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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昭和) 13년 창작계(創作界) 개관(概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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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월
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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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年度[년도] 創作界[창작계] 概觀[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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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年來[연래]로 조선 소설문학의 주류를 이루어 온 감이 不無[불무]하였는데 작년 이래 急據[급거]히 신문소설로 중견작가의 一群[일군]이 진출한 이래 1938년도 창작계는 자못 적막한 감이 없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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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泰遠氏[박태원씨]는 단 一篇[일편]의 창작이 없었고, 李泰俊氏[이태준씨]는「浿江冷[패강랭]」(「三千里文學[삼천리문학]」) 一篇[일편]이 있었을 뿐, 이 1년간의 주요한 작품은 李孝石[이효석], 金南天[김남천], 蔡萬植[채만식], 兪鎭午[유진오] 등 諸氏[제씨]에 의하여 씌워졌다. 그밖에 金東仁[김동인]씨가「街頭[가두]」(「三千里文學[삼천리문학]」)와「가신 어머니」(「朝光[조광]」) 두 편과 廉尙燮氏[염상섭씨]가「自殺未遂[자살미수]」(이 작품은 前年[전년]에 某誌[모지]에 발표되었던 것을「三千里[삼천리]」가 再錄[재록]한 것이다)를 발표한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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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문이 중견작가에게 지면을 제공한 의의에 관하여는 특히 장편을 이야기하는 장소에서 담당자가 이야기할 것임으로 詳論[상론]은 피하나, 우리 중견작가의 몇사람으로 하여금 단편소설 제작에서 붓을 떼게 하였다는 사실에만 몇마디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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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편만을 쓰던 작가에게 신문소설 집필에 기회가 왔다는 것은 소설적 기량을 연마하는 한 기회가 될 것이나, 그러나 1,2백회의 신문소설을 쓰느라고 한개의 단편도 쓰지 못했다는 데는 자못 의심스러운 한 점을 피력해 보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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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 중견작가들은 1년에 한편의 신문소설만 맡겨 놓으면 그 남어지에는 손이 돌아 갈 여유가 없을 만치 역량이 부족한가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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例[예]하면 李箕永氏[이기영씨] 같은 분은「新開地[신개지]」를 쓰면서도 4,5개의 단편을 썼다. 그러고 보면 쓸려면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노릇이다. 그러면 濫作[남작]을 삼갔는가? 물론 여러 편의 駄作[태작]보다 한편의 佳作[가작]을 만들려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제작상의 윤리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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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묻고 싶은 것은 이런 작가들의 창작적 확신이 동요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그들이 가졌던 재래의 예술적 파악의 능력이 새로운 현실에 봉착하여 그 기능이 점차로 쇠해 가고 있지 아니한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 실로 우려할 상태이며 괴로운 상태임이 사실이다. 李箕永氏[이기영씨]의 금년도 제작 성과는 제작의 다과를 불구하고 명백한 창작적 혼란의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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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개인에 있어선 創作路線[창작노선]의 전환적인 진통이며, 일반적으론 문학적인 국면 전환의 前夜[전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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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에게 흥미있는 것은 朴泰遠[박태원], 李泰俊氏[이태준씨]로 朴泰遠氏[박태원씨]는「愚珉[우민]」1편으로 금년을 보냈으며 李泰俊[이태준]씨는「浿江冷[패강랭]」1편으로 금년을 지냈다. 寂寂無聞[적적무문] 일언반구의 말이 없는 이 두 작가는, 우리 문단에서 容易[용이]히 자기를 고백하지 않는 이들이나「愚民[우민]」과「浿江冷[패강랭]」을 통하여 이분들이 용이치 않은 혼란을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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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泰遠氏[박태원씨]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누차 말해온 바와 같이 당연히「小說家[소설가] 仇甫氏[구보씨]의 一日[일일]」的[적]인 경향과「川邊風景[천변풍경]」의 潮流[조류]가 한데 어울리는 어느 지점이다.「愚珉[우민]」은 장편인 만큼 작자가 단편의 구속을 벗어나 득의하게 자기의 의도를 베풀어 볼 장면이었으나 우리에게 明白[명백]한 것은 거대한 곤란과 고투하고 있는 面貌[면모]다. 그러나 드디어 오늘날까지 새로운 세계의 자태는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고투의 과정 가운데 있는 작자가 한개의 단편도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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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李泰俊氏[이태준씨]의 길은 이와는 약간 의미를 달리한다.「浿江冷[패강랭]」은 단지 氏[씨]의 예술적 정신의 疲勞[피로]를 말하는데 불과하였다. 이 피로가 어디서 오느냐는 물론 속단을 허치 않으나 추측컨대 재래의 氏[씨]의 예술적 경지와 현대와의 사이에 갈수록 멀어가는 거리감에서 온 것이 아닐까? 이 거리감이란 예술가에게 있어 크나큰 비애의 원천이다. 때로는 이 비애에의 깊은 沈潛[침잠]이 새로히 문학의 출발점이 되는 수 있으나 氏[씨]의 예술에서 이것을 구한다는 것은 우선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李泰俊氏[이태준씨]의 문학이 발을 머무르고 있는 지점이 아마 이곳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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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먼저도 말한 金東仁[김동인], 廉尙燮氏[염상섭씨] 외에 소위 기성 대가축에 들을 작가는 한편의 작품도 쓰지 아니했는데 尙燮氏[상섭씨]만이 아직 예술가일 따름, 東仁氏[동인씨]의 소설에서는 조금도 옛날「감자」의 작자다운 面影[면영]을 찾아 볼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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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문소설이 우리 단편소설의 영역에 중대한 영향을 던졌다는 것은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오히려 蔡萬植氏[채만식씨] 같은 작가는 「濁流[탁류]」에서 해결지우지 못한 소설의 구성의 문제라든가 구성을 통한 사상성의 문제 같은 것을 단편에서 다시 시험해 오는 경향까지 지적할 수가 있다.「痴叔[치숙]」, (「東亞日報[동아일보]」)이라든가,「이런 處地[처지]」(「四海公論[사해공론]」)「小妄[소망]」(「朝光[조광]」) 등은 풍자정신의 의의라든가 한계, 혹은 그것의 수준을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는가 등을 모색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이것은 금년도 조선 소설계에서 주목해 족할 현상의 하나이라 할 수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런 경향이 좀더 큰 의미의 자기 완성을 위하여는 일단의 비약이 필요하리라 믿으며 또한 이런 경향이 현재에 얼마나 成育[성육]되어 나갈 수 있느냐도 의문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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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금년중에 가장 많이 썼고, 또한 명백한 문제성을 제공하는 이는 李孝石[이효석], 兪鎭午[유진오], 金南天[김남천] 三氏[삼씨]인데, 이 세 작가가 다같이 재래의 자기세계의 개조에 착수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이것이 사실에 있어 보다 진실한 자기세계의 건립을 의미하는 과정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완성되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 형성되려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며, 또한 모두가 재래의 자기세계를 개조할려는 방향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것은 역시 가릴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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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을 구세계의 개조라느니 보다 그것의 발전, 연장이라 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장래의 성과를 보아야 알 일이며, 또한 이분들의 제작 노선이 모두가 먼저 가지고 있던 자기 세계를 한번 자기로부터 떼어 놓고 시작되고 있는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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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창작하는 주관의현실 가운데의 해방이라고 본다. 즉 재래의 제작 태도라든가 정신을 일상성의 세계 가운데 편력시켜 보는 시험! 어떤 의미에선 일상성의 세계를 통하여 재래의 제작 태도를 반성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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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현상을 이분들의 공통한 경향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 현상의 의의는 상당히 중대하다고 아니볼 수가 없다. 그것은 우선 朴泰遠[박태원], 蔡萬植氏[채만식씨] 등의 소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세태적인 경향의 일반화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최근 수년간 우리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힘이 구체적으로 문학창작 위에 작용한 결과라 평가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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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의 선악을 현재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현재 거의 판단 불가능의 사태에 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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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현상은 우리 소설계에 散文性[산문성]을 급격히 増長[증장]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李孝石氏[이효석씨]의 금년도 작품「薔薇[장미] 病[병]들다」와「소라」,「해바라기」,「幕[막]」,「附錄[부록]」(이 작품은 약간 다른 고찰을 試[시]할 흥미가 있으나) 등을 통하여 역시 우리는 산문성의 増長[증장]을 말할 수가 있다.「해바라기」는 전체로 이 작가의 고백적인 의미를 가지며 더욱이「소라」의 상반부와 하반부의 차이는 이 작가가 명백히 한개 과도기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상반부는‘들’의 세계이고 하반부는‘해바라기’의 세계다. 자연에 대한 나이브하고 리리칼한 동경으로부터 市井世界[시정세계]에의 過渡[과도]! 그러나 이 시정세계라는 것은 氏[씨]가 일찌기 자연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오래 가져 오던 肉体性[육체성]의 세계는 아니다. 아마도 육체도 한가지로 자연으로 氏[씨]는 작품 가운데 조화시켜 볼려고 해오지 않었던가 한다. 이것은 자연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모파상의 세계였다. 그러나, 氏[씨]에게 방금 전개될려고 하는 세계는 사회의 一斷面[일단면]으로서의 시정세계다. 이것은 분명히 氏[씨]의 예술에 있어 하나의 큰 洗練[세련]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山野[산야]나 육체를 두번 모파상처럼 조화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兪鎭午氏[유진오씨]와 金南天氏[김남천씨]의 길은 이와 약간 다른 코스를 더듬고 있다. 孝石氏[효석씨]가 순수한 자연성으로부터 시정세계를 통하여 하나의 예술적인 관념에 도달하는 길을 걷는다면 이 두 작가는 이미 준비하고 있는 사회적 혹은 도덕적인 관념에서부터 시정세계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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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氏[김씨]의「美談[미담]」,「생일 전날」,「무자리」혹은「요지경」등과 兪氏[유씨]의「受難[수난]의 記錄[기록]」이며「어떤 夫妻[부처]」등에서 이들이 놀라움과 더불어 발견한 것은 인간의 육체,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가치였을 것이다. 이것은 19세기가 우리에게 알려준 세계다. 이점을 한계단 더 나려가면 李孝石氏[이효석씨]가 일찌기 방황하던‘들’과‘肉體[육체]’의 세계이리라. 그러나 시정이란 사회다. 더욱이 산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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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期[기]하지 않고 이 3인의 작가가 시정세계에서 자기들의 갈 바를 찾고 있다는 것은 자못 결과가 어느 곳에 이르든간 散文作家[산문작가]로서 자연을 살려가는데 좋은 저수지일 것이다. 그러나 兪氏[유씨]의「滄浪亭記[창랑정기]」1편은 孝石[효석]의「附錄[부록]」과 더불어 이 작가들이 용이하게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심오의 일면을 피력한 것으로 주목에 値[치]하나 계열은 전혀 딴곳에 속한다. 그것들이 단순한 엣세이냐 노-벨이냐, 그것은 一擧[일거]에 단언하기 곤란한 일이고, 좀더 훗날이 해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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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韓雪野氏[한설야씨]는「강아지」,「山村[산촌]」등의 작품을 가졌으나,「山村[산촌]」은 경향문학의 重鎭[중진]으로서의 氏[씨]의 관록을 보이는 佳作[가작]으로, 낡은 공식주의를 해탈하는 일보전야의 作[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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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無影[이무영]씨의「日曜日[일요일]」,「傳說[전설]」등에선 씨의 기본적인 발전을 볼 수는 없었다. 나로서 희망되는 것은 더 산문적인 눈으로 세계를 보는 태도의 증장일 것이다. 朱耀燮氏[주요섭씨] 같은 이는 장편도 썼고,「竹馬之友[죽마지우]」란 단편도 있으나, 모두 현대인의 예술은 아니었다. 安懐南氏[안회남씨]는 분명히 금년에 창작적인 자리를 움직이고 있는 이로「그날밤의 일」「汽車[기차]」「燈盞[등잔]」, 이 모두 리리칼한 일면이 증장되고 있음은 웬일일가? 과거 氏[씨]의 소설이 가지고 있던 온건한 상식의 한개 精鍊[정련] 과정일까? 좌우간 앞날을 기다릴 일이고 氏[씨]가 생활이란 것을 다시 한겹 더 파보려고 든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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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興燮[엄흥섭], 韓仁澤[한인택], 咸大勳[함대훈]씨의 소설이 몇편 있으나, 그중 嚴氏[엄씨]에 一言[일언]을 부치자면 좀더 인간적 고뇌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 氏[씨]의 문학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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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여류작가 諸氏[제씨]들이 금년중에 괄목할 進境[진경]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문학의 중심문제에 접촉하지 않고 있음은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明敏[명민]한 관찰에 加[가]하기를 사고의 진실성을! 대개 여류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는 자격의 하나는 정신적인 화장을 그만두는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崔貞熙氏[최정희씨]를 나는 금년 우리 여류문학을 위하여 기억해 두고 싶다. 특히「榖象[곡상]」의 상반 4분의 1. 그러나 한가지 기쁜 것은 우리 여류문학이 소녀의 문학을 거의 졸업하고 있다는 일이다. 아마 작가들이 모두 어머니로 생활인으로 성장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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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신인의 성과인데 鄭飛石[정비석], 崔明珝[최명우], 玄德[현덕], 金廷漢[김정한], 朴榮濬[박영준], 李雲谷[이운곡], 朴魯甲[박노갑], 許俊氏[허준씨] 등이 제일 활약한 작가들인데, 도덕적으론 물론 이들 전부에다 기대를 둠이 옳을 것이나, 솔직히 말하면 金廷漢氏[김정한씨]가 가지고 있는 어떤 요소에 대하여 好奇的[호기적]인 기대를 두어보고, 玄德[현덕], 鄭飛石[정비석], 許俊[허준], 이 세 작가가 조선문학 위에 새로운 재산을 가져 오지 않을까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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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1)
【원문】소화(昭和) 13년 창작계(創作界) 개관(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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