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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소(隘少)하고 침음(沈陰)한 실내 5·6촉밖에 안되는 전등이 높게 걸려있다. 전등 밑에는 소형의 책상 하나 그 위에는 장부같은 몇 권, 또 좌종 시계 하나 있어, 고요한 밤에 혼자 째깍거리고 있다. 방 안구석에 순옥이가 머리 위에 바느질 상자를 두고, 치마 입은 채, 이불도 없이 우제와 같이 잔다. 밖에서는 늦은 가을 바람 부는 소리가 가끔 우루우루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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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가 낡은 양복을 입고, 공포한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며 무대 좌편에 있는 대문 앞으로 뛰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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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대문을 당겨보다가, 뚜드리며) 여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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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앞뒤를 도라보며, 황급하게) 여보. 순옥씨. 순옥씨. 문 좀 열어주오. 응. 문 좀 열어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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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여보. 순옥씨. 내 왔어요. 응. 순옥씨 내 왔어요. (소리를 약간 돋우워) 순옥씨, 문 얼른 열어주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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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벌떡 일어나서 대문으로 나오면서) 예. 예. 누구시오. 덕세씨요? (대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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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예. 예. 그렇소. 나요. 얼른 열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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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아 ─ 니. 나는 누구시라고. 그런데 왜 인제 오세요. 나는 또 딴데서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 대문을 잠그고 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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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는 그 말은 들은 체 만 체하고, 대문을 잠그고, 벼락같이 방으로 뛰어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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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의아하게 덕세를 보고) 그런데 왜 이리슈. 숨은 왜 헐떡거리요? 무슨 일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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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일부러 평온(平穩)한 낯빛을 하며) 아무 소리도 말고 가만있어요. 일은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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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아 ─ 니. 그래도 얼굴이 픽 풀어졌는데요. 그리고 또 숨이 퍽 헐떡거리는 것 보니까. 아마 무슨 일이 났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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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낯빛을 찌푸리며) 허, 가만있으라니깐 (웃옷만 벗고 자리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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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일어나서며) 진지는 어쨌어요. 밥상을 가져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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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손을 내두르며) 그만 두오. 그만 두오. 먹고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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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은 그만 앉아 자는 우제의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실내는 한참동안 정숙해졌다. 센 바람부는 소리가 우루루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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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낯빛을 좀 펴며, 아래 양복을 벗고) 자 ─ 우리 잡시다. 불 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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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요위에 털벅 앉아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미소를 띄우며 가는 소리로) 여보 순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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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남편의 웃는 것이 그지없이 반가운 듯이 같이 약간 웃으며) 예. 무엇하시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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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순옥의 팔을 당겨 좀 다가앉으며) 모레 기어이 친정댁으로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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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좀 머물거리다가) 글쎄요. (사이 ─ 間[간]) 뭣, 안가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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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만 어쩔 수 있어요. (낯빛을 조금 바르며) 뭣, 내 안간다고, 내 아우 결혼식 못하겠소? (하고 풀없이 앉아 무엇을 생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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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걱정마시오. 인제, 내 순옥씨 밤낮 조르는 옷감, 구두, 숄, 손가방, 다 사서 순옥씨 동생 결혼식에 가게 할테니, 걱정마시고 누워 자시요. (눈을 딴 데로 돌리고) 그리고 내일은 또 이 빌어먹을 밤낮 찾아오는 집세도 쳐줘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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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와락 놀라는 듯이) 어떻게요. 오늘 무슨 큰 횡재나 생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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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횡재, 무슨 횡재,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그렇게 눈먼 돈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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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기쁨을 안 보이려는 얼굴로) 그러면 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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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퍽 누우며) 어떻게라니? (사이 - 間[간]) 꾸었지요. 뭣, 내 다니는 사(社)사장한테 꾸었지요. (사이 - 間[간]) 흥, 그래도 남자아인가봐. 남자의 수단은 아흔 아홉 가지라요. (두 팔을 들었다가 다리를 치며) 인제 좀 살아볼까. 어지간히도 이리저리 졸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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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와락 무슨 생각이 나는 듯이) 자 ─ 전등 끄고 잡시다. 내일 내 이야기 할테니. (하고 이불을 덥고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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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도 전등을 끄고 눕는다. 밖에서 사람 소리가 와 ─ 난다. 또 호각 소리도 난다. 사복정복(私服正服)한 경관수인(警官數人)이 각기 손에 붉은 수제등(手提燈)을 들고, 덕세집 대문 앞으로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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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1 (대문을 뚜드리며) 여보 ―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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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2 (수제등으로 문패를 비춰보고) 여보, 박덕세, 박덕세. 문 좀 열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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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3 (피스톨을 내려들고) 주인. 주인. 문 좀 열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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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벌떡 일어나서 덕세의 몸을 흔들며) 여보세요. 여보세요. 밖에서 누가 찾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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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2 3 (구두발로 대문을 차며) 박덕세. 박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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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은 전등에 불을 켜고, 치마를 입고 나가 대문을 연다. 경관들은 모두 대문 안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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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1 (순옥을 보고) 이 집이 박덕세 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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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약간 떠는 소리로) 예. 그렇지요. 깊은 밤에 다 어쩐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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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1, 순 2와 형사와 서로 무슨 암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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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창문을 와락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박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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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1, 순 2, 순 3, 4 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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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벌떡 일어나서 일부러 눈을 부비며) 예. 예. 누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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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2 (덕세의 뺨을 치며) 이놈. 이놈. 멀쩡한 강도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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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1 (포승으로 덕세 손을 묶으며) 이놈. 그래도 상당한 교육받은 놈이. 그렇게 빈궁(貧窮)을 못 참는단 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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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2 (옆에 서서) 법률보다 양심이 더 겁나지 않던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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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3 (피스톨을 하나 보이며) 이놈 이게 누구의 피스톨인 줄 아니? 자세봐 이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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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는 와락 낯빛이 푸르며 아무 말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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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벌벌 떨며) 아니 여보. 이게 어쩐 일이요. 응. 이게 어쩐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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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1 (눈을 부릅뜨며) 가만있어! (하고 덕세를 끌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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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는 아무 회피(廻避), 변명, 반항도 없이 우울과 분노를 못참는 얼굴로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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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경관들을 보고) 무슨 까닭이어요? 무슨 까닭이어요? 박덕세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포승줄을 끄를라고 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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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1 (순옥의 손을 치며) 왜 이리 야단이야. 감옥에 같이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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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4 (덕세의 양복 포켓 안에서 지폐 수십 매를 내여 덕세에게 보이며) 이놈! 이게 누구 돈이냐. 누구 돈이냐. 응. (하고 덕세의 뺨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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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깜짝 놀라며 덕세를 보고) 아이구 여보세요. 이게 어쩐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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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세 (울분(鬱忿)한 얼굴로) 가만있어요!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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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옥 (울고 따라가며) 내 죄입니다. 이게 모두 내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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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좌종(坐鐘)은 혼자 자는 우제의 숨소리와 조자(調子)를 맞춰 째깍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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