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출범 시대에 속하는 단순하고 낡은 이야기이니 현 계단의 요구에 어그러질는지도 모르나 앞으로 닥쳐올 새날의 한 서곡이 된다면 스스로 족한 이야기이다.
23
황소 불시에 벌떡 일어나니 그의 몸동이 화면에 그득히 차고도 오히려 남는다.
24
6. 뿔을 휘두르며 맹렬히 달려드는 황소. (이중(二重))
26
8. 흐린 하늘에 구름장이 뭉게뭉게 흐른다.
32
13. 암흑의 화면에 붉은 불꽃이 차차 맹렬히 타오르더니 나중에 전 화면이 새빨갛게 변한다.
34
15. 대지를 들어갈 듯한 폭풍우. (이중)
35
16. 멀리서 급속히 카메라 앞으로 육박하여 오는 부르짖는 입.
37
18. 거리로 밀려가는 시커먼 ×××의 시위행렬. (이중)
43
등사판을 둘러싸고 앉은 한민, 박철, 이완읍의 세 사람 롤러를 돌리며 삐라를 집어내며 그것을 접으며 매우 분주하다.
46
26. 이 긴장된 이완읍의 얼굴. (대사)
59
37. 뽀얀 먼지 속으로 달려오는 기마대.
67
분주히 삐라 박던 세 사람 별안간 깜짝 놀라 일제히 문께를 바라본다.
68
44. 문이 거칠게 열리며 혜련 급한 걸음으로 뛰어 들어온다.
69
45. 방안. (근사) 혜련 세 사람에게로 달려가.
77
혜련과 세 사람 급히 어수선한 주위를 치운다.
81
54. 뜰 앞을 살금살금 걸어 들어오는 발.
83
네 사람 별안간 일제히 문께를 바라본다. 그들 손에서 삐라가 떨어진다.
84
56. 문을 홱 열고 뛰어 들어오는 형사.
85
57. 빛나는 세 사람의 얼굴. (순간)
93
박철과 이완읍, 형사를 뿌리치고 방안을 튀어나간다. 뒤미처 한민 튀려다가 형사에게 붙들린다.
94
65. 한민 형사를 뿌리쳐 쓰러뜨리고 화면에서 사라진다.
95
66. 다시 형사에게 붙들린 그의 팔. 한민 팔을 빼려고 애쓰나 헛일이다.
96
67. 거리를 달아나는 박철과 이완읍. 모퉁이에서 두 사람 각각 갈라진다.
97
68. 기마대에 포위되어 흩어지는 시위 행렬.
104
75. 형사, 한민의 등을 밀치며 방을 나가려 한다.
108
79. 한민, 형사에게 이끌려 방을 나간다. 혜련 뒤미처 쫓아나간다.
109
80. 창졸한 가운데에 슬퍼하는 혜련.
111
"내가 다녀 나올 때까지 몇 해가 되든 혜련은 나를 기다려 줄 수 있겠소?"
113
"기다리고 말고요. 부디부디 안녕히 다녀나 오세요!"
116
85. 형사에게 끌려가는 한민의 뒷모양과 눈물 흘리며 이것을 바라보는 혜련(용암(溶暗))
121
이런 후 삼년의 세월이 흘렀다. (용암)
122
86. (교개(絞開)) 다락에 종이 울린다. (이중)
126
정문으로 사람들 몰려 들어간다. (이중)
133
천정과 벽에 오색의 테이프와 만국기 무수히 들여 있고, 정면 멀리 탁자 앞에 주례 서 있고, 가운데 길을 훤히 트이고 양편에 관중 꼭 들어섰다. 가운데 길에는 무명을 펴고 사이에 일렬로 화분을 놓아 길을 둘로 나누었으니 그 왼편 길을 신랑, 세 사람의 들러리와 같이 고요히 주례 앞으로 걸어 들어간다.
138
(카메라 신랑의 행진을 따라 앞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서서히 후퇴) (이중)
140
까마귀 한 마리 뾰족탑을 끊고 날아간다. (이중)
141
96. 교당 앞 문 벽돌담에 아래와 같은 글발 붙어 있다.
146
손 하나 나타나 이 글발을 뜯어 버리려다가 다시 멈칫한다.
147
98. 울분에 타오르는 얼굴. (대사)
148
99. 교당 앞 문 벽돌담에 아래와 같은 글발 붙어 있다.
152
글발을 등지고 문 앞에 선 청년 주먹을 징긋이 쥐었다.
153
100. 손 기어코 담의 글발을 뜯어 좍좍 찢어 버린다.
154
101. 교당 앞문 벽돌담에 아래와 같은 글발 붙어 있다.
158
청년 글발을 찢어버리고 문을 들어간다.
160
청년 카메라를 등지고 우뚝 서서 멀리 당 안의 결혼식장을 들여다보다가 정문 옆 작은 문으로 당 안에 들어간다.
161
103. 결혼식장. (카메라 정문에서) 신랑과 들러리는 이미 주례 앞에 가 섰고 신부 역시 세 사람의 들러리와 소녀에게 받들려 가운데 길 오른 편을 걸어 들어간다.
164
106. 교당 안 정면 난간에 의지한 청년. (정면 상반신)
165
107.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俯瞰)으로)
166
청년 난간에 의지하여 멀리 식장을 내려다 본다. 식장에서는 신부 여전히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168
109.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으로)
169
신부 행진을 마치고 주례 앞에 신랑과 나란히 섰다.
171
111.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으로)
172
주례 손짓을 하여 관중을 자리에 앉히고 입을 열어 두 사람의 결혼을 고한다.
174
112. 신랑과 신부의 뒷모양. (접사(接寫))
175
그 너머로 주례 말을 그치고 탁자에서 성경을 집어 펴들고 한 구절 읽는다.
177
114. 신랑과 신부의 뒷모양. (접사)
178
주례 성경을 다 읽고 신랑과 신부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성경을 덮어 탁자에 놓고 입을 연다.
179
115. 엄숙히 서 있는 신랑과 신부. (정면 상반신)
181
116. 신랑과 신부의 뒷모양. (접사)
183
117. 대답하는 신랑. (정면 대사)
184
118. 신랑과 신부의 뒷모양. (접사)
186
119. 신부 더욱 고개를 숙일 뿐. (정면 대사)
187
면사포 위에 굵은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188
120. 신랑과 신부의 뒷모양. (접사)
189
주례 신랑과 신부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을 막는다.
190
121.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으로)
191
난간에 의지하였던 청년 괴로운 듯이 몸을 일으켜 몸부림친다.
192
122. 고민하는 청년. (정면 상반신)
193
두 손으로 머리를 끄들면서 번민하다가 다시 난간에 의지한다.
195
124.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으로)
196
청년 난간에 의지하여 식장을 내려다본다. 식장에서는 예물을 교환 한다.
197
(카메라 교당 정면에서 급속히 이동하여 식장에 접근)
199
신랑 편 들러리 소녀가 들고 섰는 바구니 속에서 반지를 집어 든다.
200
126. (카메라 주례 앞에서 신랑 신부를 정면으로)
201
신랑 편 들러리 반지를 탁자에 놓으니 주례 그것을 집어서 신랑에게 준다.
202
127. 난간에 의지하여 멀리 이곳을 바라보는 청년의 뒷모양.
205
129. (카메라 주례 앞에서 신랑 신부를 정면으로)
206
신랑 반지를 들었고, 신부 편 들러리 신부의 장갑을 열어 손가락을 내민다.
207
130. 슬픈 표정이 차차 분한의 표정으로 변하는 청년의 얼굴.
208
131. 신랑 신부의 손가락을 잡고 반지를 끼우려 한다.
212
134. 신랑 신부의 손가락에 막 반지를 끼워 주려 하는 찰나.
213
(핀트가 어긋나며 화면이 부옇게 떨린다.)
214
135. 고함치는 청년의 얼굴. (대사)
215
136. (카메라 청년의 등뒤에서 부감으로)
216
청년 고함을 치며 난간에서 몸을 일으켜 두 팔을 들어 식을 제지 하니 식장 군중의 얼굴들이 불시에 이곳으로 쏠린다. 청년 비호같이 몸을 날려 난간에서 층층대를 뛰어 내려간다.
218
청년 교당 정문에서 쏜살같이 식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220
138. 식장에 다다라 신랑과 신부의 사이를 죽 갈라놓는 청년의 뒷모양.
222
청년 분한에 타는 얼굴로 주례 앞 탁자에까지 늠름히 걸어 들어온다.
223
140. 황당한 주례의 얼굴. (대사)
224
141. (측면) 청년 탁자를 격한 주례의 얼굴에 침을 탁 뱉고 돌아서서 신랑과 신부를 대한다.
225
142. 놀라는 신랑과 신부와 들러리들. 후에 수물거리는 군중.
226
143. 눈물에 젖은 신부의 얼굴. (대사)
227
청년을 똑바로 인식한 그의 얼굴에는 놀람과 참회의 빛이 떠돈다.
228
144. 경멸과 노기에 찬 청년의 얼굴. (대사)
230
145. 신부, 청년의 이름을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사과하면서 청년에게로 몸을 쏠린다. 청년 비웃으며 몸을 피하니 신부는 그 자리에 기절하여 쓰러지고 만다. (근사)
233
148. 신랑, 청년에게 육박하매 청년 주먹으로 지르니 신랑도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다. 청년 손에 잡힌 반지를 신랑의 얼굴에 힘껏 던진다. (근사)
235
그 숲에서 신부의 오빠 나타나 청년에게 달려든다.
236
150. 조소하는 청년의 얼굴. (대사)
237
151. 오빠 육박하다가 청년의 몸에 부딪쳐 그 자리에 쓰러진다.
239
152. 노기에 찬 청년의 얼굴. (대사)
241
153. (카메라 교당 정면 난간에서 부감으로)
243
154. 쓰러진 신부 앞에 서 있는 청년.
245
155. 눈물짓는 청년의 얼굴. (이중)
246
156. 난간에 얼굴을 묻고 있던 청년, 고개를 쳐드니 이것은 잠깐 동안의 환상 이었다. 청년의 얼굴에 눈물자국이 펀적펀적하다.
248
멀리 식장에서는 신랑 신부의 손가락에 막 반지를 끼워 주려 하는 찰나.
249
158. 난간에 의지한 청년의 얼굴이 경련적으로 실룩실룩 떨린다.
250
159. 반지를 끼워 주려 하는 찰나.
251
160. 난간에 의지하였던 청년 별안간 손을 들고 식장을 향하여 고함친다.
252
161. (카메라 급속히 회전하여 부감으로)
257
신랑 깜짝 놀라 손에 들었던 반지를 떨어뜨린다. 일제히 놀라 청년 쪽을 바라본다.
258
163. (카메라 식장에서 멀리 조감(鳥瞰)으로)
260
(카메라 앞으로 이동하여 청년에게 접근)
262
"혜련아! 나를 잊었단 말이냐?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고 언약 한지 세 해가 못되는 이날에 이 한민을 벌써 잊어버렸단 말이냐?"
265
영문을 몰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뜬 신랑, 주례, 들러리들 사이에서 신부 놀라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269
167. 신부 외치면서 고요히 걸어 나온다.
271
이 동안에 신랑은 떨어진 반지를 찾느라고 엎드려 뒤번덕거린다.
273
청년 식장을 내려다보면서 신부를 손가락질하며 부르짖는다.
275
가난이 그다지 괴롭던가, 불명예가 그다지 싫던가. 나의 하는 일과 밟는 길을 이미 양해하였고 이렇게 될 나의 오늘을 이미 짐작하던 그대가 아니었던가?"
278
170. 걸어 나오는 혜련의 얼굴에 (대사) 새로 눈물이 쏟아진다.
279
171. 신부 고요히 걸어 나오면서 면사포를 벗어 버리고 두 팔을 들고 멀리 청년에게 호소한다. (원경. 측면 이동) 면사포 찢기어 발치에 질질 끌린다.
281
"오 ── 한민씨! 아니예요, 아니예요. 한민씨!"
282
173. 신부 고요히 걸어 나오면서 면사포를 벗어 버리고 두 팔을 들고 멀리 청년에게 호소한다. (원경. 측면 이동) 면사포 찢기어 발치에 질질 끌린다.
284
"말 말아라! 계집의 소갈머리가 항상 그런 것이니 이제 나의 앞에서 구태여 변명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286
176. 혜련, 걸어 나오다가 절망한 듯이 문득 그 자리에 서서,
288
177. 난간에 선 한민 고개를 흔들며,
289
"용서? 나에게는 지금 그대를 용서할 권리도 없지 않은가.…… 나는가 노니 그리워하던 나라로 나는 길 떠나노니 돈 많은 사람과 명예로운 사람과 잘 살아라!"
290
178. 눈물을 머금은 한민의 얼굴. (대사)
292
청년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며 식장을 향하여 고별의 손짓을 하니 식장에서는 요란한 군중에 싸인 혜련 두 팔을 높이 들고 마지막으로 한민을 쳐다보며 소리 높여 하소연한다.
293
"한민씨! 한민씨! 저를 버리십니까. 한민씨!"
296
한민 고별의 손짓을 하고 난간을 두어 걸음 떠나니 식장에서는 혜련 "한 민씨! 한민씨!"를 여러 번 외치다가 그 자리에 졸도하여 버리고 만다. 군중 혜련에게로 와르르 몰려든다.
298
쓰러진 혜련 옆에 신랑 들러리들 몰려들고 그 뒤를 관중이 빽빽이 둘러쌌다. 군중을 헤치고 혜련의 오빠 달려들어 혜련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일어나 난간 쪽을 노리니 다른 사람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난간 쪽을 바라본다.
299
183. (카메라 식장에서 난간을 조감)
300
그러나 난간에서 한민의 자태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이다.
304
186. 영문을 몰라 넋을 잃고 서 있는 신랑.
306
감은 눈 밑으로 화장한 얼굴을 이지러트린 눈물 흔적이 아직도 새롭다. (교폐)
307
188. (용명) 한민의 하숙방.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에 의지한 한민의 뒷 모양.
309
침울한 표정. 그의 손에 사진첩이 들렸다.
310
190. 사진첩. 장장이 넘어가던 사진첩이 문득 한 장의 사진 위에 머무르니.
312
몇 해 전 한민과 혜련, 연구회의 여러 동지들과 같이 찍은 것.
313
192. 한민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쳐든다.
317
이야기는 다시 삼년 전으로 올라가니 삼년 전 저무는 여름 동무 영호의 집에서 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연구회의 밤 ── 한민이 혜련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이날 밤이었다.
319
194. 영호의 서재. (밤) (근사)
320
영호 그의 누이동생 영애, 박철, 이완읍, 그 외 오륙 인의 학우들, 한민을 중심으로 책상을 둘러싸고 앉아서 한민의 보고에 귀 기울이고 있다.
321
195. 보고를 마친 한민, 원고 접는다. (상반신)
322
196. 좌중의 긴장이 풀리며 일동 잡담에 들어간다. (이중)
324
일동 각각 지니고 왔던 책을 자기 앞에 펴 놓는다.
326
영애의 손이 양서 한 권을 뽑아 낸다.
328
영애 책시렁을 떠나 좌석으로 돌아가 한민에게 미소를 던지며 책상 복판에 양서를 놓는다. 한민 역시 미소로 사례하고 양서를 앞으로 끌어 당긴다.
330
경제학의 원서이다. 한민의 손, 원서의 표지를 열고 책장을 넘기며 페이지를 찾는다.
331
201. 각각 이 원서의 번역 책의 페이지를 찾는 동무들의 손.
332
202. 한민의 책상 앞. 그의 손 원서의 바로 페이지를 찾아 놓았다.
334
동무들의 책상 앞에 놓인 책들 각각 바른 페이지를 가리키며 정제 되어있는 가운데에.
335
204. 아직까지도 바른 페이지를 못 찾아서 뒤번덕거리는 손 하나 있으니. (대사)
336
205. (카메라 손을 따라 위로 이동)
339
207. 무참하여 얼굴 붉히는 영애. (상반신)
340
208. 한민, 원문의 한 구절을 읽는다. (상반신)
342
210. 한민, 그것을 번역한다. (상반신)
343
211. 동무들 고개를 숙이고 책에다 적는다.
350
216. 별안간 책상에서 한 권의 책이 떨어진다.
351
217. 한민, 원서에서 시선을 옮겨 문께를 바라본다. (순간)
352
218. 글 쓰던 동무들의 붓 일제히 멈춘다. (순간)
356
(카메라 그들의 시선을 따라 문께로 이동)
357
221. 손 여전히 문을 노크한다. (대사)
358
222. 서재. (전경) 영애 자리를 일어나서, "누구요?"하고 외치면서 문께로 간다.
364
225. 어둠 속에 서 있는 창백한 여자의 얼굴. (대사)
365
226. 놀라는 영애의 얼굴. (대사)
366
227. 어둠 속의 여자 입을 간신히 열며, "영애야!"
367
228. 영애, 장지를 활짝 열고 여자의 손을 잡으면서.
368
"웬일이냐? 혜련아! 정신을 차려라."
369
229. 하고 혜련을 방으로 끌어들인다.
370
230. 한민과 그의 동무들 의아하여 자리를 일어선다.
372
영애에게 끌려 들어온 혜련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한민과 그의 동무들 일제히 몰려 이것을 둘러싼다.
373
232. 쓰러진 혜련의 얼굴 몹시도 창백하다. (대사)
374
233. 혜련에게 무릎을 베인 영애, 혜련을 흔들면서,
376
234. 눈 감은 혜련의 얼굴. (대사)
377
235. 영애, 조급히, "혜련아,혜련아!"를 부르면서 손가락으로 혜련의 눈을 열려고 애쓴다.
378
236. 가엾이 여기는 한민의 얼굴. (대사)
380
238. 한민 가운데 들어서 영애를 대신하여 혜련을 붙들고 영애에게 물을 떠오라고 이르니 영애 급히 방을 나간다.
383
"미안하지만 오늘밤 연구회는 여기서 중지하는 것이 어떤가."
386
동무들 책상에 가서 각각 책을 수습하여 가지고 한민과 영호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한 사람 두 사람씩 방을 나간다.
387
243. 한민, 눈감은 혜련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를 흔든다.
389
동무들 한 사람 두 사람씩 나가는 동안에 영애, 컵에 물을 떠가지고 들어온다. 영애, 나가는 동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다들 나가니 장지를 닫고 혜련이에게로 뛰어온다. 방안에는 영호, 영애 남매와 한민, 혜련의 네 사람이 남았을 뿐이다.
390
245. 혜련을 중심으로 한민, 영애, 영호 둘러앉아 있다. 한민, 영애에게서 컵을 받아,
391
246. 혜련의 입에 물을 기울인다. (대사)
393
247. 한민, 컵을 옆에 놓고 손수건을 내서 흐르는 물을 씻어 준다.
394
248. 근심되는 영애의 얼굴. (대사)
395
249. 영애, 혜련을 가볍게 흔들다가 그래도 응기가 없으니 옆에 놓인 물컵을 들어 그의 입에 또 물을 기울인다.
396
250. 물을 마시는 혜련의 입. (대사)
397
251. 차차 근심이 풀리는 영애의 얼굴. (대사)
398
252. 같은 표정의 한민의 얼굴. (대사)
399
253. 영애, 컵을 입에서 떼어서 옆에 놓는다. 한민, 손수건으로 혜련의 입을 씻어준다.
401
얼굴을 약간 좌우로 요동하더니 두 눈이 방긋이 열린다.
402
255. 기뻐하는 영애의 얼굴. (대사)
403
256. 영애, 헤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묻는다. "혜련아! 정신 좀 차렸니?"
404
257. 혜련, 의아하여 좌중을 둘러보다가 한민의 눈과 마주치니 낯선 그 의 무릎 위에 누운 것을 부끄러워하여 일어나려고 애쓴다.
405
258. 영애, "그대로 누워 있으려무나."하고 그것을 제지한다.
406
259. 그래도 혜련 일어나려고 애쓰니 영애, 한민의 무릎에서 혜련을 일으켜 앉히고 그의 머리를 가다듬어 주면서 말한다.
407
"그다지 부끄러워할 것 없다. 이 분이 바로 오빠의 동무 한 민씨 란 다."
408
260. 하며 눈으로 한민을 가리키니, 혜련 선뜻하여 한민을 똑바로 바라본다. 한민 역시 혜련을 유심히 바라본다.
409
261. 부끄러워하는 혜련의 얼굴. (대사)
410
262. 듬짓이 혜련을 바라보는 한민의 얼굴. (대사)
413
264. 빛나는 한민의 얼굴. (대사)
414
265. 영애, 혜련의 고개를 쳐드니 애수에 담뿍 찬 그의 얼굴. 영애, 그 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415
"얼굴이 몹시도 창백하구나. 이 밤에 이것이 대체 웬일이냐?"
416
266. 영애를 바라보는 혜련의 자태 몹시도 애처롭다. 혜련 입을 열며,
418
267. 영애, 혜련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며,
419
"부루에게 시집가라고 오빠가 못살게 굴었나 보구나."
420
268. 하고 말하니, 혜련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여 버린다.
421
이 동안에 한민은 영문을 몰라 영애와 혜련을 번갈아 바라본다.
422
269. 의아하는 한민의 얼굴. (대사)
423
270. 영호 애처롭게 여기며 혜련을 바라본다.
425
"오늘 밤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스러워 여기지 말고 이 자리에서 시원히 이야기나 하려무나."
426
272. 하며 친절히 어루만지니 혜련 고개를 들고 부끄럽다는 듯이 한민을 바라본다.
427
273. 애정에 빛나는 한민의 얼굴. (대사)
429
애수를 품은 눈에 눈물이 굵게 맺혔다.
430
275. 영애, 혜련에게 이야기를 간청하니 혜련, 입을 고요히 연다.
431
"집이 가난하고 늙은 어머니 병드시니 오빠의 하는 일이 바른지 나의 뜻 쫓는 것이 그른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런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오늘밤에 한한 일이 아니지만 허구한 날 너무도 징그럽고 무섭고…… "
432
276. 혜련, 말하면서 몸서리를 친다. (이중)
434
반듯이 누워 잠자는 혜련의 위에 시커먼 그림자 나타난다.
436
279. 시커먼 사나이 혜련의 이불을 벗기고 혜련의 배 위에 가로타고 앉아 두 손으로 혜련의 목을 누른다.
438
시커먼 두 손, 그의 목을 죄이니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표정.
439
281. 목을 죄이는 시커먼 손. (대사)
440
282. 괴로워하는 혜련의 얼굴. (대사)
442
검은 사나이에게 깔린 혜련, 사지를 파닥거리며 몸을 요동하려고 애쓴다.
444
검은 손, 더욱 그의 목을 죄이니 혜련 얼굴을 좌우로 흔들다가 드디어 괴로운 비명을 올린다.
445
285. (카메라 위에서) 혜련의 전신.
446
검은 그림자는 간곳없이 사라졌고 잠을 깬 혜련 몸을 요동한다. 이 것은 잠깐 동안의 악몽이었으니, 이불은 물론 처음과 같이 덮여 있다.
448
혜련 가슴 위에 두텁게 덮인 이불을 두 팔로 벗기니 가슴은 벌떡이고 숨은 가쁘고 이마에는 진땀이 빠지지 흘렀다.
452
혜련 이불을 차버리고 벌떡 일어나 앉으니 이지러진 자태 수건으로 땀을 씻고 방안을 휘둘러 본다. 물론 아무것도 없다. 아랫목 쪽을 내려다보니 늙은 어머니 잠들어 있다.
458
혜련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옮기고 흩어진 머리를 가다듬어 올리고 옷고름을 매려다가 문득 장지에 귀를 기울인다.
459
292. 장지에 귀를 기울인 혜련. (대사)
460
293. 근심스런 그의 얼굴. (대사)
461
294. 혜련, 장지를 살며시 열고 그 틈으로 건넌방을 바라본다.
463
마주 앉아 수근거리는 두 사나이의 그림자 어리었다.
464
296. 혜련, 열었던 장지를 닫아 버리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다.
465
297. 분개하면서도 애달픈 그의 얼굴. (대사)
466
298. 혜련, 다시 주춤하면서 장지에 귀를 기울이고 건넌방에서 흘러나오는말을 엿듣는다.
471
"그럼 약소는 하나마 우선 이것만 받아 주시고 본인의 승낙은 오늘밤 안으로 맡아 두셔야 합니다."
476
"본인의 승낙이고 말고 나의 뜻 하나면 그만이니 그것은 염려 말게."
478
302. 애닯고 근심스런 그의 얼굴. (대사)
479
303. 엿듣는 혜련, 장지를 가만히 열고 건너다 보니,
480
304. 건넌방 장지에 어린 두 사나이의 그림자, 지폐뭉치를 주고받는다. (접사)
481
305. 선웃음 치는 그림자. (대사)
482
306. 엿듣는 혜련, 다시 장지를 확 닫아 버리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이킨다.
484
308. 징그러운 부루의 얼굴. (순간)
485
309. 험악한 오빠의 얼굴. (순간)
486
310. 병든 어머니의 얼굴. (순간)
490
314. 혜련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고 아랫목 어머니를 바라본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492
316. 다시 육박하는 징그러운 부루. (순간)
493
317. 험악한 오빠의 얼굴. (순간)
495
319. 혜련, 이를 갈며 결심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497
자리를 일어선 혜련, 급하게 치마를 갈아입고 잠자는 어머니에게 일별을 던지고 장지를 살며시 열고 방을 나간다.
499
건넌방 장지에는 두 개의 그림자 여전히 비치어 있다.
500
살금살금 마루를 걸어 내려가는 혜련의 뒷모양.
501
322. 혜련, 주추에서 황급히 구두를 신는다.
503
324. 혜련, 구두를 신고 막 주추를 나서려니.
504
325. 건넌방 장지 홱 열리며 오빠 뛰어나온다. (접사)
505
326. 혜련, 급히 뜰을 건너 대문께로 나간다.
507
328. 주추에서 신을 신는 오빠. (순간)
509
330. 뜰을 뛰어나오는 오빠. (순간)
510
331. 대문을 나선 혜련 부리나케 내닫는다.
512
333. 닫는 혜련. (하반신. 측면 이동)
513
334. 대문을 나선 오빠 소리쳐 혜련을 부른다. 저편을 닫는 혜련.
514
335. 멀리 닫는 혜련의 뒷모양. 거리의 모퉁이를 돌아간다.
515
336. 닫는 혜련. (하반신. 측면 이동)
517
338. 닫는 혜련. (전신. 측면 이동) (이중)
521
혜련 말을 마치니 옆에 앉았던 영애, 영호, 한민 그를 위로 한다.
522
341. 영애, 혜련을 위로하며 말한다.
523
"너무 걱정 말아라. 그리고 당분간 우리 집에 와 같이 있자꾸나."
524
342. 고맙다하며 숙였던 고개를 쳐드는 혜련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한민, 유심히 그를 바라본다.
525
343. 애정에 넘치는 한민의 얼굴. (대사)
526
344. 혜련, 한민과 시선이 마주치니 고개를 숙여 버린다.
527
345. 여전히 혜련을 바라보는 한민. (이중)
531
몇 해 전 한민과 혜련, 연구회의 여러 동지들과 같이 찍은 것.
532
348. 한민,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침울한 표정으로 한참 생각하다가 사진을 또 한 장 넘긴다.
537
이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의 그 후 어떤 날 ──
538
352. (교폐) 한민의 두 손 둥글게 말린 테이프를 들고 장난친다. 테이프는 차차 하트의 형상으로 변한다.
541
바른 편의 그 무슨 대상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다.
542
354. 테이프를 만지작거리는 두 손 테이프는 온전히 하트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544
355. 한민을 위하여 사온 선물의 갑을 열던 혜련, 테이프의 하트를 보고 부끄러워 한다.
547
357. 교의에 앉은 한민, 책상에 의지하여 하트를 반듯이 들고 미소를 띠우며 혜련을 바라보면서 책상 위의 철필을 집어 든다.
549
358. 혜련, 갑을 열고 선물을 집어내려 한다.
551
359. 한민, 집어든 철필로 하트의 복판을 쏜다.
552
360. 철필이 하트의 복판을 꿰었다. (대사)
553
그것은 마치 큐피드의 화살이 하트의 복판을 쏜 것과 흡사하다.
555
361. 선물의 과자 '커트 글라스’를 내든 혜련 하트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서 황망히 어쩔 줄을 모른다.
556
362. 혜련의 손에 들려 떨리는 '커트 글라스’. (대사. 순간)
558
364. 혜련, '커트 글라스’를 떨어트린다.
561
방바닥에 '커트 글라스’ 바싹 부서져 흩어졌다. 혜련의 황급한 모양. 한민, 자리를 벌떡 일어나 선다. 두 사람 방바닥을 내려다본다.
562
366. 방바닥에 흩어진 '커트 글라스’의 조각조각.
564
방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정신이 아찔하여진 혜련, 한민의 두 팔에 쓰러져 버린다. 한민, 혜련을 두 팔에 안고 교의에 걸어앉으려 할 때에 혜련의 치맛자락이 책상 모서리에 걸려 찢어진다. 두 사람의 놀라는 모양.
566
혜련의 손 애석한 듯이 그것을 만진다.
568
한민, 혜련을 안은 채 교의에 걸어앉았다. 혜련, 여전히 찢어진 치마폭을 만지며 한민을 반듯이 쳐다보며 입을 연다.
569
"저의 모든 것은 이미 한민씨의 것이예요!"
570
370. 한민, 열정적으로 혜련을 포옹한다.
571
371. 포옹한 두 사람의 상반신. (이중)
576
가로등 밑에 혜련 의지하여 서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578
373. 영호의 서재. (전경) (밤)
579
연구회가 끝나자 동무들 책을 덮고 자리를 일어선다. 그 속에 한민도 섞였다.
582
가로등 밑에 혜련 의지하여 서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586
376. 눈 오는 거리를 걸어가는 한민. (측면 이동)
587
377. 걸어가는 한민의 다리. (측면 이동)
589
가로등 밑에 초조히 기다리고 섰는 혜련의 하반신.
590
화면 속에 한민의 하반신 걸어 들어오니 혜련의 하반신 뛰어가서 이를 반가이 맞이한다. 한데 얽힌 두 사람의 하반신.
592
한민과 혜련 잠시 포옹하였다가 떨어져 걸어간다.
593
380. 걸어가는 두 사람의 하반신. (측면 이동)
594
381. 걸어오는 두 사람. (상반신) (이동)
597
382. 거리를 돌아가는 두 사람. (이동)
598
383. 다리 난간에 두 사람 의지하였다.
602
385. 등불이 어리운 물 위에 눈이 날린다.
605
한민,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민 고개를 쳐드니 혜련 그를 위로 하며,
607
387. 한민, 혜련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609
388. 한민의 얼굴. (대사) 눈에 눈물이 맺혔다.
612
390. 혜련, 손가락으로 한민의 눈물을 씻어 준다.
613
한민 애수에 넘치는 얼굴로 혜련을 바라보며,
615
391. 혜련 여전히 한민을 바라보며,
616
"가난 때문에 운다면 너무도 약한 사람이 아닐까요."
617
392. 두 사람 열정적으로 포옹한다.
620
"내년 봄 내가 대학을 마치는 때에는 어김없이 아라사로 같이 가줄 터 이오?"
622
394. 열정에 넘치는 혜련, 한민을 쳐다보며 입을 연다.
623
"같이 가고 말고요. 왜 이제 새삼스럽게 그것을 물으세요. 약 속 한 지이미 오래가 아니예요……. 눈 깊은 아라사의 밤은 흡사 눈 오는 이 거리의 오늘밤 같겠지요!"
624
395. 하며 혜련 깊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팔을 펴서 굵은 눈송이를 맞이 하는 듯.
625
396. 등불 밑에 보얗게 날리는 눈.
627
398. 바람 부는 넓은 눈 벌판. (밤)
628
399. 흔들리는 고목나무 가지. (밤)
629
400. 혜련 깊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팔을 펴서 굵은 눈송이를 맞이 하는듯.
630
401. 한민과 혜련 다시 한참 포옹하였다가 떨어져서 다리 난간께를 떠난다.
631
402. 거리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양. (이중)
635
404. 사진을 들여다보던 한민, 고개를 드니 그의 눈 빛나며 얼굴 무섭게 찌그러진다.
637
406. 찌그러진 한민의 얼굴. (이중)
638
407. 암흑의 화면에 붉은 불꽃이 차차 맹렬히 타오르더니 나중에 화면이 새 빨갛게 변한다.
641
410. 거리로 밀려나는 시커먼 ×××의 시위행렬. (이중)
643
등사판을 둘러싸고 앉은 한민, 박철, 이완읍의 세 사람, 롤러를 돌리며 삐라를 집어내어 그것을 접으며 매우 분주하다.
648
415. 형사에게 잡힌 한민. (이중)
649
416. 철창 속에 웅크리고 앉은 한민. (이중)
650
417. 찌그러진 한민의 얼굴. (이중)
651
418. 그의 손에서 떨리는 사진첩. (이중으로 다음 자막)
652
삼 년간의 철창 생활이 그다지 괴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사바에 나온 날 그는 또한 무엇을 발견하였던가 ── 고향의 외로운 어버이를 잃어버리고 대학을 쫓겨나고 그 위에 사랑하는 혜련까지 빼앗겨 버리고…….
654
420. 한민, 사진첩을 뜯고 여러 장의 사진을 장장이 찢어 버린다.
655
421. 찢긴 사진의 조각, 책상 위에 어지럽다.
656
422. 두 팔로 턱을 고이고 앉은 한민의 상반신. 눈감고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657
423. 여섯 시를 가리키는 시계. (대사)
661
시계의 바늘이 돌고 돌아 마침내 열두 시를 가리킨다. 이 동안에 화면도 차차 어두워져 가나 한민의 자세만은 결코 움직이는 법 없이 처음과 똑같은 포즈이다.
662
열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는 드디어 화면에서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한민의 상반신만 남는다. (이중)
666
428. 결혼 피로연회장. (밤. 전경)
667
식탁 위 어지럽고 취흥에 겨운 수많은 남녀 허둥거린다. 맞은편 멀리 식탁 옆에 테이프로 전신을 감긴 신랑 신부 서 있다.
670
신부는 고개 숙였고, 그 옆에 선 신랑 말을 마치고 웃음을 띠우며 인사 한다.
673
박수 하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신랑 신부에게 테이프를 던지는 사람.
676
멀리 신랑 신부 자리를 떠나 걸어나간다. 테이프, 그들 전신에 얽히었다. (이중)
677
432. 창에서 등불 흘러나오는 화려한 주택 문전. (중경(中景))
678
자동차 여러 대 뒤를 이어 와 선다. 맨앞 자동차에서 신랑 내린다.
680
먼저 내린 신랑, 뒤를 따라 내리는 신부의 손을 잡아 부축한다.
682
신랑과 신부 앞에서 문으로 들어가니 뒷 차에서 내린 사람들 그 뒤를 이어 걸어 들어간다. (이중)
684
왼 편에 놓인 침대 반쯤 보인다. 그 옆으로 탁자, 의자 등이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술병, 컵 등.
688
침대 속에서 그 옆 의자 위로 여자의 저고리 날아온다. 뒤를 이어 치마 날아오고 한참 있다가 남자의 양복 바지 그 위에 날아와 떨어진다.
690
침대 속에서 벌거벗은 남자의 팔이 나타나 머리맡 탁자 위의 탁자 전등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는다. (이중)
692
(전 화면 438은 촛불을 중심으로 차차 교폐되어 나중에 촛불 속에 온전히 흡수되어 버리고 암흑의 화면에 떨리는 촛불만 남는다.)
694
440. 어둠 속에 촛불을 노리고 앉은 한민. 눈은 떴으나 422와 똑같은 포즈.
695
그의 눈과 촛불 일직선상에 있다. (측면 상반신)
696
441. 암흑 속의 한민의 얼굴. (대사)
697
교교히 빛나는 눈 밑으로 눈물이 흘러 내린다.
701
445. 책상 위에 머리 박고 번민하는 한민의 뒷모양.
702
446. 세 시를 가리키는 시계. (대사)
704
마저마저 타버린 초의 길이는 매우 짧다.
706
교의에 앉은 한민의 반신, 촛불의 광채를 받아 처참하다.
707
두 손으로 머리를 끄들며 번민하는 모양.
709
교의에서 고요히 일어서서 촛불을 손에 들고 책상 앞에 세운 거울을 들여다본다.
710
450. 거울 속에 비친 촛불과 한민의 얼굴. 한민, 한 손으로 여윈 얼굴을 만져 본다. 비장한 표정에 차차 엄숙한 기색이 돌더니 나중에 광적으로 커다케 웃는다. 촛불이 떨린다. 웃음을 수습하고 이를 부드득 가는 한민. (용암)
712
451. (용명) 한민의 방. (근사)
713
한민 높은 책시렁 앞 의자에 앉아서 시렁의 책을 뽑아 낸다. 한 권을 뽑아서 흔드니 속은 비었다. 옆으로 집어던져 버리고 또 한 권을 뽑아 옆에 쌓아 놓는다.
714
계집. 사랑. ── 이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이요, 괴로움의 으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민은 사랑의 고민을 정복하고 드디어 그의 오랫 동안의 숙망이던 아라사행을 단행하기로 결심하였다.
715
마지막 여비를 짓기 위하여 가난한 장서를 정리하고 있는 한민 ──.
716
452. (용명) 한민의 방. (근사)
717
한민 책시렁에서 또 한권의 책을 뽑아 낸다.
718
453. 옆에 쌓아 놓은 책. (접사)
719
그 위에 한 권 두 권 책이 놓여 순식간에 높이 쌓인다.
720
454. (용명) 한민의 방. (근사)
721
한민, 책 뽑아 내던 것을 문득 중지하고 맥없이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
722
455. 한민의 상반신. (대사) 얼굴에는 풀기가 없고 광채를 잃은 눈의 초점은 매우 흐리다.
723
456. (용명) 한민의 방. (근사)
725
책을 거의 정리하여 놓은 한민, 여러 권의 노트를 두 손에 가득히 들고 책 시렁 앞을 떠나 방 복판 화로께로 간다.
727
한민, 화롯전에 앉아서 손에 든 한 권의 노트를 찢는다.
729
460. 한민, 찢은 노트를 화로 속에 넣고 불을 켜서 다루니 연기 피어 오르며 노트가 탄다.
732
463. 한민 타는 화로 속에 또 한 권의 노트를 찢어서 넣는다.
733
대학에서 강의 받은 곰팡내 나는 노트를 불살라 버리고 ──
734
464. 널름거리는 불꽃 속에 타서 사그라지는 노트 조각.
736
한민 노트를 찢다가 문득 문께를 바라보며 벌떡 일어나 그리로 간다. (이동)
738
한민, 방문을 여니 문밖에는 영호와 영애 남매 서 있다.
740
468. 영호, 방문을 들어온다. 뒤를 이어 영애도 들어온다.
742
한민, 자리를 권하니 두 사람 각각 알맞은 곳에 앉는다.
743
470. 여윈 한민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영호, 너무도 딱해서 시선을 방바닥으로 떨어트린다.
745
471. 방바닥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노트 조각과 사진 조각
746
472. (사진 조각 위에 카메라 접근)
750
474. 영호, 한민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751
"출옥할 때보다도 신색이 더욱 못됐네. 기껏해야 계집 한 사람이 아닌가. 과히 슬퍼 말게!"
752
475. 한민, 고개를 들고 풀기 없는 얼굴에 비장한 미소를 띠우며 손으로 여윈 볼을 만져 본다.
753
476. 한민을 바라보며 딱해 여기는 영애.
754
477. 한민, 영호를 바라보며 말한다.
755
"괴롬도 잊어버릴 겸 새 전술도 배울 겸 나는 아라사로 떠나겠네."
757
한민,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무니 영호와 영애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한민을 새삼스럽게 바라본다.
759
"늘 벼르던 아라사로 기어코 떠나네 그려."
761
영호, 말하면서 한민을 듬짓이 바라보니, 한민 고개를 약간 끄덕인다.세 사람 사이에 침울한 침묵이 흐른다.
762
481. 침울한 표정의 영애의 얼굴. (대사)
764
482. 힘없는 한민의 얼굴. (대사)
765
483. 영호, 한민을 바라보며 말한다.
768
"준비고 무어고 할 것이 있겠나. 책 팔아 여비 만들면 그만이지."
769
485. 하면서 한민, 책시렁 앞에 쌓인 책을 가리키니 그들의 시선이 모두 그리로 몰린다. 한참 그곳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돌리는 그들의 얼굴 쓸쓸 도 하다.
771
"오늘밤 옛 연구회의 동지들이 자네의 출옥을 위로하기 위하여 간단한 연회를 베풀게 되었으니 부디 꼭 출석하여 주게."
772
487. 고맙네하며 한민 사의를 표한다.
773
488. 한민을 바라보는 영애의 얼굴 몹시도 쓸쓸하다.
778
(악수하는 두 손을 중심으로 화면이 차차 열리니)
779
동지 한 사람과 악수하는 한민. 그 동지 화면에서 사라지고 다른 동지 화면에 들어와 한민과 악수한다. 이 동지 사라지고 또 다른 동지 ── 이렇게 하여 수삼차. (이중)
781
식탁 양편으로 한민, 영애, 기타 여러 동지들 각각 알맞은 곳에 앉아있다. 영호만이 일어서서 사회를 한다.
783
"출옥한 한군을 맞는 이 위로연이 아울러 북으로 길 떠날 군의 앞길을 축복하는 송별연을 겸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바라노니 한 군! 의미 깊은 이 잔치를 달게 받고 그곳에 가 있는 동안 다시 만날 그때까지 길이길이 잘 싸워 주게!"
784
493.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는 영호.
785
494. 영호, 말을 마치고 침착하게 자리에 앉는다.
788
497. 고개 숙이고 앉았던 영애, 고개를 쳐드니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791
499. 한민, 자리를 일어서서 숙였던 고개를 쳐드니,
792
500. 박수하던 손들 일제히 머무른다.
794
모두 긴장되어 고요히 서 있는 가운데에 한민만이 우뚝 서 있다.
795
502. 한민, 비장한 표정으로 답사를 하려고 한다.
797
504. 한민, 막 입을 열려다가 정신이 아찔하여지며 그 자리에 졸도하려는 찰나.
799
506. 한민, 탁자 위에 쓰러지니 동무들 놀라 그에게로 와르르 달려든다.
802
508. 쓰러진 한민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동무들.
804
영애 이 화면에 들어와 한민에게 달려들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807
영애의 손이 한민의 머리를 쳐드니 한민의 얼굴에 두 골의 코피 흘러내렸다.
808
511. 코피 흘리는 한민의 얼굴. (대사)
809
512. 식탁 흰 보 위에 흐른 피 흔적.
811
영애의 손이 손수건으로 그의 코피를 씻어 주고 컵의 물을 그의 입에 기울인다.
812
514. 정성을 다하여 시중드는 영애. (상반신)
813
515. 한민을 가엾이 여기는 영호의 얼굴. (대사)
816
518. 고요히 눈감은 한민의 얼굴.(대사)
817
영애의 손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용암)
818
519. (교폐) 잠들어 누운 한민의 얼굴. (대사)
819
이마 위에 물 젖은 손수건이 얹혀 있다. 여자의 손이 이 손수건을 떼어 간다.
820
520. 여자의 손, 손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쥐어 짠다.
821
521. (교폐) 잠들어 누운 한민의 얼굴. (대사)
822
여자의 손이 손수건을 다시 한민의 이마 위에 얹고 그의 머리를 짚는다. 한민, 문득 잠을 깨어 눈을 뜨고 이마 위에 손 있음을 깨닫고 반듯이 누운 채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니 여자의 손이 쥐인다. 한민, 집었던 여자의 손을 놓고 다시 힘없이 눈을 감는다.
823
522. 맥없이 놓인 한민의 손 위에 어디서인지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이어서 또 한 방울 떨어지니.
824
523. 한민, 감았던 눈을 뜨고 고요히 고개를 돌려 여자 쪽을 바라본다. 여자의 정체는 물론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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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대상을 노리는 한민의 얼굴. 놀라고 의아하여 잠시 멍하다.
826
525. 한민, 감았던 눈을 뜨고 고요히 고개를 돌려 여자 쪽을 바라본다. 여자의 정체는 물론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827
여자를 바라보던 한민, 실색하여 불시에 고개를 바로 돌리니 노기에 찬 얼굴이 무섭게 찌그러졌고 입술이 경련적으로 실룩 떨린다.
828
526. 한민의 손 위에 또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니 한민 손을 홱 뿌리쳐 눈물을 떨어 버린다.
829
527. 한민, 감았던 눈을 뜨고 고요히 고개를 돌려 여자 쪽을 바라본다. 여자의 정체는 물론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민, 분을 못 이겨 날카롭게 소리치며 이마에 놓인 여자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리고 벽을 향하여 돌아 눕는다.
833
530. 노기에 찬 한민, 물론 대답이 없다.
834
531. 벽 위에 비친 여자의 그림자 고개 숙이고 울고 있다.
837
534. 벽 위에 비친 여자의 우는 그림자를 바라보고 누웠던 한민 짜증을 내며 홱 돌아누워 여자 편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소리친다.
838
"왜 또다시 나타나 나를 괴롭게 하느냐. 더러운 계집!"
839
535. 더욱 울음에 떨리는 여자의 어깨.
840
536. 날카롭게 여자 편을 노려보던 한민, 얼굴을 바로 돌리고 비웃는 듯이 웃다가 다시 노기를 띠우고 귀찮다는 듯이 얼굴에 이불을 깊이 써 버린다.
841
537. 벽 위에 비친 울던 여자의 그림자, 앞으로 쓰러진다.
842
538. 한민의 쓰고 누운 이불 위에 얼굴을 묻고 느껴 우는 여자의 뒷모양. 한민, 별안간 이불을 탁 차버린다.
844
539. 이불을 차버리고 누웠던 한민, 벌떡 일어난다. 이 바람에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던 여자의 얼굴이 번쩍 들리니 그는 혜련이다.
845
540. 눈물에 젖은 혜련의 얼굴. (대사)
847
542. 이불을 차버리고 누웠던 한민, 벌떡 일어난다. 이 바람에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던 여자의 얼굴이 번쩍 들리니 그는 혜련이다.
848
한민 손을 번쩍 들어 문을 가리키며 혜련을 보고 부르짖는다.
849
"나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나의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851
544. 한민, 여전히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부르짖는다.
852
545. 애원하던 혜련, 한민에게 푹 쓰러지니 한민, 그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선다.
853
"네가 안 나간다면 네 꼴 보기 싫은 내가 나갈 것이다."
854
546. 한민, 외치며 자리를 떠나려 하니 혜련, 그의 다리를 붙들며,
856
547. 한민, 혜련을 발길로 차버리고 가니 혜련, 여전히 그의 다리에 매달리며 애원한다.
857
"노여만 마시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858
548. 애원하는 혜련의 얼굴. (대사)
859
549. 한민, 혜련을 차버리고 간다.
861
한민, 맥없이 허둥지둥 책상께로 가서 양복 저고리를 입는다.
862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하며 혜련, 여전히 애원하나 한민 아무 대답도 없다.
863
551. 옷 입는 한민의 팔을 혜련이 붙드니 한민, 혜련의 손을 말없이 뿌리쳐 버린다.
865
옷을 입은 한민, 허둥지둥 방을 나간다. 하릴없이 이것을 바라보고만 섰는 혜련.
866
한민이 나가고 방문이 홱 닫히자, 혜련 절망하여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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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눈물에 젖은 혜련의 얼굴. (대사)
868
554. 방바닥에 주저앉아 느껴 우는 혜련의 등. (이중)
869
✽ 동아일보 1931. 2. 28∼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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