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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가의 교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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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7
고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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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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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티」의 탐색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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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는 그것이 합리적 세계도 아니며 불합리적 세계도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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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작가인 체스타아튼은 그의 「정통론(正統論)」 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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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밖에도 「모더니티」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을 것이나 비평이 처한 현대적 경위(境位)를 살핌에 있어서 그는 우리에게 무한의 암시를 던져준다. 참으로 비평은 합리적 세계와 불합리적 세계와의 조화를 선택하든가 아니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나머지 한쪽을 배타하는데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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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평 쟝르에서 말하는 합리적 세계와 불합리적 세계는 마치 「쌍두의 독수리」와도 같아서 언어와 의미를 엄격히 가를 수 없듯이 좀체 단정할 수도 척결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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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체스타아튼은 “일반적으로 난해한 문제란 세계가 거의 합리적으로 되어 가면서도 완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완전」을 구경으로 할 땐 합리적 세계나 불합리적 세계는 서로 다름 없는 것으로 되고 만다. 왜냐하면 불합리적 세계가 「완전」에 이르렀을 때 이미 그것은 합리적 세계에로의 전환을 다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역설(이단)에서 정설(정통)을 유도하는 경우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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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타아튼의 이야기를 더욱 부연하는 의미에서 엘리어트의 한 구절을 더듬어 본다면 ―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의 시의 위치를 결정하려는 마리땡의 기도나 이교 세계에 있어서의 시의 위치를 결정하려는 리챠즈의 기도는 모두 시인으로서 관계할 특수한 임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잡다한 개념들은 속속들이 차서 정신의 불안상태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시와 비평의 효용) 엘리어트의 경우 합리적 세계와 불합리적 세계는 기독교 세계와 이교 세계와의 차이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괴리된 각각의 세계에서 시인들은 저마다 충족될 수가 없는 것이다. 시인 뿐만 아니라 비평가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항상 「엄숙한 중용」은 그들을 괴롭히며 그들에 대한 「이것 또는 저것」을 선택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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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기독교 세계에서 주창되는 「신념」의 문제를 두고 말한다 할지라도 “신념은 파악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감화된 것으로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엘리어트의 논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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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감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 세계가 감화되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적어도 합리적 세계는 사상의 전달을 회피하고 정서적인 감화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어트는 리챠즈의 전달설을 수락하지 않는 한 사람이다. 전달은 전달로써 끝나지만 감화는 도리어 반사적인 영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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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언어작용에 있어서 추상적인 의미의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구체적인 흥미를 돌보지 않는 경우에도 꼭같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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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어트는 종주로서의 예술관념과 시녀로서의 예술관념이 대립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비로소 그는 전체시(All Poetry)의 탄생을 주장하였는데 「전체시」란 종주로서의 예술관념, 즉 합리적 세계의 사상과 시녀로서의 예술관념, 다시 말하면 불합리적 세계의 정서가 온전한 유기적 전체로서 매개된 결과를 말한다. 이는 화학반응에 있어서 아유산(亞硫酸)을 만들기 위하여 두 가지 기체에 작용하는 백금강(白金鋼)이라고도 비유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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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전체시」가 파악된 것으로서가 아닌 감화된 것으로서의 「신념」을 발휘할 때, 우리는 거기에 반영된 간곡한 역사의식의 자각과 사회적 효용의 기능을 동시에 인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의 신념은 신념으로서 불리워지기 보다는 차라리 영구적인 시의 본질에 도달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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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상과 같이 더듬어온 시의 경로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엘리어트는 시가 흥성할 때 비평이 위축되고 비평이 흥성할 때 시가 위축된다는 사실을 몇 세기간의 영국문학사에서 대강 추리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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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가 흥성하는 시대를 「창조시대」라고 불렀으며 비평이 흥성하는 시대를 「비평시대」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아놀드가 「현대에 있어서의 비평의 기능」을 서술하면서 「엘리자베스」 시대를 「확장의 시대」로 보고 19세기 말엽 이후의 시대를 「집중의 시대」라고 명명한 것과 별 다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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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차 대전을 분기로 한 현대는 확실히 시의 위축을 비평의 흥성으로써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특히 주지주의 운동 이후에 있어서의 구라파 문학은 쟝르 여하를 막론하고 작자의 비평적인 의식상태를 대부분 반영했던 것이다. 비평을 제외한 심리주의 소설이나 실존주의 희곡같은 것도 실상 따져보면 비평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심화될 수가 있었으니 가히 현대는 「비평시대」라는 말이 어긋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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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의 세계 시단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의 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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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엘리어트의 답변을 듣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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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철학을 부정치 못하는 한 비평을 나무랄 순 없을 것입니다. 비평의 발전은 시의 발전과 변천을 예고하는 것이며 또한 시의 발전은 그 자체에 있어서 사회변천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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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위축된다는 사실은 오히려 비평이 시를 도와서 사회 및 세계와의 새로운 조정을 가능케 하는 결과를 낳으므로 시의 영역이 넓어지며 따라서 시의 효용가치가 문제화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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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로 볼 때 이것은 창조 시대를 내포하면서 발전하는 비평 시대의 기능적 방법에만 국한해서 하는 말 같지만 여기에는 버젓한 비평 정신이 밑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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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평 시대인 현대에 있어서 가장 중추적인 비평 정신은 어떻게 나타나야 옳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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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의 비평을 검토할 때 우리들은 여전히 아놀드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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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앞의 연설 가운데서 엘리어트 자신이 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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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아놀드의 비평정신은 「워즈워드 시론」에 나타난 다음의 몇 마디로써 넉넉히 요약된다. “시는 사실상 인생의 비평이란 것이며 시인의 위대함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인생 문제에 대해서 그가 사상을 힘차고 아름답게 적용하는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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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는 사상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시인의 위대함을 측정한다고 말하였다. 사상을 그냥 노출시킬 것이 아니라 힘차고 아름답게 「적용」해야 하는 까닭에 여기엔 상당한 재능이 요청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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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는 재능의 평가에 있어서 생득적인 것과 습득적인 것과를 구별지었는데, 이는 창조적인 재능과 비평적인 재능과의 구별이라고도 할 것이다. 창조적인 재능의 소유자들이 대부분 낭만주의적인 「확장의 시대」에 살았다면 비평적인 재능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고전주의적인 「집중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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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현대에선 창조적인 재능보다 비평적인 재능을 요구하는 까닭에 스스로 생득적인 재능이 위축되고 대신 습득적인 재능이 흥성하는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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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평적이며 습득적인 재능이 창조적이며 생득적인 재능을 완전히 말소할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두 개의 재능은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다닫게 됨을 여실히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사상의 적용」이란 사상의 「확장」과 「집중」 내지는 사상의 「창조」와 「비평」을 다 같이 포함하는 기능에서 출발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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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인생 문제가 사상의 적용만으로써 해결될 수 없다는 여러 사람들의 논박을 받았으되 「워즈워드론」에 있어서의 그는 다시 “도덕 관념에 대하여 소홀한 시는 인생에 대하여 소홀한 시다” 라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사상의 적용」이 훨씬 뚜렷한 목적을 내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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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있어서 「사상을 힘차고 아름답게 적용」한다는 것은 「시적 진실」과 「시적 미」를 동시에 구체화한다는 의미일 것인데 「시적 진실」에 있어서는 시인 자체의 인격적인 성실성과 경건한 태도가 주장되었고 한편 「시적 미」에 있어서는 시어의 원활한 작용과 함께 정서적 체험의 깊이가 주장되었으니 전자의 사상적 요소와 후자의 정서적 요소를 온전한 유기적 전체로서 매개하며 재조직하는데 소위 비평정신의 바탕이 숨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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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비평은 “세계 내에 있어서 알려지고 생각된 최선의 것을 스스로 알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널리 남에게 알려주며 성실하고도 활발한 사상의 보급을 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적용된 사상을 다시 보급시키는 도덕적 관념에 충실할 때 비로소 비평정신은 그의 목적을 마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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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의 경우 이러한 비평정신은 비평가의 조화적인 「교양」에 달려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주목된다. “교양이란 완성의 추구이다” 그는 「교양과 무질서」 가운데서 이렇게 적었다. 물론 교양은 지식의 기반에서 출발된다. 그러나 이때의 지식은 개인의 지적 만족을 뜻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호기심에 그치는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식을 위한 지식이란 있을 수가 없다. 지식은 도덕적인 열의를 가져야 하며 실천적 지식으로 번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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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지식에 의해서 우리들은 지금의 맹목적이며 기계적인 진부한 사고와 습관을 털고 참신하면서도 자유로운 사상의 바탕을 얻는다”고 하였다. 사뭇 실천적 지식이란 「교양」의 이명(異名)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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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위트가 주창한 「우미(優美)와 예지」를 다시 교양의 2대 요소로서 채택함에 주저치 아니하였다. 말하자면 미적 요소와 지적요소와의 결합이다. 이것은 「시적 미」와 「시적 진실」의 확대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그는 완성의 추구를 목적하여 우미(優美)가 증대되고 예지가 증대되고 생명이 증대되고 다시 동정이 증대되는 정신의 내면적 활동을 통털어서 교양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분명히 아놀드는 교양을 「사회적 관념」이라고 단정함으로써 이상적 휴머니즘에 가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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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미와 예지를 완성의 성격으로 다스림으로써 교양은 시와 동등한 정신을 갖게 되며 시와 동일한 법칙을 따르게 된다.” 어느 의미에서는 종교적 관념과 일치되는 것을 교양이라고도 하겠으나 어디까지나 교양은 사변적이며 기계적인 신앙의 법칙을 준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급진적인 과학자들의 파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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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교양은 지식의 자유와 이상의 평등을 요구하며 개인의 조화가 사회의 조화로서 발전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교양이란 한 마디로 사상의 보편성을 목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교양은 「문화」의 어의(語義)까지를 내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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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놀드는 구라파 정신사상의 이대 조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과의 조화를 역설하니, 그는 일종의 플라톤주의를 표방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빅토리아조의 기계적인 물질주의 경향에 대해서는 헬레니즘을 그리고 공리적인 자유주의 경향에 대해서는 해브라이즘의 배양을 요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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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여기에는 라파엘의 그림에서 「우미와 예지」를 발견한 페이터의 주장을 방불케 하는 점이 있다. 페이터는 그것을 「순일적(純一的) 성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쨌든 실천적 지식을 도덕적 관념에 절충시킴으로써 문화는 「순일적 성격」과 같은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인즉 “우리들은 도처에서 혼란의 싹들을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인가 견고한 질서와 권위에의 접촉을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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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아놀드의 교양은 완성의 추구이면서 동시에 질서를 옹호함에 나서게 되었다. 이것은 예술사회론을 주창한 라스킨의 입장과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놀드가 불합리적 세계를 동경해 마지 않는 「확장의 시대」에 살았던 최후 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페이터의 조화사상이 「자연」을 기반으로 한 데에 반박하며 자연과 대치될 무엇이라도 발견치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집중의 시대」가 도래하며 마침내 합리적 세계의 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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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견고한 질서와 권위」라는 말에서 짐작되는 바와 같이 질서는 권위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헬델」류의 독일적 국민주의를 계승하여 국가 기구의 권위같은 것도 고안하였으나 이성 종교에 대한 매력은 더욱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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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강직한 자에 대하여 지배적인 힘이 되어야 할 우리들은 의식 가운데서 저절로 발현한 우미와 예지를 탐색하는 헬레니즘보다 오히려 양심의 엄숙성과 열정과 활동을 구하는 헤브라이즘을 요구해야 한다”고 그는 명백히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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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놀드의 교양은 종교적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을 삼가했다. 차라리 「일상의 자아」를 「최선의 자아」로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할 뿐이니 이때의 「최선의 자아」는 사이비종교적인 권위로서 이성이라고 풀이된 것 이었다. 물론 엘리어트의 경우에 비쳐본다면 이성 자체가 허망한 것으로 되기 일쑤지만 마리를 거쳐 리이드에 이르는 일정한 계절에서는 역시 이성의 처리가 소홀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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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란 어떤 특정의 목표라든가 관심의 대상을 향해서 정리되고 나열된 지각의 모두이지만 질서의 본질은 분명히 지속성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시간 속에서 축조되고 시간 속에서 작용하는 조직이다.(이성과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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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한 리이드의 경우 이성은 합리적인 동의어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인간의 감각과 본능 및 지성의 모두로써 구성되는 활동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 자신이 상실되기를 원하지 않고 도리어 명백한 이성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발견할 것을 원한다”는 아놀드의 말에 비해서 별반의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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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질서를 확립하는 권위의 정체란 그렇게 합리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합리적인 것도 아닌 이성의 활동력 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아놀드의 경우 이성은 숫제 「교양」이란 말로써 불리워졌으므로 우리는 다시 교양의 논의에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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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우리는 아놀드의 비평주의 내지는 합리적 고전주의가 끝내 창조주의 내지는 불합리적 낭만주의와 대립되기를 원치 않았으며 오히려 영국적 지방주의와 격렬히 대립하고 있었다는 뉴양쓰에 깊게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리이드에 좇아서 “낭만주의란 우리가 좋든 싫든 간에 우리와 더불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낭만주의로부터 도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거기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 간의 식별을 완성하기 위해 이들 감정 간에 하나의 질서를 개입시켜야 한다”고 굳이 믿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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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엘리어트에 겨누어 비평주의의 종선과 세계(서구) 주의의 횡선이 서로 엇갈리는 중심부에서 교양의 또다른 일면을 포착할 수도 있을 것이나 지금은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인생의 비평」을 주장했던 아놀드의 이상적 휴머니즘에로 이야기를 좁히기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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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정한 성질이 칼츄어를 통하여 기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인간이 칼츄어에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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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의 대비드·비드니가 적은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개의 「칼츄어」를 맡아보게 된다. 앞의 것을 「교양」이라 새기고 뒤의 것을 「문화」라고 새긴다면 대개의 의미는 상용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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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엘리어트는 「문화의 정의에 대한 각서」 중에서 「칼츄어」를 구라파의 형이하학적 의미와 구라파의 정신적 유기체와의 구별을 짓기 위해서 사용한다고 전제하면서 “우리들은 통일성 가운데 다양성을 요구한다” 는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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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간 비드니의 말을 부연해서 인간의 일정한 성질이 기능적으로 나타날 경우에 「칼츄어」의 다양성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환원되기를 거부하는 경우를 「칼츄어」의 통일성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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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양성을 위하여 불합리적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겠으나 한편, 통일성을 위하여 합리적 세계에 대한 권위를 영원히 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바야흐로 다양성과 통일성과의 「엄숙한 중용」이 우리들 앞에 제시된다. 다만 우리는 불합리적 세계의 다양성과 합리적 세계의 통일성을 일시에 수락할 수 없는 처참한 곤경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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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어트는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성숙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당면 과제라고 하였는데 이는 두 가지 기능의 교착과 갈등 속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 현대 비평가들의 휴식을 은근히 권해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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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평가란 사상과 표현 다시 말하면 의미와 언어의 쌍방에 걸쳐서 공통적인 관심을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나머지 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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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대상과 가장 밀접하게 일치시킴으로써 본래의 이론인 부드러운 체험(zarte Empirie)이 얻어진다. 정신기능의 이러한 승화는 높은 교양의 시대에만 있는 것이다.” 정신기능의 분해를 하나의 <부드러운 체험>으로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시성(詩聖) 괴에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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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와 승화(종합)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었던 괴에테의 비밀은 아놀드며 배빗트의 머리를 스쳐 오늘의 우리들 앞에 간단없이 방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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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비평가는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환영에 사로잡히지 말고 비평가는 시대사상의 촉수가 되고 사제가 되고 심판자가 되는 꿈을 천하다 아니 할지어다. 어느듯 나에겐 괴에테의 고민과 같이 서두에 인용한 체스타아튼의 정의를 자주 우리나라의 비평문학에 겨누어 보는 은은한 버릇이 생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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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가 <부드러운 체험>을 위한 교양인의 성실성을 개화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모더니티」의 탐색을 위한 비평가의 제1조건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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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7. 사상계》
【원문】비평가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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