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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활동의 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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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1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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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 활동의 제 문제
 
2
- 실천적 계단 전개
 
 
 

1. 이론과 실천

 
4
이론이 이론을 위하여 있다든가 이론만에 그치고 만다면 아무리 조리 정연하고 명쾌 탁월한 체계가 선 가치 있는 이론이라도 결국은 휴지 공론이 되고 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확한 사실이다.
 
5
이 까닭에 이론 전개, 이론 투쟁의 근본적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다만 통일된 조직적 행위와 좀 더 위대한 실천을 낳기 위하여 이론 전개가 필요하며 이론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장 효과 있는 위대한 실천을 감행하기 위하여서만 이론 확립이 필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그러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사상에 있어서, 1927년 이후에 일어난 현상과 운동 자체의 과정을 어떻게 규정해야만 정당할 것인가
 
7
1927년 이후의 우리들의 이론은 예술 각 부문에 관한 이론 전개가 되지 못하고 다만 문예 영역에 국한되어 확실히 문예 이론 투쟁기였었다. 그 일관된 논조의 주류를 검토한다면, 새로운 우리들의 문예를 창조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낡은 이데올로기의 청산과 부르주아 문학의 배격 극복의 투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선전 선동 조직 등의 효용을 위한 문학으로서 창작되기를 힘써 왔었던 것이다.
 
8
이러는 동안에 우리로서는 예술 각 부문의 이론 전개가 부분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고 등한히 지나쳐 온 것은 한낱 오류이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러한 과오를 범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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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중요한 원인의 2-3을 지적한다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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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문예 이론에만 치중하고 다른 부문의 예술(연극, 미술, 영화, 음악)을 원칙적으로 부분 부분이 문제 삼아 논급치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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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하나는 우리를 진영내에 이론가인 동무들이 거개 문학가이니만큼 문학만을 문제 삼아 논의하게 된 것이요, 또 하나는 조선에 있어서 미술, 연극, 영화, 음악 등이 실제적 좌익운동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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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으로는 각 예술 부문의 전문가(이론과 실제)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통활적 이론을 문예가로서 논의하지 않으면 예술 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타개하기에 곤란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적 활동의 실천을 위하여 또한 실제적 운동을 하루바삐 진전시키기 위하여 먼저 방법론적 견지에서 조직 문제와 기술자 등의 계급적 행동에 관한 이론 전개가 가장 필요할 줄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13
둘째는 예술 운동상 방향 전환론이 적지 않은 경우에 기계적 공식주의에 기울어지고 만 중대한 과오를 범하여 예술 활동이 발랄한 진전, 강력적 효과가 나타나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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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원인으로써 과거의 예술 각 부문의 이론 전개와 실제적 활동이 지나치게 빈약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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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예 영역에 있어서도 그 역시 이론을 위한 이론, 이론에만 그치고 만 이론이 적지 않았으므로 문학적 활동이 또한 빈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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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과거의 문학적 활동이 여하한 이유로 활기를 띠우지 못하였나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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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누구나 당하고 있는 일제 검역 기관의 억압이요,
 
18
둘째는 실천에 가까운 방법론적 견지에서 문제 삼은 실제적 이론이 적었던 것.
 
19
다시 말하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만 우리들이 요구하는 효과적 유용한 작품이 제작될까 하는 내용과 형식 문제와, 문예품을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보급시킬까 하는 대중 획득 문제와, 일체의 예술품을 여하히 노동자 농민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야만 할까,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본질적 효과를 나타내려면 과연 그들의 예술로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하는 무기인 예술 문제 등이 이론상으로 중요하게 또한 다량으로 논의되지 못한 곳에 프로 예술 운동상 실천적 효과가 빈약한 적지 않은 오류가 있었던 것이었다.
 
 
20
이상에 지적한 몇 가지 원인이 1927년 이후에 있어서 프로 예술 운동상 위대한 실천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만 이론에만 머무르고 만 것이 적지 아니하다.(물론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객관적 특수 정세가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바 참된 예술 운동, 강력적 효용적 예술 활동을 촌보도 허락하지 않은 것도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선 프로 예술 운동에 있어서 본질적 근본 문제를 해결하였고, 또한 앞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 나아가겠다는 것을 프로 예술가, 또한 일반 대중에게 알린 점으로 보아 과거의 문예 이론 투쟁이 얼마나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 어떠한 반동이론이 대두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원칙적 프롤레타리아 예술이론은 조금도 흔들림 없다. 오히려 철칙인 우리들의 이론이 일체의 반동 이론을 결국 극복하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역사상 필연적 귀결이다 이처럼 . 되는 것은 몇몇 예술가의 힘으로써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거대한 힘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21
우리들의 과거 운동은 문예 운동에 국한되었고, 문예 운동도 또한 인민이 요구하는 수준에까지의 적극적 행동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1930년인 신년을 계기로 하여 예술 활동의 실천적 행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는 한 개의 이론이 이론에만 머무르지 아니할 실제 운동과 직접 관계가 있고 예술 각 부문활동에 곧 영향이 미치는 실천적 이론만이 발표되지 않으면 안 되겠고, 또한 한 개의 작품이라도 예술 활동에 있어서 효용을 위하여, 실행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제작되어야 한다.
 
22
그래 우리들은 신년부터 손과 손이 으스러지도록 맞붙잡고 1929년인 과거 일 년 동안의 반동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한 반동군 - 양주동, 정노풍 아나키스트 등 - 의 발호(跋扈)를 박멸하기 위하여, 문예 영역에서는 적극적 행동을 취할 것이며, 연극, 영화, 미술, 음악 등의 각 부문에는 실제 운동을 하루바삐 일으키자! 경제에 쪼들리는 우리들이니 예술활동을 규모로부터 시작하자!
 
23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의 예술 운동은 질적으로 전환하여 의식적 진전이 있을 것이다.
 
24
여기에 대하여 나의 견해를 지금부터 간단히 적기로 하겠다. 이것도 금년부터 예술 각 부문의 실제적 계단을 전개하는 데 한 도움이 될까하는 미표에서 나온 소위이다.
 
 
 

2. 작품 문제

 
26
문학적 활동에 있어서 시, 희곡, 소설 등이 노동자 농민을 상대로 하고 제작할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작품 대중화 문제가 문제되는 것이며 우리들의 내용과 형식 문제가 앞으로 정당하게 규정되지 않으면 창작 태도상 큰 오류를 범하기 쉽다.
 
27
여기에 대한 근본적 토의와 원칙적 규정은 미구에 형성될 조선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서 문제되겠기로 이만 그친다.
 
 
 

3. 미술 운동

 
29
‘조선에는 프로 미술가가 없다.’
 
30
이렇게 주장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31
‘프롤레타리아는 시간상으로나 경제상으로 보아 도저히 화가가 될 자격이 없다. 다소 시간의 여유가 있더라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아무리 예술가의 소질이 있더라도 그의 기술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프로 미술가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32
그러면 프롤레타리아는 과연 영영 미술가가 될 수 없을까
 
33
여기에 우리로서 새로운 회화 문제에 당면하게 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게 감정과 정서가 있는 이상 또한 회화상에 나타날 수 있다. 공장 안에서 시인, 소설가들이 출연하는 것과 같이, 프로 예술가가 생길 수 없으리라고 단언은 못할 것이다.
 
34
그러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그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미술가로서의 출발을 할 것인가
 
35
회화를 가장 짧은 시간에 제작하되, 가장 비용이 적게 들도록 용의하면 때와 장소를 물론하고 가능할 것이다.
 
36
1. 선이 복잡하지 않고 색이 간단하되 자극성이 풍부하도록 강렬한 색채를 써서 선전 포스터를 제작할 일.
 
37
2. 한 자루의 연필과 한 장의 양지로 간단한 스케치 만화를 제작할 일.
 
38
이러한 범위 안에서 제작된 그들 감정의 발로인 미술품을 다량으로 재생산하여 같은 계급에게 선전 선동의 무기로서 가장 효과적으로 보급시키기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39
다량으로 재생산을 하려면 석판과 활판의 인쇄물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얼마나 부르주아에게 비장되어 있는 고가의 명화보다도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고 의의가 있는가….
 
40
‘조선에는 프로 미술가가 없다.’
 
41
이와 같이 말하면 한편에서는 아래와 같이 반박을 할 것이다.
 
42
‘조선에 프로 미술가가 없다고 하는 말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못한다. 프로 문예가가 엄연히 존재한 거와 같이, 프로 미술가도 내재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파악한 화가가 있고, 계급의식이 농후한 투쟁적 미술가가 도처에 산재한 데 불구하고 조선에 프로 미술가가 없다는 것은 억측이요, 일종의 유견(謬見)이다.’
 
43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기능을 볼 수 없고 프로 계급을 위하여 예술적으로 효과가 없는 이상, 다시 말하면 그들이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 개인의 출현도 필요하지마는 더 한층 필요한 것은 집단적 행동이다 재래에 있는 전람회 . 등에 반감을 가진 미술가 무리들과 재래의 미술 - 예술 지상 주의적 귀족적 고답적 일체 부르주아 미술 - 에서 뛰어 나와 딴 길을 걸으려는 새로운 의식에 눈뜬 젊은 화가의 무리들은 한데 뭉치라.
 
44
그래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작은 장소에라도 만화 전람회, 포스터 전람회, 새로운 의식, 감정 또한 새로운 인식 방법에 의하여 제작된, 과연 우리들의 미술 전람회 등이 개최되어, 무료 공개로 일반에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45
이와 같이 전람회가 서울을 비롯하여 지방 지방에 개최되고 또한 공장과 농촌에도 같은 방법으로 공개되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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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미술 활동을 대중적으로 전개시키는 데에는 먼저 좌익 미술가의 결성체가 제일 필요하게 된다. 같은 의식 아래에 움직여 나가는 화가 동지들의 조직 형태가 출현해야 조선에 있어서 현단계가 요구하는 미술 운동을 대중적으로 가장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숨은 미술가 동지들에게 제언한다.
 
47
먼저 2 - 3인의 동지라도 한데 모여서 집단적 행동을 시작하라. 이것이 좌익 미술가 총결성의 초보가 될 것임에 틀리지 않을 것이다.
 
48
2 - 3인이 모인 미약한 그들의 행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만 될 것인가
 
49
1. 미술가 동지의 규합.
50
2. 새로운 미술가 양성.
51
3. 자체의 기술 연마.
52
4. 효용적인 작품 제작.(선전포스터, 풍자만화, 무대 장치, 장정 등.)
53
5. 정기적 전람회 개최.
54
6. 이동 전람회.
 
55
이러한 계단을 밟아 가장 강력적으로 조선의 미술 운동을 전개시켜 프로예술 운동의 부분적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
 
56
(새로운 미술가 양성은 여하한 방법으로 할 것이며 자체의 기술 연마는 무엇을 배우기에 노력할 것이며, 효용적인 작품은 무엇을 어떻게 제작해서 여하히 보급시킬 것인가 등의 근본 문제는 앞으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4. 음악에 대한 의견

 
58
나는 여기에서 음악의 필요와 음악의 효과가 어떠한 때에는 다른 예술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59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규정되다시피 한 까닭이다. 사람의 청각에 부딪쳐 감정과 감정을 시간적으로 격동시키는 데는 가장 민속한 기능을 가진 가장 효과적인 음악이, 조선에 있어서 미술이나 문예보다도 더 한층 빈약한 것은 누구나 다투지 못할 사실이다. 현재에는 조선이 가진 바의 연극만큼이나 음악에 있어서도 보잘 것 없다.
 
60
이렇게 말하면 일 개월에 적어도 일이 차씩은 음악회 - 고가의 요금을 받는 - 가 개최되고 기악, 성악 등에 있어서 각각 전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고, 해마다 불어 가는 현상임에 불구하고 하잘것없다고 소위 악단을 무시하는 것은 독단적 행위라고 할 것이다.
 
61
그러나 한 사람의 작곡가가 변변히 없고, 조선의 땅덩어리를 밝고 있으면서 현실을 피하여 구미식으로만 달아나려는 경향이 농후한 소위 악단이니, 대중으로서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 길일 것이다.
 
62
유흥적 향락 기분이 농후한 썩어져 가는 조선의 악단과 부르주아 소부르주아에게 영합(迎合)하려는 가증한 음악가들을 배격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 운동을 일으키려면 우리들의 새로운 음악적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63
그러면 음악적 활동에 있어서 우리들의 실재는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64
1. 신흥(新興)해야만 할 조선의 악단을 위하여 헌신하려는 동지들의 결속, 다시 말하면 현재의 악단과 악사의 음악회 등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음악가들이 새로운 조직 형태를 띠고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계급의식에 눈뜬 신진 음악가들의 집단이 필요하다.
 
65
2. 훌륭한 작곡가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문예가들이 작가(作歌)를 하여 재래에 있는 작곡에 맞추어 대중적으로 보급시키기로 노력할 것.
 
66
(문예가들의 가사는 물론 조선의 현실을 정당히 인식하거나 파악하여 조선사람 생활 의지에 적합해야만 한다. 그러나 절망적이어서는 안된다. 어디까지 투쟁적이어야 한다. 농민이 부를 노래와 노동자가 부를 노래를 가장 씩씩한 곡조에 맞추어 가사를 썼으면 좋겠다.)
 
67
3. 음악의 밤을 수시로 개최하되 두 가지 성질과 두 가지 종류로 할 것. 옥외(屋外)와 실내를 전부 무료 공개로 하되, 실내에서는 대부분 공장 노동자의 위안 음악회로 하고, 옥외에서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것이다. 이와같은 일은 새로운 집단에서 유의하여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68
(무료 공개는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악사들은 현재에도 대부분이 유료 출연이 아니니 악사는 문제없고, 장소는 실내만이 문제인데 활동여하에 따라 장소도 무료로 얻을 곳이 있을 것이다. 간혹 10원이나,20원이 든대도 이것은 한 단체에서 변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음악 행동을 최소한도로부터 하루바삐 시작해 나아가자.)
 
 
 

5. 연극 운동

 
70
연극은 예술의 예술이라고 누구나 하는 말이다.
 
71
그 이유는 종합 예술인 까닭이다.
 
72
사람이 사는 곳에 반드시 연극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 연극은 생활의 반영이니, 사회상의 거울이니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싹트려던 신극운동도 오늘에는 극히 적게 밖에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과 여러 가지 조건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모든 원인과 조건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리들의 새로운 연극운동의 실제를 위하여 방법론적 견지 위에서 근본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편이 낫다.
 
73
연극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만큼 선전과 선동에 절대 필요한 것이며 효과상으로 보아 다른 부문의 예술보다도 가장 훌륭한 것은 누구나 부인치 못할 것이다.
 
74
이처럼 효용적인 연극 - 연극 운동 - 을 어디로부터 출발시켜야만 과연 우리들의 연극을 만들 수 있고, 또한 무기로서의 예술 활동을 다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연극을 논의하게 될 때에 먼저 이상 두 가지 문제를 당면 문제로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우리가 문제 삼을 실제의 연극은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진전시킬 것이며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가.
 
75
1. 좌익 연극 동지(프로 희곡 작가,연출자, 배우)의 결성. 이것은 시급한 문제인 만큼 속히 실행하자.
 
76
2. 프롤레타리아 연극 연구회 설치. 이것은 연극의 제 구성 요소를 결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 양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77
3. 정기 공연(소극(小劇)운동)
 
78
적어도 일 개월 일 회 이상씩은 정기적으로 공연하되 장치에 있어서나 의상에 있어서나 도구 등에 있어서 가장 간단하게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기에 용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소규모로부터 속히 시작하자.
 
79
4. 이동 극장.
 
80
의상, 도구, 장치 등이 간편하면 간편할수록 이동 극장의 실현이 쉬울 것이다.
 
81
(연극 운동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체계 있는 구체적 논문을 발표하겠기에 여기에는 이만 그친다.)
 
 
 

6. 영화 운동

 
83
영화가 연극 이상으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연극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중적인 까닭이다.
 
84
그러나 영화 운동에 있어서 실제 문제란 가장 난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니, 제일은 적지 않은 제작비용이 드는 까닭이요, 다음은 검열 문제이다. 당분간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 영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는 없으나 가능한 범위 안에서 좌익 영화인 등의 제진적(齊進的) 진출을 도모하자.
 
 
85
1. 기술자, 감독, 배우, 기사 등 양성
 
86
앞날의 우리들의 영화를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제작하기 위하여 예비 행동으로 좌익적(의식상)인 기술자들을 양성할 것이며, 또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실주의적 내지 암시적으로 만들어지는 우리의 영화를 위하여 기술자 양성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87
2. 영화 비판회
 
88
이 모임은 내외국 영화를 계급적 입장에서 엄정(嚴正)히 비판할 것은 물론이다. 부르주아 영화가 상연되는 날까지는 그 존재가 엄연히 권위 있게 지속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더구나 반동 영화가 상영될 때에는 날카로운 비판과 예리한 필치(筆致)와 적극적 행동으로써 상영 반대 운동을 대중적으로 일으키자. 그래 대중으로 하여금 영화에 대한 각성을 촉(促)하자!
 
89
3. 실사(實寫) 촬영
 
90
소촬영기(꽈데뻬삐)를 이용하여 노동자 농민의 생활상, 수시로 일어나는 계급적 사실 등을 촬영하여 노동자, 농민 속에 가지고 들어 갈 일.
 
91
4. 좌익 영화인의 결성
 
92
재작년 하기 경부터 신흥 영화 예술가 동맹이라는 한 개의 소형태인 새로운 영화 집단이 몇몇 동지의 손으로 발기되려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지되었다.
 
93
그러나 우리들은 이와 같은 조직 형태를 아니가지지 못할 절박한 시기에 당면하였던 것이다. 그래 결국은 계급의식을 파악한 영화인 동지의 결성을 보게 되었다. 새로운 의식과 굳은 결심 아래에 최후까지 싸워 나아갈 신흥 영화인의 집단이 출연되고야 말았다. 우리들은 현실적 요구와 과학적 입장에서 신흥 영화 예술가 동맹을 힘있게 움직여 나아갈 것이다.
 
 
94
나는 이상에서 예술 각 부문의 실제적 활동을 위하여 간단간단히 논의 하였다. 이것은 다만 문제 제출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95
우리들은 1930년인 금년부터 문학적 활동을 비롯하여 연극, 영화, 미술, 음악 등의 새로운 실천 과정을 혹은 적극적 강력적으로 기타 일체의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의식적으로 전개시켜 프로 예술가로의 예술 각 부문에 속한 계급적 임무를 다하기로 노력하자! 이것이 우리 예술가들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며, 계급투쟁의 일익적 임무인 것을 일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부문의 예술 활동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조선의 예술 운동은 날로 전진하고 있다.
 
 
96
『조선 강단』, 1930년 1월
【원문】예술 활동의 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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