 변증법(진실로 초보적인)의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다음에는 그의 사회적 역사적 의의를 구체적 현실과의 의존 관계의 법칙에 의하여 평가하 여야 할 것이다.
 
89
이러한 견지에서 본 《무정》등의 문학적 가치란 동인·상섭 등에 비 하여 뒤 떨어지는 것이고 또 그의 선행자, 이해조·이인직의 수준보다 는 높은것 일 수 있는 것이 또 사실에 있어 그러한 것이다.
 
90
하나 이곳에 춘원이 관계한 전후의 문학적 세대와의 차이에 있어 약간의 특수한 고려를 필요로 한다.
 
91
그것은 《무정》등이 이인직 등에 비하여 갖는 문학적 우월성이란 이인직의 작품이 그의 선행 시대에 있던 구투의 신구 소설류에 대 하여가 지고 있는 진보적 의의에 비하여 그리 높지 못한 것이다.
 
92
당초 이인직의 창조적 성과란 과거한 시대의 소설과 대비한다면 비록 금일에 보는 것과 같이 완미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내용하는 사상과 제재에 있어 또 언어 문장 특히 재래에 보지 못하던 정밀한 묘사에 있어 개척한 바 사업에 있어서는 실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93
하나 춘원이 이인직으로 부터 구별되는 본질적인 것은 그 형태에 있어실로 평화적이다. 물론 제재의 범위, 그 근대성 묘사의 일층 풍 다화 정밀화와 시대적 정신을 일층 명확히 지극히 한정된 의미에서나마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보이나 동인씨가 〈춘원 연구〉 가운데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라’'이로다’'하더라’'하노라’ 등 구시대의 문어체의 유물이 그대로 잔존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관상에 있어서도 이인직의 그것 (불철저한 근대정신)의 단순한 연역·부연(附椽)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제재를 구성하는 데서도 낡은 권선징악 소설의 여태(餘態)을 탈각 치 못하였었다.
 
94
이 모든 조건은 춘원의 이인직에 대한 문학적 우월이란 것을 심히 조건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서 이인직의 구시대 문학에 대한 관계에 비하여 춘원의 이인직에 대한 그것은 상대적으로 보아 전자에 뒤진다는것이다.
 
95
이것들이 모두 현재한 저 《무정》이란 소설을 볼 제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근대 문학의 형태를 갖춘 예술 작품으로서 평가하기에 약간의 주저를 삽입케 하는 점이다.
 
96
그러나 필자는 결코 춘원이 독행천리(獨行千里)의 기개로써 신문학 발전의 공고한 기초를 쌓아올린 존귀한 업적을 추호라도 과소하게 평가하려는 자는아니다.
 
97
오히려 신씨의 논법에 보는 바와 같이 《무정》이나 《개척자》가 그 예술적 가치에 있어서보다 그것이 당시 발전하고 있던 새로운 시대 정신을 반영한 내용적 사상성에서만이나 혹은 이종수 씨의 소론에서 보는 바 와같이 '봉건 도덕에 대항한 자유를 부르짖은 점에 있어서’ 겨우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는, 그러한 일 면적 비평으로부터 완강히 그 문학적 진보의 가치를 주장 확인하는 자이다.
 
98
왜 그러냐 하면 이곳에는 비단 논리상 뿐만이 아니라 사실로 문학적 예술적 발전 진화의 확호한 달성이 존재한 때문이다.
 
99
이러한 편안적(片眼的) 비평이란 과거의 젊은 좌익적 비평이 범한 일이 있는 공식주의적 과오의 확대 재생산이 있을 뿐 문화상의 아나키즘으로 과학적 문학 비평의 현명한 관찰과는 무연의 것이다.
 
100
차등의 사실은 우리들이 이인직의 《치악산》이나《혈루》를 읽으면 곧 알수 있는 것으로 그 디테일의 시대적 정확성에 있어 또 예술적 묘사의 높은 달성에 있어서 심지어는 문장 어휘에 있어서까지 그 진화 발전을 해득 할수가 있다.
 
101
이 점은 춘원 이그 전시대의 문학에 비하여 가진 바 세계관의 우월 성과 한가지 그의 작품이 당연히 제약 반영할 예술적 발전을 이론적으로 긍정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102
작가 김동인 씨는 그의 논문 〈춘원연구〉 가운데서 이 문제에 관한 시사 깊은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103
김동인 씨는 조선 신문학 발달사에 있어 《무정》의 특필을 할 가치에 대하여 그 내용이 갖는 바 '새로운 감정’————김씨에 있어 '감정’의 개념이란, 감정 이상의 광범한 사상성의 일부까지를 포함한 듯 하다 ————을 효시적으로 표현한 점을 들고, 뒤이어 이 소설이 문장상에 있어 낡은 문어체적 구투를 일소치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구어체로서 이만치 긴 글을 쓴 것은 조선 문학 발달사상 특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고 부언 하였다.
 
104
그리하여 이것이 《무정》이 이인직 시대의 문학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를 차지 할 뿐더러 이것이 또한 《무정》이 대중에게 애독된 이유라고 말하였다.
 
105
지금 김동인 씨의 《무정》 비평에 대한 우리들의 모든 의견을 이 곳에서 보류 하더라고 몽롱하나마 김씨가 가진 한 작가 한 시대의 문학의 내용상 세계관상의 진화와 병존하는 예술적 발전을 동일계열에서 설명하는 태도를 간취 하기에 족하다.
 
106
이곳에서 우리 과학적 문예사가의 추상적 이론에 있어서보다 훨씬 명확한 균일 된 실증사상의 편린을 발견할 수가 있다.
 
107
그러나 결코 이것은 동인씨 등의 비평안(批評眼)이 우리 과학적 학도들보다 이상(以上)의 과학적이라든지 혹은 보다 정확한 사관을 파지 하고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08
반대로 신남철 씨나 이종수 씨 등에게 비하여 하등 과학적인 비평 안이나 구체적 사관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함에 불구하고 사소한 정도에 있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였다는 한미(寒微)한 일점이 추상화된 과학적 방법보다 때로는 정확한 부분을 가질 수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09
《무정》등의 소위 특필 할 가치라든가 '진보적 경향적 요소’의 한계와 내 용의 분석에 이르러는 우리는 보다 더 정확 엄밀을 기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110
《무정》등에서 표현된 다분히 톨스토이적인 인도주의적 이상주 의란현 실적으로 보아 그 진보적 경향성에 있어 당시의 민족 재벌적 상업적 또는 겨우 머리를 든 산업적인 독층(讀層)이나 또는 그 지적 대변자로서의 지식 청년 층의 급진성와 정치적 사회적 욕구의 내용에 비하면 신씨의 해석같이 그리 많지도 못하고 또 이종수씨의 말씀같이 '상공업 진흥과 신 조선 건설의 정신이 가득 차 있지도’ 못한 협애 애매한 것이 있다.
 
111
하물며 이씨의 《무정》평과 같이 이 건전한 근대 부르주아지의 전진적 열 정이 춘원의 주의와 사상이라고 하는 견해는 한 개 호의에 의한 과장적 독단 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112
당시 뒤늦게서야 겨우 머리를 들고 성장하기 시작한 토착의 산업적 상업적 부르주아지는 자기의 본래의 욕구로서의 정상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다른 세력에 의하여 저지당하고 부자연한 노선을 밟고 있었으며, 농민의 대부분도 그들을 봉건적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할 상기의 기본적 조건의 변형 때문에 근대적 민주적인 제 욕구를 억류당하고 있었다. 이 전토(全土)에 긍한 부자연한 현실적인 조건은 모든 영역에 있어 그 순조로운 발전을 저해하여 한 개 전일적인 공기가 전토의 상공을 덮고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근대적 숙제는 본래 민족 부르주아지가 해결 할 역사적 임무를 가진 것임은 물론이다.
 
113
그러나 이곳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특이한 부자연성은 토착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한 개 역사적 운명적인 십자로상에 서게 하였다. 이 딜레마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옹색한 자기 발전의 활로를 타자에게 예속 되어 기생하는 데 구할 것인가 혹은 모든 역사적 숙제를 해결할 행동 선상에 진출할 것이냐 하는 오뇌 그것이었다.
 
114
하나 이미 명확한 바와 같이 그의 힘은 너무 약했고 또 그들을 타력 본원(他力本願)에 의귀케 함에는 이여(爾餘)의 사회적 민족적인 하부의 압력은 지나치게 큰 것이었다.
 
115
즉 토지 문제의 근 대적 해결을 요구하는 농민의 팽창된 열망과 아직 객관적으로 자각되지는 아니하였을 망정 자본주의적 발전 그것과 같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하층 민중의 잠재된 노력 그리고 낡은 봉건적 속박 과자 본의 전진하에 고통을 감(感)하고 있는 지적 소시민 등의 급조(急調)된 정신은 이 딜레마를 일층 심각케 하였다.
 
116
이 하부의 압력이 영향하는 심각성은 이중의 것으로 하나는 토착 부르와 그들 간에 있는 복잡한 단계적 이해의 모순이 전자의 행동에의 진출을 곤란 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부 제 층의 전일화(全一化)된 행동에의 열망이 전자들 밑에서 행동에의 광장으로 추진시키는 것이다.
 
117
그러나 이 후자의 힘이 당시에 있어 우세로 된 원인은 우선 당시의 계급분 화가 그 대립을 정면에서 상긍(相兢)케 할 만치 성숙되지 않았고 또 토착 부르가 좌우간의 연명을 위하여 일응(一應) 행동해보지 않으면 아니 될 절박한 정황 등이 종합되어 실로 복잡하고 급한 정치적 정신의 분위기를 가지고 기미에로 흐르고 있던 것이다.
 
118
정히 이러한 정신사적 공기 가운데서 춘원의 《무정》등은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정황은 곧 소설 《무정》가운데 여하한 형태로이고 반영 되지 않을 수 없었다.
 
119
그리하여 주로 자유 연애, 개인의 도덕상·윤리상의 권리의 요구, 부권에 대한 부인 등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으로 부터 벌써 명확한 것과 같이 거의 토착 부르의 소극적 반면의 표현과 더 많이 소시민들의 정신적으로 왜곡된 자유의 표현이었다.
 
120
이곳에는 자유의 전체의 자태가 아니라 그 한정된 반분(半分) 즉 기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현실성을 사상한 불구의 정신이 일면적으로 과장되어 표시 되었다.
 
121
즉 당시 조선 사람이(토착 부르까지도)생활적 현실가운데서 한 개 통일적 목표 로서 요구하던 자유로부터 윤리상 도덕상의 개인의 자유를 분리 하여 마치 그것이 전부와 같이 과장한 그 '사상적 과장’이 춘원의 낭만적인 이상주의의 기초이다.
 
122
동시에 춘원의 문학에 있는 전허위(全虛僞)의 핵심으로서 이것은 그의 예술적 묘사의 사실성을 날카롭게 제한 하였다.
 
123
그러나 물론 이러한 형태의 자유라는 것이 낡은 봉건적 구속으로 부터 근 대 시민이 요구한 역사적 욕구의 하나라는 점에서 갖는 진보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24
하나 이것을 가리켜 우리가 한정된 반분이라고 평가하는 사유는 이러한 영역에서 요구되는 자유의 권리란 본래에 있어 근대 시민계급이 중세적인 정치와 경제의 지배에 대한 정치 경제적 발전의 보장 요구와 함께 되든지 적어도 그와의 밀접한 관련하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때문이다.
 
125
이러한 기간적인 것으로 부터 분리된 형태란 전혀 반분 이하로 제한 된 한낱 무력한 기도에 불과하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개인의 지유란 이 토대적인 것의 해결 없이는 철저적으로 자기를 관철키 불능한 때문이다.
 
126
그러므로 춘원의 문학이 갖는 경향성의 불철저함은 조선 부르주아지의 행동적 불철저성과 병존하는 것이나 그 사상이 문학적 표현을 잃은 시기 가상 기한 바와 같이 아직 그들의 계급이 다소간이나마 행동적 조류 가운데 섰을 때에 미리 자기를 제한하였다는 의미에서 그 진보성이 '심히 적음’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127
그렇지 않고 현재와 같이 전혀 그들이 행동의 권외 혹은 대립자의 입장으로 전락하였을 때는 경향성이나 진보성이란 문제로부터 성립 하지 않는다.
 
128
이 세계관상의 자기 제한은 먼저 말한 사실성의 한계를 저하시킨 데 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 춘원의 인간적 형상의 창조에 있어 각개 인물의 개(個)적 성격의 불확실, 전형적 보편성의 결여라는 중요한 결함으로 표현 되어 통렬한 예술적 보복을 여(與)하였다.
 
129
즉 《무정》에서도 《개척자》에 있어서도 춘원은 이 나라의 현실 생활 가운데 있는 자유를 '희구하는 인간군’의 사회적 개인적 양면을 종합적 통일적 형상 가운데서 보편적 전형화의 수준에까지 자기의 창조적 사 업을진저 시키는 대신 근근 '자유연애쟁이’나 '부권에 대한 불효 자식 청년’의 소극적 반항의 자태를 심히 일면적인 묘사를 통하여 소묘 한 데 불과하다. 이것은 서정적인 것의 문학적 형상화를 위하여는 서정적인 사실과 그것을 가능케 한 서정적 정황의 묘사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는 옛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묵은 원리에 충실치 않은 한 개 인업(因業)일지도 모른다.
 
130
당시 인간의 종합된 전형활ㄹ 위하여는, 그 인간이 생활하는 현실적 사 태정 황에 대한 이해와 묘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에 불구하고, 춘원의 세계관상의 약점은, 그 사태 정황의 정확한 인식을 그르치고, 그것으로 인한 사실성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전형적인 인간적 형상의 창조는 일 면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131
이것은 예술창작에 있어 직관력의 과도한 평가에 대한 한 개 훌륭한 반박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곧 상상할 수 있는 것과 춘원의 그만 한 상상력과 직감력을 가지고 만일 그의 세계관상의 제한이 저만치 큰 역할을 연(演)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전형화의 길을 발견키에 그리 곤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132
그러나 세계관의 힘은 직관력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서, 당시 현실에 대한 비전형적 인식은, 곧 전형적 사태와 정황의 묘사에 있어 확고 부동의 제한으로서 나타나, 드디어 세계관상의 약점은 그 예술적 창조의 힘을 파괴하고, 그 가치를 저하시킨 지배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133
이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문학적 창조와 예술적 형상화이 영역에 있어 세계관의 지배적 역할이란 심히 높다는 한 개 중요사실을 증좌하는, 생생한 교훈이다.
 
134
더욱이 나는 춘원의 작품이 내용하고 있는 세계관적 요소라는 것의 본질이란, 그 작품이 씌여진 시대의 이상에 비하여 뒤떨어지 뿐만이 아니라, 이 뒤떨어졌다는 것의 성질이, 민족 부르주아지가, 그 역사적 진보성을 포기한 기미 이후, 이 계급이 가졌던 환상적 자유와 대단한 근 사 점을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 이유에 의하여, 이 시대의 춘원의 작품의 진보성을 그리 높게 평가하는 데 항의 하는 자이다.
 
135
즉,《무정》등이 가진 사상으로서의 이상이란, 구체적으로 보아 기미의 대풍(大風)이 일과 한 후 한 개 연화된 공기로서의 '문화열’적 이상 그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시대에 있어, 기미 전의 고조 되었던 정치 열을 급작히 문화열 내지 산업열이란 것으로 변형되어 전후 양자의 차이는 실로 괄목할 바 있었다.
 
136
이곳에는 단지 조선 사람의 문화적 자각이란 피상적 관찰을 불허하는 한개 본질적 내용의 것이 있다. 그것은 기미 대풍을 중심으로 민족 부르 계급이, 역사적 도정 가운데서 연하는 바 역할과 차지한 위치의 근원적인 변화가 내재한다. 다름아니라, 그것은 기미에 이르기까지 이 계급은 다소간이나 진보적이었고 전진운동의 일우(一隅)에 처하여 있었 음에 불구하고 대풍은 그들을 곧 이 반대자로 전환 시킨 것이다.
 
137
문화열이란 다른 일체의 관련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정히 이 변화의 산물임에 불과하다.
 
138
즉 그들은 정치상의 욕구를 제한하고 오직 관념상의 자유 ———— 문화의 획득이란 방향으로 변전한 것이다. 이러한 굴욕적인 자기 제한이 일시적으로나 마 통일적 표치로서의 효과를 수득 할 수 있었느냐 하는 현실적 이유로서 농민과 노동자층의 계급적 자존의 불충분이란 사실 이조 응한 다.
 
139
이곳에 정치적 사회적인 일면을 제거한 문화적 자유의 반신상 성립 하며 춘원의 사상적 세계란 것 또한 이 반신상의 문학적 축도에 불과 한 것이다.
 
140
그러므로 나는 일찍이 춘원을 조선 부르주아의 약한 반면의 정신적 표현자라고 부른 것이다.
 
141
동시에 이 약점이란 한 개 숙명적 형태로서 춘원이후 신문학의 지위 전부를 일관한 특질로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142
4. 自然主義로부터 浪漫主義에의 過渡(朝鮮文學의 前後的開化期)[자연 주의로 부터 낭만주의에의 과도(조선 문학의 전후적 개화기)]
 
143
일찍이 나는 지나온 부분 가운데서 신경향파 문학과 이광수 시 대의 그것을 연결하는 매개적 계단의 무시를 비난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 이 양씨의 논문 가운데서 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상당히 자세한 논술을 발견 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 상기의 비난은 근거 없는 고의에 의함이냐 하면 결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요점은 양씨의 논술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 공통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 사실의 단순한 무질서적 나열과 그것을 발전과 매개의 입장에서 파악하지 않았다는 그것이다.
 
144
그러므로 이 시대의 다기한 문학현상은, 이광수 시대와 신경향파 문학과의 전체적 발전적 연결의 관절로서 설명되지 않고, 교과서류의 소재을 가지고, 연대 상의 순서를 따라 점절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논자들의 이원 사관의 공식에 의하여, 문학적 발전과 세계관상의 진화가 분리되어, 자연 주의 문학을 단지, 약간의 문학기술상의 진보가 있을 뿐, 사상적으로는 춘원 시대보다도 저하하다는 간편한 평가를 내리었다.
 
145
이종수 씨는 그의 논문 〈신문학 발생 이후의조선 문학〉가운데서 이 시기(그의 구분을 빌면 제2기)를 다음같이 결론하였다.
 
 
146
이와같이 제2기는 제1기에 비하여 문학 수법 기술상으로는 일단의 진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학 사상에 있어서는 도리어 혼돈 상태에 있는 무이상 시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147
우선 이 견해는 신남철 씨의 '현상의 잡다성 바다’ 운운의 소론과 김기진씨의 '모색시대’운운의 규정과 본질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공통성을 인정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148
그리고 이 주인의 이론적 공통성에 보는 특색은 이들이 소위 이 무 이상적 혼란 시대 문학을 비평함에 있어 그들 자신까지 무이론적 혼란상을 정 하고있다는 점이다.
 
149
즉 비판 자들은 이 시대의 문학이 그들도 설명한 바와 같이 전대의 그것에 비하여 별반 사상상의 진화가 없음에 불구하고 문학상의 발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일견 모순하는 현상에 대하여 한 사람도 이론적 해명을 가하지 않았다.
 
150
'혼란’이라든지'무이상’이라든지 '잡다성의 해양’이라든지 '모색 시대의 호수’ 라든지 등등의 표현은 모순하는 현상의 단순한 긍정적 설명의 형용사이지 결코 모순되는 원인과 관계를 분석 비판하는 이론적 개념은 아니다.
 
151
요컨대 세 논자가 각기 관찰의 심도나, 문학사적 교양에 있어 발견 할 수 있는 약간의 우열에 불구하고 문학적 현 상의 흥망소장을 일관한 계열하에선 '발전의 견지’에서 평가함에 무력하였다.
 
152
우선 춘원의 문학 가운데 관류하고 있던 기본적인 약점인 현실인식 및 파악의 일면성은 그대로 대부분이 차대의 문학위에 계승되었다.
 
153
이 시대의 문학적 주류이었던 자연주의 문학이나, 낭만적 데카당적 시인 작가들의 취재의 범위 및 방향위에 '유전된 제한’으로 작용된 것을 상 기세 논자들의 일치한 견해와 같이, 사실 이 영역에 있어 본질적인 진화를 인정 키 어렵다.
 
154
그러나 조선 신문학을 한정하는 이 특질은, 춘원의 시대에 그 맹아가 움 텄다고 한다면 기미 이래에 현황한 국면에 이르러서는 정히 성숙하 개화 기의 구체화를 볼 수 있다.
 
155
이것의 첫째의 이유는 역사적 사회적으로 보아 기미 후 새로운 성 관을 정한 문학적 제상이란 본원적 의미에서 전대의 문학의 한 개 연장에 불과하였는 데 기인한다.
 
156
즉 상기의 세 논자와 또 이시대를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의 설명 과같이 사실 그 내용으로 부터도 실로 단순치 않은 변다한 경향으로 복 잡화 되어 있었음에 불구하고 그들 제 경향의 문학이 존립하고 있는 사회적 토양이란 춘원시대에 그것과 사회적으로 일치되는 때문이다.
 
157
그러나 자연주의적 문학이나 데카당스의 문학이 예술적 용모라든가 내용상에 불소(不少)한 상이를 가진 것은 필자가 일찍이 춘원의 문학을 이야기 할 제 논술한 바와 같이 기미 라는 한 개의 분수령을 중심으로 조선 사람의 역사적 생활의 용모와 내용이 현저히 변화한 때문이다.
 
158
즉 차등 제 경향의 문학은 기미 이후 새롭게 추이 된 조선의 역사적 사회적 생활의 소산이었다. 하나 이시대의 문학이란 그 유파 경향에 있어 일찍이 보지 못하던 잡다성을 대(帶)하였었음에 불구하고 보통으로 신문학이란 개념으로서 개괄되고 보다 명확한 용어법을 쓰는 이에게 있어서는 `민족문학'의 시대라고 불려진다.
 
159
다시 말하면 기본적으로 보면 아직 한 개 통일적 개념하에 포괄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보면 조선의 사회적 계급분화가 아직 기본적 성 질의 대립을 생활의 전표면상에 현현치 않았었다.
 
160
그러나 지금 이미 누구에게 있어서나 명확한 바와 같이 이 시기는 신 경향 파 문학 탄생의 진통기, 혹은 사상 및 생활의 혼돈을 그 특징으로 한 역사적 전형기(轉形期) = 과도기라고 불려짐을 주의해야 한다.
 
161
물론 이러한 평가는 모두가 다소의 비판될 제점을 가졌을지라도 당 대의 문화적 사회적 현상을 충실히 묘사한 것으로 보아 틀리지 않는다.
 
162
이시대의 사상이나 문학상의 급격하고 또 다양한 변화 현상의 혼돈 모순은, 전혀 이 문화적 역사적 전형기이 생활적 모순의 한 개 적확한 반영 이었다.
 
163
그러나 이 상호 모순하는 것의 의존이라든가, 무질서한 교류하든지, 상극이라든지, 또 산만한 소장은 결코 단순한 혼돈이나 모순의 무질서 한 운동은 아니다.
 
164
차등 혼탁한 외면을 정한 배후에는 역사적 사회적 상극과 발전의 일관 한 객관적 법칙이 관류하고 있었으며 문학 예술은 그 현실적 토대 로부터 제약 되는 개념 형태 특유의 법칙성상에 소장 명멸할 것이다.
 
165
우선 전기 춘원의 민족주의적 외피를 입은 인도적 이상주의 문 학과 직접으로 연락되는 것은 《창조》와 《폐허》 등에 의거한 자연 주의 문학 이었다는 사실을 상고하여야 한다.
 
166
이것이 첫째로 영향 받은 것은 일본 내지(內地)의 자연주의 소설이며 모파상 류의 단편 형식이다.
 
167
사실 엄밀한 의미에 있어 조선 신문학상의 단편의 형식을 수입한 것도 이들이며 또 그것을 건설한 것도 자연주의 문학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 문학의 대표적 작품도 역시 장편보다는 동인·빙허·상섭의 단편이었다.
 
168
이 사실은 조선 문학발달사 중 양식사적 고구상에 심히 시사적인 현상으로 자연 주의 문학이 가진 바 문학사상과 세계관의 한 개 구체적 표현이다.
 
169
주지와 같이 자연주의 문학은 무이상이라고 한다. 오직 객관의 충실을 제 일로 한다고 한다.
 
170
물론 특수한 구별은 있을지언정 조선의 지연주의도 이 사상적 근원으로부터 전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현실의 전 개괄을 필요로 할 것이 아니라, 그 한 개 단편(短片) 가운데도 진은 있다, 그러므로 생활의 한 단편의 충실한 묘사는 능히 문학일 수 있다. 이 것은 단편의 형식을 흥륭케 하는 일 요인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171
뿐만 아니라 조선 자연주의 위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춘원 이래의 고유한 현실 파악의 일면성이 유전되어 있다. 이것은 자연주의의 무 이상 성 객관 편중성으로 인하여 일층 그 인식적 한계를 협소케 한다. 결과로 역사적 현실의 전면적 개념보다도 안일한 단편(短片)모색과 세부 묘사의 한계로 자기를 한정한다.
 
172
이것은 단편형식으로 작가들을 집중케 하는 또 한 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173
이렇게 말한다면 자연주의 문학이 갖는 상당히 훌륭한 장편의 생산을 설명 치 못할 뿐더러 이 시대의 문학이란 춘원으로부터 일반적으로 퇴화 하였다는 결론을 낳을 것이고 동시에 그들의 현저한 묘사의 진화 등은 아무 곳으로 부터도 해명할 수 없는 것으로 될 것이다.
 
174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일거에 해명하는 한 개 중요한 사실은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과정 중에 점거한 이 문하의 지위 및 성질이다.
 
175
필자는 일찍이 춘원을 조선 부르주아지의 약한 일면의 반영자, 또 이 계급의 전진기에 있어 더 많이 그 정치적 전진이 정지한 기미 직후 적정 황하의 '자유’의 표현자로 평가한 일이 있으며 한편 춘원은 대체로 이 민족 자벌(資閥)의 '약한 일면’을 체현하면서 소시민적 제요소를 다분 히혼 유하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176
그러면 이 소시민성이란 무엇일까? 흔히 운위되는 바와 같이 막연한 중간적 무기력자를 말함이 아니라 당시의 조선의 사회계급적 생활 가운데 있는 소시민과 지식층 그것이었다.
 
177
당시 소시민의 상태란 물론 노동자도 아니고 농민도 아니며 민족자 벌에 위(位) 하지도 못하면서 이들과 공통적으로 외래적 힘의 중점하에 있으며, 특히 전기 네 계층 중 민족 부르층을 제한 세 계층과 함께 '외력’과 민족 부르의 이중의 압력하에 서 있었다.
 
178
뿐만 아니라, 이 계층의 특색은 그 소소유적(小所有的)인 경제의 와 해에의 하여 부절히 전 이자(前二者)의 영역으로 전락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력과의 경쟁에서 전락되는 민족 부르의 정류소였다.
 
179
그러므로 그 이데올로기적 특색으로는, 붕괴 과정 중에서도 아직 소유적 발전을 꿈꾸고, 한편 소시민화 하면서 자본가이려는 원망을 함께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노농 2자로부터 구별되는 점은 이들은 후자에 비하여 대체로 한 개의 근대적인 사회적 자각을 포지(包持)하고 있었다는것이다. 교육을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낡은 봉건적인 것에 대항 하였으며 그러므로 이 시대의 소시민이란 조선의 제 사회 계급 중 그 경제적 와 해와 정치상 지위의 상실을 가장 통렬히 경험한 부분의 하나이었으며 그 경험을 가장 아프게 자각한 부분 이었다
 
180
그러나 이 시대에 있어서의 소시민의 자각이란 소위 근대적 자각에 불과한것으로 아직 부르주아이려는 욕망에 연결련되어 있었다. 인텔리겐차 혹은 몰락하는 소시민이 그 자신을 해방할 본래의 불가피의 길로서의 노농 양자와의 연결을 발견하기에는 역사적 계단이 너무 일렀었다. 즉 그들 앞 에이 길의 유일의 지주인 신흥층이 자각적 행동의 국면에 나오지 못 했었고, 따라서 농민은 분산 상태에 놓였었으며 오직 그의 눈에는 민족 부르가 요구하는 '특수한 길’만이 반영 되었었다.
 
181
그러므로 이들은 조선이 갖는 특수적 사정에 의하여 자기의 곤감(困感)을 마련하는 기본적 요소가 아직 내외 이자인 줄을 모르고 '외(外)’의 한개 로 파악하여 그 자신의 방법을 가지고 민족적 운동의조류 가운데로 뛰어든 것이다.
 
182
소소유자(중간층적)로 더욱 특유한 소시민의 한계의 협애성은 민족 부르를 자기와의 대립자로 보지 못하는 그것으로 인하는, 일층 혼란되고 강화 되어 관념상의 해방이 모든 것을 가져오는 것 같이 생각하고 현실의 자기의 인식과 자각의 한계를 넘을 때 곧 애매한 관념적 방법을 이상화. 낭만 화한것이다.
 
183
이곳에서 춘원의 인도주의와 이상주의적 귀결의 낭만적 환상은 구성 된것이다.
 
184
그러나 기미 이후의 민족 문학————자연주의————으로부터는 이 환상성 이 소멸 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기대하던 민족 부르가 이것은 아무 것도 그들에게 주지 못하고 오히려 전진적 경향으로부터 떠나 그 들소 시민의 공연한 대립자로서 산업흥융(토산 장려)을 위하여 비싸더라도 우리 상품을 사라(토산 애용)는 후안적 행위를 감행함에 의존하는 것이다.
 
185
당시 춘원의 소위 정치적 경론이라는 〈민족개조론〉이 여하한 사회적 민족적 환대중에서 영접되었으며, 그의 작품이 여하히 불평판(不評判) 이었음을 상기하면 족하리라.
 
186
소시민의 문학으로서의 자연주의 문학은 이곳 민족자벌을 자기의 대립자로 인식하고 그것에 등(背)을 돌려버렸다.
 
187
'그러므로 이것이 생활이냐? 모두 뒈져 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하고 자연주의의 대표적 작가 염상섭으로 하여금 그의 장편 《만세전(萬歲前)》 가운데서 절규케 하였다.
 
188
갈수록 혼돈해가고 모순만을 보 해주는 듯한 어두운 현실에 대한 고조 된 혐오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현실을 가석히 생각할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그것을 대담 무자비하게 폭로하라고 외친 것이다. 이곳에 조선 자연 주의의 현실 폭로는 단순한 외국의 모방이 아닌 사회적 정신적 기초를 발견 했고 부정적 리얼리즘의 문학은 발달되어 그들로 하여금 사실상 조선 사실 주의의 건설자의 영예를 갖게 한 최대의 요인이었다.
 
189
동시에 정히 차일점(此一點)이야 말로 춘원에 비하여 진보된 사회적 정신에 존재케 한 것이며 또 예술적 달성의 수준에 있어 일단의 고처(高處)를 걷게 한 것이다.
 
190
동인·상섭·빙허 등의 작가는 춘원의 수준보다 소설문학의 생명으로서의 묘사상 확실히 일보 전진한 것이다. 현실을 폭로하려면은 적확한 묘사를 통하여 그것을 정시(呈示)해야 하겠으므로!
 
191
이곳에는 민족 자벌의 경제적 압력과 그것에 의한 자기의 경제적 와 해를 방어 하려는 노력과 그것이 환기하는 강한 부정적 반항의 정신이 물결 칠것이다.
 
192
그러나 이 '암흑(暗黑)한 무덤’에서 그들은 전진할 길을 지시 하는 광명을 발견치 못하였다. 역사적 발전의 필연적 도정에 대한 그들 의무 이해와 무자각은 이 반항의 정신을 단순한 소극적 부정에 억류 하고 이른바 무이상성의 제약 앞에 정돈케 하고 말았다.
 
193
이 커다란 조건은 곧 그들로 하여금 그 이상의 예술적 발전을 불가능 케 제약하고 그들 소시민 고유의 협애성과 전대로부터 유전된 예의 일면 성 등에 의하여 이 약점은 일층 확대되어 편중주의화한 불구적인 객관성에의 집착을 낳아 나중에는 명확이 트리비알리즘(trivialism) 가운데 침전케 한 것이다.
 
194
그러므로 그들은 외국의 자연주의 문학과 동양(同樣)으로 현실의 단편과 지엽에 집착함에도, 일층 축소되고 정신화된 세계의 형상을 묘사하는 데 시종 케 하고 말았다.
 
195
이것이 이 나라의 자연주의 문학으로 하여금 졸라 등의 수준에 까지 도착 치 못하게 한 한 개 주요 (물론 이외에도 기개의 원인이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이며 또 이곳에서 매거치 않는다)한 원인이다.
 
19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선 문학사, 특히 그 예술적 발전의 간선을 이루는 리얼리즘 발전상에서 점령하는 바 놓은 지위는 움직이지 않는것이다.
 
197
그리하여 이들 가운데 가장 재능에 풍부하고 높은 생활적 관심과 정열을 가진 소수의 작가는 단편소설 《제야》(상섭)에서 보는 것과 같은 성격 및 심리 묘사의 높은 리얼리즘을 획득하였으면 비록 지극히 제한 된 범위에서나마 그 이외의 어느 작가도 가능치 않았던 당대 지식 청년의 심리· 사상· 생활을 그때의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 중에서 묘사 개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섭의 장편소설 《만세 전》은 정히 우리가 당대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유일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사실 상섭은 프로문학 10년의 고투사(苦鬪使)가 《고향》의 작자 이기영을 발견하기까지 조선 문학사상 최대의 작가이었다.
 
198
이곳에는 또한 우수한 단편 《태형》(김동인)에 보는 것과 같은 당시의 옥 내 생활을 상당이 정확한 수법으로 지적한 아름다운 역사적 풍경화의 한 폭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199
이 모든 것은 20년대 조선 자연주의 문학이 소유하는 예술적 보옥(寶玉)으로서 그 뒤에 올 프로문학에 물려준 최량한 문학적 유산에 속하는 것들이다.
 
200
그러나 상기한 바와 같은 자연주의 문학의 이미 트리비알리즘화한 예술적 약점은 곧 형식주의와 예술지상주의로 발전(?)할 길을 열었다.
 
201
이것은 곧 조선 고유의 제 사정으로 말미암아 풍부화된 예의 협애성 에기 인하는 것으로, 현실의 지엽과 현실의 단면을 현실의 전체로 확대 하는 환상을 낳고 이 것은 또 묘사는 문학의 전부인 듯한 확대 재생산된 환상이 이르 렀 다.
 
202
그리하여 내종에는 문학을 한 개 언어·문자의 기술로 환원 시키는 형식 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의 경지로 전화된 것이다.
 
203
일찍이 이들 작가의 대부분이 연애를 '생’그것으로 확대하였다는 것을 상기하여 연상한다면 그다지 이해에 곤란함이 적을까 한다.
 
204
자연주의의 후기 혹은 그 와해 쇠미기에 생산된 대부분의 작품은 이 경향의 틀림없는 반영이었다.
 
205
그러나 자연주의의 부정의 태도는 비평적 정신과 연결되어 인입(引入)된 실증 사상과의 결합 위에 미미하나마 문학 비평적 관심이 대두하고, 사실상 조선 문학사상 비평의 배태는 이때에 구할 것이라는 일점을 암 시 함에 그치고자 한다.
 
206
이 다음에 오는 이른바 낭만적 세기말의 잡다한 경향을 ———— 허무 주의· 다다이즘· 낭만 주의· 유미주의· 악마 주의· 감상주의 등등 ———— 이 암담한 현실감과 무이상의 일층의 확대 발전이었다.
 
207
그러므로 이 혼란한 현상의 표면만을 관찰한 제, 단순한 혼돈(이종수) 단순한 검색(팔봉)으로 표현되며 혹은 이러한 피상관을 비판함에 이 시대 작가 시인들이 각기 자기의 생각을 한 개 '주의’에 까지 형성 하였는지를 의문 (신남철)에 부(付)하는데 그치고 만다.
 
208
이곳에는 이미 우리가 개관해 온 바와 같이 문학적 발전의 역연하고 일관 된 법칙성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209
그런데 이곳에서 '다음’ 온다는 시대적 구분을 가지고 이 조류를 관찰 할 때는 어느 의미에서 보면 부당하다는 비난을 살지도 모른다. 자연 주의와 이들 제경향의 문학은 사실 동시대의 공서자(共棲者)로 아니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비록 지극히 근소한 차이나마 약간 선후가 있었고 그보다 자연 주의 문학의 하향적 피곤 가운데 있었을 때 이들의 번영이 왔었다. 뿐만 아니 라이 과히 크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한 개 문학현상의 세대교체적 입장에서 취급 하면은 춘원 이후 전신문학 발달상 예술사적 또 정신사적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에 의하여 이것은 엄연한 존재 사실일 뿐더러 지극히 필요한 사실이므로 필자는 이 시간적 구분의 의견을 갖는 것이다.
 
210
하나 이 조류가 자연주의 하향기에 본류로써 번영하였다는, 즉 한 개 주의를 요하는 것으로 그것은 이 시기야말로 자연주의가 신문학사에서 그 갖는 바 진보적 역할의 종언과 신경향파 문학이 교체되는 황당한 국면 이었다는 그것이다.
 
211
한데 자연주의가 주로 단편의 양식에 의거하였으면 이 조류는 자기 표현의 주요 양식으로 시를 택하였다. 이것은 전자에서와 같이 그 본래의 세계관적 성질상 당연한 것이었다.
 
212
자연주의가 호불호간(好不好間) 사실과 직접 관계하였다면 이 조류는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 발생하는 절망의 감정과 정서를 취급하였다.
 
213
바야흐로 조선 문학은 이 조류————이상화, 회월(懷月), 홍로작(洪露雀), 박월탄(朴月灘), 임로월(林盧月), 나도향 등등《백조》를 중심으로 한 시인 소설가 ————에 이르러 사실상 '현실의 부정’으로부터도 '폭로의 정열’을 경주 할 '현실의 단편·지엽’에서 까지 격리하여 오로지 감상 하고 단식하고 절망하고 고민하면서 허무라든지 환상적 혼미라든지의 세계로 승화하여 버린 것이다. 일방 자연주이 문학의 형식주의 예술 지상 주의적 변이의 격렬한 도정이 산문의 세계에서 이와 보조를 합하여 진행되었다.
 
214
이리하여 신문학은 잡다한 형태의 예술지상주의에로 변화되며 이 때까지 '민족적’ 이란 사상적 (분위기만으로라도!) 특질 가운데서 물러서는 신문학의 통일적 개념은 와해되었었다. 사실 그들을 민족적이란 개념 가운데 포괄하기엔 너무나 많이 비민족적이었다. 즉 그들은 현실 생활의 무엇을 위하여 자기의 문학을 준비한다느니보다는 더 많이 예술상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려는 것이었다.
 
215
이곳 와서 조선의 신문학은 현실로부터 떠나, 자기의 묘굴을 파기에 급하였고, 통일된 방향은 방기되었다.
 
216
《백조》《영대》등, 이 경향을 대표하는 간행물이 족출되고 《폐허 이후》《개벽》 기타에서 후기 자연주의는 잔 존하여 보들레르· 베를레느· 와일드 등이 수입되어 세기말적 경향의 각색 조류가 범람 하였다.
 
217
그러나 이 조류는 조선 신문학발달사상 희유의 시적 예술의 융성 기를 초래한 원동력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218
이 시대는 사실 조선 신문학 발달사상 낭만주의의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을 만치 낭만적 정열이 창일하던 때로 젊은 시인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낭만적 훈향 높은 시가로써 조선 문학계의 하늘은 화려하게 장식 되었었다.
 
219
이것은, 육당·충원의 발아기 이후, 자연주의 문학시대에 와서 그 기초를 잡은, 근대 조선시의 한 개화 이었다.
 
220
이곳에서 우리는 잠깐 붓을 멈추어 자연주의가 공헌한 커다란 업적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를 경의와 함께 던져야 할 것이다.
 
221
자연주의는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시가에 있어서도, 김석송(金石松), 주요한, 김소월, 춘원, 김억등의 사업위에 강한 영향을 주어, 언문 일치의 구어시(口語詩)의 언어적 음율적 개척을 보게 하였으며, 근대시 상(上)에 사실적 경향을 발전케 한 것이다.
 
222
이들은 다 조선 근대시상 진정한 의미의 창시적 건설자이 명예를 차지 해야 할 것이다.
 
223
물론, 《백조》를 중심으로 한 세기말적 낭만시인들은 이들의 귀중한 업적 ———— 주로 언어적————의 계승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절망의 어 두운 동혈(洞穴)을 사의 신음같이 노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적 발전상 일정의 공헌을 한 것은, 당시 현실이 전하는 깊은 고민을 정확히 노래하였고, 그 참을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는 한 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224
시집 《흑방비곡(黑房悲曲)》의 양 시집(洋詩集) 작자 박월탄이나, 《고뇌의 무도(舞蹈)》에서 서구의 데카당스(dé cadence)를 소개한 김억이나, 그 특유의 고혹인 장시형으로, 〈나의 침실로!〉 기타의 시편에서 암담한 고민을 넣은 낭만적 정열을 가지고 노래한 이상화 등 은실로 이 시대가 생산한 최량의 시인들이다.
 
225
더욱이 이상화에 있어서는 긴 시를 조금도 리듬의 저조 이완에 빠뜨림이 없이 조선어을 강한 열정이 표현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시어로 창조 하는데 일 전형을 흥(興)한 가장 높게 평가될 시인이다. 이 시인의 유산으로부터 그 뒤 프롤레타리아 시가 받은 경향은 적지 않은 것이다.
 
226
사실 이들의 시는 감상에 울고 절망에서 넘어지려 하고 탄식에서 한숨 지우며 이것을 바로 못 부르고 상징하고 허무에서 얼굴을 가리고 공포에 떨었음에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비통한 고민의 시가이었다.
 
227
그러므로 가장 우수한 시가들이 격렬한 낭만적 리듬을 가지고 노래 되었음 은 당연한 것이다.
 
228
그러므로 보통 상징주의 시인으로 불려지는 낭만주의의 대표적 시인의 하나인 박월탄은 1922년 1월 잡지 《개벽》에 실린 어떤 논문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이렇게 부르짖었다.
 
 
229
앞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술은 '힘의 예술’이다. 가장 강하고 뜨거 웁고 매운 힘있는 예술이라야 할 것이다. 헐가의 연애문학, 미온적인 사실 문학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오뇌를 건질 수가 없으며 시대적 불안을 위로 할 수 없다. 만 사람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어떠한 욕구의 피가 끓으 며만 사람의 얽혀진 뇌 속에는 어떠한 착란의 고뇌가 헐떡거리느냐? 이 불안이 고뇌를 건져주고 이 광란의 핏물을 눅여 줄 영천의 파지자는 그 누구뇨?
 
230
'힘의 예술’이며 '힘의 시’를 읊는 자이다.
 
 
231
이곳에는 그들이 침통한 고민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곳에 즉철(卽徹)하라는 태도와 그들이 벌써 춘원이 인도주의나 자연주의의 자유 연애 현실 주의 등의 안티테제로써 자기를 확인하려는 한 개 적극적 정신을 찾을수가 있다. 요컨대 이 논문의 필자도 정직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기존 제 문학으로 만족하기에는 그들의 오뇌나 시대적 불안은 보다 더 심대 했던 것이다.
 
232
그러므로 연애의 자유는 헐가의 것이고 인권사상, 현실폭로 등은 미온적인 것이었다.
 
233
비록 관념적 방법으로나마 그들의 시가·소설에는 전대(前代) 문학이 표현한 그것보다는 더 심각한 것을 탐구하려는 열정과 시대의 불안 과오 뇌를 해결할 그 무슨 '힘’을 검색 발견하는 성실한 노력과 고민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 개의 노선에서가 아니라 각양각색의 방향에서 자기의 길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또 그 몸을 맡긴 것이다. 이곳에 소위 세기말적 조류의 다양성은 원인한다.
 
234
이 '힘의 예술’을 고민 가운데서 찾는 곤란한 암중모색의 정열의 일단이신 경향 파 문학에로 통한 것은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235
박영희, 이상화 등의 시인 특히 박영희가 이 조류 가운데로 부터 신 경향 파 문학 건설의 가장 영예 있는 창시자의 길을 개척한 것은 조선 낭만 주의가 갖는 최대의 명예이어야 할 것이다.
 
236
이러한 적극적 요소를 다분이 함유하면서 그 요절로 말미암아 길을 끊긴 재능 있는 작가로서 우리는 낭만주의 시대의 거의 유일한 소설가인 도향 나빈을 들 수가 있다. 도향은 낭만주의 시대가 갖는 유일의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근대 소설가 가운데 희유의 재질을 가진 작가이었다.
 
237
하나 그의 소설 특히 이 시대에 쒸어진, 그이 초기의 장편 〈환희(幻戱)〉 단편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니〉〈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등은 그 제명이 표시하는 것과 같이 낭만주의적 감상적인 것으로 그의 만년의 작품과는 약간 달라 소설로서는 너무 시적인 작품이었다.
 
238
이와 같이 그들이 소설적인 것보다는 더 시적이었고 자기 표현의 주요 양식으로 시를 고른 이유는 외국의 영향————주로 불란서 데카당스가 많이 시적 이었다는 것과 구체적으로 보들레르, 베를렌 등등————도 있지만 당시의 시의 대부분이 서사적인 것보다 서정적이었다는 사실로써 일층 명확해진다.
 
239
즉 이 시인들이 서사적인 여기는 '자기의 사실’을 가리지 않고 오직 감상· 비애· 절망하고 고민하여 모색하는 흥분된 감정과 상기된 기분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것이 그들을 시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240
이들은 모두 당시 급격히 몰락하는 소시민과 지식 청년의 시대적 불안 모색의 고민 등의 부정적 반면을 반영하여 한편 하자(何者)이고 미래와 현실의 이상을 환상하는 정열이 배태되어 있었다.
 
241
그러므로 이때의 조선 문학을 그 표면의 무질서와 혼돈, 방향이 상실 된 비참한 상태라든가 후기 자연주의의 예술지상주의·형식주의적 퇴화만을 보고, 예술자적 발전의 객관적 본질 운동을 파악치 못하는 것은 일개 무력한 피상론(皮相論)이다.
 
 
242
5. 新傾向派 文學의 史的 價値[신경향파 문학의 사적 가치]
 
243
물론 이때의 상태는 사실 무질서·혼돈 그것이고, 통일된 방향이 상실 된 참상을 정 하였음은 필(筆)도 지적한 바이며 또 이대로 방치되고 그대로 퇴화 된다면 조선 문학의 사멸 그것이리라.
 
244
그러나 모든 역사적 문화적 달성은 그대로 역사 도정 가운데 유기 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자기의 쇠망 가운데는 일 대립자, 자기 불안정 요소를 내포하여, 계기적으로 생성하는 정당한 사적 계승자가 위에 적극적인 모든 것이 재생 발전되어가는 것이다.
 
245
이것이 문화사상 사적 소장의 자기 발전의 변증법이며, 역사 도정 일반의 객관적 법칙성이다.
 
246
이것의 이해를 결 할 제 예술사의 각개의 계단은 편편히 분리되며 이러한 과도기를 그 본질적 견지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현상론적 견지에서 표현 의무 질서한 나열 소묘에 시종하고 마는 것이다.
 
247
이러한 혼돈을 일층 혼란(?)케 하는 격화시키는 한 개 문학적 조류가 자기의 존재를 강렬히 주장하며 출현하였다.
 
248
이 문학적 조류란 지금까지 보아온 여러 가지 신문학상 유파 경향의 소장 성쇠와는 한 개 본질적 차이를 가지고 자기를 과거의 일체의 문학 유파 로부터 구별하는 당시 신경향파 문학이라고 불려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그것이다.
 
249
당시 여사한 무질서와 혼돈의 교류 가운데서 신경향파 문학의 대두와 함께 제기 된 훤소(喧騷)와 파문은 능히 상상하기에 족할 것이다.
 
250
그러나 일층 격화된 혼돈이란 실상, 진정한 의미로 본다면 혼란이라 느니보다 신세계의 영아가 탄생키 위한 구세계의 통고 그것 일것이다. 그러므로 이 혼란하는 신경향파 문학이 자기를 확립하는 영웅적 과정에서 표현된 구문학의 유상무상(有象無象)의 저항으로서 특징화되었다.
 
251
이러한 저항이란 문학적 현상의 세대교체 및 유파 대립에 있어 문학사가 항상 경험하고 또 번복하는 바이나, 신경향파 문학의 형성 과정 가운데서 당면한 저항이란 조선이 신문학사상 최초의 심각하고 또 본질적인 상극의 표현 그것이다. 우선 신경향은 현존한 문학 전부를 그적으로서 가졌었다. 춘원류의 낡은 이상주의도 상섭·동인의 자연주의, 세기말적 데카당스 모두가 신시대의 문학적 표현자의 출발을 방해하려 하였다.
 
252
즉 이제까지 무질서·혼돈·무방향적 현상 가운데 있던 신문학은 그 수습 된 통일적 방향으로 한 개 적대자를 택한 것이다.
 
253
이것이 그 저항의 특징이다.
 
254
다음으로는 이들은 마치 문화 및 예술의 침해자를 대하는 것과 같이 예술 및 문학의 옹호하는 이름 아래 일치한 것이다.
 
255
즉 예술은 예술 그것을 위하여 존재하는, 순수히 신성한 그것이고, 하등 실생활적인 무엇과 관계를 맺으며, 그것에 봉사할 것이 아니라는 구호 로써 문학은 현실생활의 반영 표현이어야 한다는, 신경향파 문학에 도전 한 것이다.
 
256
이곳에서 지금까지의 우리가 읽어온 문학적 발전의 논리로부터 한 개 반 성적 질문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257
즉 민족적이라던가, 근대적이라던가, 연애 및 인권의 자유라든지의 현실적 목적을 추구하던 춘원적 문학은 어떻게 되었는가?
 
258
혹은 암담한 현실을 부정하고 그것을 폭로하며, 소시민· 지식 적의 연애· 학문· 기타 자유를 절규하며 묘장(墓場)과 같은 현실을 증오 하는 자유 주의의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 또 고민하고, 감상하고 발버둥치며 '오뇌를 건지고 시대적 불안을 위로’라도 할 힘의 시를 열구하던 낭만파는 어디 갔는가?
 
259
그러나 벌써 신경향파 문학에 대한 예술지상주의적 통일 XX에서 '이상’ '폭로’ '힘’ 등의 형태로써 표현되는 일체의 현실적(진보적) 정신은, 일편의 공문(空文)으로서 역사적 도정 중에 방기되었다. 춘원, 자연 주의, 낭만파 등이 가졌던 일체의 관념적 비관적인 요소는 이 곳에 자기의 사적 결론을 맺은 것이다.
 
260
그리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해 시대의 문학적 현상을 일관한 발전 도정 가운데서 성찰하여온 데서, 그 부정적 반면과 함께, 그 역사적 변천의 연선(沿線)을 따라온 적극적인 요소의 일체는 그 새로운 계승자 신 경향 파문 학위에 상속된 것이다.
 
261
춘원으로 부터 자연주의 문학에, 자연주의로부터 낭만주의 문학에로, 그 근소한 일맥을 보전해 내려온 현실의 역사적 유동에 한 성실성과 진보적 정신은 한 개 비약적 계기를 통과한 것이다.
 
262
그러므로 춘원으로부터 낭만파에 이르기까지의 각 시대의 제 경향 이전 대의 단순한 대립표로서 일면적으로 이것을 계승하였다면 신 경향 파 문학은 그 모든 것의 전면적 종합적 계승표이었었다.
 
263
이것은 신경향파 문학이 의존하는 바 사회적 계급의 역사적 지위의 전체성, 종합적 통일성에 유래하는 것이나 문학적 발전에 있어 그것은 감히 명확한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물론 이곳에는 우리 많은 사가와 논객· 학도들이 모순·혼란·무질서로 이해할 만큼 정치 사회사에서 보는것 같은 그런 소박한 직선을 그을 수는 없다.
 
264
문화 및 예술사의 발전에는 원칙적으로는 토대적인 것에 제약을 수(受)하면서 일응 그것과는 구별되는 관념 형태 그것이 갖는 고유의 객관적 법칙성을 갖는 것이다.
 
265
신경향파 문학은 국초(菊初)·춘원에서 출발하여 자연주의에서 대체의 개화를 본 사실적 정신과 동일하게 국초·춘원으로부터 발생 하여 자연 주의의 부정적 반항을 통과한 뒤 낭만파에 와서 고민하고 새로운 천공(天空)으로의 힘의 비상을 열망하던 진보적 정신의 종합적 통리자로 계승 된 것을 무한의 발전의 대해로 인도할 역사적 운명을 가지고 탄생 된 자이다.
 
266
낡은 문예학의 개념을 빈다면 이것은 신문학이 가지고 있던 '고전적인 것’ 과 '낭만적인 것’의 역사적 종합 통일이다.
 
267
그리고 이것은 금일까지의 문학사가 가지고 있던 이러한 형태의 종합 통일 가운데 최초 최대의 것이다.
 
268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두뇌가 상상하는 것과 같이 신 경향 파 문학은 자연주의의 사실적 요소와 낭만파의 정신의 단순한 계승자 이 거나 혹은 신경향파 문학이란 전혀 이 양자 가운데서 생탄된 것은 아니다.
 
269
그것은 전기의 모든 문학 현상이 그리하였던 것과 같이 조선의 경제적 발전의 토대 위에서 연행(沿行)하는 사회 계급적 분화와 그 투쟁이란 현실적 제 도정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270
우선 이러한 제 사정 가운데 최초로 매거해야 할 기본적 특질은 조선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필연적 소산인 근대 노동자 계급의 자각과 그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의 증대 그것이다.
 
271
기미를 치르고, 20년대의 소위 윌슨류 민족 사상을 대신하여 노도와 같이 우리 청년들의 두뇌를 점거한 XX주의 사상의 분류와 이미 노동자 운동의 최초 계급의 형태이었던 사상단체의 족생(族生)은 이 기본적 사실의 사상적 정치적 표현이다.
 
272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 자각의 수준이 얕은 상태는 이 운동의 성질과 형태를 제약하였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273
하나 이 역사적 사실의 예술상 반영인 신경향파 문학은, 겨우 1923, 24년 에 근근히 형성된 것으로 전기(前記)의 토대적인 제 운동보다 상당히 후 행적 이었다.
 
274
이곳에는 상상 문학에 대하여는 선행적인 사회적 사정의 우위성과, 또 그 시간적 상거(相距)의 양은 이 계급적 자각의 저도(低度)한 데 기인한, 한개 필연적인 것이었다.
 
275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은 일면 조선 프로문학의 전역사적 약점으로서 금일까지 문학이 현실에 뒤떨어진 장면이 있음에도 역시 기억될 사실이다.
 
276
이것은 다 주관적 세력에도 의존하지만 그 생활시부터 가졌던 기초적 사 정의 '저도의 자각’이란 조선적인 특수성이었음도 아울러 명기 해야 한다.
 
277
그러므로 신경향 문학이 자기의 적에게 공연한 도전의 화살을 던지기 전이 미 문학 외의 한 논객에 의하여 낡은 세대의 문학이 비판의 조(도마) 상에 올랐음은 심히 시사 깊은 사실이다.
 
278
《개벽》 1923년 7월호로부터 9월호 까지 2회 연재된 임 정재(任鼎宰)의 〈문 사제군에게 여(與) 하는 일문(一文)〉은 신경향파의 선구자들이 겨우 클라르테(Clarté) 운동을 소개하고 (팔봉), 혹은 비참의 예술· 생활의 문학을 이야기하며, 새롭게는 이상을 도입하려는 검색적이고 소 극적인 한계에 머물렀을 때, 최대의 명확·직절한 말로, (당시의 수준을 보아) 그는 예술이 대중의 것이어야 하며, 인간사회의 진화 발전에 공헌 해야 한다는 의미의 긴 원칙을 논술한 다음,
 
 
279
그러나 우리 조선의 유산계급의 문사나 무산 계급의 문사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발달과 귀족 생활의 형식상 발달로 현대 생활 요식을 조성하고, 각 방면으로 성숙하고, 고착하며 민중의 생활을 무시하는 자본가의 사익으로 지배당하며 중간 계급의 자유주의적 사상과 정치적 압박으로 민족적 자유주의 사상과 혼란하여 생활의식을 무의식간에 형성하고 통일을 실 하는 동시, 중간 계급의 자유주의적 사상에 동요 지배되는 상태에 재(在)하여 필연적으로 세기말적 절망의 데카당스적으로 되었다. …… 중략…… 문화사 일파의 데카당적 경향과 문인회 일파의 저널리즘적 경향과 사 사적으로 초월하려는 중간 계급적 사상 경향은 조선 사회사정의 적나 한산 물이다.
 
 
280
이라고 당시 《백조》를 중심으로 낭만주의적 작가 시인을 망라하고 있던 '문화사 그룹’과 후기 자연주의 작가들로 말미암아 구성되었던 '문인 회 그룹’을 비판하면서 모든 것으로 부터 초월하려는 지상주의적 조류를 정당히도 그때 사회적 혼란의 산물로써 평가하였다.
 
281
그런 다음 동론자(同論者)는 다시 하등 사회성 또 현실 생활에 대 한 총 체적 책임도 없는 단순한 낭만적 비애의 독백기에 대하여 참으로 시 대의식과 계급 의식에 자아를 확립시킬 것은 조선 문사의 박한 문제라고 무사상 성과 형식주의적 전화의 노상에서 헤매는 조선 문학이 나아갈 한 개길을 지시한 것이다.
 
282
뿐만 아니라 상기의 인용에도 약간 암시되었지만 다시 그다음 귀절에서 이 준비 된 새로운 예술적 노선을 다음과 같이 관망하고 있다.
 
 
283
……이 운동(무산 운동)내에 일부인 계급예술은 이러한 참담한 생활을 하는 무산문사가 부르주아 계급 및 예술에 대항하며 모순의 사회 현상을 타파하며 신인생의 광명을 욕(浴)하려는 것이 피등(彼等) 운동이며 예술이다.
 
 
284
이곳에는 우리들이 감지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실로 소박하고 기다의 논리적 불분명·불충분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전체 운동의 일환으로서 예술 운동 그것을 규정하였으며 운동의 전사상적 핵심으로 일파적(一派的) 원칙을 설정한 것이다.
 
285
이 같은 소박한 일문(一文)의 가치라든가 의의에 관하여 이 이상의 말을 피코자 한다. 오직 당시 그들의 전운동에 속한 시대적인 제약 때문에 비록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정확한 표현을 가지고 구체인 제 부분을 밝히지 못했음에 불구하고 이 한 소논문은 신경향파 문학의 창시자들이 아직 완전 명확한 역사적 자각의 계단에 이르기 전 예술적인 그것에 선행 된 부분에 의하여 표시된 문화예술상의 의견으로써 심히 가치 있는 것이다.
 
286
실로 이 견해란 우리 조선의 문학 예술에 관한 노동자 운동의 높은 관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명기할 논문이다.
 
287
모든 부르주아적 예술가·문학자들의 악의에 찬 선동과 비방에 불구하고 조선의 신흥계급과 그 운동은 다른 어느 나라의 그것에 지지 않게 높은 예술적 관심을 가진 가장 문화적인 것이다.
 
288
사실 신경향파 문학은 그들이 의존해 있는 바의 사회적 토대인 현실적 운동이 매뉴팩처적인 분산된 사상 운동의 초보 계단으로부터 자기를 전 목적 통일의 고처로 발전시키고 그 궁극적 이해를 가장 정련된 방법으로 집약한 는 바 정지척 행동의 통일적 핵심이 형성된 그때 비로소 그 최초의 계몽적인 제일보를 내어디딘 것이다.
 
289
이 가운데는 시간적으로 보아 약 3,4년의 선후를 갖는 것으로 노동자 층 이경제적 욕구의 영역에서 자연 성장적이고 분산적인 제일보를 내디디기 비롯한 1920년 전후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들의 운동을 명확한 한개 사상체계를 가지고 통일을 기획하고 광범한 계몽사업을 비롯하던 《共濟》(조선 노도 공제회의 기관지로 1920년 4월 창간)《신생활》(1921년 3월 창간)《조선지광》(1922년 8월 창간)등의 발간으로 부터 약 2, 3년 의간격을 갖는다.
 
290
물론 이 3,4년 혹은 2,3년이란 세월을 심히 짧은 것이고 또 시간적 장단의 표준이 될 신경향파의 문학적 출발 연대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약간 고구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나 이 가운데 시간적 선후의 존재는 위선 부동의 것 이 므로 먼저 낭만주의 문학을 말할 때와 같이 곧 이곳에도 필자는 연대적 선후를 인정하는 것이다.
 
291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2년 내지 3년의 시일이란 그 의미하는 바 사회적 내용에 있어 타시대의 기십 년에 해당하는 풍부한 내용의 것이므로 이 시간적 차이의 평가란 이중으로 조선의 문화발전의 특질을 이해함에 지극히 필요한 것이다.
 
292
조선의 노동자 운동은 상술한 바와 여히 문학 및 예술상에 있어 자기의 자각 된 행위의 출발을 보기에는 약간의 시간을 필요한 것이다.
 
293
이 시간은 사회적 모순이 원생적인 초보 계급으로부터 명확히 적대 관계의 형태를 가지고 전국적 규모에까지 발전할 그동안 다시 말하면 자기의 정치적 사상적 영향을 상당히 광범위의 인민 생활 중에 확대시킬 만큼 XX 적인 성숙을 이루었을 그때 비로소 자기층의 문학 예술의 대오를 정리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294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신경향파 문학적 시발기로서 보편화 된 연대인 1924년의 조선의 사회 정황을 살피어봄이 가장 유의의 할 것이다.
 
295
이해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내용의 특질로서 우리는 우선 노동자 운동이 분산 된 계몽적 사상운동으로 부터, XX행동의 전국적 통일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과 한편 민족주의의 민족개량주의에의 급격한 전화와 그 통일적 전진에의 기운의 대두를 들 수가 있다.
 
296
이것은 곧 조선의 XX적 모순이 그 전형적인 대립에로 발전하였음을 알수 있으며 기미 전후에까지 식민지적 특수성에 의하여 은폐되었던 XX 적모 순이 비로소 본래의 성질을 가리고 기본적 국면에 상극하게 된 것이다.
 
297
즉 모든 사회적 모순은 일체의 은호물(隱護物)의 암영으로부터 자기의 XX 적 본질을 드러내어 XX적이란 개념이 모든 과거적 개념에 대신한 가장 명확하고 최종적인 인간적 개념으로써 조선 사람의 생활 가운데 확립 된 것이다.
 
298
이해 4월에 '노총’이 노동조합운동과 농민운동의 통일적 기관으로 성립하고 청년운동의 통일적 조직으로 '청총’이 창립되었다. 그 뒤 얼 마안 가 '민중운동자 대회’가 소집되면 또 그 'XX大會’가 소집 되어 조선 사람의 사회적 생활 위에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신사상을 가진 XX 적운 동의 격량이 밀려왔다. 이 속에서 조선 노동층은 비로소 불충분하나마, 자기의 운동을 한 개 통일된 정치적 핵심 결성의 고처에 까지 끌고 갔으나, 또 처음으로 그 자기를 국제의 결뉴(結紐)의 일우(一偶)에 붙 잡아맨것이다.
 
299
이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노동층의 사적 가장 높은 자율적 표현이며 현실적 제 문제를 가장 철저한 해결의 길 위에서 결합한 것이다.
 
300
이때까지 대부분의 사람의 정치적 사상적 대변자로 자타가 인정해 오던 신문 《동아일보》 1924년 신년호에는 과거 전민족을 대표한다는 부분의 심히 의의 깊은 정치적 의견이 발표되었다.
 
301
《동아일보》는 이해 1월 1일부터 연 3일 연재하던 장문소설 〈민족적 경륜〉 이란 것 중의 하나인 〈정치운동과 결사〉가운데서 그들은 '우리는 조선 내에서 허하는 광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 한다’ 는 주목 할 제안을 하였다.
 
302
이 단소(短小)한 언구는 일견 우스운 듯도 하나 그러나 곧 이해할 수 있는것과 같이 이 가운데는 과거 민족주의 운동의 한 개 간과치 못할 행동상의 전향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303
그들이 노자(勞資)의 평화적 협조를 말해옴도 짧지 않으나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운동 그것의 제한을 기획한 일은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공 기 가운데는 명확한 민족주의 운동의 합법주의화와 철저한 욕구 대신에 개량 주 이적 정견이 당면 목표라는 명목하에 대치된 것이다.
 
304
당시 이 의견에 대하여 민중은 여태까지 붙여오던 신망을 방기함은 물론, 사면 팔방에서 의혹의 시선은 집중한 것이다.
 
305
모든 사람들은 그해 3월경 소위 '각파 유지연맹’이란 데 모인 국민 협회· 소작인 상조회· 청림교· 대정친목회· 유민회· 동문회· 유도진흥회· 동민회· 조선 경제회· 상애회· 교풍회 등 잡다한 세력이 '관민일치’ '대동단결’ '노자 협조’ 등 3대 표치하에 성히 움직이고 있던 사실과 전자의 신경향 그것을 전연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었던 때문이다.
 
306
이렇듯 불분명하던 과거의 사회적 제 관계가 특이한 역사적 긴장 가운데서 한 개 전기를 넘는 해에 신경향파 문학은 명확히 자기의 깃발을 올리었다.
 
307
이 시기는 또한 전술한 자연주의 문학의 퇴화와 세기만적 혹은 데카당스적인 낭만파주의 문학 등의 분화 발전과 신경향파 문학과의 세대 교체 기에 해당한다.
 
308
이 시간적 간격은, 현실적 발전이 상층 구조 위에 그 발전의 질도(質度)를 반영하는 전달의 소요 시간이었으며, 한편 새로운 사회적 세대가 자기의 문화 예술를 형성함에 있어 과거적인 그것과의 사이에 잔재한 역사적 재산 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09
여하한 역사상의 신세대도 황무지로부터 자기의 문화 예술을 만들어 낼수는 없는 것이다.
 
310
근소한 시간적 차이를 지리함을 무릅쓰고 장황히 말하는 연유가 이 곳에 있다.
 
311
주지와 같이 신경향파는 1923년경부터 팔봉의 논문 〈금일의 문 학과 명일의 문학〉이나 불란서〈클라르테 운동〉의 소개, 박영희의 논문 〈조선을 지나는 비너스〉등을 위시로 거의 잡지《개벽》을 근거로 하여 예술과 생활의 불가분의 관련과 생활적 현실에의 예술의 종속을 강렬한 구조(口調)로 절규하면서 낡은 문학에 도전한 것이다.
 
312
말할 것도 없이 신경향파 문학의 이러한 태도는 사회 경제적 사 정의 추이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약간 논술한 것과 같은 자연 주의 문학과 낭만주의 문학의 퇴화가 직접으로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313
그러므로 점차로 생활로 부터 유리하고 예술지상주의로 전화하는 퇴화 된 자연 주의나 관념적인 비관과 절망이 독백으로 시종하고 마려는 낭만파적 시가에 대하여 그들이 투쟁자의 입장에 선 것은 필연의 순리이었다.
 
314
그들은 문학 예술에 대한 극히 초보적인 유물론적 계몽을 전개하고 한편 소설· 시가에 대하여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가지고 성히 비평 활동을 가하는 것으로써 그들의 출발점을 장식한 것은 과거적 문화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비판자로서의 그들의 본질에 조응하는 것이었다.
 
315
사실 신경향파 문학의 가장 주요한 활동영역은 계몽적 혹은 비평적인 이론 활동으로서 조선 문학사상 최초로 비평다운 비평이 씌어진 것도 이 시기이며 잘되나 못되나 문학이론 이라는 것이 체계를 가진 사상으로 말 해진 것도 이때였다.
 
316
이것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신경향파 문학 본래의 성질에 의존 하는것이나 한편 이 사실은 조선 근대문학의 특질 특히 시민문학의 발전이 얼마나 얕고 빈약한가를 설명하는 주목할 현상의 하나다.
 
317
다른 대부분의 나라의 시민적 문학은 각각 다 체계적인 문학이론과 비평을 봉건적 중고(中古)문학과의 XX과정에서 수립한 것이었음에 불구하고 조선의 시민 문학은 여사한 정상한 발전의 노선을 걷기에는 너무나 특이한 과정 가운데서 고갈된 빈약한 것이다.
 
318
다시 말하면 조선의 근대문학은 언어·양식·내용·이론 등 전영역에 있어 봉건적인 문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자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319
그러므로 신경향파 문학이 던지 문학사적 파문은 일찍 경험한 바가 없던 심각한 것이었고 또 가장 통렬 철저한 것이었다.
 
320
조선 문학은 비로소 한 개 XX적인 세대교체를 경험한 것이었다. 봉건적 소설 류 로부터 이인직에 이르는 계기나 또 이인직으로부터 춘원, 춘원으로부터 자연주의, 자연주의로부터 낭만주의에 이른 전 과정은 역사 도정에 본래의 성질로 보면 한 개 문화 혁신적 선풍 가운데 성숙 되는 격렬한 도정이었음에 불구하고 그럴듯한 현상을 발견키 우리는 곤란하다.
 
321
단지 봉건적 문학과 한문학(漢文學)의 전통으로 부터 이인직에 이르는 사이가 한 개 르네상스적 형태의 그것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인직의 모든 업적을 최대한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그 빈약· 불 철저· 중도 반단성(中途半端性)을 들여다 볼때 오오, 무엇이라고 말 할 초라한 르네상스인가! 하고 탄식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322
조선의 시민과 그 문학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초라한 것이었으며 또 빈약· 불 철저한 것이었다.
 
323
이 발전의 전도정은 당목(瞠目)할 비약 대신에 지지한 점진성의 완만 한 곡선이 그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경향파 문학이 그 전의 시대에 버금하여 교체하는 형태란 실로한 개 르네상스이었다.
 
324
신경향파는 사실상 문화사상의 순서로 당연히 조선의 시민적 문학이 해결 해야 할 것을 미해결채로 남긴 과제까지도 계승받아 실로 모든 영역의 개척자 로서 운명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325
이것도 저 가련한 조선의 시민문학이 채 자기의 과제도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과 또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본래의 역사적 본질에 의존하는 것으로 어떤 의미로 본다면 조선의 프로문학은 과거의 문학으로부터 적극적인 문학적 재보에 속하는 유산보다도 오히려 부채를 더 많이 계승 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26
부르주아 문학의 비평을 한 것이 역사적 순서로 보아 중세적인 것과의 항쟁에서 수립될 것임에 불구하고 반대로 프롤레타리아 문학과의 대립에서 급 급히 작조 되었다는 고소할 사실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신 경향 파 문학이 과거한 문학의 모든 적극적인 유산 가운데서 형성된 것은 확 호한 것이다.
 
327
그들의 유물론적 문학정신, 그것은 이인직 등의 초기 시민문학과 XX 주의 문학이 단적으로 내포하고 있던 실증사상의 연장·계승이라는 것은 단순히 긍정 할 사실이 뿐만 아니라 신경향파와 프로문학이 갖는 한 개 역사적 명예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치열한 비평정신 그것도, 이인직의 봉건적 문학에 대한, 춘원의 이인직에 대한 또 자연주의의 춘원에 대한, 낭만 주의의 그 전의 모든 것에 대한 칼날 같은 비판적 사상의 장구한 발전 가운데서 형성되어온 것이며 그 한 개 비약적 고양이었다.
 
328
구체적으로는 자연주의 문학이 가졌던 적극적인 것으로의 자연과학적인 실증 사상 실험실적 태도의 낭만주의가 가진 관념화된 전체성에로 지향 된 비판 정신의 한 개 역사적 종합인 동시에 그것은 이 단순한 종합으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일층 고도계급으로의 비약적인 고양이었다.
 
329
그러므로 신경향파의 이론적 비평적 활동의 기초에는 이 두 조류에서는 전연 발견할 수 없는 높은 사적 유물론의 세계관이 기초가 되어 있는것이다.
 
330
신경향파 문학이 그들의 직접의 선행자의 문학 세대와의 관계를 표시 하는 최대의 사실로서 우리는 신경향파 문학 가운데 두 개의 상이한 경향을 발견 할 수가 있다.
 
331
이것은 신경향파 문학의 창작적 실천상에 구분할 수 있는 박영희적 경향과 최서해적 경향 그것이다.
 
332
이때까지의 대부분의 논자들은 프로문학의 자연성장적 계단이라든가, 혹은 빈궁 문학, 기아와 개인적 복수의 문학이라든가 관념의 문학이라든가 하는, 잡다한 규정을 가지고 이 차이를 무시하여 왔다.
 
333
물론 이러한 유상 무상의 형용사가 신경향파 문학의 반면 내지 일부분을 설명 치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문학 현상의 구체적 인식 의견지 가 결여되어 있거나, 전체적 통일적 파악이 망각되어 있는 것이다.
 
334
더구나 이 시대를 전체적으로 규정한다는'자연 발생적 계단’(신남철)이나 '관념의 문학론’(팔봉) 등은 전체를 본다고 너무 성급히 규정하는 데만 망쇄(忙殺)되어 중요한 구체적 제 사실을 인공적 방법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335
더구나 이러한 반분적 관찰이나 추상적 규정에는 신경향파 문학을 그 사상적 진보에서만 평가하려는 저주할 만한 그 원론이 사상적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336
그들은 자기의 논리에 적응하도록 문학적 현상의 구체적 특이성, 차별 등을 왜곡·개조하여 한 개 추상적 개념과 규정을 만드는 데만 급 급한것이다.
 
337
그러므로 세계관상의 발전 그것과 동양으로 신경향파 문학의 전개와 예술적 달성의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에 노력을 지불치 않는 것은 그리이해 키 어려운 일이 아니다.
 
338
전기, 박영희의 〈지옥 순례〉〈산양개〉등과 최서해의 〈홍염〉〈기아와 살육〉 등이 갖는 명백한 예술상 차이, 그리고 신경향파의 최초의 비평적 창작적 활동가들이 주로 팔봉·조명의·박영희이었으며, 그들의 경향이 서해의 그것에 비하여 약간 선행하였다는 제 사실은, 일률화 되어 무차별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339
위선 전술한 바와 같이 신경향파의 작가 비평가로서의 박영희· 김기진은, 가장 먼저이고 또 지극히 큰 존재였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340
그리고 그들이 전부 과거의 시인이었고 또 《백조》중심의 낭만적 문학으로 부터의 전향자이었다는 것도 명백한 것이다.
 
341
사실 그들은 낭만주의로부터 신경향파에로 이상화 그외 몇 시인들을 이끌고 투신하여, 그 창설자의 명예를 차지한 것이다.
 
342
이곳에는 과거 조선 낭만주의 가운데 있던 전진적 열정과 진보적 정신의 명확한 발전을 볼 수가 있는 것인 동시에, 신경향파 문학 중 박영희적 경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개 창작 경향을 낳았다.
 
343
이 창작 경향이란, 그들의 과거가 시인이었음에 불구하고 이 시대에 와 서는 전혀 소설 양식상에 표현된 그것이었음을 이곳에서 주목해야 한다.
 
344
그들은 낭만파적 시인으로부터 비평가로 그리고 소설가로 전이 해온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계기는 그들의 세계관상의 비약이 존재한다. 이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실로 명확한 한 개 필연적인 현실적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들이 시인으로 부터 소설가 비평가가 된 것을 개인적 우연사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345
그들의 이러한 전이는 한 개 세계관으로는 신경향파 문학의 역사적 본질에의 하여 해석된 현상이다.
 
346
신경향파뿐만이 아니라 전프로문학의 창작적 역사는 거의 소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들의 주요한 문학적 표현의 양식으로 의여한 것은 시가보다 소설이었다.
 
347
그러나 신경향파나 프로문학이 주로 소설 형식에 의거하였다는 것은 자연 주의 문학이 소설을 취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348
프로 문학은 결코 시나 가악을 배제 하는 XX 의 예술은 아니다. 그러나 낭만 주의와 같이 감격하고 체읍하는 시를 원하는 문학도 아니다.
 
349
이곳에는 자연주의 문학이 접근치 못한 현실생활의 전면의 역사를 예술적으로 개괄할 장대한 소설과 그 영웅적 사업과 쓰라린 희생을 기념하고 부절히 이상과 전진에의 열의를 노래하는 서사적 또 정서적인 시가를 누구보다도 많이 열구하는 자이다.
 
350
그러나 자연주의 문학의 지상주의적 퇴화와 낭만적 시가의 관념적 승화의 혼탁한 교류 가운데서 신경향파 문학이 소설을 통하여 그의 사실 주의를 건설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351
어떤 의미에서 본면 신경향파 문학의 소설은 시와 소설의 혼효라고도 말 할수 있으며 이러한 상정은 신경향파 문학 중에 있는 양구(兩舊) 경향에서 그 예술적 표현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352
이러한 견지로 보아가기를 계속한다면 박영희적 경향은, 보다 시적인 소설 이었으며 서해적 경향은 보다 소설적인 소설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353
그러나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은 일견 우스운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 모시(侮視)하기 어려운 점이 다분히 있다.
 
354
소위 박영희적 경향이라고 볼 소설 〈사냥개〉라든가 〈지옥순례〉를 보면 과거의 낭만주의 문학의 고철(故轍)을 소박하게밖에 해설치 못한 역력 한 유적을 발견할 수가 있다.
 
355
이곳에는 낭만주의의 '악한 전통’의 하나인 구체적 현실에 안일한 관념적 이상화의 방법이 신경향파의 세계관적 또 예술적 미숙과 상반 하여 문학 가운데 나타난 세계관의 생경한 노출이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것은 낭만 주의 로부터 받은 신경향파 문학의 한 개 약점이면서도 반면에는 현실에 대한 전면적 파악의 지향이라든가 이상적 의욕에 대한 예술 작품이 통일적 구성이라든가 하는 점은 낭만주의 문학이 자연주의의 무사상성의 비판자로 가졌던 바 그 장점의 발전임을 또한 부정할 바가 아니다.
 
356
그러므로 이 박영의적 경향이란 저도(低度)의 진실성과 주제의 적극성 사회 성과 높은 세계관에 의하여 특징화 되어 있는 보다 낭만적인 예술 이었다.
 
357
그러므로 최서해적 경향이라고 부를, 〈홍염〉이라든지 〈기아와 살육〉이 라든지는 보다 더 많이 상섭·동인등의 자연주의 문학의 사실적 정신과 관계하고 있는 것으로 이인직 이후의 조선적 리얼리즘의 전(全)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자연주의 문학에서 그 최고의 절정을 이룬 조선의 사실주의는 한설야·이기영의 고도의 종합적 사실 주의의 계단에 일는 중간적인 도정적 존재였다.
 
358
사실 신경향파 문학의 이러한 경향을 가진 초기의 이기영· 김영팔· 최승일 등등의 작가 중에서 최서해의 존재는 자못 거대한 것이었다. 서해를 우리는 신 경향 파가 가진 최대의 작가, 또 그것이 달성한 예술적 수준의 최고점이라고 보아도 그리 과장이 아닐 것이다.
 
359
서해의 명예에 의하여 대표되는 이 경향은 자연주의 문학으로 부터 확고한 예술적 전진으로 개인적 관찰의 시각으로부터 사회적인 각도로 확대 된 사실주의, 또 서해의 소설 〈갈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자기 박탈과 추구의 강한 객관적 정신은 문학의 저류로서의 세계관과 더불어 문학 자신 가운데 표시된 예술적 진화의 정통적인 현상이었다.
 
360
물론 이 경향을 '개인적 복수의 문학’이라는 규정을 내릴 만큼 생활적, 혹은 현실상의 제 모순을 개인적 돌발행위로 결과케 한 작품이 불소 한 것이다. 그러나 신경향파 문학이 낡은 문학으로부터 프로문학에 이르는 한개 과도적 문학이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 한 점을 가지고 예술적으로는 퇴화 했으나, 사상적인 일면으로 그것은 우월하였다는 예술적 규정을 끌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361
이러한 결함은 신경향파 문학이 과거 자연주의 문학으로 부터 받은, 악한 유산의 하나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신경향파 문학은 자연주의 문학의 낡 은제 경향을 완전히 벗어나 순수한 자기를 형성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소 하였었다.
 
362
전자는 낭만적인 것을 정확한 과학적 사실성 위에 통일하기엔 아직도 완전한 예술적 성숙의 지점에 이르지 못했었고 후자는, 광범한 현 실생활의 잡다한 제 모순을 완미한 사회적 노선위에서 그의 이상적인 수준의 중에서 해결 하기에는, 이 역시 너무나 지나치게 젊었었다.
 
363
그러나 조선 문학은 한 번도 자기의 '낭만적인 것’을 신경향파의 그것 과같이 정당한 역사적 필연의 길에서 체현한 일이 없었으며 또한 자연 주의의 여하한 작가도 신경향파 서해에 있어서와 같이 인간 생활의 광대한 영역으로 자기이 사실적 세계를 전개한 일이 없고 또 그 객관성에 있어서도 서해에 있어서 와 같이 자기 추구, 모든 가면의 박탈에 있어 철저 치못 했으며 개인으로 사회적 전체성의 견지에서 파악하지는 못했었다.
 
364
이곳에 신경향파 문학이 모든 것에 관절(冠絶)하는 조선 문학의 최량의 종합 통일자된 특색이 있는 것이며 또 그들의 새로운 세계관이 예술적 발전을 실현케 한 역연한 성과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365
신경향파의 사상적 본질만을 평가하고 그 예술적 진화 달성을 방기 하는 모든 이론은 무엇보다도 최서해의 문학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를 내릴 줄 모르는 편안자들이다.
 
366
이것은 프로문학의 고난에 찬 10년을 통 하여 한설야· 김남천· 송영· 윤기정(尹基鼎)· 조명희 등의 제 작가를 지나 《고향》의 작자 이기영에 와서 프로문학의 본래적 달성의 최고의 수준을 보인 것이다.
 
367
일반으로 보아 신경향파의 문학은, 조선의 신흥 계급이 계급 그 자신으로부터 그 자신을 위한 계급으로 성장할 자각적인 과도기의 예술적 반영 이었다.
 
368
그러므로 신경향파 문학은 그 예술성에서가 아니라 그 사상 내용에서만 과거의 문학에 대하여 우월하였다는 이원적인 모든 평가는 완전히 사실 과부 합치 않는 한 가추상적(假抽象的) 허사이며 이러한 평가는 곧 김기진씨에 있어서와 같이 프로문학의 예술적 발전을 비역사적인 애매한 상대 적인것으로 설명하기 쉬운 것이다.
 
369
즉 프로문학은 과거의 전 문학의 발전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일 면적으로 프로문학 자신의 '미정하나마의 발전’을 인정하여 겨우 박영희적 이원론에 대립(?)하고 만다. 신남철·이종수 씨등의 신경향파의 이원론적 평가는 직접으로 문학의 예술 역사적 진화를 부정하는 견지로서 '얻은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박영희적 멘셰비즘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370
이 현저한 자를 우리는 신남철 씨의 상기 논문의 신경향파 문학 이후 방향 전 환기,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이르는 프로문학의 창작적 실천을 기술한, 심히 불분명한 논술에서 일관 된 경향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씨 등은 결코 박영희적 이론의 진정한 비판자는 아니었다.
 
371
문학의 예술성과 사상성을 이분하는 이원론, 신경향파 문학에서 과거 한 모든 문학의 예술적 진화를 관찰치 못하고 그 세계관적 일면만을 평가 하려는 모든 종류의 기도는 필연적으로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것은 이데올로기’라 하는 유명한 박영희적 멘셰비즘과 일치하고 또 그 의사 상적 발상지가 아니면 아니 된다.
 
372
왜 그러냐 하면 부르주아적 문학이 프로문학에 비하여 그 내용 사상에는 뒤 떨어지더라도 문학적 기술적으로는 아직도 우월하다는 이론은 결국 예술과 정치에 있어서 전혀 이원적인 분리의 사상으로 일관되는 것으로 프로문학 10년의 역사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와 함께 상반하여 발전 하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며 드디어는 《고향》에까지 도달한 예술적인 고도의 수준을 마치 사상과는 무연한 것으로 관찰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까지 이른 도정에서 사상적인 발전함을 간취하고 그와 함께 진화 해오려고 그것 없이는 불가능한 예술적인 발전을 전연 무시 하는 이론 이기 때문이다.
 
373
이러한 점에 있어서 봉건적 이론의 비판자로 자처하는 김기진 씨나 혹은 그의 새로운 대변자인 신남철·이종수 양씨나 모두가 박씨의 이론과는 종이 한장의 상이로 결국 한가지 이원론 사관의 모태에서 자라난 쌍아에 불과한것이다.
 
374
더구나 신남철 씨에 있어서는 전게 《신동아》지의 씨의 논문을 가지고 퍽이나 문헌학적인 연구로 자처하고 그곳에서 표시된 씨의 철학적 교양을 조선 지고의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모양이나 우리들이 보는 바는 한 개의 속학 서생(俗學書生)의 이원적인 사관에 의하여 묵단(黙斷)된 비참한 죽은 역사의 형해뿐이어서 하등의 높은 교양도 엄정한 과학적 태도도 또한 풍부한 문헌도 발견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러한 이 원적인 푸리체적 상대주의로부터 끝까지 신경향파 문학과 그의 계승자인 신흥 문학 10년의 역사를 지키려는 자이며 동시에 이러한 평가 밑에서 현재의 문학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것을 다시금 명언하는 자이다.
【원문】조선신문학사론서설(朝鮮新文學史論序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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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신문학사론서설(朝鮮新文學史論序說)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