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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에 대한 이미지의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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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6
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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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이미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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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판타지의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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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거번(去番)에 시와 판타지에 대하여 소론(小論)을 써보았지마는 그것은 시일(時日) 관계로 소론(所論)이 너무도 불충분하고, 또 극히 조잡하여 좀더 보충하여 정리할 필요를 느끼고, 또 판타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형상(形象), 이미지(image, 심상), 또 그것과 판타지, 구상력(構想力) 등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논급(論及)하여야 할 의무감을 느꼈음으로 다시 이 졸론(拙論)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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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形象) 과 이미지, 즉 심상을 영어에선 Figuer와 image의 각각 다른 말을 쓰나, 불어에선 다 마찬가지로 image, 독어에선 다 마찬가지로 Bild라고 할 뿐 아니라, 이곳서도 사실상 통용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전번에 말한 Phantasie(상상)와 Einbildnngskrapt(구상력)가 혼용되기도 하나 엄밀한 의미에선 다른 거나 마찬가지로 이 형상과 심상도 엄밀한 의미에선 다르다. 이 형상, 이미지, 판타지, 구상력의 구별과 상호관계를 위선(爲先)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즉, 형상은 문자 그대로 모든 물체의 형상 그것이고(여기서 말한 물체란 공간을 점유하고, 가시성을 가진 물체만이 아니고 음향, 향취 등 관능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예하면 인간의 성격, 어떠한 조직체의 조직 등 구체성을 가진 것은 다 포함된 것이다), 지각한 물체의 형상이 그 물체의 대상이 없어도 머리 속에 떠올라 오는 그것이 심상이며, 그 투명 무색한 심상에 어떠한 빛을 착색한 것이 판타지이고, 구상력은 판타지의 의식작용 즉, 칸트의 말과 같이 bildendekraft이다. 그래서 실재의 사물이 예술작품화 할 때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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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형상 → 이미지(심상) → 판타지 → 구상력 →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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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같은 심상 중에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우리가 가령 어떠한 학교의 붉은 웅장한 연와 건물(煉瓦建物)을 볼 때에는 그 붉고 웅장한 건물의 형상을 곧 머리로 지각할 수 있는데, 그 지각되는 형상을 우리는 지각심상(知覺心像, wahrnehmungsbild)라고 하고, 또 그 붉고 웅대한 연와 건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반드시 그 장소 그 학교의 연와 건물이 아니고, 그저 어떠한 연와 건물을 머리에 그려낼 때에는 그것은 표상심상(表象心像, Vorstellungsbild)이 될 것이며, 또 그러한 막연한 연와 건물에 아니고, 그 장소 그 학교의 특정한 붉고 웅대한 연와 건물을 구체적으로 머리에 그려낼 때에는 그것은 기억심상(記憶心像, Erimrerungsbild)이 될 것이며, 그리고 현재 눈앞에 없으며 전에도 보지 않은 전연 새로운 연와 건물을 창조적으로 그려낼 때에는 상상심상(想像心像,Phantasiesbild)이 된다. 또 그 외에 어떠한 대상을 접촉할 때에 다른 표상심상이 눈을 가리든지, 혹은 후일 회상할 때에 다른 표상심상의 작란(作亂)으로 실재와 전연 다른 심상이 떠올라 오는 것을 감각적 또는 환각적 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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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 서술한 여러 가지 심상 중 첫째의 지각심상은 판타지 작용을 하지 못한 때문에 예술창조상 가장 적은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 다음 표상심상, 기억심상은 판타지적 작용을 하기는 하나 역시 예술 창조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심적 동력이 되는 것은 상상적 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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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상을 눈앞에 놓고 그냥 그대로 묘사할 때에는 창조적으로 제작하는 것보다는 지각심상이 많이 작용할 것이고, 어떠한 대상을 보고 어느 동안의 시일 후에 그것을 그냥 그대로 기억하여 묘사할 때에는 기억심상이 많은 작용을 할 것인데, 전자의 예는 사생회화(寫生繪畵) 같은 것이며, 후자의 예는 역사적 문자 같은 것이다. 또 보고문학 같은 것은 실제에 있어서 전부 보는 그 자리에서 또는 전부 기억으로 묘사 서술하는 것이 아니고, 혹은 보는 그 자리에서 혹은 기억으로 묘사 서술하는 것인만치 지각심상과 기억심상이 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아무리 그냥 그대로 묘사하는 사생 회화와 역사문학이나 보고문학이라도 상상심상의 요소가 조금도 들지 않고는 당초부터 구성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 상상심상의 요소를 추출한다고 가정하면, 회화는 단순한 사진, 역사문학은 단순한 역사, 보고문학은 단순한 기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사실은 사진도 채광, 장소선택에 대한 상상심상의 작용에 의하여 예술사진이 제작될 수 있고, 또 역사란 것도 상상심상의 요소가 전연 회피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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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쨌든 지각심상, 기억심상을 보다 많이 활동시켜 실재를 그냥 그대로 묘사한 묘사적 예술과 상상심상이 보다 많이 작용된 창조적 예술과를 동일하게 말할 수 없는데 창조가 생명이 되는 예술에 있어서는 물론 후자를 전자보다 높게 평가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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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대미학평론가인 필로스트라토스(Philostratos)도 그의 아폴로니우스전(傳)(Vita Apollonii Tyanonsis) 가운데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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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력(構想力, Phantasia)이란 것은 모방력(模倣力,Mimesis)보다도 훨씬 교묘한 기술자이다. 모방력은 그의 본 것을 예술로서 그려낼 수가 있다. 구상력은 그의 보지 못한 것까지도 그려낸다. 왜 그러냐하면 그것은 보지 않은 것을 실재하는 것의 유추(類推)에 의하여 상상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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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문학이나 보고문학을 순창조적 문학과 동등으로 평가하는 것은 예술적 요소 외에 다른 특수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때문이다. 즉 역사문학엔 왜곡, 부패되지 않고 싱싱한 현실의 산 재료의 소유인데 만일 그 두 가지 요소를 제거한다면 다른 순창조적 예술보다 훨씬 적게 평가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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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심상 가운데서도 예술창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상상 심상이며, 또 예술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이 상상심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예술 창조에 있어서 아무리 대상을 그냥 그대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상상심상이 조금도 활동하지 않지는 않거니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전연 창조를 한다고 이여(爾餘)의 다른 심상이 조금도 활동 않는 것은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여(爾餘)의 다른 심상보다도 가장 중요한 예술의 원동력이 되는 상상심상도 결국 지각심상, 기억심상 등을 재료와 기초로 삼아 생기는 것이다. 지각심상 없이는 기억심상 등이 생길 수 없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만일 우리의 머리 속에 이상의 세 가지 심상이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이 진공의 병 속과 같이 비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물론 그 속에서 상상 ─ 창조적 원동력이 생길 수 없다. 간단히 유아(幼兒)는 가사(假使) 문학을 알더라도 문학을 창작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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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억심상이란 건 상기(想起)될 때마다 동일한 표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대개는 변화한 표상으로 나타나 딜타이의 말과 같이 새 봄이 와도 거년(去年)의 잎을 못 나오는거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표상은 다시 생기지 못하는 것이고, 또 상상심상도 시간적으로 변화하여 고정한 형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대하여 괴테는 다음과 같이 재미스러운 말로 여실히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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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눈 가운데 꽃 한 송이를 상상하면 그것은 일순간도 그 최초의 형태를 지키지 않고 분해되어 그 내부에서 다시 색채있는 또 녹색의 화변(花辨)으로 된 새로운 꽃이 전개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자연의 꽃이 아니고, 상상의 꽃이다. 그러나 조각가의 장미형 장식과 같이 규칙적이다. 발생하는 창조물을 고정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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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각심상, 기억심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완전한 창조적인 상상심상도 결국 현실의 형상이다. 본체가 없으면 이 형상이 생길 수 없는 것이고, 본체의 변전(變轉)에 따라서 이 영상(影像)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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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상은 직접 영사(映寫)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식의 정교한 렌즈를 통해서 영사(映寫)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현실의 영상도 동일하게 영사되는 것이 아니고, 그 렌즈의 품질에 따라서 각 다르게 영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각 다른 개성에 따라서 그 영상의 스타일이 각 다르며, 또 현실에 대한 인식의 건불건(建不建)에 따라서 진실하게 혹은 왜곡되게 영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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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으로 경험에 아는 바와 같이 완전한 이목을 갖고도 알지 못한 외국어를 들을 때에는 발음 그대로 듣지 못하며, 처음 만난 사람의 용모를 자세히 못 보면 아주 다른 용모로 보는 일이 있다. 이것은 그 현실에 대한 인식의 불건전으로 생긴 착오된 지각심상인데, 더구나 상상심상은 경험해보지 못한 대상의 자유롭게 창조한 영상인만치 현실의 진실한 영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의 일층 건전하고 철저함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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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말하고 싶은 것은 형상의 육체성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그 사물의 형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가 A란 사람을 생각할 때 그가 우리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제3자이며, 따라서 그에 대하여 증(憎), 애(愛), 동정(同情), 질투(嫉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우리와는 초연한 존재라면 그를 다만 종로3정목에 사는 상인 혹은 더 상세하게 영리(怜悧)하고 사욕(私慾)많은 포목상(布木商) A라는 개념만을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어떠한 밀접한 관계가 있어, 혹은 직접적 관계는 없어도 어떠한 이유로든지 감정적으로 참으로 미워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 하면 그를 평일(平日) 눈으로 본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 A의 육체적 형상이 완연히 머리에 떠오를 뿐 아니라, 그의 성격도 다만 영리하고 사욕(私慾)많은 것만으로 알 뿐 아니라, 그의 영리하고 이욕(利慾)많은 실제적 행동, 행위의 영상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조그마한 단일한 사물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구(機構)와 인류의 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회의 기구와 인류의 생활에 대하여 전연 제3자적 태도로 냉정하게 그것의 개념만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참으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라서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의 형상이 머리 속에 분명히 나타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어느 철학자의“경제학의 이론적 방법에 대해서도 주체는 즉 사회는 전제로서 언제든지 표상에 떠올라 있지 않으면 안 된다”,“두뇌 가운데 전연 사상으로서 나타나 있는 전체는 사고하는 두뇌의 산물로 그것은 단 하나의 가능한 방법으로 세계를 내 편으로 파악하는 사고하는 두뇌의 만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를 예술적으로 종교적으로 실천적으로 정신적으로 파악하는 거와는 다르다”고 한 것은 그러한 의미를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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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떠한 물체의 형상적 파악은 그것을 육체적 ─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육체적 ─ 구체적으로 파악은 실천적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다. 즉 이 세계를 다만 오성적(悟性的) 사유(思惟)만으로 그 개념만을 파악한다면, 실천적 행위가 생길 수 없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육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천적 행위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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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현실을 형상적으로 육체적으로 파악, 표현하는 것은 즉 예술이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선 예술 외의 일반과학에도 형상을 창조하는 구상력의 작용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다. 물리, 화학자가 어떠한 새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도 구상력의 활동이 필요할 뿐 아니라, 더구나 역사과학 같은 것은 삼기박음(三技博音)씨의 말과 같이“한 편에는 편리한 개념적인 분석능력과 종합능력을 가져야 되지마는 또 일편(一便)으로는 형상을 가진 풍부한 직관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상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체가 형상의 창조로서 구상되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이 현실의 형상을 재현시켜 새로운 제2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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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의 소론(所論)은 결코 형상의 개념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더구나 현실의 형상적 파악이 현실인식이 유일한 방법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어떠한 존재에서든지 만일 형상만 남기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개념을 모조리 추출에 버린다면 그것은 완전한 우상적 존재, 아무런 현실적 가치 없는 존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즉 종로3정목에 있는 영리하고 사욕(私慾)많은 포목상 A를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에만 그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 형상 또는 성격적 행동적 형상이 머리 속에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 영리하고 이욕(利慾)많은 포목상 A란 개념은 추출하고 나면 그것을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과 흥미도 주지 못하는 삼분(三分)의 가치도 없는 우상적 존재만 되고 말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성격적, 행동적 형상보다도 그의 육체적 성격적 행동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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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 아니라 또 현실의 형상(形象)은 현실의 현상(現象)으로 표상(表想)되고 있는데, 우리가 현실에 대하여 만일 그 상(象) ─ 형상(形象)만을 과대 평가하여 그것만을 중요시하고 고집하여 본다면 그 속에 있는 본질에 대한 주의가 소홀(疎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웃음의 현상 속에 칼의 본질, 꽃송이 피는 현상 속에 꽃 떨어지는 본질이 있는 것을 모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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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상문제(形象問題)에 대하여는 일찍 윤규섭(尹圭涉)씨가 관심을 가지고 오프샤니코, 고리고프스키키의 예술적 개괄력의 삼계단설(三階段說)을 인용하여‘사진적(寫眞的)’형상, 도식적 형상, 상징적 형상, 전형적 형상 등에 대하여 충분히 천명(闡明)한 바 있지마는 나는 그 전형적 형상에 대하여 다시 좀더 부연하고 싶다. 즉 전형적 형상이란 가장 비실재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것이 그것의 특징이다. 즉 현실 속의 어떠한 사실이든지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성을 가진 그것은 엄격한 의미로 그 현실의 전형이 될 것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소정(所定)한 현실 속의 욕심 많은 상인은 일반적으로서는 그 현실의 전형적 욕심 많은 상인이 될 줄 모르나 그의 행위는 많이 우연성과 예외성을 가지고 있어서 엄밀한 의미로 전형적인 욕심많은 상인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선 그 현실의 전형이 될만한 한 개의 구체적 사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의 판타지로 현실에선 없는 새로운 허구적 사실을 구상함으로써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록 비현실적, 창조적인 것이라도 방종한 판타지로 만들어낸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무조건적인 그것이 아니고, 욕심 많은 상인이라도 그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또 모든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그 현실의 대표적인 욕심많은 상인이다. 그래서 그 상인은 그 현실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가장 현실적 인물이다. 이러한 가장 비현실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형상을 창조함에는 따라서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 풍부한 판타지, 형상을 구성하는 기술이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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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예술 창조에 있어서 이미지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 못하는 이도 있는 동시에 그것을 과대평가 즉, 그것만으로 되는 줄로 이해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지의 역할 외에 중요한 역할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더구나 시에 있어서이다. 물론 어떠한 이미지든지 더구나 창조적인 상상 이미지에 있어서는 그것 떠오르기 전 찰나에 벌써 정서적 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어떠한 구체적 사물을 육체적으로 감동적으로 생각할 때엔 그것의 형상이 떠오를 뿐 아니라 동시에 거기에 대한 상서(想緖)가 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즉 욕심 많은 상인 A를 미워하든지 사랑하든지 하는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의 성격과 행위의 영상이 여실히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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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동시에 그를 미워하든지 사랑하든지 여러 가지 정서도 작용 안되지 못할 것이다. 개개의 다양성을 가진 이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조각조각 필름과 같은데 그 개개의 이미지를 영화의 편집자가 조각 조각의 사영(寫影)을 몽타쥬하듯이 유기적으로 모순되지 않게 결합시키는 것은 예술가의 가지고 있는 인식력이지마는 영상에 참으로 발랄(潑剌)한 생명을 주는 것은 정서이다. 시에 있어서는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딜타이는 말하였다. “정서는 모든 시의 생명적 기초이다. 그리고 시는 동시에 사상으로서 관통되는 것이다.” 또 그는 말하였다. “생산관계가 시의 판타지를 지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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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1941. 6)
【원문】예술에 대한 이미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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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환(權煥)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4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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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