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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예술운동의 당면한 구체적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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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9
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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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예술운동의 당면한 구체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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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서는 벌써 임화, 안막 두 동지가 상론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두 동지는 우리 조선의 예술운동에서 가장 긴급하고 중대한 ‘지입(持入)’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충분히 말을 아니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그 ‘지입(持入를)’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이 소론을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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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83행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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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구체적 과정
 
 
 

1. 우리는 어떻게 카프를 조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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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를 행동적으로 실천하려면 먼저 우리의 조직을 철칙화해야 함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1월경에 필자가《중외일보》지상에 재래와 같은 합일제를 변경하여 개별제로 하자고 토론한 바 있었고, 또 지난 7월경에 동지 임화군이 같은 이론으로 평론한 바 있었으나, 그러나 우리 동지들 중에는 시기상조론자가 불소(不少)하니 거기에 대해서 신중한 토의가 있은 후 해결되려니와 그러나 카프의 조직에 관해서는 조직의 형태보다도 구성인원의 선택문제가 보다 더 중대하고 긴급한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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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프는 기술단체이다. 구성원은 물론 기술가로 할 것이다. 그러나 재래와 같이 언제든지 창작적 기술의 숙조(熟組)만을 표준하는 것은 마치 사회운동 초기의 모든 투쟁단체가 이론 정도만을 표준하여 구성한 것과 같은 묵은 조직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나 시 등의 창작기술이 숙련하더라도 비겁성, 인텔리성, 타협성이 많은 이보다도 오히려 창작적 기술은 비록 조졸(粗捽)하더라도 타협성이 적고, 희생심 많고, 직업적 운동가의 소질 가진 예술운동가에게 중임을 담당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와서의 모든 투쟁단체가 이론 본위보다도 투쟁역량 본위로 조직함과 같이 우리 카프도 창작적 기술 본위보다도 투쟁역량 본위로 조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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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동지─조직원을 획득하려 할 때엔 경향 좋다는 인텔리겐차의 소부르 창작가보다 용감하고, 희생심 많은 노동자 기술가 획득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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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해서 연전에 일본 동지 중야중치(中野重治)군은─이러한 일(예술운동으로의 교화사업…인용자 주)을 구체적으로 하는 이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고 인텔리겐차이다. 왜 그러냐 하면 프롤레타리아가 그 자신으로서 교화사업에 종사하지 못한 까닭이다. 다만 이 일에 관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사령권을 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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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 말이 약간의 어폐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운동의 초기, 즉 자각 가진 프롤레타리아가 극히 적었을 때에는 물론 프롤레타리아 자신으로서 교회사업에 종사 못하였지마는 지금은 그들이 그들 가운데 자각한 의식 가진 프롤레타리아트가 인텔리층에 보다 훨씬 더 많을 만치 성장되었으므로 그들이 넉넉히 그들을 교화시킬 수 있으며, 더구나 작금(昨今)이래 객관정세가 급격히 달라진 이때에 도저히 이기적 타산성 많고, 타협성 많은 저널리즘적 욕망 많은 인텔리겐차만이 구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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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보다도 직업적 운동가가 요구된다. 과거의 우리 운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직업적 운동가가 적은 데 있다. 그래서 우리의 조직을 ×××××[볼세비키화]하려면 첫째 직업적 운동가의 소질 다부(多否)를 표준하여 구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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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소술(所述)을 요약해 말하면 우리 카프의 조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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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작적 기술 본위로부터 투쟁역량 본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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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식 낮은 인텔리작가보다도 기술 미숙한 노동자 출신 작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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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적 소질 다부(多否)를 표준하여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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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의식적으로 반동하는 분자, 개인주의적 심리, 영웅 심리, 파벌심리로 진영을 혼란하는 분자, 예술운동을 이용하여 저널리즘적 명위(名位), 욕망을 채우려는 자, 기타 일체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시켜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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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는 이상과 같은 영웅 실천이, 즉 예술운동 ×××××[불세비키]화의 한 과정의 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영웅적 사업은 일조일석에 오늘 내일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다대의 악전 고투가 필요할 것이다.
 
 
 

2. 우리는 어떠한 작품을 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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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프 예술들은 어떠한 작품을 제작해야 할까. 이것은 조선예술운동 ×××화의 한 큰 과정이다. 우리는 우금(于今)까지 많은 작품을 막연한 프롤레타리아 예술이란 표지 하에 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운동을 ×××××[볼세비키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제작할까를 진정한 맑스주의적 [공산]주의적─××주의적 시안(視眼)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와 형식─등을 가진 작품을 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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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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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제작하는 작품의 내용은 무슨 이데올로기로 할까. 그것은 일본 동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적 단일의 유기적 기구에 스스로 결부하여 광범한 농민을 자신의 동맹자로 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목표로 해서 나아가는 조선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를 내용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맑스]주의 이데올로기, 또다시 단적으로 말하여 조선 ××[전위]의 사상을 내용으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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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년 이래로 우리 작품은 “노동자 농민의 생활을 그려라!”,“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으로!”하고 부르짖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극 소수의 특례를 제외하고는 대개가 작자 자신의 소부르적 생활을 센티멘탈한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인텔리겐차 소부르적 문학청년들의 비평만을 머리에 두고 쓰는데 대해서 극히 정당하고 적의(適意)한 슬로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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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부터 우리 프롤레타리아예술가들을 그 슬로건을 실천적으로 작품에다 구체화시켰다. 즉 작년 이래의 카프예술가들의 작품활동으로 남겨둔 궤적을 보면, 창작으로는 신석연의「화(火)」, 최성수의「봄」, 서상호의 「피」, 이기영의「종이 뜨는 사람」,「소작농」, 송영의 「교대시간」등, 시로는 신석연의 「원산의 형제들아!」, 임화의 「병감(病監)에서 죽은 녀석」,「양말 속의 편지」, 권환의 「이 꼴이 되다니」,「가려거든 가거라」,「정지한 세계」,「우리들 가난한 여자라고」, 안막의 「너들은 혼자가 아니다」, 이주홍의「새벽」, 김창술의「앗을 대로 앗아라」, 또 회화로는 정하보의「×××」모두 노동대중의 투쟁생활 또 그들의 감정을 그리고 쓴 것이다. 말하자면 막연한 의미로는 모두 훌륭한 프롤레타리아적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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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모두 어디까지든지 막연한 프롤레타리아 작품이고, 의식적으로 ××[공산]주의 시안에서 쓴 것은 거진 없다고 해도 가(可)하다. 다시 말하면 엄정한 의미로 다른 우리 진영 외에 있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작가, 프롤레타리아 동정작가들의 작품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명확한 한계는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언제든지 좌익적 시안(視眼)으로 썼지마는 아직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그의 ××[전위]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우리들의 예술적 활동의 과제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의식적으로 제작한 것은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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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그와 ××[전위]가 중심적 과제로 당면하고 있는 ××[당의] 강대화, 대중화에 전관심을 두어 제작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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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카프 예술가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될 그러한 당면과제를 과제로 하여 모든 문제를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전위]의 시안을 가지고 제작하여야 이때까지의 막연한 프롤레타리아의 작품이 안되고 진정한××××[볼세비키]적 ××주의적 예술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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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내용으로 하는 그러한 작품이라야 우리 카프 진영 외의 사회민주주의적 예술가, 프롤레타리아 동반작가로서는 도저히 제작할 수 없는 그들의 작품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며, 그 작품이 노농 대중에게 주는 효과와 그것의 역할도 사회민주주의적 예술품, 프롤레타리아 동정적 예술품의 효과 역할과는 본질적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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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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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로 내용을 하여 작품을 제작할까가 규정되면서 필연적으로 또 우리는 어떠한 제재를 취해야 할까가 규정 안 될 수 없다. 우리가 예술운동이 극(極)초기의 작품을 보면 대개가 예술가 자신의 소부르 생활을 제재로 하였다. 그 다음 시기에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참담한 생활, 또 그 다음 시기에는 어떤 투사의 의식전환 경로, 이성동지와의 연애 생활 등등을 제대로 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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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작년이래“노동자 농민의 생활을 그리자”하는 슬로건이 부르짖은 뒤로는 우리 카프 예술가들은 모두 의식적으로 노동자 농민의 생활을 그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대개가 노동자, 농민이라면 다만 망치 들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괭이 들고 농촌에서 밭가는 농민, 또 다만 자본가와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 농민, 다만 기아를 부르짖는 노동자, 농민이었다(물론 약간의 특례는 있었지만). 그러다가 바로 최근에 와서 자연발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적대계급과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의 생활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즉 창작으로는 이기영의「종이 뜨는 사람」,「소작농」, 송영의「교대시간」, 신석연의「화(火)」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위의 생활을 묘출한 작품도 있었으니 즉 최성수의「봄」, 서상호의「피」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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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들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그의 ××[전위]가 문제 삼는 것을 과제로 하여 의식적으로 제재를 선택, 취급한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는 어떠한 임무를 우리 예술가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우리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제재를 취할까를 엄명하게 규정하지 못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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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를 부르짖을 때에 우리의 작품에 취급할 제재의 선택은 어떻게 규정하며 정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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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위]의 활동을 이해하게 하여 그것에 주목을 환기시키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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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 ×[정]치 운동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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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공장의 ××××[스트라잌] 제네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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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작 ××[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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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장, 농촌내 조합의 조직, 어용조합의 ××[반대], 쇄신동맹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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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동자와 농민의 관계를 이해케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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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예하면 민족적××, ××××확장, ×××××조합 등의 역할…) ××[폭로]시키며 그것을 맑스주의적으로 비판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결부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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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조선 토착 부르조아지와 및 그들의 주구가 ×××××[제국주의자]와 야합하여 부끄럼없이 자행하는 적대적 행동, 반동적 행동을 폭로하여 또 그것을 맑스주의적으로 비판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결부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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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반××××××[파쇼, 반제, 전쟁]의 ××[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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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와 일본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적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작품.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연대심을 환기하는 작품 이상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가 현재의 국제적 국내적 정세에 의해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 카프 예술가들은 그 가운데서 취재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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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의 ××[전위]들이 ××××××[제국주의 착취]밑에 있으면서 공장이나 농촌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어떻게 노동자 농민을 문제하여 어떻게 명확하게 또 교묘하게 대중의 ××[전위]에서 ×[싸]우는가를 현실적으로 그려서 대중에게 아르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이는 예술로서 ×[당]의 정치적 사상 영향을 확보 확대하려면 그것의 슬로건을 구체화시키며 대중에게 아지 프로만 하면 그 뿐이지 그들의 ××[투쟁]생활을 그려 대중에게 아르킬 필요가 어디에 있나 할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러함으로써 그것의 ××[전위]를 선전하며 거기 대한 대중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의 대중화에 효과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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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 (4)에서는 우리가 스트라이크나 소작쟁의를 쓰더라도 다만 외면적 사건의 묘사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승(勝)한 것이면 어떠한 용감하고 교묘한 지도자 밑에서 어떻게 싸웠으므로 끝끝내 이겼으며, 또 패(敗)한 것이면 어떠한 비겁하고 음흉한 타락간부만 믿고 싸우는 중에 놈들이 어떻게 싸움을 팔아먹은 결과 마침내 지고 말았다는 것을 주력하였을 것이며, 또 그 쟁의는 조선의 ××[혁명]운동에 어떠한 지위를 가졌는가를 명확히 할 것이다. 그러나 우금(于今)까지의 나온 작품 중에는 그러한 점이 결여하였던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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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7)에서 민족적 ××와 거기에 대한 ××사실은 어디까지든지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취급하여야 한다. 걸핏하면 배타주의적 민족주의적 작품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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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어느 부르 작가가 이기영의 「종이 뜨는 사람」을 비평하면서 자본가가 쓰더라도 왜 일본의 자본가를 쓰지 않고, 조선의 그것을 썼느냐고 걱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말하는 그이가 일본 자본가의 봉사자는 아닌 대신에 조선 자본가의 봉사자인 줄을 알 수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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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소설 희곡 등에 대해서만 말하였지마는 시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시에 제재 운운은 좀 우습지마는 노래의 주인공(예하면 노동자가 혹은 부르가 부르는 노래)과 노래의 대상적 주인공(예하면 부르조아지의 생활을 혹은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을 노래하는 시)은 즉 창작의 주인공과 같이, 또 시의 서사적 내용은 창작의 소재와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의 우리의 시를 보면 초기에는 박팔양을 대표로 하여 많이 도시의 풍경, 환상적 광명, 반항없는 노동자의 감정을 극히 개념적으로 노래하였고, 그 다음부터 작년까지 임화를 대표로 하여 동지의 연애와 희생당한 동지에 대한 센티메탈한 사모를 많이 노래하였다. 그러다가 금년에 들어서는 노동자 농민의 타오르는 반항을 노래하는 시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즉 임화의「양말 속의 편지」, 권환의「정지한 기계」,「우리들을 여자라고」,「패전 후에」, 김창술의「앗을 대로 앗아라」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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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시도 역시 막연한, 프롤레타리아 시가 아닌 사회민주주의적 시와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시를, 즉 현재의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과제와 결부한 ××[전위]의 시점을 가지고 노래해야 할 것이다. 회화 음악도 물론 그래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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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끝으로 일본 동지들도 말하였지만 창작이나 시에 일부러 연애요소를 넣는 것은 벌써 그 작자의 ‘진검(眞劍)’ 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러한 요소를 일부러 넣는 동기는 노동자 농민의 아지 프로보다 다른 불순한 의도를 가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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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혹 어떤 이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러한 장면을 일부러 삽입하려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 오류이다. 왜 그러냐 하면 노농 대중은 자기 자신의 문제와 자기 자신의 현상에 가장 많은 관심과 깊은 인상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현실 문제와 그들의 생활을 보다 더 정확하게 심각하게 전개, 또 묘사할 때엔 필연적으로 그들을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보다 더 깊은 감흥을 주게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는 유의치 않고, 그들을 관심을 끌기 위하여 그들의 의식과 문화의 수준에 영합하는 소위 흥미적 요소를 고의로 삽입한다면, 그 요소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그만치 그들의 감정을 비속화시키며, 또 그것은 결국 ××의식의 ‘관능적 흥미’ 에의 굴복, 따라서 맑스주의의 부정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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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연애’ 장면 뿐만 아니다. 탐정장면, 기타 소위 흥미적 요소에 대해서 모두 동일한 논리로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폐쇄한 기술적 문제 같지마는 프로예술의‘대중화’의 원칙에 관련된 문제이니 우리는 또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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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형식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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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문제에 대해서는 거년에 여러 동지들이 상론한 바 있었으나, 아직 확연한 규정이 없었고, 또 지금 예술운동의 ××××[불세비키]화를 부르짖을 때에 새삼스러운 듯하나 다시 문제를 안 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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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술의 내용과 제재를 이미 규정한 우리는 다음에 있는 루나챠르스키의 한 말로써도 형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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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스스로 일정한 형식을 요구한다. 어떠한 내용에는 다만 하나의 최후의 형식만이 적응하는 것이다. 작가는 많건 적건 그이를 감동하게 한 사상, 현상과 감정을 가장 명쾌하게 보이며 그 작품이 대상하고 있는 독자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형식을 찾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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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혁명]적 ××[사회]주의 예술에는 오직 그것만에 적응한 최후의 형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최후의 형식은 무엇이냐. 즉 ××[혁명]적 ××[사회]주의적 사상과 감정을 가장 명쾌하게 표현하며 독자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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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혁명]적이고 선동적이므로 그것의 형식은 현실적, 적절적(直截的)이어야 하고, 또 그것의 독자대상은(대상에 대해서는 차절(次節) ‘지입(持入)’ 에 상론하겠다)소부르 인텔리겐차가 아닌 노동자 농민이므로 그것의 형식은 간결하고 평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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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히 소부르 잔재를 많이 가진 작가들 중에는 다만 ‘인텔리’ 나 문학청년의 호평을 받기 위하여 형식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혁명]적 내용을 가지고도 거기다가 쓸데없는 도공을 더하며 보기 싫은 도금을 하여 도리어 그것의 효과를 전연 말살시키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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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과거에 있어 창작부문에 보다 시부문에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일체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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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대해서는 우리는 여러 가지 복잡다단하게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다만 현재 우리 조선의 중요산업의 대공장 노동자와 빈농에게 ××[혁명]적 ××[공산]주의적 사상을 아지 프로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의 획득에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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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조선의 중요산업의 대공장 노동자와 반농의‘문학지식’레벨을 생각하여 대중화를 문제 아니 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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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루나챠르스키도 말한 바와 같이 ‘대중화’ 란 형식에만 쓰는 말이다. 내용에 대중적이고 비대중적이란 말을 결코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예술작품을 대중화한다고, 그것의 내용의 이데올로기를 연화(軟化)하려함은 그만한 오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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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프롤레타리아예술에서 대중적 예술과 고급적 예술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프롤레타리아 예술이란 건 노동자, 농민을 주체대상으로 한 예술이며, 따라서 형식도 노동자 농민이 잘 이해하고 잘 감흥(그 안에 있는 ××[혁명]적 사상과 감정을)하도록만 하면 그만이요, 무슨 고급적 예술, 대중적 예술, 또는 대중적 형식, 비대중적 형식을 운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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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예술작품의 대중화 운운(물론 형식에서만)하는 것은 일반 노농대중보다 비교적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예술운동가가 그들의‘문자지식’ 레벨에 적합한 형식의 획득에 노력하자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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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대중화 문제에 대해서 우리 조선은 일본과 다른 선진제국에 없는 특수사정을 가진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조선 소위 의무교육이 없었던 관계로 일반 빈농층의 ‘문자지식’ 수준이 너무도 저하한 것이다. 공장노동자와는 현격하다 할만치 ‘가나다’도 못 읽는 문맹도 많으며, 또 농촌에서 문맹 면할만치 문자를 배운 이는 거진 다중농 이상의 소부르조아지들의 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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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가나다’도 못 읽는 빈농층에게는 연극이나 영화 등으로 ×× 사상을 아지프로하는 수밖에 없으며,『춘향전』이나『추월색』같은 순 언문소설을 겨우 읽을만한 순문맹 면한 빈농층에게는 우리들의 능력 소급한대로 평이하게 써서 그들을 아지 프로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선의 프로예술가들은 형식의‘평이’에 대해서 다른 선진 제국의 그들보다는 더 많은 주의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문제를 주의 또는 실천하지 않으면 모든 좌익적 언구(言句)는 모두 관념화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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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형식에 대해서는 일본 동지 소궁산명민(小宮山明敏)군은“우리는 공식적 인물을 나열하는데서 비약하여야 한다. 즉 실제로 살아 있는 인간, 그 인간의 행동, 행위, 그 성격의 발전과 모순 대립, 그의 상호 관계, 일언으로 말하면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을 모든 방면으로부터 묘사하는데 의해서 비로소 우리는 ××[맑스]주의 관념을 예술작품 가운데 높이 약동하게 할 수 있다” 하였다. 즉 전형적 공식적 인물만 나열하지 말고 심리와 성격의 묘사에 훨씬 주의하여 산 인간을 그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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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혈과 육의 모두 산 인간을 그리란 것은 물론 이의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부러 심리, 성격묘사에 주의할 필요는 없을 줄 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러한 점에 너무 주력하면 집단보다도 개인의 존재를 ―사회성보다도 개성을 강조한 재래의 부르조아 리얼리즘으로 퇴화하기 쉽다. 따라서 또 너무 세공적인 난잡한 템포 완만한 묵은 형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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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의 생활을 그린다 해도 우리는 오직 ××에 나타나는 그이의 생활밖에 그리지 않을 것이니 ××사건의 발전에 따라 또 ××사건과 집단의 다름에 따라 그들의 생활도 각각 달려져 필연적으로 공식적 전형적 인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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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개인의 심리, 성격묘사로 그이의 존재를 명확히 하려면 필연적으로 ××생활에 나타난 그의 이외의 그이의 개인적 존재를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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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에서는 개인의 성격의 발전과 모순 대립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집단, 단체, ××사건의 발전과 모순, 대립을 명확하게 심각하게 묘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야 개성보다 사회성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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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우리는 소위 섭취문제에 대해서 언급 아니할 수 없다. 원래 섭취란 건 과정 시대, 즉 그 자체가 완성되기 전에 구시대에 쓰던 유산의 이용이다. 그러나 우리가 루나챠르스끼도 말한 “한 내용에는 다만 한 최후의 형식만이 적응한다” 의 말, 즉 형식의 독자성을 시인한다면 섭취한 형식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절대로 최후의 적합한 유일한 형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근사적(近似的)으로 적합한 형식 밖에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주의한다면 구시대 유산을 섭취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엄정한 비판적 시안(視眼) 밑에서 착수할 것이며, 또 유산의 섭취보다도 신시대의 새 내용에 최후로 적합할 새 형식의 창조 자체의 독자적 완성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3. 우리는 어떻게 노농대중 속으로 지입(持入)할까

 
74
예술은 ××[전위]예술이어야 한다. 내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는 조선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를, 형식은 그 내용을 조선의 노동자 농민이 잘 이해하고 잘 감흥하도록 명쾌하게 평이하게.
 
75
우리 카프 예술가들은 그러한 예술품을 제작하자고 이상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노농 대중 속으로 가져가서 그들이 읽어보게 한 후에야 비로소 예술운동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예술운동가의 임무를 수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6
지금 만일 그러나 ××[맑스]주의적 예술을 제작만 하고라도 노농대중 속으로 갖다 주지 안한다고 가정하면 어떠할까. 그 안에 포재(包在)해 있는 아지 프로적 언사, 좌익적 문구, ××[혁명]적 사상은 필경 일종의 관념적 화물(化物)로 되고 말 것이고, 따라서 예술운동의 역할과 의의는 전연히 영(零)이 되고 말 것이다.
 
77
그러나 과거의 조선 예술운동은 어떠하였는가? 우리가 엄정하게 은폐없이 자기 비판하려면 그것은 연극배우의 관중없이 하는 연습흥행에 불과하였다. 즉 예술운동은 수백만 노농대중을 위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백만 노농대중은 등뒤에다 두고 예술 운동가끼리만이 하는 운동이었다. 입장권 가진 수백만 노농대중은 공연장 외에 두고 운동가끼리만이 막내(幕內)에서 흥행하면서 서로 박수하고 서로 격려하는 운동이었다.
 
78
따라서 조선의 사회운동과 같은 역사를 가지고 온 예술운동, 모든 박해 가운데서 성장하여 온 우리 운동은 과연 노농대중에게 얼마나 많은 아지 프로적 효과를 주었으며, 몇이나 되는 우리 노농대중에게 ××[혁명]적 사상 감정을 주입시켜 주었느냐고 노동자 농민 중에 묻는 이가 있다면 이 부문운동의 책임을 진 우리 예술운동가들은 뭐라고 응답할까 주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9
우리는 우금까지 노농대중을 위해 예술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위해 제작한 그들의 예술을 그들 속으로 가져가는 임무에 한각(閑却)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예술은 그들의 손에 가지 못하였고, 그들이 받을 아지 프로적 효과는 그들이 받지 못하였다. 이제까지 그들의 생활을 그린 많은 소설과 시는 그들을 위해 제작한 것이 못되었고, 계급 예술이니 대중화니 하는 좌익적 이론은 그들을 위한 실천적 이론이 못되었다. 다만 예술운동가끼리만이 보고 읽고 서로 비판, 논쟁하기 위한 작품과 이론밖에 못되었다.
 
80
따라서 노농대중은 자기네들 예술의 존재를 아는 이가 적으며, 또 정치운동가 중에도 예술운동의 역할을 의심하고, 그것으로 민중의 교화운동에 어떻게 이용할까를 아는 이가 적었다.
 
81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부터“우리는 어떻게 우리들의 작품을 노농대중 속으로 가져갈까”란 문제를 조선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의 가장 크고 긴급한 과정으로 알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이때까지 운동의 주체적 대상을 잃은─대중과 유리한 관념적 운동으로부터 노농대중을 주체적 대상으로 한 그들 속에서 발전하는 실천적 운동으로 비약하지 않으면 안된다.
 
82
그러나 물론 그들 속으로 가져간다고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예술작품이나─반동적 작품, 사회 민주주의적 작품이라도 가져가기만 하면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83
아니 그와 정반대로 암만 많은 예술작품이 암만 많은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만일 그것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작품이 아니고, 사회 민주주의적 작품, 반동적 작품이면 그러한 대중화는 전연히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만한 반동적 역할을 할 것이다.
 
84
그래서 우리가 지금‘지입(持入)’을 문제삼더라도 ××[혁명]적 프롤레탈리아트의 이데올로기를 내용으로 한 명쾌하고 평이해서 노동자 농민이 잘 감흥할 수 있는 형식으로 표현된, 즉 전절(前節)에 우리가 규정한 그러한 작품을 가지고 운운함은 다시 물을 것도 없다.
 
85
그러나 또 우리는 그러한 진정한 ××주의적 작품을 제작하더라도 그것을 노농대중 속에 가져가지 않으면 그것의 제작은 전연 무의미할 것이며, 대중에 사소(些少)한 효과와 작용도 주지 못할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86
대중은 그들의 예술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운동가가 책상위에 제작해 둔 예술작품을 제 손으로 가져갈 만치 다 자각하지 못했으며, 또 그리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예술운동가가 그것을 제작하는 임무와 같이 ‘지입(持入)’ 하는 임무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구체적 방법으로 ‘지입(持入)’ 의 임무를 실천적으로 수행할까.
 
87
이 문제가 제기되자 우리는 새삼스러우나 기관지 문제를 또다시 제출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십백번이나 논의한 기관지의 필요를 또 금춘(今春)에 필자도 상론한 바 있는 배포방법을 갱론(更論)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는 어떠한 내용으로 조직 통일된 기관지를 가져야 할까에 대해서 상론하지 않으면 안된다.
 
88
우리 예술가의 임무는 노농대중을 주체적 대상으로 한 ××사상의 아지 프로, 투쟁 감정의 격양 조직이다. 그래서 그들을 ××[혁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만 그 아지 프로와 격양 조직은 사회의 실재적 재료를 창작적으로 형상화시킨 예술로 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가진 영역이다.
 
89
그러나 그들이 그 아지 프로의 임무를 더욱 합리적으로 더욱 강력적으로수행하려면 필연적으로 형상화한 예술만으로는 만족치 못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지 않은 소재 그대로의 사회의 실제적 제재료(예하면 투쟁리포트─ 세계정세 등)를 모집 또 설명하여 대중 아지 프로의 재료로 아니 삼을 수 없다. 말하자면 창작적 재료를 병용하지 않을 수 없다.
 
90
뿐만 아니라 그 형상화하지 않은 실재적 형상─실재적 재료가 창작적 재료보다 대중에게 더 많은 교훈과 아지 프로적 효과를 주는 것이 많으며, 또 그 창작적 재료도 실화적 재료와 같이‘지입(持入)’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역시 아지 프로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91
우리는 첫째 이상과 같은 인식 의도하에 조직 통일된 아지 프로적 간행물을 가져서 그것으로 대중 속에‘지입(持入)’하여야 할 것이다.
 
92
이러한 즉 아지 프로적 사업에 실재적 재료도 창작적 재료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작가적 활동에만 뿐 아니라 영화나 회화의 활동에도 역시 같은 것이다. 즉 영화활동에는 실제로 일어난 대중 시위운동의 광경, 쟁의측의 투쟁광경의 영사도 창작한 시나리오의 그것같은 아지 프로적 효과를 줄 것이며, 회화에는 노동자 농민대중의 투쟁 화보, 그들의 생활 그라온 등도 창작적 회화와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차등(此等)부문에도 역시 아지프로적 사업이 될 수 있는 때도 창작적 재료와 실재적 재료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93
이상 소론은 우리가 대중 아지 프로적 사업을 수행하려 할 때에 우리 예술가의 책임진 영역이 예술품의 제작 또 그것의 ‘지입(持入)’뿐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지 프로적 사업을 더욱 합리적으로 더욱 강력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창작적으로 형상화시키지 않은 사회의 모든 실재적 재료를 모집 정리 설명하여 대중 속에‘지입(持入)’해 주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94
그래서 간행물로서 프로적 사업을 수행하는 작가는 그러한 인식 의도 하에 정리 조성된 대중적 계급적 아지 프로의 정기간행물 또는 단행본을 출판하여 그들에게 지입(持入)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즉 연극 영화가의 직접 대중 속에 출연 영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실천적 사업인 것이다.
 
95
그래서 예술운동가는 예술가인 동시에 아지토타이가 되면 프로파간디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직접 대중을 위해, 직접 대중을 향해, 다시 말하면 직접적 근로대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대중적 계급적 아지 프로 사업을 수행하는 카프 자신(전체 또는 부문)의 이론적 선전적 조직적 출판물, 즉 기관지가 있어야 할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급속적으로 ××한 자본주의의 공세에 따라, 또 중간계급운동분자가 급속적으로 분석 대립됨에 따라 부르조아 예술은 의식적으로 반동하고, 소부르조아적 사이비 프로예술은 반동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데 그 사이에 있는 우리 카프는 더욱 자체를 절화(絶化)시켜 ××[사회]주의 예술이론을 통일시키며 예술운동 ×××화의 방침을 확립시켜 한 가지 두 가지 행동적으로 실천하려 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전체 또는 부문) 기관지가 있어야 한다.
 
96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기관지는 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대중적 아지 프로 잡지와 달리 노농대중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는 간행물이 아니고 예술운동가를 주체적 대상으로 하는, 즉 첫째 카프에 결성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예술가에 ××적 지도를 하여 카프원(전체 또는 부문)의 통일 연락 성장 발전을 촉진하며, 둘째는 아직 카프로 결성되지 않은 다른 모든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 및 그‘그룹’을 카프의 영향 밑에로 유도하며 그들을 조직적으로 확보하는 간행물일 것이다.
 
97
요컨대 예술운동 ×××××화를 행동적으로 실천하려는 카프 예술가의 당면한 구체적 임무는 카프 전체적 사업으로 카프 예술가를 주체적 대상으로 하는 이론적 지도적 잡지의 정기적 간행, 또 부분적 사업으로는 각 부분이 노동자 농민을 주체적 대상으로 하여 카프의 통일적 이론의 지도 밑에 각자의 기술로 만든 아지 프로적 ×××을 그들 속에 넣어주는 것이다.
 
98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자는 정기적 또는 단행본의 대중적 계급적 아지 프로 출판물을 간행하여, 연극가, 영화가, 미술가, 음악가는 그러한 연극, 영화, 회화, 가곡 등을 제작하여 노농대중 속에 ‘지입(持入)’하는데 적극적 노력할 것이다.
 
99
물론 그 간행물, 영화……등은 어디까지든지 ××[맑스]주의적 그것이어야 함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또 그것을 가장 주력하여‘지입(持入)’할 노동자 농민은 막연한 노동자 농민이 아니고 중요산업 지대 공장의 노동자와 빈농층임은 또다시 췌언할 필요는 없다.
 
 
 

4. 부르출판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질까.

 
101
우리는 과거에 우리들 손으로 출판물을 가끔 간행하여 왔다(그것은 몇 퍼센트의 맑스주의적 내용을 가진 출판물이었는가는 별문제로 하고). 그러나 그것은 여러 가지 주관적 객관적 정세로 종류와 혈수가 극히 빈약하였고, 그나마 나온 것마다 정기적 또 연속적이 못되었다.
 
102
그러한 관계로 우리 카프예술가들의 부르 혹은 자유주의가들의 출판물 이용범위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 프로예술가의 그것보다 훨씬 안 넓어질 수 없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경(苦境)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술 운동의 끊임없는 발전에 따라 작품의 계속적 다량적 생산, 또 반면에 발전성 잃은 부르예술 작품생산의 감소 등 그러한 이유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부르 혹은 자유주의적 출판물이 우리 프로예술가에게 분의 아닌 활동무대를 제공하게 된다.
 
103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정세에 있음에 따라 우리의 이용이 가끔가다 제한성과 조건성을 잃어 이용의 효과와 그것의 반작용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은 때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문제 아니 삼을 수 없으며, 또 우리는 그 이용에 대해서 엄연한 제한과 기본적 규정을 아니 세울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우리 카프에서는 이제야 문제로 삼지마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운동으로 보아서는 벌써 오래 전 문제이고 또 이미 원칙적으로 확립된 문제이다. 즉 19세기말에 독일사회민주당은 부르 출판의 ××의 참가를 엄격하게 금지하였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당에서는 1907년에 맑스주의적 전체와 그 지도적 기관에 대한 또는 ×××××[볼세비키화] 견해에 대한 직접 간접의 항쟁에 결부된 ××[반동]출판물에서의 참가, 정치적 문제의 주제와 취급의 방향이 부르 편집자의 이해에 의해서 제작된 ××[반동] 출판물에의 참가 등의 금지를 결의하였고, 또 최근에 와서 지난 6월에는 일본 나프 동지들은 그러한 원칙 밑에서 명백히 적대적인 출판물에의 참가를 금지하기로 결정하였다.
 
104
그러면 우리 카프에서는 어떻게 기본적 태도를 결정할까.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은 전위가 전위한테 요구한 것을 모두 카프의 전원에 요구할 수는 없고, 또 우리의 출판물이 전연히 없거나 있더라도 종류가 너무 극소수인 동안에는 이용범위가 다른 나라 예술기관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105
그러나 문제는 원칙이다. 조건과 범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준수할 원칙은 마찬가지다. 즉 우리 카프의 적용조건과 이용범위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확정된 원칙 밑에서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즉 가장 중요한 원칙─직접 간접으로 명백히 정면으로 우리와 적대물인 출판물에는 참가해서 안되나?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여러 말로 번설(煩設)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왜 그러냐 하면 정면(正面) 적(敵)과의 제휴는 벌써 그것과 타협할 여지가 있는 것을 의미함인 줄을 뉘라도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면 적의 출판물에는 우리 작품(이론이냐 창작이냐)이 배부되더라도 그 출판물 독자층의 대개에는 우리들의 소요(所要)하는 아지 프로적 효과를 주지 못한다.
 
106
또 그 다음 우리는 왜 우리 작품의 제재와 취재방향이 편집자의 이해에 제한받는 출판에 참가해서는 안되나, 그것은 첫째 우리의 사상과 주장의 예봉을 단절시키며, 또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사상과 주장을 굴복시키는 까닭이다. 우리는 부르 출판에 참가함으로써 혹은 그것의 독자의 일부를 우리 쪽으로 가깝게 끌 수도 있고, 또 약간의 생활비와 출판자금을 획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제한과 조건없이 ××[맑스]주의자로서 지켜야 할 원칙도 망각하고, 다만 적극적 이용에만 집중한다면 필경 무의식적으로 타협 굴복의 길로 끌리어 이용이 도리어 피(彼)이용될 것이다.
 
107
그래서 우리는 모 동지의 어느 석상에서 그러한 원칙으로 기준된 조건과 제한에 대해서는 언급치 않고 이용할 수 있는 대로 이용해야 된다는 적극적 이용설은 많은 동지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다분(多分)의 어폐 가진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외 부르 출판물의 편집참가, 단행본 간행의 부르 출판업자 이용에 대해서도 역시 전술한 원칙에 의해 태도를 결정할 것이다.
 
108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상에 말한 부르출판에의 참가 제한은 우리들의 소극적 대외(對外) 태도에 불과하고, 또 그것의 이용은 언제든지 제이(二)의적이며 기계적이다. 우리의 활동과 본영은 어디까지든지 우리의 출판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출판물을 우리의 손으로 간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르 출판물을 통해서라도 노동자 농민을 아지 프로 할 수 있다는 환상은 절대로 버리고 노동자 농민을 주체적 대상으로 하는 우리들의 출판물을 우리들 손으로 간행하여 그들 속에 가져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09
이 문제에 대해서 모 동지는 우리 출판물을 간행하기 전에 태도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 듯도 하다. 그러나 우리 출판물이 없다고 이상에 말한 원칙을 수행 못할 것도 아니고, 수행 아니해도 좋다고 해서는 안된다. 또 다시 말하면 우리의 출판물이 없는데도 출판물에 대한 우리의 계급적 입장은 언제든지 고수하여야 할 것이다.
 
 
 

5. 결론

 
111
 
112
우리는 이상과 같이 카프예술가의 행동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될 구체적 과정을 들어 말하였다. 그런데 이상의 장황하게 소론한 바의 중심적 요지를 들어 말하면 이때까지의 ‘막연한 프롤레타리아예술’운동에서‘×× [맑스]주의예술’운동으로! 이때까지 주체적 대상을 잊고 한 예술운동에서 노동자 농민을 주체적 대상으로 한 예술운동으로! 또다시 말하면 사회민주주의예술, 프롤레타리아 동정주의 예술과 확연히 구별할 수 없는‘막연한 프롤레타리아예술운동’에서 그러한 예술과 본질적으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맑스]주의예술’운동으로, 즉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그의 ××[전위]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우리 예술활동의 과제로 삼자는 말이며 또 이때까지 노농대중과 유리한 예술가끼리만이 하던 관념적 운동에서 ××[혁명]운동의 주체이며 원동체인 중요산업 대공장의 노동자 또는 그들의 가장 힘있는 동맹자 빈농민을 주체적 대상으로 하여 우리들의 제작한 ××[맑스]주의 예술을 그들 속에 가져가서 ××[혁명]사상을 아지 프로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하여야 우리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이 조선 프롤레타리아 ××[해방]운동의 일익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일리치의 말과 같이 노동자계급의 모든 의식적 전위의 손으로 운동하는 단일한 위대한 ××[사회]주의적 기구의‘차륜과 레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카프의 당면한 슬로건은 다음과 같지 않으면 안된다.
 
113
1. 카프의 전관심을 ×××××××[볼세비키화에로]!
114
2. ××[사회]주의예술을 대공장 노동자 빈민층에로!
 
 
115
훌륭하고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없다. 우리들의 어려운 일은 오직 그 이론의 실천에 있다. 물론 이상에 말한 영웅적 사업을 모두 행동적으로 실천하려면 한없는 ××와 ××가 부단히 부딪칠 것은 이미 각오 한 바이다. 다만 그 ×[박]해와 장애를 ×××××[감수해나가]면서 우리의 최대한 ×[적]과 최선의 ×××[실천력]으로 우리의 영웅적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오직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116
부기: 이 논문은 경황 중에 썼음에도 이론의 전개에 불충분한 점이 많은 듯하며 뿐만 아니라 제목이 원래「예술운동의 ××××[볼세비키]화」인 것을 사정에 의해서 지금과 같이 게재했으며, 또 이 논문 중에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이 논문 전체의 중심적 요지를 말한 A장이 사정에 의해서 중단되고 또 겸하여 활자의 오식과 복자가 다수이므로 문의불통(文議不通)한 처(處)가 불소하게 되었으니, 동지 제군은 그렇게 양해하시는 동시에 이러한 문제, 즉 우리들의 당면문제를 이런 곳 밖에 쓸 수 없는 것을 다같이 유감으로 생각하자.
 
 
117
─《중외일보》(1930. 9. 2-16)
【원문】조선 예술운동의 당면한 구체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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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9월 24일